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6. 북부 (65/100)



〈 65화 〉6. 북부

그것은  계통의 수인이었다. 바람처럼 카지트에게 달려든 그는 순식간에 그를 넘어뜨리고 위에 올라타더니, 그를 난타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일격일격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선보이며 카지트의 얼굴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카지트는 처음에 저항하려했으나, 그의 얼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잠자코 난타를 받아들였다. 이해 할  없는 행동이다. 아주 잠깐의 공백. 장내의 사람들은 잠시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파악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둔탁한 소음에 그들은 곧 정신을 차렸다.


"어이, 이봐!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도로스를 위시한 장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달려들어 그를 떼놓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거대한 체구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은 대여섯이 달라붙어도 꿈쩍않을 정도였지만, 달라붙은 숫자가 많아지자 결국 카지트에게서 떨어졌다.



그는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그르릉 거리며 낮게 울었다. 상처입은 짐승의 광기어린 모습엔 털이 삐쭉 설 정도로 섬짓한 무언가가 있었다.



"카지트! 이 역겨운 배신자 새끼!! 죽여버리겠다!"


발작처럼 그에게 달려드려는 통에 많은 이들이 그의 사지를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늘어져야했다.


"무슨 짓이냐, 카라마조프!"

랄로프의 노호성이 공동에 울려퍼졌다. 그는 지금까지 본 적 없을 정도로 격분한 얼굴로 카라마조프라 불린  계통의 수인을 노려봤다. 한참을 씩씩 거리며 카지트를 노려보던  수인은 그제야 랄로프와 마주보고 고개를 숙였다. 카라마조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우두커니 섰다. 처분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녀석을 데려가라! 처분은 차후에 결정하겠다."

발굴대의 거의 모든 인원이 카라마조프 주위를 에워쌓고 그를 데려갔다. 혹시라도 난동을 부릴까봐 견제하는 것이다.



닥터 윌슨은 조심스럽게 카지트를 진찰했다. 몸은 성했으나 얼굴이 문제였다. 거의 대부분의 공격을 허용한 얼굴은 거의 두 배 쯤 불어있었는데, 전체가 핏자국으로 흥건해서 제대로 된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카지트, 괜찮,습니까?"

"..아마."



평상시의 그의 목소리라곤 생각 할  없는 차가운, 그리고 가라앉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카지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노려봤다. 복잡한 상념이 눈동자 위에 이슬처럼 맺혔다 사라졌다. 그는 수통을 꺼내 얼굴에 끼얹고 털어냈다. 입가와 코 등 얼굴 여기저기에서 다시 피가 흘러내렸으나 그는 그다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카지트, 치료, 하겠습,니다."



"아냐, 어디 부러진 곳없으니 그냥 내버려두면 나아."


"찢어,진 곳은 제대로 소독,하고 꼬매는 편이 낫습,니다."



닥터 윌슨은 본직인 의사로써 이런저런 소견을 덧붙이며 진찰과 치료를 주장했지만, 카지트는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 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잘랐다. 불합리한 폭력에 당했음에도 냉정 그 자체였다. 마치 사람이 달라진 것 같다고 일행은 생각했다.



"정말 괜찮아. 그보다 조금...기분전환  하고 올게. 혼자있게 해줘."


그는 몇 마디 내뱉고는 터덜터덜 사라졌다. 그를 지켜보던 이들은 혹여 카라마조프란 곰 수인에게 보복하러 갈까 싶어 주의를 기울였으나, 다행이 그가 향하는 곳은 다른 발굴대원들이 카라마조프를 끌고  곳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그제야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진 잘 모르겠지만, 당분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카지트가 걱정되긴 하지만 무턱대고 쫓아갈 수는 없었다. 날선 기세와 얼어붙은 것같은 무표정한 얼굴은 도로스가 예전에  번 본 적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때마다 도로스는 머리칼이 곧두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감 또한 경고를 보내기도 했었다. 저런 때의 카지트는 함부로 건드리면 위험하다. 반대로 말하면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별다른 위험은 없다는 소리겠지. 도로스는 방독면 속에서 곤란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프로바움마저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묵언을 깨고 입을 열었다.

"대체 저자는 누구요?"



그 또한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듯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랄로프는 그의 의문을 해결 해줄 수 없었다. 그 또한 짐작가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름은 카라마조프라고 합니다. 저희와는 꽤 오랜 시간을 일했죠. 평소엔 착하고 얌전한 친구인데...저도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난처한 입장을 표하는 그에게선 정말로 당황과 의문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닥터 윌슨은 랄로프에게 물었다. 카지트의 일행인 그들이나 카라마조프란  계통 수인의 동료인 랄로프가 모른다는 것은, 그들과 어울리기 이전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같이 일한 기,간은 얼마나 됩니,까?"



"그게, 음, 대략 십 년 정도 됐습니다."



랄로프의 대답에 프로바움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짐작가는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눈이 자동인형에게 쏠렸다. 프로바움은 좌중을 한 번 훑어보곤 파이프 연기를 깊숙히 빨아들였다.



