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5. 대면 (58/100)



〈 58화 〉5. 대면

침묵.

사장의 선언은 불가해한 것이었다. 도로스들은 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저 위? 흙으로 가득찬 세상 위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또한 인류의 번성이란 말 조차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었다.




"저 위,라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곁으로 간다는, 죽음을 뜻하는 은유적인 표현일까? 닥터 윌슨은 곰곰히 생각했지만 그런 뜻으로  말은 아닌 듯 했다. 그들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듯 하다.



"이런, 깜빡잊었군. 자네들은 모르고있었지 참."


게름하르트는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한숨을 푸욱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마치 머리나쁜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와 같은 모습에서, 닥터 윌슨은 그가 그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걸 확신했다.



"대체 무슨 이야깁니까?"




"이것 참, 골치아프군. 그래...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하나..."

카지트가 재촉하듯 물었으나 사장은 생각을 정리하는 듯 홀로 중얼거리며 사색에 잠겼다. 마치 도로스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다. 그러나 누구도 불평 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지루해진 카지트가 성질을 내려 할 때쯤, 그는 겨우 생각을 정리했다는 듯 도로스들은 쳐다봤다.  품격있는 근엄한 눈길에 카지트는 찔끔하며 자세를 바로했다. 사장은 양 손끝을 서로 마주대며 입을 열었다.



"간단히 말해서, 저 위엔 이곳과는 다른 세상이 있네."



"죽은 뒤에 가는 곳 말입니까?"



카지트의 비아냥에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날카로운 시선에 카지트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응시했다. 아무리 경험많은 그라도 저런 살벌한 시선을 정면에서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곳이지. 우리의 선조 또한 그곳에서 왔으니."



선조, 라는 단어에 두 사람이 반응했다. 프로바움과 닥터 윌슨. 역사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가진 그 둘은 바로 알아챈 것이다. 사장이 무엇에 관해 말하고 있는지를. 분명 조상의 염원이라고 했지? 그리고 무한동력? 대체 그건 뭐지? 정신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둘의 두뇌가 미친듯이 돌기 시작했다. 지식인으로써 감지한 것이다. 역사의 이면에 숨겨진 거대한 진실을.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자네들은 이상하다 생각한  없나? 어째서 700년 전의 기록은 마치 누군가 작정하고 지워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있지않은지. 어째서 700년 이전의 유적은 발견되지 않는지."



700년 간의  많은 전쟁 속에서 모두 유실되었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 입을 열던 프로바움은 그대로 멈췄다. 무언가가 벼락처럼 그의 머릿속에 번뜩였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런 목적없이 저런 질문을 던진 것이 아니다. 그가 말했던 선조, 염원, 번성, 그리고  위. 따로따로 놀던 조각들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하나로 맞춰진다. 마치 퍼즐을 푸는 것 같다. 알 수 없는 키워드들이 서로 하나로 모이니, 그 큰 그림을 얼핏 짐작할 수 있을  같았다.



"..그 말은, 700년 전엔 다,른 세상에서 살고,있었다는 말입,니까?"



영민한 닥터 윌슨 역시 비슷한 결론을 내린  했다. 그는 프로바움보다 한 발자국 먼저 질문했다. 아니, 질문이라기보단 믿을  없는 진실에 대한 확인에 가깝다. 사장 또한 그것을 느꼈는지 흉엄한 송곳니가 보이게 씨익 웃었다. 이해가 빠른 사람은 좋아, 그는 중얼거렸다.



"바로 맞췄군. 700년 전의 선조들께선 어디서 왔는지 알겠나?"

그는 다시 위를 가리켰다.



"바로 '지상'이라고 불리는  아득한 위지. 아마 들어본 적은 없을 거라 생각하네."



프로바움과 닥터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태연자약한 사장과 다르게 믿을 수 없다는 경악과 불신이 두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나있었다. 천천히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고 있던 도로스와 카지트는 흔들리는 둘의 모습에 사장의 터무니없는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영감, 저게 진짜야? 진짜로 다른 세계가 있다고? 그것도 저 위에?"



