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4. 구출
다음 날.
둘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움직였다. 치안유지대 본부라는 곳은 권력을 쥔 기관들이 으레 그렇듯 뉴 펜리스 한 복판, 그것도 사람들로 넘쳐나는 대로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적이 극히 드문 새벽에 활동하지 않는다면 곧바로 목격자만 수 십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게 불보듯 뻔했다.
둘은 새벽녘의 그림자를 타고 치안대 본부로 다가갔다. 다행히도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대로는 텅 비어있었다. 치안유지대 본부의 정문. 프로바움은 커다란 종이에 싸여진 무언가를 그 입구에 내려놓곤 재빨리 도망쳤다. 카지트가 누가 오는지 주위의 망을 봐준 덕분에 들킬 걱정은 없었다. 소포처럼 보이는 것 안엔 폭탄과 편지 한 장이 들어있다.
[오늘 미술관을 폭파하겠다.]
간결한 글씨체로 쓰인 편지는 단순한 장난처럼 보였지만 그 내용물을 확인한다면 그저 장난으로 치부하진 못하리라. 동봉된 폭탄을 확인하는 순간 녀석들은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달려들게 명백하다.
"돌입은 좀 있다가 합세. 녀석들이 발견한 직후가 가장 좋겠군. 지금은 야간 순찰을 도는 녀석들 빼곤 출근하지도 않았을 테니."
타이밍이 맞아야한다. 가장 이상적인 타이밍이라면 잠입해서 둘을 구출한 직후 치안대가 들이닥치는 것일까. 치안대와 플라잉 몽키즈가 맞붙는 사이에 도망가는 게 최선. 혹여 너무 일찍 돌입한다면 치안대가 돌입하기도 전에 잡힐 위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너무 늦게 돌입한다면 플라잉 몽키즈 뿐만 아니라 치안대의 눈을 피해서 잠입해야하므로 들킬 위험이 더욱 커진다.
둘은 근처에서 적당히 몸을 숨긴 채 시간을 보냈다. 서로 잠깐잠깐 씩 눈을 붙이고 나서야 출근시간이 되었는지 직원들이 하나 둘 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시간은 이미 아침에 가까워 대로는 출근하는 사람들로 조금씩 복작이기 시작했다.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그들이 보낸 소포를 집어드는 직원의 모습을 보고 바로 등을 돌렸다. 치안대가 폭탄을 가져가는 걸 확인했으니, 바로 미술관으로 갈 차례였다. 미술관까지 가는 길은 이미 대강 외우고 있으니 문제 될 건 없다. 둘은 빠른 걸음으로 인파에 녹아들었다.
앞으로는 시간싸움이다.
미술관의 넓은 부지. 그곳까지 다다르는데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지금쯤이면 녀석들도 사건의 심각함을 깨닫고 무언가 수를 준비하고 있을 터. 슬슬 진입하면 될 것 같았다. 프로바움은 카지트에게 눈짓했다.
미술관 또한 개장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안쪽엔 벌써부터 그리 적지 않은 관람객들로 복작였다. 둘은 주의깊게 주변을 살폈다.
"역시나 있군."
둘의 예상 그대로 사복을 입은 채 관광객들 사이에 숨어있는 플라잉 몽키즈들이 있었다. 아직 문을 연지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그 수는 어제보단 적다. 둘은 천천히 그림들을 구경하는 척 하며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바깥으로 향했다. 프로바움과 카지트는 최대한 태연한 척 관광객으로 위장했다. 그들의 눈길이 잠깐 닿았으나 무해하다고 판단한 듯 곧 사라졌다.
대리석으로 마감된 바깥 통로는 양 옆이 뻥 뚫려있어 바깥에 전시된 조형물을 구경 할 수 있도록 되어있었다. 일정한 경계 너머엔 플라잉 몽키즈들이 대놓고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따금 통로를 거늬는 사람들 쪽을 힐끔 쳐다보았으나 대부분은 서로 맡은 구역을 순찰하기 바빴다. 그 수는 그리 많진 않지만 구축된 경계망은 거의 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틈이 없었다.
"어떻게 뚫을 건가. 꽤 방비가 단단한 듯 한데."
"기다려 봐. 나한테 다 생각이 있다니까."
자신만만한 카지트의 모습에 프로바움은 입을 다물었다. 이런 분야에서 만큼은 카지트가 더욱 뛰어나니 믿을 건 그 밖에 없었다.
