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6. 북부 (71/100)



〈 71화 〉6. 북부




모두 라이트를 끄자 시꺼먼 암흑이 고개를 내밀었다. 단 한줌의 빛조차 살라먹은 그것은 통로를 가득 메운채 기지개를 폈다. 그것의 두께는 너무나 두꺼워서 밤에도 낮처럼 볼 수 있는 카지트의 눈 조차 도움이 되지않았다.



시체 사이로 몸을 숨긴 도로스는 정신이 점점 점멸하는 것을 느꼈다. 아니, 점멸한다기 보단 번진다는 단어가 어울릴 지도 모른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어쩌면 조금 전에 마셨던 알코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알코올은 그가 뛰쳐나가지 않게 그를 북돋아주고 있었다. 취기가 돌아 감각이 둔해진 까닭이다. 만약 감각이 멀쩡했다면 그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도망쳤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각이 둔해졌다고는 해도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기에, 그는 주위에 도사린 숨쉬지않는 것들의 기척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때는 걷고 움직이며 뛰어다녔을 그것들은 서로에게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것들은 그들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진 도로스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손과 발을 떠나,  몸으로 그들은 도로스에게 비비적 댔다.


도로스는  죽은 것들이 굉장히 시끄럽다고 느꼈다. 아니, 뭔가 이상한데? 액체와 고체의 사이에 머문 것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하지? 술기운 때문인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시야가 핑핑 도는 것을 느꼈다. 술 때문일까? 아니면 오감을 좀먹는 것같은  지독한 것들 때문에?


도로스는 자신이 서 있는지 누워있는지 조차 알 수 없었다. 썩은내 나는 어둠이 그의 눈을 가리고 있는 탓이다. 시각은 죽었고 후각은 마비 되었다. 다른 감각들도 멀쩡하진 않았다. 그는 몸을 기어다니는 음산한 시쳇물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든 제 존재를 알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도로스 또한 기어가기 위해 몸을 꼼지락 거렸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않았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너무나 싫었다. 목덜미를 매만지는 서늘한 죽음의 감촉도, 무게추처럼 무겁게 몸을 짓누르는 생없는 것들의 비명도, 농밀하게 감도는 지옥의 향기도!




허우적 거리며 사방으로 내뻗은 그의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차가운 것들 사이에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다. 무색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의 색채처럼 그것은 남달랐다. 살아있는 이의 온기란 그런 것이었다.



"..도,로스..."




지진이라도  것처럼 떨리는 음성. 그것은 희미하기 짝이 없었다. 마치 꺼지기 직전의 촛불같다. 그러나 테두리가 희미해져가던 도로스의 정신을 일깨우는데엔 충분했다. 도로스는 그 손에 잡은 게 무엇인지 천천히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것이 닥터 윌슨의 팔임을 깨달았다.




그의 팔은 기분나쁜 점액질을 머금은 채 끈적거렸다. 닥터 윌슨의 팔이 잘게 떨렸다.  또한 도로스 못지않은 공황상태에 처해있는 듯 했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가 들렸다. 도로스는 그게 닥터 윌슨의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것인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대한 숨을 얕고 조용하게 쉬기 위해 노력했다. 거친 숨소리는 조용한 통로 내부에서 폭음처럼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도로스는 닥터 윌슨의 팔을 더듬어 손이 있는 위치를 알아내곤, 그의 손을 굳건히 붙잡았다. 누군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한층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시체들 사이에 누워있었으며, 숨없는 것들은 숨쉬는 그들을 탐내며 달라붙고 있었다. 그럼에도 도로스는 전처럼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닥터 윌슨 또한 조금 정신이 돌아온 듯 했다. 마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잔떨림이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어느새 그의 숨소리 또한 많이 침착해졌다.



상황은 프로바움이라고 별반 다르지않았다. 가운데 나 있는 길을 중심으로, 프로바움과 카지트는 도로스와 닥터 윌슨의 반대편에 숨어있었다. 그곳 또한 영락없는 지옥의 한복판이었다.

