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5. 대면
"아까부터 그분 그분 하시는데 대체 그게 누굽니까?"
궁금함을 참지못한 도로스가 끼어들었다. 말을 꺼내고 나서 눈치를 살피는 게 제 행동이 무례했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그에겐 다행이도 사장은 그다지 신경쓰지않는 것 같았다.
도로스의 질문에 사장은 프로바움 쪽을 턱짓했다. 인간만큼은 아니지만 자동인형에 대해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은지라 다른 두 명 또한 궁금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자동인형의 수는 결코 적지않다. 어디까지나 동물 계통의 수인들과 비교했을 때 적은 것이지, 세 종족 중 그 수가 가장 적은 곤충계 수인의 두 배 정도 된다.
그러나 알려진 건 생각보다 많지않다. 인구의 대부분이 북부에 거주하는 특성 탓 때문이기도 하고,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는 적은 수의 자동인형들 또한 그 기원이나 이유에 대한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욱이 그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학자들 밖에 없었다.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이들에게 대부분의 자동인형들이 한 곳에 뭉쳐사는 이유 따윈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물론 소수의 탐구자들 중에서도 집념이 강한 극소수만이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얻었지만 그것조차 자세하지 않은, 겉핡기의 겉핡기 정도되는 미약한 정보뿐이었다.
"자동인형들 중 가장 오래된 세 분. 자세한 건 그가 더욱 잘 알고 있겠지."
모든 일행의 눈이 프로바움에게 쏠렸다. 프로바움은 굳게 입을 다물고 사장을 노려보는 것으로 일행의 의문을 무시했다. 그러나 도로스들은 동료를 존중해 잠시 의문을 접어두었다. 절대로 금방이라도 무기를 빼들고 달려들 것만 같은 살벌한 모습때문이 아니다. 입을 열었다간 먼저 칼침을 맞을 것 같기 때문도 아니었다.
호기심에 입이 근질근질한 도로스는 프로바움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사장에게 재차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 무한동력이란 건 대체 무엇입니까?"
"글쎄. 나도 모르지. 그게 정말 이름대로 무한한 동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이름이 그렇게 붙은 건지. 나도 이름만 알고있지 실제로 본 적은 없어."
게름하르트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없었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그는 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져오라고 하는 셈인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모습이나 형태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게 무한동력이라고 알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행히 사장은 그들의 의문을 종식시켰다.
"정말이라네. 조상님들의 이야기에서나 나오던 오래된 물건이니, 정말 본 적도 없다네."
"그럼 저희가 어떻게 그걸 찾습니까?"
"그건 걱정말게.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여러 유적에서 묘사된 조각상이나 외형을 대강 알고 있으니. 자네들도 보았지않은가?"
일행은 불현듯 한 가지 광경을 떠올렸다. 드넓은 광장. 쌓여있는 뼈. 그리고 광장의 한복판에 세워진 구형태의 조각상. 이 중에 그것을 떠올리지 못할 이는 없었다. 각자 생각에 빠진 도로스 일행의 모습에, 사장은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었다.
"하, 하지만 외형을 안다,고 해서 쉽게 찾,을 수는 없습,니다."
타당한 반론이다. 제 아무리 그 무한동력이라는 말도안되는 것을 찾는 게 그들의 일이라지만, 700년간 모습 한 번 비춘 적 없는 물건을 딸랑 외형 하나만으로 찾는 다는 말인가. 심지어 영향력이 각지에 미치는 에메랄드 컴퍼니의 정보력으로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만으로 찾는다고 한다면 못해도 수십 혹은 수백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이라는 직함은 단순한 노름으로 딴 게 아니다. 수많은 정적政敵과 공작工作을 물리치고 나서 얻은 자리다. 게름하르트의 치밀함은 도로스들의 상상이상이었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의심가는 상대라면 있지. 아마 광신도가 얻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소."
"..어째서 입니까?"
카지트의 물음에 가는 가당찮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광신도들의 수작질에 어지간히 넌덜머리가 난 듯 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일행을 쳐다보며, 한자 한자 씹어먹을 듯 내뱉었다.
"최근들어 광신도놈들의 동향이 심상치않아졌지. 음지에서 조용히 움직이던 녀석들이 점점 양지로 나오기 시작하고 있어. 그리고 때마침 돌연변이들도 더욱 미쳐서 활개치고 있고. 파이프 손상도 갑자기 일어나고 있지.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나?"
