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0화 〉6. 북부 (70/100)



〈 70화 〉6. 북부

"아!"

짤막한 감탄사가 도로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미약한 기대를 담은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가린 방독면을 매만지며 뭐라 중얼중얼 거렸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작고 방독면에 막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래도 골똘히 생각하는 그의 태도를 보아 무언가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을 찾은 듯 싶었다.



"으음? 도로스, 왜 그러나?"




한동안 도로스에게서 이렇다 할 반응이 없자, 프로바움은 도로스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세월이란 이름의 누름돌에 한층 가라앉았으나 여전히 진득하니 기다리는 건 성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는  더 차분히 기다렸어야 했다.

프로바움의 접촉이 기폭제라도 된 듯 도로스는 눈 돌아갈 만큼 빠른 속도로 고개를 돌렸다. 방독면에 가려진 얼굴이지만, 그 너머 눈가에 넘실대는 무언가를 본 것 같다고 자동인형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정신건강에 그리 좋지 않다는 사실 역시 어렴풋하게 느꼈다.

"프로바움, 아까 뭐라고 했어요?"

자동인형은 달려들 듯 그에게 다가오는 젊은 일행의 기백에 압도되어 한 발자국 물러섰다. 마치 물에 빠져 익사하기 직전에 돌파구를 찾아낸 생쥐처럼, 절박한 가운데 무언가를 떠올린 도로스에겐 프로바움 마저 주춤거리게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 프로바움은 떨떠름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는지 물어봤네만?"




"아니,  전에 혼잣말이요."

"혼잣말? 이곳에 숨어있다가 기습을 한다면..."


"네, 맞아요! 그거! 바로 그거에요!"


도로스는 두 손을  마주쳤다. 그러나 어쩐지 조금 어물쩡거리는 태도가 남아있었다. 아주 잠깐 기뻐하던 그는 이번엔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반쯤 기뻐하면서도 나머지 반쯤은 조금 떨떠름해 하는 그의 모습에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발자국 물러났다. 길잡이의 숙명이 그에게 너무 무거운 나머지 머리가 어떻게  건가 생각했지만, 조리있게 말하는 걸 보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물론  '해결책'을 떠올린 당사자 또한 잠시나마 자신이 점점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끔찍한 생각을  수 있단 말인가? 평소라면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한 제 머리에 치를 떨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이름을 부르짖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아쉽게도 그의 생각을 읽는 능력 따윈 없는 둘은 찜찜한 얼굴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저 아무런 생각없이 흘러가듯 내뱉은 흰소리에 저렇게 방방 뛰다니. 아마 숨어있다가 기습을 하면 어느정도  볼만 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행이 가능하긴 해도 성공률은 그다지 보장 할 수 없었다. 분명 도로스는 해결책이란 단어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그 점을 놓친 것 같다고 닥터 윌슨은 생각했다.



그러나 닥터 윌슨의 예상과 다르게 도로스 또한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스가 떠올린 해결책은 이 자리의  누구도 떠올리지 못한 방법이었다.


"지금 이곳,에서 싸우,자는 겁니까? 기습을 해,서 머릿수를 줄,이고?"



"아뇨, 그건 아녜요. 어떻게든 싸워서 이긴다고 쳐도 분명 크게 다치거나, 그...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으나까요. 가능한  직접 맞붙는 건 피하고 싶어요."

최악의 상황란 단어에 모두는 한 가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같은 것을 떠올렸다는 사실엔 이견이 없었다. 동료의 죽음. 동료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목숨과 더불어 최악으로 꼽을 것이다. 단순히 동료 사이의 정 때문이 아니더라도, 동료의 죽음은 자신의 생환율을 낮추기 때문이다. 홀로 파이프를 돌아다니는 것 만큼 미친 짓은 없으니까.


"그래서.어떻게 하자는 건가?"


"그냥 숨자는 거에요."




"그냥 숨자고?"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마치 잘못 들었다는 듯한 괴이쩍은 표정을 지었다. 둘은 서로 마주보고 눈짓으로 각자 청각에 문제가 생겼는지 물었다. 그리고 서로 문제가 없다는  확인한 둘은 도저히 뭐라 말할 수 없는 표정으로 도로스를 응시했다.



"어디에 숨자는 건가? 설마 저 벽 뒤편에?"



프로바움은 아리송한 표정으로 무너진 격벽을 가리켰다. 이곳에서 숨을만한 곳이라곤 그곳 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로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젓고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체념과 자책섞인 긴 한숨이 그 뒤를 잇따랐다.


도로스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던 둘은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천천히 얼굴을 굳혔다.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의 시선이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져 기분나쁜 조형물 수준으로 무시 할 수 있게된 시체들에게 향했다. 둘 또한 도로스의 계책이란 게 무엇인지 깨달은 까닭이다. 굳어져가는 혈액처럼 경악이 천천히 둘의 얼굴에 퍼졌다. 소리없는 비명. 고함처럼 목구멍을 두들기는 그것을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애써 억눌렀다.

