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화 〉5. 대면
뉴 런던.
동부 최대규모의 도시이자 에메랄드 컴퍼니의 본사가 거하는 곳. 그 규모와 유동량으로 볼 때 동부의 심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에 성장한 그 모습은 현 시대 모든 예술과 문화의 집대성을 보는 듯 했다. 현대의 파라다이스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건물건물마다 황동빛의 장식과 조각상이 수십 수백가지의 양식으로 치장되어있었고, 곳곳에 박힌 가로등이 건물과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불야성의 도시. 인공조명이 저물고 있음에도 끝을 모르고 늘어선 거리는 그 어느 곳보다 활기차며 가지각색으로 빛난다. 천장에 박힌 인공조명과 그 주위를 배회하는 톱니바퀴들은 인공조명의 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다.
그러나 도로스들은 도시의 세련되고 예술적인 풍취를 즐길 틈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죽을상을 하고 슈나이더의 안내를 따라 에메랄드 컴퍼니 본사에 발을 들였다. 곧 마주하게 될 크나큰 시련에 주위를 둘러 볼 새가 없는 것이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닥과 각종 희귀한 유물과 미술품으로 치장된 내부. 그 고급스러운 장식품들에 마치 감탄이라도 하는 마냥 모두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두리번 거리고 있었지만, 사실 그런 것 따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행의 머릿속은 탈출 루트와 경비 인원 등을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었기에. 쉴새없이 좌우로 움직이는 눈은 가상의 동선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만만찮은지 일행의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다.
"방비가 단단하군."
"이,래선 사장실,에서 줄없이 번지점,프를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프로바움의 말에 닥터 윌슨은 혀를 내두르며 맞장구쳤다. 회사의 재력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다채로운 조각상과 예술품들 사이사이로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경호원들이 서 있었다. 절묘하게 서로의 사각을 보완하듯 서 있는 터라 그들의 눈을 속이고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보였다. 뉴 펜리스의 미술관과는 차원이 다르다. 카지트는 쭈뼛쭈뼛 고양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슈나이더는 필요한 최소의 말만 입 밖으로 꺼내며 일행을 건물의 최상층으로 안내했다. 꿀꺽, 하고 누군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1층에서 단숨에 최상층인 5층까지 갈 수 있도록 상하로 움직이는 발판같은 것 위에 슈나이더와 일행은 올라탔다. 정밀하고 정교한 기계장치와 증기의 힘으로 움직이는 그것을, 직원들은 엘리베이터라고 불렀다.
기이한 부유감. 허공에 발을 딛고있는 듯한 느낌은 좀처럼 체험 할 수 없는 것이었으나 카지트를 위시한 그 누구도 그 신기하고도 기이한 느낌에 한 톨의 관심조차 주지않았다. 그런 것에 신경 쓸 틈따윈 없었으니까. 한 층 한 층 올라갈 수록 긴장감과 압박이 심화되어간다. 그리고 그것은 최상층, 5층에 도달했을 때 최고조가 되어있었다.
"사장님께선 저곳에 계십니다."
잔뜩 날을 세우며 긴장한 도로스 일행과는 다른게 슈나이더는 고저없는 평상시의 어조로 한 곳을 가리켰다. 엘리베이터에서 일자로 이어지는 복도와 그 끝에 존재하는 문.
저곳이다. 바로 저 문 너머에 그들을 이곳으로 부른 동부 최고의 권력자가 있다.
그들이 망설이는 사이, 슈나이더는 어느새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져있었다.
일행은 말없이 서로 눈짓을 나누었다. 들어갈까? 들어갈 수 밖에 없겠군. 서로 의견이 일치했지만 누구하나 입밖으로 말을 꺼내는 이가 없었다. 주춤주춤 일행은 천천히 문에 다가섰다. 그리 멀지않은 복도건만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문이 호위병 마냥 사장과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음각해서 금으로 채워넣은, 고대어로 쓰여진 글귀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닥터 윌슨의 입이 소리조차 죽인 침묵 속에서 천천히 열렸다.
"위대한...오즈를 위하여."
소리없는 경악이 사이사이에서 터져나왔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은 그 유적의 광장과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장에 즐비한 뼈무더기와 대학살 또한 사장과 어떠한 접점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생각을 정리 할 새도 없이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경첩은 관리가 잘 되어있는 듯 미약한 잡음조차 없이 매끄러웠다.