그는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 거렸다. 집채만한 백호가 풍기는 박력은 어지간한 담력으론 버틸 수 없을 정도로 위압적고 위협적이었다. 그는 벌벌 떨며 바르작거리는 심약한 닥터 윌슨의 모습을 보고, 미안한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어찌됐건, 난 이 세 가지 사건에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네. 그렇지않으면 이렇게 연달아 한 번에 일어날 수 없겠지."
"그렇다는 건.."
"그래, 아마 광신도들이 무한동력을 얻었을 가능성이 높지.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서 돌연변이들을 자극하는 것일 테고. 아마 파이프를 손상시킨 것도 그런 돌연변이 놈들일 테지."
한 문장이 도로스의 귀에 똑똑하게 들려왔다. 마을을 습격한 돌연변이들 또한 광신도들의 탓이다. 도로스는 전의를 불태우며 다짐했다. 광신도들에게 대가를 치루게 하겠노라고! 다른 일행 또한 돌연변이에게 데인 적이 한두 번 쯤은 있는지라 저마다 투지를 다졌다. 그러나 우려 또한 적잖이 있었다. 만약 수십 수백의 돌연변이로 군대를 조직 할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상상이란 말인가! 중형 돌연변이 수 십이 들이닥친다면 소도시들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 수는 적지만 강인함과 끈질긴 생명력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괴물들. 그리고 그 커다란 덩치만으로도 무시못할 위협이었다. 그런 것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친다면.. 그런 가능성을 떠올린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몸서리쳤다.
"하지만..그렇다면 상대가 되지 않을거요. 녀석들이 벌써 무한동력을 얻었다고 한다면.."
프로바움의 걱정섞인 목소리에 게름하르트 또한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추측컨대 아직 무한동력의 힘을 완전히 일깨우진 못했을 걸세. 무한동력이 괜히 무한동력이 아닐테니 잠재된 힘은 어마어마 할 테지. 고작 돌연변이 몇몇을 자극시키는 정도일 리 없어. 아마 아주 일부분만을 깨우는데 성공한 듯 하군."
말을 마친 게름하르트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 다시 입을 열였다.
"아, 그리고 그것을 일깨우는 방법은 단순하지만 어렵다네. 아마 단시간에 해내긴 힘들거야."
"그 방법이라 함은?"
"오즈의 후예인 '인간'의 피를 무한동력에 뿌리는 것."
모두의 시선이 도로스에게 머물렀다. 일행은 그제야 어째서 사장이 도로스에게 '들을 자격' 운운했는지 알아차렸다. 모든 이를 땅 밑으로 이끈 오즈와 무한동력. 그리고 그 열쇠를 작동시킬 수 있는 '인간의 피'. 열쇠의 열쇠 쯤되는 도로스이기에 사장은 순순히 사정을 말해준 것이다. 무엇보다 그 수가 극히 드문 인간이니까. 물론 거기엔 프로바움의 스승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의 스승에 대해 언급하는 사장의 언행엔 존경과 신중함이 담겨있었으니까.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녀석들은 뒷경매에서 인간을 사들이는 듯 하더군. 녀석들이 아직도 인간을 잡아들이고 있다는 건 아직 완전히 가동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일테지."
도로스의 머리속에 말릭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쓰레기들과는 다르군요.' 분명 그가 도로스를 보며 한 말이다. 그는 곰곰히 그와 다른 인간들의 차이점에 대해 고민했다. 프로바움 또한 도로스처럼 수인의 특징이 한 부분도 없는 인간을 처음 본다고 했었다. 설마 다른 수인의 특징이 없는 그의 피가 필요한 것일까?
도로스는 질문하기 위해 입을 열였으나, 게름하르트의 말이 한 발 빨랐다.
"뭐, 그런 이유로 뒷경매를 박살낸 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네. 관리자와 용병 몇몇을 놓치긴 했지만 치안대가 뒷경매를 뿌리뽑다시피 했으니 이걸로 녀석들이 인간의 피를 얻는 걸 당분간은 막을 수 있겠지."
"그렇담 플라잉 몽키즈 또한 한 패라는 소리오?"
"플라잉 몽키즈는 아마 아무것도 모를 가능성이 높네. 워낙 천박한 녀석들이니 광신도들이 벌인 실종사건에 한 발 걸친 것 뿐이겠지."
"'오즈'의 후예,가 인간이라,는 건 대체..?"
