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6. 북부 (69/100)



〈 69화 〉6. 북부

도로스는 곰곰히 생각했다. 상대는 다섯. 무기나 전투스타일은 모른다. 그러나 다섯이서 수 십의 발굴대를 전멸시킨 것을 보면 절대로 얕볼 상대는 아니다. 애초에 저쪽엔 멕도너와 말릭이 있으니 절대로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골몰하던 그의 눈길이 일행을 훑었다. 자동인형과 귀뚜라미를 스쳐지나간 시선은 이윽고 살쾡이에게 머물렀다. 작은 깨달음이 그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는 입을 열었다.



"싸우는 건 조금 무리일 것 같아요."


도로스는 눈짓으로 카지트를 가리켰다. 그는 아직도 무기력하고 침울한 상태여서, 도저히 싸울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다른 둘 또한 카지트의 모습을 확인하곤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프로바움은 뭔가 한 마디 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나오는 건 큰 한숨 뿐이었다.

"곤,란하게 되었습,니다. 카지트의 상태가 저,렇다면 맞붙는 건 최대,한 피해야합,니다."


"그렇지. 거기다, 놈들이 발굴대의 장비를 손에 넣었다고 하면 우리로썬 손  도리가 없네. 속수무책으로 밀리겠지."




"그렇다면 역시 도망치는 것 밖에 없겠네요."



도로스의 발언에 프로바움과 닥터 윌슨은 그를 응시했다.


"도로스, 자네가 결정하게. 지금 우리의 길잡이는 자네이니, 자네가 결정하는  마땅히 옳겠지."



닥터 윌슨 또한 프로바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도로스는 당황하는 한 편, 온 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책임감을 느꼈다. 길잡이라는 건, 일행은 이끈다는 건 이렇게나도 막중하고 힘든 일이던가.



그의 말 한 마디에 모든 일행의 생사가 걸려있다. 카지트는 여태껏 이런 막중한 선택의 기로 속에서 모두를 이끌어왔던 것인가. 그는 책임이란 대항  수 없는 괴물에게 압도되면서도, 속으로 카지트에 대한 순수한 감탄을 내뱉었다. 한 치만 어긋나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벼랑 위에서, 카지트는 단 한 번의 실수없이 도로스들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었다.



도로스는 자신도 카지트처럼 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들었다. 그러나 어리광부리고 있을 틈은 없었다. 카지트의 상태가 저런 이상 일행을 이끌 사람은 도로스 밖에 없었다. 도로스는 순순히 길잡이의 숙명을 받아들였다.



"도망칩시다. 추격자들이랑 맞붙어봤자 손해가 더 클 거에요."


"알겠네. 그런데 어디로 도망칠 건가?"


일방형의 통로. 그러나 입구는 막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녀석들은 입구에서부터 그들의 행적을 쫓아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계속 전진하는  또한 위험부담이 컸다. 발굴대가 전체의  분의 일 가량 되는 구간의 함정을 해제했다고는 하나, 그말은 즉 나머지 삼 분의 이는 그대로 남아있다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이대로 발굴대가 함정을 해제 해놓은 곳까진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갈  있겠지.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라네. 그 지점부턴 남아있는 함정을 피하며 나아가야하는데, 진행속도는 느려지겠지. 거기다 함정을 해제해야 할 녀석도 저 모양이니 골치아프군."


프로바움은 카지트 쪽을 가리키며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대로라면 따라,잡힐 것 같습니,다."


도로스 또한 둘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의  또한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고 경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가끔 가다 기발한 발상을 떠올리던 머리는 이번엔 제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는 끙끙대며 고민했으나, 몇 분이 지나도 명확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입술을 질끈질끈 물어뜯으며, 도로스는 할  없다는 듯 말했다.


"일단 앞으로 계속 가봐요. 아직은 방법이라고 할 만한  안떠오르네요."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나중이라고 떠오를 지는 몰랐으나, 최소한 이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추격자들도 곧 깨달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유적엔 위험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물론 어디까지나 일정 지점까지지만, 그들은 모를 것이다.



무언가 번뜩임이 그의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어?"




"왜그런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건 실체를 가지지못한 희미한 잔향에 지나지않아, 도로스는  번뜩임의 끝을 잡아채지 못했다. 희미하게 떠오를  말 듯한 느낌이 그를 간지럽혔다. 도로스는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그것을 생각하며 일행의 선두에 섰다.


도로스들은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가운데 뚫린 길의 좌우엔 온갖 방법으로 죽은 시체들이 나자빠져 있었다. 새하얬을 그들의 로브는 추악한 색으로 물들어 넝마조각이 되어 있었다. 무릎께보다 위로 쌓인 시체들이 부패하며 내뿜는 악취는 말 그대로 사람을 기절시킬 정도로 악독했으나, 일행에겐 별다른 위협을 끼치진 못했다.

도로스의 성능좋은 방독면은 대부분의 악취를 걸러내었기 때문이다. 또한 후각이 상대적으로 둔한 닥터 윌슨이나 자동인형인 프로바움도 그다지 영향을 받지않았다. 따지고 보면 일행 중 카지트만이 냄새에 민감  텐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에게선 어떠한 반응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카지트, 여기 냄새 엄청 심한 것 같은데, 괜찮아요?"

아무런 생각없이 멍하니 도로스의 뒤를 따르던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도로스를 응시했다. 어딘가 나사빠진 듯한 행동은 모두  박자씩 느렸다.




"...응. 감각을 끊는 방법은 예전에 배워서.."