그리고,
문 너머에 그가 있었다.
"처음뵙겠소.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인 게름하르트이오."
거대한 백호가 노란 눈을 빛내며 도로스들을 맞이했다. 보는 이를 압도케하는 거대한 덩치. 원숭이들을 이끌던 고릴라 수인과 맞먹을지도 모른다. 아니, 조금 더 클 것이다. 단정히 입은 셔츠는 그 풍채와 근육을 이기지 못하고 터질 듯이 부풀어있었다. 그 덩치에 비해 심히 작은 안경이 코 끝에 걸려있었지만, 넘치는 야성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는 팔꿈치를 책상에 대고 깍지를 낀 두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말없이 일행을 응시했다. 세로로 째진 노란 눈동자에선 지배자의 위엄과 권위가 묻어나왔다. 일행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심지어 관록이 상당한 프로바움 마저도. 그나마 그는 다른 일행들보단 자유로웠다. 그는 동요를 숨긴채 담담한 척,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프로바움이라고 하오."
자동인형이 입을 열자, 차례차례 일행 또한 입을 열었다. 짤막한 자기소개였으나 그것만으로 상당한 심력을 소모한 듯 프로바움을 제외한 셋의 얼굴은 조금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그는 동부의 맹자猛者이며 왕이다. 손가락 하나로 그 아래의 모든 것을 조종하는 이인 만큼 그 기백이 남달랐다.
일행의 소개를 들은 백호는 고개를 까딱이며 눈짓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제야 일행은 아직 문가에 서 있음을 상기했다. 이윽고 모두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을 확인하자, 문은 부드럽게 조용히 닫혔다.
"만나서 반갑소. 자네들이 전해준 유적의 정보는 잘 받았네. 덕분에 발굴이 한층 수월해질 것 같군."
그는 클클 거리며 웃었다. 입가의 하얀 털 사이로 손가락만한 송곳니가 반짝였다. 그는 지배자의 품위를 유지하며 천천히 일행 하나하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유와 위엄. 그들이 갖추지 못한 그 모든 것이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자네들의 기록을 살펴봤는데..꽤나 흥미롭더군."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던졌지만 그 파장은 컸다. 도로스들은 긴장했다. 그중, 프로바움과 카지트는 더욱. 그들에겐 숨기고픈 과거가 있는 까닭이다. 둘은 분노로 찡그려지는 얼굴을 애써 다스리며 그를 응시했다. 아마 그는 저들의 반응을 보기위해 일부로 던져본 것이 틀림없다.
"저희를 이곳에 부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카지트는 얼굴을 굳힌 채 말을 돌렸다. 이전의 기록이나 과거 따윈 그에게 금기와 마찬가지였다. 게름하르트는 그것도 나쁘지않겠다는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유라..의뢰를 갱신하고 싶네만, 수락하겠는가? 당연히 보상은 적지않을 거라네."
"거절...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흠..별로 듣고 싶은 대답은 아니군."
사장은 깍지 낀 손 위에 턱을 괸채 한 눈을 가늘게 뜨고 일행을 바라보았다. 잠깐의 침묵.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그 침묵 속에서 사장의 의도를 읽었다. 사자무언이라. 거절한다면 모두 죽여 없던 일로 할 속셈이다. 그간의 의뢰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눈 앞의 이자는 다른 소인배들과 달랐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심 따위가 아닌, 무언가 좀 더 거대한 것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곤란하군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시작부터 받지않는 건데."
"언제나 후회는 늦는 법이지. 그래서, 어쩌겠나?"
이쯤 되자 다른 일행들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눈치챘다. 좋지않았다. 카지트가 은밀하게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대자 사장은 입매만 삐뚜름하게 끌어올려 가면같은 웃음을 지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전투가 시작 될 듯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그런 대답이 날아들었다. 모두가 도로스를 쳐다보았다. 당황과 혼란 그리고 흥미가 뒤섞인 시선들 속에서 그는 말을 이었다.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맹랑한 녀석을 보는듯한 눈으로 게름하르트는 말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저희들이 각각 원하는 것을 들어주셔야겠습니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그는 재밌다는 듯 클클대며 웃었다. 그러나 눈엔 조그마한 웃음기조차 담겨있지 않았다. 그의 반론은 예상 내다. 이미 오는 내내 다른 일행들과 이것저것 이야기했었으니까. 도로스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저희를 초대한 이유는 표면적으론 유적에서 발굴한 것들 때문이지만, 사실은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의 문에 새겨진 글귀를 보고 확신했구요. 그 글귀는 저희들이 유적에서 발견한 것과 비슷한 걸보면 사장님은 그 유적에 대해서 알고 계신거죠? 그리고 뭔가 관련이 있구요."
