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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화 〉5. 대면 (60/100)



〈 60화 〉5. 대면

"프로바움...기록을 보아하니 자네는 북부 출신인 듯 한데?"




탐색하는 시선이 그를 훑었다. 자동인형은 고개를 숙인 채 침묵했다. 모든 일행의 눈이 다시 한  그에게 쏠렸다. 북부와 스승이란 단어에 반응하는 모습으로 보아 정황상 그에겐 어떠한 사정이 있는 듯 했다. 저 굳센 이가 입을 다물고 고뇌해야  정도의 사정이.

꽈악 쥐어진 그의 주먹은 제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렸다. 도로스들은 처음보는 그의 모습에 어쩔 줄을 몰라하며 입을 다물었다. 제아무리 서로 유대감으로 이어졌다고 해도 동료의 사적인 일까진 파고들  없는 법이다. 그러나 조심스레 프로바움의 눈치를 보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사장은 자동인형의 입장 따윈 관심없었다. 그는 고민  것도 없다는 듯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마침  되었군. 북부출신이니 그쪽 지리는 잘 알겠지. 북부의 대도시, 하겐으로 가게. 유적의 위치와 자세한 정보는 에메랄드 컴퍼니 하겐 지부에서 찾으면 될 걸세."



말을 마친 게름하르트는 그만 가보라는 무언의 시선을 던졌다. 이미 의뢰에 관해서 해줄 이야기는 전부 해준 것이다. 일행은 잠시 머뭇거리며 프로바움의 눈치를 봤다. 잠시동안 고개를 숙인채 속을 삭히던 그는 얼굴을 들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속과 톱니바퀴로 이루어진 몸임에도 피곤함에 찌든 표정은 마치 그 사이에 수십 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나 호기심이 왕성한 도로스에겐 아직 궁금한 것이 남아있었다. 가령 에메랄드 컴퍼니와 광신도의 관계라던가, 어째서 광신도들이 무한동력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등등.




그러나 질문을 할 기회는 오지 않았다. 마치 노린  처럼 도로스가 질문을 하려는 찰나에 누군가 문을 두드린 것이다. 도로스는 입을 다물었다.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게름하르트는 한쪽 눈썹을 씰룩였다. 그가 누군가와 대화 중이란 것을 알고도 무턱대고 들어오려는 이가 누군지 짐작가는 구석이 있었다. 초대받지 않은 방문자는 마치 제 방인 것 마냥 가벼운 노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런, 손님이 계셨군요."

"흥. 예의를 지켜라, 어리석은 녀석."




방문자는 사장과 아는 사이인  거침없는 언사를 주고 받았다. 정확히는 사장이 그를 질책하고 방문자는 능청스럽게 넘어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말은 거칠었을지언정 품은 감정마저 그렇지는 않았다. 불청객을 대하는 태도치곤 온건하기 짝이없었고 희미한 온정마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철혈의 사장이 저렇게 미온적인 태도로 대하는 이가 대체 누구란 말인가? 호기심 섞인 시선이 방문자의 모습을 훑었다. 자칼을 닮은 외형이었다. 체구는 그리 크지 않다. 카지트와 비슷한 정도의 호리호리한 체구에, 키 또한 카지트보다 살짝 컸다. 회색 섞인 은색의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얼핏 보이는 뒷부분은 은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얼굴에 시종일관 호감가는 미소를 띄고 있었는데 살짝 접힌 눈매와 어울려 친근한 첫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절제되어있으면서도 우아한 행동거지와 맵시있게 차려입은 정장은 고아한 품격이 묻어나있어서 누구도 그를 얕잡아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란 바로 이 사내를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그는 호위하듯 사장 곁에 서서 일행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게름하르트의 말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행 또한 갑작스레 난입한 이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게름하르트는 옆에  사내를 보며 혀를 차곤 입을 열였다.

"내 후계자다. 뉴 런던의 시장을 맡고있지."

게름하르트는 입매를 뒤틀며 자칼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은근한 자부심과 자랑스러움.  수 없이 이야기한다는 듯한 모습 치곤  모든 것이 그의 어조에 슬며시 묻어나왔다. 게름하르트의 곁에 선 사내는 이번엔 도로스 일행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하하, 이것 참. 중간에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  미약하나마 도시를 이끌고 있는 오스카, 라고 합니다."


오스카는 도로스들의 시선 하나하나를 마주본 후 싱그럽게 웃었다. 도로스들 또한 그의 친근한 태도에 조금 경계를 풀고 화답했다. 무엇보다 동부의 주축이되는 대도시, 뉴 런던을 이끄는 사내다.  직책의 권위를 생각하면 불친절 할래야 불친절  수 없었다. 혹시라도 그에게 밉보인다면 동부에서 활동하기에 이래저래 애로사항이 꽃필 테니까.



"서로 이야기는 다 나누셨나요?"



오스카는 사장과 일행을 번갈아 보았다. 돌려말하는 것이 보편화된 세련된 도시의 말투다. 물론 이런 화법에 익숙하지 않은 도로스는 아직 질문 할 것이 남았다고 말하려했으나, 어떻게 알아챈 건지 카지트는 빛과 같은 속도로 도로스의 입을 틀어막았다. 오스카의 말 뒷편엔 게름하르트와 이야기  거리가 있으니 자리를 비켜달라는 의도가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예, 예. 시간도 시간이고 궁금한 것도 대부분 풀렸으니 저희들도 슬슬 가볼까 합니다."