프로바움은 진득하니 달라붙은 썩은 점액질에 몸서리를 쳤다. 살아있던 것의 일부라고 믿을  없을 정도로 역겨운 냄새와 질감을 자랑하는 것은 그의 금속 피부를 녹일  마냥 그를 핥아댔다. 정말 역겹고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

제아무리 반 백년 이상의 전투 경험을 쌓아올린 그라고 하더라도 이런 경험은 좀처럼 하기 힘들었다. 거의 없다고 말해도 좋았다. 따라서 프로바움 또한 격정과 갈등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적어도 도로스나 닥터 윌슨처럼 취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자동인형의 굳건한 이성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맨정신으로 견뎌야하는 심각한 정신적 고문에 프로바움은 소리없는 고함을 질렀다. 광신도들, 추격자들, 그리고 이 유적을 지은 고대인들. 그는 무수히 많은 사람에게 전장에서 다져진 욕설을 선보였다. 그러나 그 대상 중엔 해결책을 낸 도로스의 이름은 없었다. 다행이 아직 분노의 대상을 구분 할 만한 이성이 남아있다는 반증이리라.



곁의 카지트 또한 말없이 간간히 앓는 신음소리만 내고 있었다.




프로바움이 그들 일행의 머릿수와 추적자들의 머릿수를 비교하며 이를 갈고 있었을 때, 어떻게든 추적자들 머릿수를 하나 줄여 넷으로 만들자는 망상에 빠져있었을 때, 발소리가 들렸다. 모두 신음을 삼키고 후들대는 몸을 경직시켰다.



거리는 멀었지만 추격자들이 다가오고있다는 것을 모두들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한 곳에서 저벅대는 발소리는 나즈막히 울려퍼졌다. 또한 어두운 곳에서 저 멀리 반짝이는 빛만큼 잘 보이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스의 심장이 쿵쿵 울리며 달음박질쳤다. 들키면 단순히 위험한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고 그의 감이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는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까봐 가슴께를 부여잡고 최대한 호흡을 얕고 느리게 했다.

"쯧, 누가 쓰레기들 아니랄까봐 이런 역겨운 곳만 골라다니는군요."




멀리서 들리던 음성은 점점 가까워졌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다가오던 적들은 돌연 걸음을 멈추었다. 도로스는 시체 사이에 숨어있다는 걸 눈치챘을까봐 잔뜩 긴장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화에 잠시 안도했다.

"..뭔가 벽 같은 게 무너져 있군요."



도로스들이 그랬듯이 추적자들 또한 어둠에 가려진 격벽을 발견한 것이다. 도로스는 미세하게 몸을 비틀어 시체들 사이로 난 틈으로 녀석들의 모습을 보았다.

원숭이 넷과 고양이 하나. 보고받았던 그대로다. 다만 모두 두건같은 걸로 입과 코를 가리고 있었는데, 아마 역한 악취 때문인 것 같았다. 그중 멕도너의 덩치는 다른 원숭이 셋을 가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그는 삐쭉 마른 원숭이 수인을 앞으로 끌어와, 턱짓으로 무너진 격벽을 가리켰다.




불쌍할 정도로 벌벌 떨던 원숭이 수인은 연신 사방을 두리번 거리고 땅에 귀를 대보는 등 요란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그 얼굴엔 여전히 제 목숨에 대한 수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그는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다잡으며 말을 꺼냈다.


"그, 그게..어,없는 것 같습니다."




"'없는 것 같다'?"

눈가를 좁히며 되묻는 말릭의 모습에 그는 사색에 질린 표정으로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 여긴 냄새가 너,너무 심해서 알기 어,어렵습니다."



말릭은 칼을 뽑아들었다. 칼의 뒤를 따라 뽑혀진 말은 칼보다 먼저 길잡이를 찔렀다. 말이 얼마나 날카로웠는지 길잡이는 펄쩍 뛰어오르며 비굴하게 고개를 숙였다.

"변명은 죄악이라는 것 모릅니까?"




"ㅈ,죄,죄송합니다."

"그만해라. 한 명 뿐인 길잡이다. 없으면 곤란해지는  우리야."


상황을 한동안 지켜보다  내던지는 멕도너의 말에 말릭은 코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길잡이의 목에 바람구멍을 내는 대신, 빼든 세검을 조용히 칼집에 집어넣었다.


길잡이로 지명된 원숭이 수인은 안도와 감사의 눈길로 멕도너를 바라보았으나, 그 표정이 공포와 긴장으로 얼룩지는 건 금방이었다.

"가서 직접 확인해라."


멕도너는 부서진 격벽 쪽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길잡이는 처음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 못해 갸우뚱 했으나, 이내 무엇을 확인하라는 건지 깨닫고는 안절부절 못했다. 직접 가서 그들이 쫓는 상대가 격벽 뒤에 숨어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였다. 명백하게 도로스들의 기습을 상정해 두고 있음이 틀림없다.

