〈 73화 〉6. 북부
발굴대의 캠프에 도착했을 때, 모두는 눈 앞에 펼쳐진 참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끔찍했던 유적이 작은 규모로 재현되어 있었던 것이다. 땅을 적시는 질척한 피. 숨을 잃어버린 채 바닥에 몸을 뉘인 사람들. 숨쉬고 있는 이가 도로스 일행 밖에 없다는 점은 유적과 똑같았다. 다른 점을 찾자면 이곳의 시체 수가 적다거나 이곳의 시체는 그곳의 시체들보다 싱싱하다는 점 정도일까.
그러나 그런 크고 작은 차이점 따윈 그들의 경악과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약간의 도움조차 줄 수 없었다.
"..미친 놈들이!"
프로바움은 으르렁 거리며 씹어먹을 듯 말을 뱉어냈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도 그에 지지않고 그들이 아는 온갖 저주의 말을 쏟아부었다. 오로지 카지트만이 무언인 채 우묵한 눈으로 더 이상 숨쉬지 않는 것들을 바라봤다.
스물 이상의 사람들이 고작 다섯에게 몰살당했다. 천천히 다가가 죽은 발굴대원들을 살펴본 이들은 추격자의 솜씨에 혀를 내둘렀다. 자상부터 총상까지, 냉병기와 화기의 조합이 시체들을 수놓고 있었다. 고가의 무기와 방호구는 압도적인 실력 앞에선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전장을 구른 경력과 실력이 다른 것이다.
고작 다섯이서 무장한 다수를 모두 몰살시키다니. 심지어 얼핏 본 멕도너들에겐 변변한 상처조차 없어보였다. 그들과 맞붙지않은 게 정답이었다고 생각하는 한편, 도로스는 머릿속 한 구석에선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하는 자신을 책망했다.
간신히 분노를 억누른 닥터 윌슨은 사인死因을 조사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시체들은 훼손이 그리 심하지않아 별다른 외과적인 과정없이 그의 의료지식만으로 충분히 판별 할 수 있었다.
"총상,보다는 검상이 많,은 것 같습니,다. 총,상도 대,부분 산,탄총의 흩뿌려진 벅샷,인 것 같고 간혹,가다 권총이나 라이플로, 짐작되는 무기에 당,한 상처도 보입,니다."
"플라잉 몽키즈답군. 그놈들은 손맛이니 뭐니 하며 근접전을 선호하니까. 라이플같은 건 원거리전 대책인가?"
프로바움은 팔짱을 끼고 혼잣말을 했다. 풍부한 전투경험을 바탕으로 그의 머릿속에선 가상의 전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닥터 윌슨은 그에게 또다른 시체를 보여줬다.
"이 자,상은 누구 솜,씨인지 짐작,갑니다. 아마 말릭의 것,인 듯 합니다. 방호구,로 가릴 수 없는 목이나 겨드,랑이등을 찔렀습,니다. 역시 예,사 실력은 아닙,니다. 전부 일격,에 절명했습,니다."
"그럼 이건 뭔가? 둔기류에 얻어맞은 듯 한데."
프로바움은 한 시체를 가리켰다. 목이 거의 90도 가깝게 꺾인 시체였는데, 마치 묵직한 무언가가 머리를 친 듯 머리 한 쪽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머리뼈를 주저,앉히고 목뼈를 부술 정도,라면 꽤나 힘,이 강한 것 같습니,다."
프로바움도 비슷한 내용을 짐작했는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이라면 추적자 중에선 멕도너가 가장 유력해 보였다.
열심히 사인과 사용된 무기에 관해 의견을 나누는 그들과는 별개로 주위를 둘러보던 도로스는 한 막사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곤 일행을 불렀다. 목소리는 반쯤 충격에 차 있었으므로 일행들은 지체없이 그의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다들 여기로 좀 와보세요!"
도로스는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을 불러모아 한 시체를 가리켰다. 막사 안에선 한 시체가 죽어있었는데, 그 얼굴을 모르는 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들을 배웅했던 얼굴이니까.
"....랄로프군."
