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4화 〉6. 북부 (64/100)



〈 64화 〉6. 북부

"유적의 구조자체는 간단합니다. 소용돌이처럼 뱅뱅 꼬인 나선이 아래로 향하는 구조이죠. 중간에 다른 샛길이나 방은 없습니다. 일자형의 간단한 통로라고 할 수 있죠. 다만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랄로프는 콧등을 살살 긁으면서 곤란하다는 듯이 얼버무렸다. 프로바움은 말없이 우묵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유적 발굴대의 대장을 맡고 있는 그라면 경험이 일천 할 리가 없다. 그렇다면,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좋을 유적 발굴과 탐사의 대가에게 문젯거리가  만한 게 얼마나 될까?



"일단 그 규모가 문제입니다. 대체 어떤 목적으로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크기가 정말 무식할 정도로 넓습니다. 통로의 넓이만 해도 제가 두 팔을 벌리고 선다고 가정했을 때, 열 명 정도가 나란히 서야 가득 찰 겁니다. 높이 또한 어지간한 중형파이프의 지름보다 조금 더 크더군요."

"음? 그정도면 딱히 상관없지 않습니까? 어차피 일자형에 다른 길도 없다고 하니. 돌연변이만 없다면 괜찮을 것 같군요."

어디가 문제라는 건지 알 수 없어 카지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통로가 대형 파이프에 견줄 정도로 넓다는 건 처음 알았지만 그래도 너무 좁아서 기어가야하는 것 보단 나았다. 거기에 미로처럼 중구난방으로 얽히고 설키지않았으니 굳이 길을 찾고 말고 할 필요 또한 없었다.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 거지? 고민하던 카지트는 이내 한 가지를 떠올렸다. 설마 돌연변이일까? 서부의 유적에서 겪었던 경험이 절로 되살아나는 듯 했다. 규모도 규모였지만 무엇보다 길이 난잡해서 더욱 고생했었다. 거기에 돌연변이까지 첨가되었으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굳은 표정으로 턱을 매만지며 들어가야하나 고민하는 카지트의 모습에 랄로프는 아쉽다는  입맛을 쩝쩝 다셨다.


"물론 돌연변이들은 없습니다. 처음엔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요. 하지만 직접 들어가보니 마경도 이런 마경이 따로없더군요."

그는 복잡하다는 듯 머리를 헝클었다. 카지트와 일행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한 걸음 마다 돌연변이들이 무더기로 반겨주는 유적은 더 이상 사양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우두머리격의 돌연변이가 있다면야 더욱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강대했던 우두머리의 모습을 떠올린 도로스는 몸을 부르르 떤 후 랄로프에게 집중했다. 돌연변이가 없음에도 어째서 마경이라 불리는지 궁금했기 때문에.



"일단, 통로는 온갖 함정들도 도배되어 있다시피 합니다. 와이어를 이용한 원시적인 발목트랩부터 도대체 무슨 기술을 쓴 건지 알 수 없는 함정까지 다양하더군요. 거기다 원래는 일정 구간마다 격벽들이 통로를 차단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대체 무슨 짓을 해놓은 건지 전부 파괴당해 있었습니다. 그을린 흔적이나 주위에 가해진 충격들로 보아, 폭발물을 썼을 겁니다."



미친놈들, 카지트는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들어가보지 않은 터라 건물의 내구도같은 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건물 안에서 폭탄을 터뜨리는 짓은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만한 짓은 아니다. 폭발에 반탄되는 구조물들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 자칫하면 통로 그 자체가 붕괴되어버릴 가능성 또한 존재했다.

도로스들은 질렸다는 얼굴로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랄로프는 그런 정신나간 짓을 벌인 이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일행은 이미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광신도. 인명피해 따윈 고려하지 않은 것같은 방식은 그야말로 광신도라 불릴  했다. 앞으로 이런 녀석들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올랐다. 절대로 얕볼  없었다. 목숨을 도외시하고 덤벼드는 적만큼 까다로운 상대는 없을 것이다.



"함정에 빠져 죽은 시체들의 수를 보면 인원수도 꽤 되는  같았습니다. ..누군진 몰라도 지독한 놈들이군요. 쯧, 사람 목숨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랄로프 또한 상대의 잔혹성을 눈치챈 듯 했다. 하긴, 이렇게나 단서들이 즐비하니 누구라도 손쉽게 눈치챌 것이다. 소수의 전문가들을 파견해 유적을 탐사하는 게 아니라 무식할 정도의 인해전술을 펼쳐서 유적을 공략하는 방법. 단순히 목숨을 가벼이 여기는 수준이 아니다. 일말의 광기마저 느껴지는 행위. 이런 것을 계획한 자에 이르러선 도저히 어느정도의 미치광이인지 가늠할 수도 없었다.

