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8화 〉6. 북부 (68/100)



〈 68화 〉6. 북부

치직거리는 노이즈가 통로에 음산하게 울려퍼졌다. 무전기를  닥터 윌슨은 당황한 얼굴로 도로스들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딱히 무슨 방도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이도, 언제까지고 지속될 것같던 노이즈는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으윽..드,들립니까?"


목소리는 어딘가 괴로워하는 듯한 음색이었다. 무전기를 통해 변질된 음성이지만 어딘가 친숙한 목소리에 닥터 윌슨은 일행들과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무전으로 대화를  만한 상대는 애초에  명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만전에 만전을 기하는 편이 나았다.



"누구,십니까?"




"랄로프..입니다."


닥터 윌슨의 질문에 상대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다 싶었는데 랄로프의 목소리였다. 그는 몇 번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이었다.

"스,습격자가 있습니다..크윽, 플라잉 몽키즈 넷과 고양이 계통 수인 하나,  다섯입니다."

습격자.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도로스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봤다. 습격자들의 구성원에서 어딘가 어렴풋하게 짐작가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 또한. 물론 절대로 좋은 이유는 아닐 터이다. 그랬다면 에메랄드 컴퍼니라는 거대한 그림자를 뒷배경으로 둔 유적 발굴대를 습격하지 않았을 테니까.

"그,쪽은 괜찮,습니까?"




"죄송..으윽..합니다. 불시에 기습당해서..살아남은 건,  뿐인 듯...합니다."




근래 들은 소식 중에선 가히 최악에 가까운 소식이었다. 분명 하룻밤을 묵으며 마주한 발굴대의 숫자는 근 수 십 명에 달했다. 거기에 외곽을 순환하는 경계를 서는 이들까지 합친다면 절대로 무시하지 못할만한 숫자이다.  머릿수가 에메랄드 컴퍼니의 광대한 재력에 힘입어 최상급 품질의 무기와 장비를 착용하고 있으니, 잘하면 중형 돌연변이도 상대 해볼만 했다.

그런 이들이 고작 다섯에게 살해당했다고?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터무니없는 농담으로 치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둘의 머릿속에 어른거리는 상대의 그림자는 그들이 마주했던 이들 중 가장 잔혹하지만 그 만한 실력을 겸비한 자를 그리고 있었다.




프로바움은 닥터 윌슨에게서 무전기를 뺏다시피 가져가고선 급하게 무전기에 외쳤다.

"상대의 무장은 어떻게 되는가!? 사용한 전법과 스타일은?"


"그것이...크아악!!"



프로바움의 물음에 힘겹게 대답하려던 랄로프는 목이 찢어지는 것같은 비명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불시에 끊긴 무전기에선 기분나쁜 고요함만이 흘러나왔다. 불안한 침묵이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모든 일행의 눈이 무전기로 향했다. 무언가 일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음을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동인형은 귀뚜라미에게 무전기를 건넸다. 다시 무전기를 쥔 닥터 윌슨의 손이 잘게 떨렸다.

기이한 정적. 가끔 치이익 거리는 무전기의 노이즈만이 날카롭게 고막을 때렸다. 모두가 말을 잊은 채 무전기에 집중했다. 다들 머리  구석으론 알고 있다. 랄로프의 단말마가,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언이란 걸. 그는 더 이상 입을 열 수도, 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모두의 머리가 팽팽하게 돌아갔다. 한계까지 팽팽하게 당겨진 정신줄. 도로스는 오감이 한층 더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한계치에 가깝게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몸이 전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눈은 무전기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누군가 무전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머리 어딘가에서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필시 그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길잡이인 도로스가 우두커니 서 있자, 다른 일행들 또한 그 자리에 못박힌 듯  있었다. 반쯤 망가져버린 카지트를 제외하고 나머지 둘은 도로스에게 무언가 말이라도 걸어보려했으나, 무전기를 응시하는 그의 모습은 진중하고 엄숙하기 짝이없었다. 그가 길잡이 특유의 무언가를 느끼고 있음을 둘은 깨달았다.




잠시 시선을 교환한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도로스를 방해하지않기로 결정했다. 현재 일행의 길잡이는 도로스이니, 행로를 결정  권한은 온전히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한동안의 침묵. 모두의 불안함이 최고치에 달했을 때, 끔찍할 정도의 증오와 악의로 점칠된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기어나왔다. 마치 끈적한 폐기물로 가득찬 웅덩이에 발을 들이미는 것같은 느낌이었다. 그 목소리를 듣는 이들은 모두 메스꺼움에 얼굴을 찌푸렸다.




"후우, 거기 들리나? 빌어먹을 쓰레기들과 고철덩어리자식."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러나 기억하기 싫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털이 쭈뼛하고 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낮게 깔리면서 암석처럼 묵직한 음성.



