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6. 북부
아치발드에게 기밀문서를 받은지 벌써 수일이 흘렀다. 사장의 인장이 찍힌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진 문서 속엔 유적의 위치, 규모, 그리고 깊이 등 유적에 관한 다양한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다만 그것만으론 사장의 인이 필요한 특급 기밀이 되기엔 부족했다. 특급 기밀이란 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들이다. 가령 지상의 존재라던가 무한동력 등의.
의아한 일행은 조금 더 문서를 살폈다. 그들이 읽고있던 것은 문서의 초입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페이지에 이르러서, 도로스들은 어째서 이 종이 쪼가리가 특급 기밀로 지정되어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게름하르트에게서 들었던 내용이 그대로 쓰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적의 나이와 그곳에서 발견된 것, 그리고 광신도.
단 세 가지였지만 그 세 가지 요소 덕분에 유적의 정보는 특급 기밀이 되기엔 충분하고도 남았다. 먼저, 유적은 대략 7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사실 이것까진 괜찮았다. 700년 전의 유적이야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희귀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동부의 소도시 카디프 또한 700년 전의 유적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다른 곳의 유적과 다른 것이 한 가지 있었다. 700년의 긴 세월 동안 인류가 잃어버린 것. 그것이 발견되어 버린 것이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열쇠이자 인류 번성의 핵심. 기록은 분명 그것이 이 유적 속에 잠들어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한동력.
700년 이 전의 세계로 향하는 최초이자 최후의 단서! 인류를 부흥시킬 수 있는 열쇠! 그야말로 이 것을 지닌 자가 현 세계의 패권을 좌지우지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한동력엔 필히 그만한 잠재력과 힘이 깃들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사라졌다. 북부의 이 유적을 처음 발견한 것은 에메랄트 컴퍼니의 유적발굴대가 아닌, 광신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한동력의 일부분만을 각성시킨 그들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점점 양지로 나오는 광신도들과 증가하는 실종자들. 미쳐날뛰는 돌연변이와 무너지는 파이프들.
대략적인 개요를 파악한 일행은 복잡한 심정이었다. 사장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어느정도 낙관적이었으나, 문서로 자세한 상황을 접하자 생각했던 것 보다 상황이 더 나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예상되는 광신도들의 규모는 그들의 생각보다 더욱 많았으며,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을 습격하는 돌연변이의 수 또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거기다 무한동력을 보관하고 있던 유적의 규모로 볼 때, 무한동력의 힘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유적의 규모라는 게 그들이 겪었던 서부의 유적보다 조금 더 큰 크기 였기 때문이다.
"광신도들의 목적은 대체 뭘까요?"
도로스의 물음에 닥터 윌슨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사람들을 납치하고 돌연변이들을 이용해 사보타주를 자행하는 그들의 행동, 그 기저에 깔린 원리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대체 어떤 목적으로 그런 행보를 보이는 걸까. 한 참을 고민하던 닥터 윌슨의 입에서 길게 한숨이 뿜어져나왔다. 답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점은 무한동력의 무한한 힘을 이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무한동력,을 이용,해서 무언가 하려,는 것 같지만 자,세한 건 모르겠,습니다."
"광신도들도 저 위로 올라가려는 걸까요? 아니면 그냥 모든 사람들을 없애려는 걸까요. 으음.."
"글쎄..근데 대체 지상이라는 곳엔 뭐가 있길래 다들 저러는 거지? 진짜로 인류를 부웅시킬 만한 뭔가가 있나? 영감, 영감은 어떻게 생각해?"
카지트는 프로바움을 툭 건들며 물었다.
"..잘 모르겠군."
프로바움은 한 마디 툭 던지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카지트, 부웅이 아,니라 부흥입,니다."
닥터 윌슨의 지적에 카지트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잠시간의 정적. 도로스는 프로바움의 옆모습을 흘낏 보았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도로스도 그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의 약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닥터 윌슨은 이 상황을 교착상태라고 표현했다. 서로 이도저도 못한 채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 지속되는 상태라는 것이다. 도로스는 그의 표현이 퍽 마음에 들었다. 교착상태라는 단어만큼 지금의 상황을 묘사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바움은 여전히 그들에게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일행은 여전히 그가 무언가 말해주길 기다렸다. 언제까지 이 상황이 지속될 지는 몰랐으나 프로바움이란 자동인형에 관한 호기심은 날로 커지고 있었다.
분명 그는 언젠가 이야기 해 줄 것이다 .