카지트는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랄로프에게 물었다.



"어쨌든, 끝 부분까지 가는덴 얼마나 걸립니까? 함정은 얼추  발동된 것 같고, 딱히 위험은 없는 것 같은데. 그리고 끝엔 대체 뭐가 있습니까?"




"통로의 마지막엔 거대한 공간이 있다고 합니다. 온갖 고무에 감쌓인 금속다발들이 얽혀있고  가운덴 텅  유리관이 하나 있다더군요."




영민한 닥터 윌슨은 랄로프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있다더군요'?, 아직 가보,지 않은 것입,니까?"




그는 어딘지 주저하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감정이 그의 눈동자 안에서 소용돌이 쳤다. 그는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게..사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의 정보,는..?"




닥터 윌슨의 질문에 랄로프는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 눈엔 씁쓸함과 아쉬움이 짙게 묻어났다. 분명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확실했다.



"교신할 수 있는 장치를 가지고 마지막 방까지 도달했던 대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실수로 함정을 밟았는지 그만.."


그는 다시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대원을 잃은 것이 뼈아픈 듯 했다. 일행은 속으로 그를 동정하는 한편, 궁금한 점을 물었다. 광신도놈들이 한바탕 휘젓고 갔기에 함정들이 전부 발동되었다 여겼는데, 그의 말을 들어보니 여전히 많은 함정들이 남아있는 듯 했다. ㄴ

"함정은 전부 다 소진된게 아니었나요?"


도로스의 질문에 그는 천천히, 고장난 기계처럼 삐걱이며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직 군데군데 함정이 남아있더군요. 덕분에 많은 탐사대원들을 잃었죠. 마지막 방까지  그 녀석도..저희  제일 실력 좋은 친구였는데."



그는 얼굴을  손에 파묻었다. 마지막은 웅얼거림과도 같아, 일행들은 정확한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괴로워하고 있다는  충분히  수 있었다. 발굴대를 이끄는 인솔자의 입장에서 많은 수의 대원들을 잃은 건 뼈아팠으리라.



일행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에게 추스릴 시간을 주었다. 그의 태도에서 얼마나 동료들을 생각하는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주어진 잠깐의 시간동안 빠르게 자신을 추스린 후, 도로스들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추한 꼴을 보여드렸군요. 큼큼, 거리는 걸어서 대략 3일 정도 걸립니다. 그 땐 함정 하나하나 조심하며 가서 그렇게 걸렸지만, 지금은 초입부터 전체 1/3에 달하는 구간의 모든 함정을 해제했으니 좀  단축  겁니다."

흐음, 카지트는 고민했다. 함정 해제라면 그도 자신있었다. 아니, 함정 해제에 관해선 이곳에 있는 누구도 그를 따라오지 못할 것이다. 그가 헤쳐나온 혹독한 수련 속엔 함정 해제 기술의 정수 또한 고스란히 녹아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처럼 온갖 함정으로 버무려진 경우는 처음인지라 잘 헤쳐나갈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함정 중엔 서로 연동되는 함정이나 해체 되었을 때만 발동하는 함정같은 것 또한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랄로프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나았다. 적어도 마지막 방에 도달한 이가 있으니 그곳까지 어떻게 함정을 피해서 도달했는지 조언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희들도 교신 할 수 있는 기계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처음들어가는 거다보니 도움이 조금 필요할 지도 모르겠군요."



카지트의 말에 랄로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생각해둔 바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천히 함정을 하나하나 해체하면서 진행하는 건 다치는 이가 없긴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적어도 그 마지막 방 안에 무엇이 존재했는지, 어떠한 정보가 존재하는지에 관해선 알아둘 필요가 있었다.



그 후로 도로스들은 랄로프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 이외 딱히 쓸만한 정보는 없었다. 아무래도 랄로프 또한 유적에 대해서 깊이 아는 건 아닌 까닭이다. 결국 카지트들은 오늘은 쉬고 내일 준비를 갖추고 유적 안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알게모르게 쌓인 피로를 풀어줘야 했다. 몸을 돌보지않고 무작정 달려들었다간 개죽음 당하기 쉽상이니까.

랄로프와 천막 밖으로 나온 일행에게 수많은 눈들이 몰려들었다. 당연한 일이다. 본부에서 직접 왔다는 손님이니 대체 무슨이유로 온 건지 궁금한 것이다. 그러나 일일히 대응하기엔 도로스들은 지쳐있었다. 랄로프의 안내를 따라 배정받은 막사로 향하는 동안 일행은 묵묵부답으로 시선들을 무시했다.


그 순간이었다.




"카지트으으!!  씹어죽일 새끼이이!!"



누군가가 카지트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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