카지트는 연거푸 질문을 던졌다. 도저히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들, 모든 도시와 마을에 사는 이들이 인지하는 세계는 흙과 돌, 그리고 파이프에 둘러싸인 세계다. 천지사방을 둘러싼 흙과 돌. 그것을 파내고 일군 도시와 마을. 그리고 그 사이를 이어주는 파이프. 그것이 그들이 인식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사장은 말하고 있다. 그들의 세계 위에 또다른 세계가 있노라고. 모든 이들은 본디 그곳에서 도래했노라고. 터무니 없는 이야기다. 정말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손수 그들을 빚고, 이곳으로 내려보냈다는 소리인가?



만약 누군가 그런 말을 지껄인다면 모두 코웃음치며 멍청한 환상을 품은 이에게 멸시와 조롱을 일삼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말도안돼는 소리를 하는 대상이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이니 부정할  만은 없다. 그리고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엔 의외로 들어맞는 이야기인지라 곤란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군."



프로바움은 카지트에게 대답대신 머리를 흔들었다.


"증거..증거는 있소?"

"증거는 없다."



증거를 요구하는 프로바움의 물음에 그는 한없이 당당한 태도로 단칼에 대답했다. 자동인형은 (그의 입장에서는) 정신나간 발언을 농담거리로 치부하기 위해 말을 꺼내려 했지만, 게름하르트 쪽이  발 빨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응대는 프로바움의 입을 닥치게 만들기 충분했다.


"하지만, 자네의 스승께 물어보면 아마 같은 답을 줄 것같군. '그분' 또한 세계의 진실에 관해서 잘 알고 계실테니까."



빌어먹을 놈이! 프로바움은 사장을 씹어먹을 듯 이를 갈았다. 감히 존엄하고 지엄한 스승을 어디서 그까짓 헛소리에 끌여들여!! 머릿속에 떠다니는 온갖 욕지거리를 입 밖으로 꺼내지않기 위해서 무던히 애를 써야했다. 목구멍을 내리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아니었다면 그는 이미 한바탕 욕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설파하고 있었으리라.

후,하,후,하 심호흡하며 격분을 다스리는 자동인형 대신, 닥터 윌슨이 다시 질문했다. 그의 머릿속 또한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700년 이전의 역사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말이 많았지만 그간의 전쟁 속에서 전부 사라졌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각종 학설들이 난무했는데, 그중엔 기계장치의 신께서 만들었다거나 돌연변이에서 급격하게 진화했다는 등의, 말도안되는 것들까지도 있었다.



당시엔 전부 학설조차 아닌 낭설이라 치부했었는데, 지금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런 곳,은 단  번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배,우기론 수 많,은 전쟁 속에서 전부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만.."



"당연한 것 아니겠나? 정보통제라네. 그렇지않으면  아무리 700년의 세월이 지났다해도 한 톨의 정보조차 없을 수 있겠는가?"


"어째서 정보통제를.."




"비밀은 아는 자가 적을 수록 좋은 법일세. 이미 광신도놈들만으로 충분히 버거운데 거기에 날파리까지 꼬이면 골치가 아프겠지."


들으면 들을 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간다. 마치 밑도 끝도 없는 구덩이에 수렁에 빠진 느낌이다. 그러나 알게 된 것도 몇가지 있었다. 귀뚜라미의 총명한 머리는 어렴풋하게 에메랄드 컴퍼니가 유적 발굴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유물을 사모으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이 바로 정보통제의 일환인 것이다.


그리고, 광신도. 녀석들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무엇을 믿는지, 어디에 본부를 두고 있는지, 그리고 그 우두머리가 누구인지 조차. 광신도에 대해 알려진 것은 녀석들이 사람을 납치해 간다는 사실 뿐이다. 그리고 납치당한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러나 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그놈들에 대해서 무언가 알고 있는 듯 했다. 카지트는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

"광신도라뇨? 설마 그 정신나간 녀석들도 그 무한동력인지 뭔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겁니까?"

"그래.  열쇠 - 우리는 그걸 열쇠라고 부른다네. - 에 대해서 아는 건 나와 내 후계자, 광신도들의 머리, 그리고 북부에 계신 그분들 밖에 없겠지."

그는 정말로 골치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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