"..멕도너!"



발작처럼 터진 도로스의 비명과도 같은 와침은 터널을 뒤흔드는 광소에 묻혔다.



"크흐흐, 빌어먹을 새끼들아! 금방 찾아가 죽여주마!"

콰직.



무전기의 단말마를 마지막으로 그들은 그 어떤 목소리도 들을  없었다. 죽음과도 같은 정적이 다시 한 번 찾아들었다. 오로지 그들의 숨소리와 시체들의 소리없는 비명들만이 통로를 메웠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사색이 된 얼굴로 서로를 응시했다.

"도로스, 랄로프,는 플라잉 몽키즈와 고양이 계통,의 수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말릭,이겠군요."




둘은 그의 끔찍한 칼솜씨와 잔인한 심성을 뼈져리게 알고 있었다. 위에서 사람을 깔보듯한 시선과 어조. 그리고 자신의 부하조차 아무런 망설임없이 베고 자르는 잔혹함. 그런 괴물이 멕도너라는 괴물과 힘을 합쳤다니. 상상조차 거부하는 충격에 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대체 그자들은 누군가?"

잔뜩 긴장한 둘의 모습에, 프로바움은 물었다. 그 둘의 반응은 그가 보기에도 심상찮았던 까닭이다.


"미술관에서 탈출 할 때, 플라잉 몽키즈와 맞닥뜨렸잖아요? 프로바움이 총을 쐈을 때 마지막에 도망가던..."



멕도너의 정체에 대해 설명하던 도로스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본디 멕도너는 도로스가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적이지만, 이렇게 말하니 어쩐지 약해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이 그랬다. 거리의 이점을 살려 마구 갈겨댄 프로바움의 페퍼박스에, 그는 부하들 조차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던가.

도로스의 설명에 대강 깨달았다는 듯 프로바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아, 그러고보면 그런 녀석도 있었지. 덩치 큰 녀석이었던 걸로 가억하는데? 그리고 말릭이란 자는 누구인가?"

"프로바움과 카지트가 저희,를 구하기 위,해서 감옥의 천장을 부쉈,을 때, 그 파편에 깔려있,던..."

닥터 윌슨도 입을 다물었다. 그 또한 도로스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프로바움은 대강 알았다는 듯이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웬 고양이놈 하나가 깔려있던 것 같았는데, 그놈인가?"




둘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프로바움은 여전히 겁먹은 모습이 남아있는 둘을 향해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 시덥잖은 놈들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이란 말인가?"

둘은  말을 잃었다. 분명 멕도너와 말릭은 강력하다 못해 두려운 적이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 정도로는 상대가 되지않고, 아마 프로바움이나 카지트 정도가 맞상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엔 상황이 도로스 일행에게 따라주었던 지라,  좋게 그들을 격퇴 할 수 있었을 뿐이다. 둘은 어떻게든 그 사실을 전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그전에 프로바움이 선수를 쳤다.



"뭐, 농담이라네. 다섯이서 온갖 최고급 장비로 무장한 경비들을 쓰러트린 걸로 봐서, 상당히 강한 녀석들이겠지. 아마 나나 카지트 녀석과 붙어도 승부를 장담  수 없겠군. 녀석들과 직접 맞딱드린 자네들이 그렇게 경계하는 것도 이해된다네."



하지만, 하고 프로바움은 짧게 끊었다. 형형하게 빛나는 눈엔 아군에 대한 온화함과 적에 대한 무자비함이 기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그는 두 어린 동료의 눈을 차례차례 마주보았다.

"하지만, 그렇게 긴장해서야 제 실력을   없다네. 그리고 그 땐 없었고 지금은 있는 게 있잖은가?"

프로바움은 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본래 차갑고 단단해야 할 금속의 손은 희한하게도 온기가 감돌고 부드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닥터 윌슨과 도로스는 그가 말하는 것이 카지트와 프로바움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과하게 긴장했던 몸이 사르르 풀리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금속 주먹에서 느껴지는 신비한 온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도로스는 피식 웃고는 농을 건넸다.

"프로바움..농담 진짜 못하네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래도 덕분,에 한층 진정된 느낌입,니다."

자동인형은 피식 웃곤 파이프를 피웠다. 희뿌연 담배연기가 사방에 가득찬 끈적한 칠흑색을 조금이나마 하얗게 물들였다. 그는 한껏 연기를 머금고 내뿜길 두어번 반복하고는 도로스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가?"



주어진 선택지는  가지.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도로스는 침착하게 고민했다. 어느 선택지가 그들에게 더욱 이로울지. 프로바움과 닥터 윌슨은 길잡이인 그에게 일행의 앞날을 맡겼지만, 그는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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