부지런히 걸어서 새벽이 되어서야 일행은 문서에 기록된 유적의 위치에 도달 할 수 있었다. 휴식을 최소한으로 하며 강행군을 한 터라 일행은 반쯤 녹초가 되어있었다. 사안이 사안인 터라 하루라도 낭비 할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히 탄약은 하겐지부에서 지원받았을 때와 거의 다르지않았다. 뛰어난 두 길잡이의 인도덕분에 돌연변이들과 마주칠 새가 그다지 없었기 때문이다.
유적지는 반쯤 흙 속에 파묻혀, 일각만 내보이던 서부의 그것과는 비슷했으나 확연하게 달랐다.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폐허로 보였다. 대략 단층 가정집 세 채 정도일까. 규모 또한 그리 크지 않아보였다. 망가질대로 망가진 건물은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아보였다. 반쯤 무너지고 칠이 벗겨진 벽과 먼지와 토사에 침식된 내부. 한 눈에 봐도 아주 오래전에 누군가가 건물을 버리고 떠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근방엔 대략 서른 명 정도의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구석구석에 세워진 텐트나 막사를 보면 이곳에 머문지 꽤 된 것 같았다. 도로스들은 그들이 누군지 한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들고있는 무기나 입고 있는 유니폼이 서부의 유적에서 보았던 이들과 흡사했던 까닭이다. 에메랄드 컴퍼니 산하의 유적발굴대.
그들 또한 도로스 일행을 발견했는지 시끌벅적 요란스럽던 분위기가 잦아들었다. 중간중간 조심스레 총을 집어드는 걸 보아하니 도로스들을 경계하고 있는 듯 했다. 일행의 선두에 선 카지트는 조심스럽게 두 손을 허공에 들어 보이며 공격의사가 없음을 밝혔다.
이윽고 조금씩 거리를 좁히던 발굴대의 일원 가운데, 책임자로 보이는 듯한 이가 앞으로 나섰다. 산양 계통의 수인인 듯 곱슬거리는 얼굴의 흰 털 사이로 삐죽하니 굽은 뿔이 솟아있었다.
"에메랄드 컴퍼니 산하의 유적 발굴대 대장 랄로프라고 합니다만..?"
"아, 맞게 찾아왔군요. 저희는 의뢰를 받고 찾아왔습니다."
카지트는 랄로프에게 적당히 응대한 후, 게름하르트의 인장이 찍힌 봉투를 보여줬다. 특급 기밀 서류. 랄로프 또한 이 건에 관해 언질받는 게 있는지 그는 잠시 얼굴을 굳혔으나, 이내 표정을 바로했다. 주위의 부하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하하! 예전에 본부에 사람 좀 보내달라고 건의했었는데..이제야 왔군요! 반갑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들어가서 합시다. 본부에서 온 손님이다! 다들 해산! "
그는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집결한 부하들을 해산시킨 후, 일행을 한 천막으로 안내했다. 지휘 본부로 추정되는 천막 안엔 지도와 유물들을 비롯해서 온갖 잡동사니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랄로프는 한 쪽에 일행을 앉힌 뒤 입을 열었다.
"..솔직히 지금도 반신반의 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특급 기밀 문서를 가진 이들이 올 거라는 명령을 받긴 했지만..설마 그게 진짜일 줄이야.."
그는 복잡한 눈으로 사장의 인장과 일행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로서는 믿기 힘들었다. 특급 기밀 문서를 가진 눈 앞의 사내들은 분명 사장이 직접 뽑은 이들일텐데, 요모조모 뜯어봐도 조금 특이한 구성을 가진 용병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가져온 사장의 인은 진짜 이기에 그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당신도 이 문서의 내용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아니오. 저도 잘 모릅니다. 제가 아는 거라곤 저 유적 안에 상상도 못할 만큼 대단한 무언가가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탈취당했다는 것 뿐입니다."
그는 부러움과 질시가 반반 섞인 눈길을 일행에게 보냈다. 에메랄드 컴퍼니 아래에서 수십 년을 일한 그보다, 일행은 더욱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사장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증거겠지. 그러나 랄로프는 독을 토해내는 대신, 나지막한 한숨 속에 불온한 마음을 털어냈다. 독특한 구성의 일행이었지만 분명 사장이 기대를 걸만한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도로스는 문서의 내용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에게 봉투를 내밀었으나, 랄로프는 간단히 거절했다.
"괜찮습니다. 골치아픈 일에 발을 들이밀게 되면 편히는 못 살 겁니다."
그는 대충 머리를 긁적이곤 앞으로 할 일에 관해 입을 열었다. 유적의 상태나 구조에 관해서 이것저것 전할 말이 꽤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