랄로프는 가슴 주위가 움푹 내려앉아있었는데, 사인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강력한 힘에 흉골과 폐, 심장 등의 장기가 함몰된 것이다.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그것이 바로 전에 발견한 시체의 흔적과 유사하단 걸 단번에 눈치챘다.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이라면..멕도너인가 뭔가 하는 고릴라 놈이겠구만. 생각보다 힘이 더 좋군 그래."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다시 사용된 무기와 가해진 힘 등을 유추하기 시작했다. 온갖 알 수 없는 전문용어들이 난무하는 그 광경은 도로스에겐 감당하기 힘들었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다른 이상한 점이 없는지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한 바퀴를 둘러보기도 전에, 도로스는 누군가 한 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라? 그런데 카지트는요?"
도로스의 지적에 주위를 둘러본 둘은 카지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시선을 교환한 셋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재빠르게 막사 밖으로 달려나갔다.
카지트는 멍하니 아래를 응시했다. 그곳엔 수많은 시체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을 사로잡은 건 단 한 구의 시체다. 살아있을 적엔 카라마조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 그것은 바닥에 몸을 뉘이고 흙과 돌과 함께 무정물이 되어있었다. 채 감기지 못한 눈이 그를 꾸짖는 것만 같아, 카지트는 눈을 피했다.
그는 복잡한 눈으로 차가운 몸뚱이를 바라봤다. 카지트는 이것이 정말 현실인지 아니면 그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현실이라면 너무나 잔혹한 것이고 꿈이라면 필시 악몽임이 틀림없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옛 동료, 폭로, 동료들의 죽음. 그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쳤다. 그의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이들의 얼굴이 머릿속에 흘렀다.
그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카지트 자신 때문이다. 그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실타래가 복잡하게 엉켜있어 도저히 풀 수 없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그는 자문했다.
대답은 머릿속 한 구석 어딘가에서 나왔다. 아니, 어쩌면 죽어버린 카라마조프가 속삭인지도 모른다. 네 잘못이잖아? 카지트는 그저 입술을 깨무는 것 외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실수. 단 한 번의 실수. 잘못된 선택은 옛동료의 대부분을 무참히 죽였으며 이제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옛동료마저 살해했다. 모든 건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카지트의 선택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모두를 죽인 것이다.
그 때 아쉬드를 따르지 않았다면.
카지트는 후회했다. 그러나 뒤늦은 후회다. 후회는 돌이킬 수 없다. 후회는 죽은 이들을 되살리지 못한다. 그는 문득 모든 게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모든 것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부모같았던, 친구같았던, 형제자매같았던 이들이 그의 탓으로 모두 죽은 것이다.
무기력감과 탈력감이 그를 지배했다. 세상만사가 모두 귀찮아졌다. 의뢰니 광신도니 하는 것도 더 이상 신경쓰기 싫었다. 카지트는 얼굴을 두 손에 파묻었다. 머릿속에 윙윙 하고 파리가 들끓는 느낌이었다. 그를 진득하니 응시하는 카라마조프의 눈이 보기싫었다.
만약 이게 꿈이라면 어떻게 해야 깨어날 수 있을까? 카지트는 곰곰히 생각했다. 천천히 주위를 훑던 그의 시선이 허리춤에 꽂힌 무기로 향했다. 방법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그가 없다고 해도 일행에겐 도로스가 있다. 선천적인 길잡이인 도로스라면 제대로 일행을 잘 이끌어 줄 것이다. 카지트는 잠깐 자신에게도 선천적인 능력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생각을 그만두었다. 만약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천천히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 댈 때, 돌연 눈부신 섬광이 그를 강타했다.
처음엔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몰랐으나, 그는 이내 자신이 바닥에 누워있음을 깨달았다. 곁에선 프로바움이 씩씩 거리며 분노섞인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얼얼한 통증이 한 박자 늦게 뺨에서 찌르르 울렸다. 주먹 쥔 프로바움의 손과 뺨의 고통에 그는 곧 상황을 파악했다. 프로바움의 그의 뺨을 때린 것이다. 그러나 카지트는 뭐라고 반항하지도, 그렇다고 일어서지도 않았다. 그 모든 행위가 너무나 귀찮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텅 빈 것 같은 눈으로 바닥에 누운 채 그를 올려다 봤다.