도로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 방독면과 코트 위로 찌르는 듯한 시선들이 느껴졌다. 다른 일행이 말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가 먼저 말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인간. 인간인 그 때문에 괜히 다른 이들까지 휘말린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가 책임져야한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니라기엔 광장에 즐비한 인간의 뼈무덤이 걸렸다.
도로스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인간의 뼈들. 아마 그것도 어떤 관계가 있겠죠. 그러니까, 새로운 의뢰엔 '인간'인 제가 필요한 것 아닙니까?"
일행 중 누군가 스러져가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는 사장에게서 시선을 돌리지않았다.
"타당하군. 만약 자네들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을 시엔 어떻게 할 건가?"
"..도망칠 겁니다."
죽겠다는 대답을 할 수도 있었지만 도로스는 그다지 죽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마을의 돌연변이들도 퇴치해야하고, 좀 더 카지트들과 여행하고 싶었다. 이들만큼 재밌고 마음이 맞는 이들을 찾기는 쉽지않으니까.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사장의 냉랭한 질문에 그는 망설였다. 에메랄드 컴퍼니 본사의 입구부터 보아온 그대로라면 이곳에서 무사히 탈출 할 가능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그러나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도망칠 겁니다. 그리고 무슨 계획인지는 모르겠지만 방해해야죠."
카지트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와 도로스의 곁에 섰다.
"저,희들은 도망,치는 것 하,난 자신있습,니다."
닥터 윌슨 또한 도로스의 곁에 나란히 섰다.
"반항이 그리 오래가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골치는 꽤 아플거요. 그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이 칭찬한 실력자들이니."
프로바움또한 파이프를 만지작거리며 그 곁에 섰다. 넷이 힘을 합친다면 전부는 무리라도 못해도 한 명 정도는 빼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 한 명이 누가 되어야 할 지, 넷 중 셋은 잘 알고 있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논리다. 그러나 그는 그것대로 나쁘지않은지 히죽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들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상당히 즐거워 보였다.
"그것 참 무섭군 그래. 어차피 보상은 해줄 예정이었다. 필벌신상이 확실한 게 우리 회사의 자랑이니 말야."
그 대답에 일행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가장 큰 압박을 받았던 도로스는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한 걸 가까스로 멈췄다. 죽다살아난 느낌이다. 귀뚜라미는 인간친구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도로스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깨닫고 조용히 그에게 목례했다.
"저희 마을에 토벌대를 파견해 주십시오."
도로스는 마을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했다. 심드렁하게 이야기를 듣던 게름하르트는 고개를 끄덕이곤 짤막하게 말했다.
"좋네. 바로 토벌대를 보내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말. 간절히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때의 기쁨은, 도저히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다. 그는 너무 기뻐 까무룩 기절하고 싶었다. 그간의,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고 마침내 쟁취한 것이다. 이걸로 마을은 안전해질 것이다. 그의 누이 또한 기쁜 얼굴로 그를 맞아줄 것이 틀림없었다.
"그건 그렇고..자넨 인간이라지? 한 번 얼굴을 보여주게."
사장의 부탁을 가장한 명령에 도로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토벌대를 보내준다는 사람이니, 얼굴 같은 건 몇 번이고 보여줄 수 있다. 그는 행복한 미래에 자동으로 승천하는 광대를 애써 억누르며 방독면을 벗었다. 드러난 그의 얼굴에, 사장은 잠시 무언가를 되뇌이듯 눈매를 좁혔다.
"흥미롭군."
별다른 말은 없었다.
"자네들은 어떤가?"