프로바움은 최대한 목소리를 가다듬었으나, 나오는 것은 잔떨림 섞인 단 두 음절이었다. 그리고 도로스는 제발 부정해달라는 간절함을 내포한 그것을 간단히 무시했다.




"..설마?"



"..네. 그냥 저 시체들 사이에 숨어서 추격자들을 먼저 앞으로 보내는 거에요. 녀석들은 우리가 그대로 갔다고 생각 할 테니까, 주의만 한다면 들킬 위험은 그리 높지않다고 봐요."


"맙소사."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탄식이 둘의 머리를 강타했다. 오로지 카지트만이 관심없다는 듯한 태도로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충격을 넘어 경악스러운 발언을 내뱉은 도로스 또한 방독면 뒤로 표정을 감추었다.



나름 참신하다면 참신한 방법이다. 아마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저 시체더미 사이에서 숨어있다고 상상조차   없으리라. 혹은 그런 생각을 떠올린 소수라도 직접 시체들 사이에 뛰어들어 숨어있는 이를 꺼내진 못할 것이다. 이미 부패가 상당히 진행되어 반쯤 녹은 꼴을 하고있는 시체의 정원은 오감을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단순히 방법론적인 면에선 뛰어난 효과를 발휘할 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성은 감성을 설득  수 없는 법이다. 대부분의 감성이 배제된, 이성의 화신이라 부를 수 있는 자동인형들이라면 간단하게 이 '효율적인 방법'을 실행했겠지만, 자동인형 중에서도 특이한 부류인 프로바움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다시  번 희미한 희망을 담아 도로스에게 물었다. 만약 그가 잘못 들은 것이고 도로스가 정말로 기습을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다른 방법을 권유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이런 비도덕적이고 모독적인 행위는 제아무리 수많은 전장에서 시체를 양산하는데 반 세기 이상 일조했던 그라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선? 녀석들의 뒤를 칠 건가?"


그러나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명백하게 그의 의도완 다른 대답이었다.



"아..저도 알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되돌아 가자는 겁,니까? 괜찮,은 생각인 듯 합니,다."




닥터 윌슨은 반쯤 체념한 것 같았다. 그의 영민한 머리는 이미 대략적인 견적을 짜내렸다. 그리고 그 대답은 도로스의 결론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시체들 사이에 숨어서 추적자들을 보내고 일행은 다시 입구로 되돌아 간다.



추적자로 부터 안전하게 도망치는 한편, 시간까지 벌  있었다. 아직 도로스들이 유적 안에 있다고 생각 할 테니, 추적자들이 입구로 돌아오기까진 시간이 꽤나 걸릴 것이 자명했으니. 하나의 행동으로 하나 이상의 목적을 달성하니, 효율면에서도 괜찮은 방법이었다. 물론 흔히 도덕이나 윤리라고 부르는 것들 몇 가지를 잃긴 하겠지만.

닥터 윌슨은 인상을 한껏 찌푸린 채로 시체더미를 바라보다가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도저히  미친 짓거리를 맨정신으로 감내 할 자신이 없었다. 그는 가방을 뒤져 비상용 알코올을 꺼내 들이켰다. 그러자 세상이 핑핑 돌며 정신이 침침해졌다. 그래도  와중에도 불쑥 솟구치는 게 있었으니, 다름아닌 그의 학문적 호기심이었다.

"다만 걱정,되는 건 이 유적의 중요,성입니다. 무한동력이 잠,들어있었던 곳이니, 그에 관,해 무언가 단,서가 남아있을 지도 모릅,니다만.."



닥터 윌슨은 볼멘 소리로 학자의 아쉬움을 표했다. 그러나 학구열은 때론 목숨보다 값지지 못한 법이다. 도로스는 그의 호기심을 말 한 마디로 잠재웠다.

"그것도 그렇긴 한데, 일단은 목숨이 중요하니까요."



도로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도 내키지 않았다. 생리적 혐오감을 발산시키는 저런 곳 따위 누가 돈을 준다고 해도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것 이외의 확실하고 안전한 방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닥터 윌슨에게 알코올을 건네받고  잔 들이켰다. 어쩐지 누이가 보고 싶다고, 도로스는 생각했다.


체념을 넘어 달관한 것 같은 둘의 태도에 프로바움은 작게 혀를 찼다.



"..이럴  취할 수 있는 자네들이 부럽구먼. 자동인형이란 게 이렇게 슬플 줄이야."

그는 착잡한 눈으로 구역질나는 시체들을 노려봤다. 한 때 새하얀 옷을 입었던 것들은 온 몸을 더럽힌 채 말없이 누워, 썩어서 걸쭉해진 눈으로 그들을 마주 응시했다. 그는 파이프를 크게 그리고 깊이 빨아들였다.


"...빌어먹을. 이래서 한 명을  구했어야 했는데."




프로바움은 4의 저주가 어김없이 따라온다며 욕설섞인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불평불만은 시체들 위로  발 내딛었을 때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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