"너, 이 자식! 지금 무슨 짓을 하려고 했나!"
프로바움은 목소리를 높어 윽박질렀다. 그러나 카지트에게선 뚜렷한 반응은 없었다. 프로바움은 분기탱천하여 바닥에 누운 카지트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켁켁하고 카지트가 목졸린 신음을 내었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 다시 한 번 묻겠어. 방금.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했지?"
억누른 분노가 짓눌린 금속이빨 사이로 으르렁거리며 흘러나왔다. 서로를 바로 코 앞에 두고 둘은 마주봤다. 프로바움이 내비친 격노담긴 눈길을 카지트는 시선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피했다.
"카지트, 다시는 내 앞에서 그 따위 짓거릴 하지마라. 대체 저 나자빠죽은 녀석과 무슨 관계였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헌신짝 내버리듯 우릴 버리고 도망치려는 거냐? 우리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거냐?"
죽는다는 단어에 카지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죽는다. 그 단어가 그의 속에서 몇 번이고 울려퍼지며 증폭되었다.
죽는다고? 또다시 동료들을 잃어버린다고? 그건 싫어. 그는 입술을 달싹였다.
"도로스에겐 미안하지만 아직 그녀석은 어려. 나이 뿐만아니라 길잡이로서도. 우리에겐 네가 필요하다. 카지트, 네가 우리의 리더이고 길잡이야."
더 이상 잃고 싶지않아. 그는 이를 악물었다. 그 안에 잠들어있던, 잠재워놓았던 과거의 잔재가 깨어나려 하고 있었다.
프로바움의 말은 분명 카지트에게 닿았다. 그러나 '죽는다'라는 단어가 조금 더 와닿았을 뿐이다. 그것은 카지트를 예전의 그로 바꾸어놓기 시작했다. 레인저였을 때의 카지트. 목표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행했던 그 때. 오로지 동료만이 전부였던 그로.
천천히 카지트의 눈이 한 자루 칼날처럼 날카롭게, 그리고 차갑게 벼려졌다. 또다시 동료들을 잃을 수는 없었다. 늘어져있던 신경이 한계까지 팽팽하게 당겨진다. 멍하던 머리는 냉수라도 부은 것처럼 맑고 냉철하게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동료들이 죽는 건 싫어.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뒤늦게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달려왔다. 프로바움은 달려오는 그들을 흘낏 보곤 거칠게 카지트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답이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길잡이는 도로스가 하는 편이 낫다. 모두를 죽음으로 몰고가는 그보단 도로스가 길을 이끄는 편이 더욱 안전 할 것이다. 그가 해야 할 것은 명백했다. 도로스들이 할 수 없는, 그만이 가진 것. 잔혹함, 고문, 함정 해체.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다른 동료들이 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을 그가 맡으면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야 레인저였을 때 신물나게 해봤으니 자신이 없을래야 없을 수 없다. 오히려 그밖에 못하는 일일 터이다. 그리고 실패한 길잡이보다 그에게 더 걸맞는 일일 테고.
카지트는 대충 옷깃을 정리하고 가라앉은 눈으로 도로스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그전처럼 탁하지는 않았으나,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무심코 움찔 할 정도로 무감정하고 냉랭했다.
"도로스, 길잡이는 그대로 네가 해줘."
"예? 하지만 길잡이는 카지트가.."
"부탁해."
부탁아닌 부탁처럼 들렸지만 도로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평소의 그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저런 모습의 카지트를 본 적이 있었다. 그에게 에메랄드 컴퍼니의 의뢰를 알리고 참가 할 것인지를 물었을 때. 그 외에도 그는 저런 모습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도로스는 그것이 그의 일면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올바른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카지트를 제외한 셋은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카지트가 다시 정신을 차리길 원했지만 저렇게 무감정한 기계가 되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모습에 그 누구도 감히 토를 달 수 없었다. 손가락을 가져다대면 바로 베일 것같은 시리고 날카로운 카리스마 때문인지도 모른다.
도로스는 잠깐의 갈등을 안에 고이 접어두고 길을 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