거대한 백호는 다른 일행을 쳐다보았다. 나머지 셋은 서로 얼굴을 맞대고 고민했다. 이런 의뢰는 되도록이면 멀리 봐야했다. 뒤에 도사린 배경을 파악하지 못하면 언젠간 아무것도 모른 채 휩쓸려 갈 것이 자명했으니. 그러니 돈이나 명예같은 근시안적인 것을 요구할 수는 없었다.
"사,정을 전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첫 시작은 닥터 윌슨이 끊었다. 학구열로 불타는 그에겐 지식이 무엇보다도 값어치있는 것이니 사실 당연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사장도 받아들이기 곤란한지, 정색하며 받아쳤다.
"의뢰인의 사정을 알려고 드는가? 룰 위반일텐데?"
"지금 이 상황도 룰 위반 아닙니까?"
카지트의 반론에 게름하르트는 눈살을 찌푸리며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카지트의 말대로 이 상황도 룰 위반이긴 했다. 의뢰를 강제하거나 협박하는 건 용병들 사이에선 금기나 다름없었으니까. 잘못했다간 신뢰도가 크게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살인멸구하기엔 이런 '쓸만한' 실력자는 드물었다. 더욱이 걔중엔 희귀한 '인간', 그것도 제대로 된 것이 껴있으니.
한 동안 이것저것 재보며 고민하던 그는 이내 결론을 내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좋다. 말해주지. 다만 자네들 세 명 몫의 보상이 될 거다."
그 나름의 타협이다. 카지트들은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가 많이 양보해주었다는 걸 셋은 알고 있다. 그들은 냉큼 받아들였다. 돈이나 명예같은 보상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것이 현재로썬 최상의 판단이었다.
"좋습니다. 대신 전부 입니다. 당신이 아는 내용 전부."
"글쎄?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해도 자네들이 어찌 알아차리겠나?"
"그거야 에메랄드 컴퍼니의 이름값을 믿을 것이오.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님께서 어찌 우리같은 범부들에게 거짓말을 하겠소?"
카지트와 게름하르트의 대화에 프로바움이 끼어들었다. 사장은 관심을 자동인형에게 돌렸다. 보고서에 정리된 그의 과거는 그야말로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반 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온 전장을 섭렵하고 넘어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 만약 그가 진작에 군부에 투신했다면 수 세기동안 화자될 전쟁영웅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보다도 한층 더 그의 흥미를 끌었던 한 문단. 게름하르트는 생각났다는 듯 그것을 입에 담았다.
"호. 그쪽은..'그분'의 도제인가?"
"..과분하지만..."
프로바움은 고개를 내려 얼굴을 감추었다. 분명 실금처럼 자잘한 동요가 얼굴 전체에 만연해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질끈 눈을 감았다.
"그렇담 별로 감출 필요는 없을 것같군. 저 '인간'이라면 들을 자격이 있으니. 더욱이 어차피 도제인 자네가 '그분'께 물어본다면 전부 알려주실 테니 말이야. 아니지, 지식을 '계승' 했으니 이미 알고있나?"
그는 클클대며 웃었다. 빈정대는 웃음은 녹슬었다 생각한 그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프로바움은 처음으로 살기를 피워올리며 미움과 한이 서린 눈으로 사장을 노려봤다. 그나마 열화같은 성격이 오랜 세월동안 마모되고 연륜이란 이름 아래에 눌려 이 정도지, 예전 같았다면 이미 총을 쏘고있을 것이다.
사장은 아슬아슬한 선을 감지하고 그에게서 물러났다.
"그리 화내지않아도 좋소. 어차피 자동인형들의 논리따윈 내가 알 바는 아니니."
사장은 잠시 코끝에 걸친 안경을 그 보다 몇 배는 큰 손으로 세심히 닦은 후 다시 썼다. 그는 다시 한 번 도로스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친 후,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먼저, 연장된 이번 의뢰의 목적은 무한동력의 탈환일세. 다만 그것의 탈환은 최종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
"최종목적?"
카지트의 물음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최종적인 목표는 저 위로 올라가 위대한 조상들의 염원을 이루는 것이다."
사장은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건물의 천장이나 인공조명이 박혀있는 공동의 천장 따위가 아닌, 그 보다 더욱 위에 있는 곳을 향해서.
"그 염원이란 바로, 인류의 번성."
700년간 이어진 열망이 이곳에 다시 한 번 선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