힘없이 속삭이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선 예전의 패기나 기력 따위를 찾아볼  없었다. 대체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로스는 궁금해졌다. 하루만에 사람이 저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그리 쉬이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근질근질한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이던 도로스는 결국 호기심 섞인 질문을  밖으로 내놓았다. 자칫 실례되는 질문일 수 있으나, 그 나이 또래들이 으레 그렇듯 젊은 혈기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




그러나 카지트는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도로스는 할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다시 앞을 바라봤다.

점점  깊이 들어갈 수록 생기없는 몸들과 부서진 함정의 숫자는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이나 벽들이 깊이 파여있었는데, 마치 누군가 폭탄을 터뜨린 것같은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띄였다. 어디 하나 불쾌감이 느껴지지않는 곳이 없었다. 도로스는 무의식적으로 느려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어떻게든 두뇌를 풀가동시키고 있으나 여전히 떠오르는 방책은 없었다. 이런 상황에 단련된 카지트라면 몰라도, 아직 그리 경험이 많지 않은 도로스가 냉정을 유지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몸을 기어오르는 초조함을 도리질치며 털어냈다.



여전히 희미하게 잡힐 듯  듯한 느낌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어쩌면 그것때문에 좀 더 초조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 앞,에 무언가 있습니,다."



상념에 빠진 도로스를 일깨운 것은 닥터 윌슨의 목소리였다. 닥터 윌슨은 갈색빛으로 매끈하게 빛나는 손으로 저 앞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그의 말마따나 무언가 거대한 실루엣이 보였다. 저런 게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하다니! 도로스는 대경실색하며 느껴지는 감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의 감은 여전히 평탄했다.  앞의 거대한 무언가는 그들에게 위협적이진 않은 듯 했다. 멈춰선 도로스들은 조용히 그것을 응시했으나,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죽어있거나, 혹은 무기물이거나. 어느 쪽이든 함정 범벅인 이곳에 존재하니, 그리 유쾌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가만히 정체모를 실루엣을 경계하던 도로스들은 다시 걸음을 재개했다. 라이트가 만들어낸 빛의 경계선 너머에 있던 것은 차츰 거리를 좁힐 수록 점점 정체를 드러내는 그것을 볼  있었다. 긴가민가하던 일행은, 그것이 빛의 경계 안으로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다행입,니다. 저는 뭔가 돌연변,이나 그런 것,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네. 지난 유적에서  데여봤어야지, 쯧."

다들 안도의 한숨을 흘리는 가운데, 도로스는 베일을 벗은 실루엣을 올려다보았다. 한 때는 대형 파이프만한 크기의 통로 전체를 막고 있었을 격벽. 그것은 폭탄의 세례에 무참히 뜯겨져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오로지 남은 부분만이 동산처럼 쌓여, 멀리서 언뜻 보기엔 정체불명의 무언가처럼 보였다.

사방팔방으로 쪼개진 세월의 조각들은 마치 시체들을 기리는 비석처럼 곳곳에 우뚝 서 있었다. 통로 또한 폭발의 영향에서 비껴나갈 수는 없었는지, 곳곳이 파이고 터졌으며, 그을음으로 가득했다. 시체의 훼손도나 그 수는 다른 곳보다 월등했다. 오는 길에 드문드문 보이던 하얀색을, 이곳에선 아예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화연과 부패로 가득찬 광경은 프로바움마저 혀를 찰 정도로 괴기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갓 용병계에 발을 들인 것이나 다름없는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뒷걸음질 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누가보면 전쟁이라도 난 줄 알겠군. 이런 참상은 오래간만이지만 여전히 넌덜머리난단 말이야."

수많은 것들의 죽음을 관찰해온 자동인형은 착잡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얼마만큼의 폭약이 사용되었으며, 대체 얼마만큼의 사람들이 죽어갔는지, 경험에 빗대어 대강이나마   있었다. 그건 경이를 넘어선 경악에 가까웠다.



사람만한 두께의 격벽을 폭파하기 위해 필요한 폭약. 그리고 마을 한 두개를 통째로 갈아넣은 듯한 인원. 광신도가 가진 힘의 일각이라 해도 경천동지 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프로바움은 그 사실을 입에 담는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첫 번째 관문이군. 분명 세 번째 격벽까지 함정을 제거했다고 했었지?"

"그렇,습니다. 앞으,로 두 번 정도 더 가,면 끝일 듯 합,니다."


닥터 윌슨이 말하는 그 '끝'이 무슨 의민지 추측하긴 어렵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도 그에 관해 걱정하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저 격벽을 방패삼아 싸운다면...그래도 힘들겠군. 젠장, 어디 숨을 수도 없고."



프로바움의 투덜거림. 그러나 거기에 대답해주는 이는 없었다. 명확한 해결책이 없었던 까닭이다. 프로바움의 말대로 격벽을 방패삼아 싸운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이길  있을지 요원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더욱 좋은 무기가 있다면 그것을 취하기 마련인데, 플라잉 몽키즈라는 전투와 살육의 프로들이 발굴대가 소지한 무구들을 그냥 보고 지나칠 리가 없다.



무기의 질에서 차이가 나고, 머릿수에서도 저 쪽이 우위다. 실력 또한 프로바움과 카지트와 비등비등 할 정도라 친다면 확률은 한없이 낮아진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 방도는 없어보였다.




"이곳에 숨어있다가 기습을 한다면, 최소한 두 세 놈이라도 수를 줄인다면 어떻게든 해볼만 하겠는데."


천천히 프로바움의 중얼거림을 곱씹던 도로스는 머리속에 불이 들어오는 것같은 감각을 느꼈다. 그는 눈 앞에서 살랑거리며 그를 약올리던 느낌을 잡아챘다.



천장이 무너져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는 법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