"이런..이거 제가 방해한 게 아닌가 모르겠네요."




"하하, 아닙니다."


카지트와 오스카의 응대를 게름하르트는 무료한  쳐다봤다. 그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돌려말하는 화법 따윈 비효율적이고 시간낭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서로 체면치레한 둘은 가벼운 목례를 뒤로 흩어졌다. 오스카는 사장의 곁으로, 그리고 카지트는 도로스들의 곁으로. 도로스는 카지트의 만류에 입을 다물고 그를 따라 조용히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분명 예법 등의 도시에 관해선 그가 더욱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무언가 생각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말없이 카지트의 뒤를 따르는 다른 둘의 모습이  신빙성을 더했다.






"갔군요."



아래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의 구동음을 들으며 오스카는 즐거운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진심인지 가식인지 구분 할 수 없는 미소가 그의 얼굴에 걸려있었다.

"들었나?"

"들었죠. 이번엔 꽤 다양한 조합이군요. 거기에 '인간'이라니!"



오르카는 하하핫! 큰소리로 웃었다. 정말 즐거워서 웃는 건지, 아니면 조롱의 의미로 웃는 건지 구분   없었다. 그의 속을 알 수 없는 웃음소리에도 게름하르트는 묵묵히 처리하던 서류를 다시 검토했다. 아들의 기행은 한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운 아들이라도 가끔은 아비인 그가 이해하지 못 할 기행을 벌이곤 했다.



환희마저 묻어나는 파안대소를 한바탕 마친 후 그는 웃느라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그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낱낱이 알려준 건가요? 그냥 대충 둘러대도 되었을 텐데."




그의 질문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그가 게름하르트와 도로스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그리고 오스카 또한 오즈에 관한 전말을 알고 있다는 것. 후자야 그는 게름하르트의 후계자이니 이미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몰래 사장의 이야기를 엿들었다는  충분히 책 잡힐 일이었다. 그럼에도 게름하르트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다만 이전에도 수 없이 있었던 일이라 그저 한숨 한 번 쉬고 넘어갈 뿐.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담담히 대답했다.

"그는 이 세상에 남은 몇 안되는 제대로 된 '인간'이지. 그런 순혈은 아마 그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는 '자격'이있지. 그리고 그 자동인형 또한 아직까지 옛 지식을 보존하고 계신 '그분'의 도제이니, 그 또한 들을 자격이 있지."




서류를  장 들춰보던 사장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들어 오르카를 직시했다.




"그보다, 날파리들은 어떻게 되었나?"



날파리가 무엇을 뜻하는 건지 오르카는 바로 눈치챘다. 뒷경매와 플라잉 몽키즈의 잔당들이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입김까지 들어간 덕분에 서부의 치안대는 뒷경매와 플라잉 몽키즈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혔다. 연일 서부의 신문에선 간만에  건을 올린 치안대를 칭송하는 기사들로 가득 할 정도다.



뒷경매는 거의 뿌리가 뽑히다시피 되었고, 플라잉 몽키즈 또한 에메랄드 컴퍼니의 저력을 등에 입은 치안대의 견제에 몸을 사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멤버 중 뒷경매와 결탁한 일부 세력을 스스로 축출했다곤 발표했으나 진실은 그들 밖에 몰랐다.


"뒷경매의 관리자와 플라잉 몽키즈 몇몇을 추적 중입니다만 별다른 성과는 없습니다."

뒷경매의 실세 중 한 명인 관리자와 그와 결탁한 플라잉 몽키즈 몇몇. 그들은 어디로 몸을 숨겼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게름하르트는 코 언저리에 걸친 조그마한 안경을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조심스럽게 닦았다. 살짝 찌푸린 이마에선 연한 불쾌감이 묻어났다.


"흠..그렇군. 뭐어, 도망치는  하나만은 대단하다만, 결국 쭉정이들에 불과한  같으니 상관없겠지. 그래도 탐색은 계속 하도록."


오스카는 사장의 명령에 미소를 매달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던 그는 잠시 멈춰섰다. 사장과 도로스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체 저 위에 무엇이 있을까요?"

시장의 질문에 사장은 자신도 모른다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의 선조가 어떠한 생활을 했는지는 게름하르트 조차 몰랐다. 애초에 그들에게 알려진 것은 선조의 열망에 관한 것 뿐이니. 다만 700년 이전의 기록이라면 북부의 그분들께선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기록자인 그분들이라면  이전의 정보 또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글쎄. 다만 무한동력이라 불리는 것을 단순한 열쇠로 사용 할 정도니...감이 잡히지 않는군."

"어쩌면...세상을 한 번 멸망시킨 무기들 일 수도 있죠."



오스카의 말에 게름하르트는 코웃음쳤다. 인류의 번성을 위해 오즈를 위시한 선조들이 마련해놓은 것이 무기 따위  리가 없었다. 세상을 단번에 지워버릴 수도 있는 강대무비한 무기가 인류를 번성시킬 거라니. 어불성설이 따로없었다.


"흥,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다른 생각은 마라. 우리들의 존재의의는 오롯이 조상님들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서다."




"하하, 물론이죠. 그러고 말고요."

오스카는 살포시 눈가를 접으며 웃음지었다. 그러나 다시 서류작업에 몰두한 게름하르트는 그 모습을 볼  없었다. 오르카의 웃음은 온화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굳이 비유하자면..그래, 마치 모든 것을 조롱하는 듯한 광대의 웃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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