이야기는 한창 도로스 그 보다 앞서 있었서, 중간에 끼어들기가 조금 곤란했다. 그러나 때마침 닥터 윌슨이 비슷한 내용을 질문한 덕에 도로스는 사장 또한 그가 품은 질문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는 걸 간파했다. 닥터 윌슨의 질문에 대한 게름하르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기 때문이다.
"그건 나도 잘 모르네. 그에 관해선 '그분'께 물어보게나."
일행 사이에선 또다시 '그분'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러나 '그분'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눈을누라리는 동료의 모습에 조용히 입을 다물 뿐. 사장은 그것을 구경하다, 한 번 헛기침을 하곤 다시 입을 열였다.
"크흠, 조금 이야기가 엇나갔군. 그러니까, 열쇠의 탈환을 위해선 일단 광신도들의 본거지를 알아낼 필요가 있지. 그리고 반년 전, 어느 유적 근처에서 광신도들의 행방이 목격되었다네. 돌연변이들이 날뛰기 시작한 때와 얼핏 들어맞는군.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나?"
일행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우연의 일치일 리가 없다. 광신도들이 어떤 유적에서 무한동력을 발굴하고야 만 것이 틀림없었다. 또한 무한동력을 찾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명확해졌다. 사실상 게름하르트가 모든 답을 알려준 것이다. 그는 어쩌면 대화를 이곳으로 유도했는지도 모른다.
여유로운 그의 태도에선 아무것도 잡아낼 수 없었다. 프로바움은 파이프를 매만졌다. 매끈한 금속의 표면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어째서 모든 것을 알려주는지 알 수 없었다. 기밀 중에서도 특급기밀일텐데, 아랫사람들이 알아봤자 그에게 좋을 일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로 단순히 약속했기 때문일까 생각해보았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렇다면 역시 도로스와 그의 스승 덕분일 터였다. 프로바움은 으스러지도록 주먹을 꽈악 쥐었다. 스승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엔 그는 너무나 한심하고 불민한 도제였다. 그리고 스승은 어느때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그를 도와주곤 했다. 마치 지금처럼.
"꼭 저희가 가야합니까?"
카지트의 질문에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나는 이 이상 비밀을 알고 있는 자가 느는 걸 원하지 않네."
비밀은 아는 사람이 많을 수록 새어나가기 쉬운 법이야, 그는 덧붙였다. 덕분에 사색에 빠진 프로바움을 제외한 일행은 토사구팽이란 단어를 머릿속에 떠올리곤 얼굴을 굳혔다. 그러나 이제와서 돌이키기엔 너무나 멀리 와버렸다. 애초에 에메랄드 컴퍼니의 유적 발굴 의뢰를 수락해선 안되었다. 그러나 단순한 돈벌이로 수락한 의뢰로 이곳까지 오게 될 줄은 누가 알겠는가?
그나마 최대한 정보를 알아내려는 노력은 의뢰를 위해서기도 하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만약 그 정보 중에 에메랄드 컴퍼니가 간절히 원하는 정보가 있다면 그것으로 거래 할 수 있을테니까. 물론 방금 들은 700년 이전의 비사나 무한동력에 관한 건 써먹을 수 없었다. 정보의 경중을 떠나서 그것을 입 밖으로 발설한다면 분명 에메랄드 컴퍼니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도로스들에게 보복하려 들 테니까.
사장 또한 그들이 함부로 입 밖으로 내지 못하리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여기까지 정보를 말해주고 협력해주는 것이겠지.
"컴퍼니 내엔 쟁쟁한 인물들이 많을 텐데요?"
"그 쟁쟁한 인물들은 이미 다른 일들을 맡고 있지."
결국은 버림패로군. 카지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결국 도로스 일행이 해결 할 수 밖에 없다. 유적의 광신도들을 조사해서 본거지를 알아낸 후, 잠입하여 무한동력을 훔쳐온다. 죽으면 어쩔 수 없고, 무한동력을 탈취해온다면 이득이다. 사장의 입장에서 일행은 그런 버림패였다.
일행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거부하는 즉시 목이 달아날 게 뻔하니. 의뢰를 달성해도 걱정이긴 했지만, 탈취한 무한동력으로 어떻게 사장과 담판을 짓는다면 모두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닥터 윌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기 위해선 본거지와 무한동력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선 광신도가 목격되었다는 유적에 가봐야했다. 운이 좋다면 광신도가 남긴 흔적 따위를 발견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 유적,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북부."
사장의 말에 프로바움은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