길잡이는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지만, 되돌아오는 건 냉담한 반응 뿐이었다. 결국 그는 격벽까지 걸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후천적인 길잡이인 그에게 오감 중 한 곳이라도 쓸 수 없다는 건 치명적이다. 오감을 통해 수집한 정보로 길을 정하는 것이 그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각을 잃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 상황에서 그는 정말로 적이 격벽 너머에 숨어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이 그는 맞는 길을 골랐다. 도로스들은 격벽 너머가 아닌 시체들 사이에 숨어있었으니까. 그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외쳤다.




"없습니다!"




길잡이의 말에 멕도너와 말릭을 위시한 추격자들은 걸음을 옮겼다. 앞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망설일 것은 없었다. 그들이 도로스 일행이 숨어있는 곳을 스쳐지나갈 때조차 눈치챈 기색은 없었다. 이대로 조용히 보낸다면 별 탈 없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그러나 세상일이란 항상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다. 그리고 사람은 긴장이 풀렸을  가장  실수를 저지르는 법이고. 한 껏 긴장한 몸에서 힘이 빠지자, 도로스의 위에서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장기 쪼가리 몇 개가 후드득 떨어진 것이다.


전부 주먹보다도 작은 크기이다 보니  소리 또한 작았다. 아마 보통이라면 듣지못한  지나칠 것이다. 다만 문제는 환경이었다. 죽은 정적이라고 표현 할 만큼 적막한 공간에서는 추격자들의 귀에 또렷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말릭은 한치의 망설임 없는 태도로 검을 빼들었다. 그 속도는 눈 한 번 깜빡일 정도로 가히 민첩했다. 그러나 예민하게 반응한 이는 추격자 중에서 그 밖에 없는  했다. 말릭은 한  눈을 찡그리곤 이상하다는 얼굴로 플라잉 몽키즈를 돌아봤다.



멕도너는 그의 시선을 무시하고 다시 한 번 길잡이를 앞으로 내몰았다. 길잡이는 소리가 난 시체더미 앞에 섰다. 가까이 서니 악취가 코를 잡아뜯을 듯 올라왔다. 그는 끊임없이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어,없는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없습니다!"

길잡이의 말에 멕도너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흥, 몇 놈 죽여봤다고 거들먹거리는 게 꼴불견이었는데. 결국 샌님은 샌님이군."



"무슨 소립니까?"

멕도너와 말릭은 서로 마주했다. 시선과 시선의 마주침.  사이에서 불꽃이나 전기가 일어나는 현상 따윈 없었다. 다만 그 사이에 선 사람이 있다면 분명 호흡곤란과 심장마비로 돌연사 할 지도 모른다. 두 살인귀가 내보인 살의는 농밀하다못해 익사해버릴 정도로 흉악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먼저 입을  것은 멕도너였다.


"보나마나 고인 가스 때문이겠지. 부패된 정도가 심하니까 시체 안에 고인 가스가 빠져나오면서 움직였겠지. 안그런가?"


"헤헤, 물론이죠 대장. 전 예전에 시체가 방귀뀌는 것도 본 적 있습죠."


멕도너의 기대에 부응해,  내의 모든 플라잉 몽키즈들은 맞장구를 쳤다. 말릭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는 흉신악살이라 칭할 수 있을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로 날  송곳니를 내보였다. 그러나 멕도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알겠나? 고작 이런 시시한  하나하나 반응하지 말라고. 전쟁터도 근처에도 안가본 샌님 티가 나니까."




이것이  사람 사이의 서열 싸움이라는 것은 누구나 손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승자가 누구인지는 한층 더 명백해졌다. 말릭은 말없이 차갑게 이글거리는 눈으로 멕도너를 쏘아봤다. 그러나 멕도너는 여유로운 태도로 어린애를 달래듯



"뭐, 정 그리 걱정된다면 이 정돈 해주지."



말을 마친 멕도너는 드로잉 액스 한 자루를 꺼내 가벼운 손짓으로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던졌다. 그러나  결과는 도저히 가볍게 던졌다고 생각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피와 시체쪼가리로 점칠된 분수가 펼쳐졌다.

말릭은 민첩한 몸놀림으로 뒤로 훌쩍 뛰었다. 그 자리에 서서 온 몸으로 역겨운 것들을 받아낸 전투의 대가는 훗하고 코웃음을 치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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