"내가 카지트와 같이 다니기 시작한 것도 십  전 쯤일세.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마 그 이전에  사이에 뭔가가 있었던 모양이군."


확실히 둘은 서로 아는 사이인  같았다. 카라마조프 쪽에서 일방적으로 구타했지만, 카지트가 얌전히 맞아줄 성격인가? 그의 성격이라면 오히려 반격에 나서서 몇 배로 갚아줄 것이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일체의 반항없이 맞아주었단 것은,  또한 카라마조프를 알고 있다는 소리다. 그리고 카라마조프의 깊은 증오를 보건데, 분명 무언가 중대한 잘못을 범했을 것이다.

그럴 듯한 말이라 듣는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경우엔 카지트와 카라마조프 사이의 사적인 일이었음으로 도로스들이나 랄로프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랄로프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개인과 개인 사이의 사적인 갈등으로 치부되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발굴대 전체의 뜻으로 비출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된다면 상황은 걷잡을  없이 악화될 것이 불보듯 뻔했다. 그의 입장에선 천만다행인 셈이다.

도로스는 카지트가 사라진 방향을 힐끗 보곤 머리를 긁적였다. 안그래도 프로바움도 굳은 얼굴로 침묵하고 있는데 카지트마저 그렇게 된다면.. 그는 솟아오르는 어색함에 몸서리를 쳤다. 닥터 윌슨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조금 울상이었다.



"카지트..빨리 잘 해결되면 좋을텐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둘은 마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프로바움이나 카지트나 개인의 과거사에 얽힌 일이라 도로스와 닥터 윌슨로써는 아무런 일도 도와줄 수 없었다. 애초에 그 장본인들이 이야기조차 해주지않는데 무엇을  수 있겠는가? 정말로 곤란하기 짝이 없었다.

배정받은 막사에 도착한 후, 랄로프가 떠나자마자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프로바움에게 카지트에 대한 걸 물었다. 카지트에 대한 걱정 반, 일행 사이의 어색함에 대한 걱정 반. 분위기 메이커이자 말재간이 뛰어난 카지트마처  선 얼굴로 침묵한다면, 분위기는 말 그대로 살얼음 판 위를 걷는 듯 할 것이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말주변이 그다지 좋다고 할 수는 없었으므로.


"..카지트에 관한 거라면 나도 자세히는 모르네. 십  정도 동고동락하긴 했지만 그 녀석이나 나나 서로 자세히 파고드는 건 삼갔으니."




그는 그다지 내키지않아 하는 분위기였지만, 도로스의 성화에 할  없이 말을 이었다.


"..알겠네. 내가 아는 거라도 이야기해주지. 내가 그 녀석과 만난  대략  여년 전, 남부 쿠데타 때라네. 내전이 거의 끝났을 무렵, 다 쓰러져가는 녀석을 주웠지. 그리고...그게 다라네. 생각해보면 녀석에 대해선 그다지 알지 못하는군."


프로바움은 씁쓸한 어조로 말을 끝맺었다. 뭔가 숨기는 게 있다기보단 자신도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에 놀란 눈치다. 도로스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정보 속에서 한 가지 어렴풋한 단서를 주웠다. 남부 쿠데타.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카지트와 어떠한 식으로 관련있음이 틀림없었다.




"닥터 윌슨, 남부는 알겠는데 쿠데타라는 게 뭐죠?"


"쿠데타라,는 건 기존의 정권을 무력,으로 무너뜨리거나 빼,앗는 것을 일컫습,니다."




닥터 윌슨의 설명에도 도로스는 아리송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방독면에 가려져 얼굴은 보이지않지만 분위기는 대략적으로 알아챌  있는 법이다. 닥터 윌슨은 도로스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조금 더 쉬운 단어로 풀이해줬다.



"그러니까, 자기,만의 군대를 모아서 뜻,이 안맞는 사람,들을  죽이는 겁,니다."



"굉장히 나쁜 거군요."

깡촌 출신인 도로스라도 이번 설명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쿠데타의 정의를 몇 단어로 줄여버린 도로스를, 닥터 윌슨은 이걸 어찌 해야할 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단순히 좋은 것 나쁜 것으로 구분하기엔 너무나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한참 동안 이런 저런 설명을 가미하고 나서야, 도로스는 대강이나마 이해했다는  지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남부에,서 십 년 전 쯤에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후에 남부,는 다른 지역,과 고립된 채 폐쇄주의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프로바움은 도로스가 입을 열기 전에 닥터 윌슨의 말에 재빠르게 덧붙였다.



"문을 닫고 남부에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있다는 소리다."

둘은 고개를 번쩍 들고 자동인형을 쳐다보았다. 그는 막사 틈새로 보이는 어두컴컴한 천장을 바라보며 파이프를 피웠다.

"저 녀석까지 상태가 안좋아지니 나라도 정신차려야겠지."


후우, 그는 온몸 구석구석까지 가득찬 파이프 연기를 내뿜었다. 아직 미처 씻어내지 못한 복잡한 감정들이 그의 눈동자에 고여있었으나, 그는 어느 때처럼 차분하고 굳건한 눈으로 두 동료를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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