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6화 〉5. 대면 (56/100)



〈 56화 〉5. 대면

프로바움은 어이없다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동안 궁금해 하던 것의 단서를 이런 곳에서 발견  줄은 몰랐던 까닭이다. 그는 적갈색 머리를 몇  털고는 허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허 참. 단서는 어느 곳에서 있었군. 다만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했었을 뿐이지."

아는 만큼 보인다던가. 그야말로 딱 들어맞는 격언이다. 그리고 등잔불 밑이 어둡다는 속담 또한.


닥터 윌슨의 설명을 들은 일행은 기저에 도사린 무언가를 느꼈다. 거대한 흐름. 속은 숨겨진 거대한 진실. 그들은 그곳에 발을 들이밀려하고 있었다.

오즈와 에메랄드 컴퍼니. 둘 사이에 모종의 관계가 있다는 건 확실하지만 정확히 어떠한 연관이 있는진 모른다. 다만 위험한 냄새가 났다. 격류와도 같은 그것에 한 번 휩쓸리면 다시는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엔 목숨을 잃겠지.

"어렵군."




자동인형의 한 마디엔 온갖 복잡한 감정들이 녹아있었다. 늘상 죽음을 곁에둔 용병이기에 그 누구보다 다가오는 죽음의 기척에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망설인다. 이번엔 농밀하고 끈적한 썩어버린 죽음의 악취가 풍겼다.




이런 상황에선 발을 빼는 게 정상이지만 이번만큼은 그것이 불가능 할 것 같았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사장이 직접 요청하는 걸 거부 할 수 있을 리 없다. 요청이나 부탁의 형태를 띄고 있으나 실은 명령에 가까울 터. 거절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아무도 몰랐다. 그러나 절대로 좋은 일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까요."



"거절하는 건 안될 걸. 재수없으면  자리에서 몰살당할 수도 있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 수록 좋은 거거든. 그렇다면 잘나신 사장나으리가 말하는 대로 따라야한다는 건데...최대한 이득을 보는 쪽으로 끌고가야 하려나?"




도로스의 중얼거림에 카지트가 답했다. 현재로썬 그게 그나마 제일 나은 선택이다.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 수록 좋고,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에메랄드 컴퍼니의 심층부와 관련된 특급 중의 특급(으로 생각되는) 비밀을 알고 있으니 거부했다간 어떤 꼴을 볼 지 눈에 선했다. 그러니 어차피 해야한다면 조금 더 좋은 조건을 내거는 게 낫지않겠는가?

카지트의 말에 닥터 윌슨과 도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아직 문제는 산재해 있었다. 가령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와 어떤 식으로 긍정적인 답변을 끌어내느냐 등등. 그러나 프로바움은 그 이전의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필요한, 유일한 사람인가?"

"예?"



일행은 반문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로바움은 잠시 파이프를 한 번 깊게 빨아들인 후 말을 이었다.




"어떻게 이득을 볼 건가를 생각하기 전에 그걸 따져야 한다네. 만약 우리를 대체  다른 이가 있다면, 실컷 이용당한  제거 될 수도 있다오. 그리고 협상은 커녕 우리가 원하는 대가의 반도 건지지 못할 수도 있지. 대체자가 있으니 굳이 우릴 선택 할 필요는 없을테니까. 원래 높으신 분들은 아랫것들이 속사정을 낱낱히 아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오."



후우, 파이프의 탁한 연기가 허공을 뿌옇게 물들였다.



"적어도 그들에게 우리들이 꼭 필요하다는 확신. 그게 있다면.."



하지만 그런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들 정도의 실력자는 흔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없는 것도 아니다. 이 바닥에서 베테랑이라 불릴 정도가 되면 다들 한 가지씩은 남못지않는 실력이 있다는 소리니까. 또한 입이 무겁고 신뢰도가 높지않으면 도태되기 쉽상이니, 남은 이들의 위상은 알만 했다.



적막이 찾아들었다. 넷 모두 생각 할 거리가 많아 입을 다물었다. 문제는 끊임없이, 속속들이 그들을 괴롭혔다. 한 가지를 해결하려고 하면 다른 문제가 튀어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른 문제가 나타나고. 끝없는 반복이다. 그래도 방금 전의 대화로 가장 먼저 무엇을 생각해야하는  대강 틀이 잡혔다.


도로스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뭔가 잡힐 듯 말 듯 머리속에서 아른 거렸다. 그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했다. 다른 용병들과 다른, 이 팀만의 무언가를 찾아야했다.  일행 고유의 것이면서 에메랄드 컴퍼니라는 거인을 유혹할 만한 것.



일행간의 두터운 신뢰와 믿음? 아니다, 다른 용병들 또한 그들처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에메랄드 컴퍼니에겐 그다지 상관없는 이야기겠지. 유적의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것? 가능성은 있다. 그곳에 가본 사람은 도로스들 밖에 없으며 에메랄드 컴퍼니가 관련된 곳으로 보이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이걸 써먹을 수는 없었다. 그 복잡무쌍한 길을 기억하는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고, 유적 돌연변이들의 우두머리에게서 도망칠 때 분명 유적의 일부가 붕괴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 광장이 아직까지 멀쩡히 남아있을 거란 보장은 없었다.



곰곰히 생각하던 그는 눈을 빛냈다. 그렇다면..인간은 어떨까?



"그렇다면..저는 어떨까요?"



"뭐?"

"그 넓은 광장에 있던 해골들은 전부 인간의 것이었으니까 인간은 오즈와 어떤 관계가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에메랄드 컴퍼니는 우리와 플라잉 몽키즈의 일을 알고있으니, 인간인 제가 여기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테구요. 그래서 더욱 저희를 초대한  지도 몰라요."

"듣고,보니 그럴 듯 합니,다."

닥터 윌슨이 네 손으로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 가능성있는 말이다. 오즈라는 인물을 기리는 조각상과 그 주위를 둘러싼 인간의 뼈들. 그것을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었다. 필시 오즈라는 인물과 그들이 알지 못하는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 터. 그렇다면 오즈와 관련된 에메랄드 컴퍼니 또한 인간에 관해 흥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때마침 여기에 그 희귀한 인간이 있지 않은가? 그들이 어떠한 요구를 할 지 알 수는 없으나 최소한 협상 테이블을 마련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토벌대 정도는 허락해주지 않을까? 도로스는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미는 기대를 내리눌렀다. 그러나 그 이면에 도사린 위험을 깨닫고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걱정과 우려섞인 얼굴로 도로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카지트만은 굳은 얼굴로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다.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이 도로스에게 주의를 주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도로스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는 그저 말없이 애꿏은 바닥만을 노려보는 카지트의 모습에 도로스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카지트, 괜찮아요?"



도로스의 질문에 그는 그제야 굳은 얼굴을 풀고 얼버무렸다.



"어? 어,어. 괜찮아. 그런데 너야말로 괜찮겠냐? 동료를 팔아먹는 거 같아서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닌데 말이지."



그는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물어뜯다가, 프로바움이 툭 그를 건들자 입술에서 피가 흐른다는 걸 깨달았다.



프로바움은 화제를 돌렸다.

"나도 어느정도는 도로스 자네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네. 그 광장에 즐비한 뼈들을 보면 분명 어떤 식으로 연관되어 있겠지. 다만 그들이 순순히 그걸 따라줄지 의문이군. 그들의 입장에선 인질이나 약점을 잡고 그걸로 협박하는 게  효율이 좋을테니까. 그러니까 그 의견은 기각일세."



굳이 그들이 제시 할 수도 있는 흉흉한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말해봤자 기분만 더러워질 뿐일 테니까. 그가 입을 다물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카지트는 무섭도록 시리게 굳은 얼굴로 멍하니 바닥을 노려보고 있었고, 나머지 셋은 필사적으로 궁리했다.


프로바움은 침중한 얼굴로 입을 벙끗거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고민하는 모양이다. 약간의 시간이 더 흐른 뒤에서야 그는 고민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였다.



"..그리 걱정은 하지 말게. 정 안되면 내 스승의 이름이라도 들먹이면 될 터니."




회한과 탄식이 뒤섞인 한숨을 내쉰 그는 입을 닫고 침묵했다. 침중하게 가라앉은 얼굴에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그의 '스승'에 대해 물어볼 수 없었다. 다만 뉘앙스로   에메랄드 컴퍼니같은 거대기업조차  발 양보해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프로바움마저 눈을 감은채 더 이상의 대화를 거부하자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이상의 대화는 독이 될 뿐이란 걸 짐작한 것이다.

둘도 조용히 입을 다물고 각자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수많은 의문과 걱정, 그리고 고뇌를 안고 도로스들이 탄 다각열차는 에메랄드 컴퍼니 본사가 있는 뉴 런던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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