카지트는 순찰을 도는 녀석들의 위치를 기억했다. 녀석들의 시선이 닿는 범위와 사각지대가 그간의 경험을 통해 떠올랐다. 그의 머릿속에서 가상의 지도가 그려졌다. 경험으로 쌓아올린 감이 부족한 곳을 메꿨다. 무엇을 해야 할 지, 어디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 지 명확했다. 무수히 많은 특수한 훈련을 거친 그만이 할 수 없는 능력이다.
"영감, 바싹 따라붙어."
나지막히 경고한 카지트는 최대한 기척을 죽인 채 커다란 조각상에 바싹 붙었다. 주위의 배열된 조각상들이 외부를 감시하는 경비들의 시선을 막아주고 있었다. 둘은 조금씩 조각상과 조각상을 옮겨다니며 천천히 움직였다.
외부를 감시하는 녀석들은 관광객은 내부를 감시하는 녀석들 몫이라는 듯 가끔가다 통로 쪽으로 시선을 던지는 정도였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저 녀석들 마저 관광객 한 명 한 명에게 시선을 두었다면 아무것도 못한 채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어야 했을 것이다.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철저하게 경비들의 사각지대에 머물렀다. 정말 말도 안돼는 짓이었지만, 카지트가 겪어온 혹독한 수련과 경험은 이를 가능케 했다.
둘은 이윽고 경계선에 도착했다. 그들의 앞엔 더 이상 조각상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건물의 외부를 장식하는 신전 기둥들이 유일한 엄폐물일 뿐. 녀석들을 무력으로 제압하고 가는 것 이외엔 선택지가 없었다. 둘은 신전 기둥 뒤에 숨어서 때를 노렸다.
5분.
10분.
천천히 녀석들이 다가왔다. 둘은 언제든지 달려들 수 있도록 전신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그 때였다.
삐익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미술관을 때렸다. 그 소리를 들은 녀석들은 고개를 번쩍 들더니 호루라기가 들려온 곳으로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어안이 벙벙했다.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자 외부를 지키던 플라잉 몽키즈들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그들 또한 호루라기의 근원지로 향한 듯 했다.
프로바움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카지트에게 신호를 보냈다. 노련한 그는 재빨리 상황을 분석했다.
"..무슨 일이지?"
"글쎄, 치안대가 도착한 듯 하군. 아마 병력을 좀 끌어왔을 테니 자기들도 전부 소집시킨 걸 테지. 지금은 잘 된 일이군."
"그래도 좀 아슬아슬한데? 아직 찾지도 못했는데 싸움이 끝나버리면 곤란하다구. 설마 치안대놈들은 그냥 돌아가진 않겠지?"
"그리 쉽게 물러가지는 않을 거라네. 플라잉 몽키즈에 압력을 넣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니까."
어찌되었건 둘에겐 좋은 기회였다. 이대로 둘이 일행을 구출 할 때까지 서로 견제하기만
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둘은 재빨리 기둥들을 지나쳤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아는가?"
프로바움의 질문에 카지트는 망설였다. 사실 반쯤 감을 믿고 오긴 했지만, 그의 감은 더 이상 단서를 알려주지않았다. 그는 질문을 무시하고 재빨리 기둥 뒤로 숨었다. 누군가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프로바움 또한 아무 말 없이 그의 뒤를 따라 숨었다. 다급한 발소리. 인원수는 세 명.
"확실합니까? VIP 상품이 아프다고?"
"예, 예. 아프다고 누워서 일어나질 못합니다요."
빠르게 뛰어가는 셋의 인영은 금방 시야 너머로 사라졌다. 둘은 서로 마주봤다. VIP 상품? 혹시 그게 인간을 가리키는 것일까? 대답은 금방나왔다. 그리고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또한 명확해졌다.
"저놈들을 쫓아가자."
결단과 행동은 빨랐다. 둘은 슬그머니 달려가는 세 명의 뒤에 따라붙었다. 카지트의 은신 능력이 뛰어난 까닭도 있겠지만, 녀석들 또한 누군가가 그들을 뒤쫓고 있다는 건 생각도 해보지 못한 듯 그대로 한 장소를 향해 달렸다.
녀석들이 도착한 곳은 본관 뒷편의 자그마한 건물이었다. 본관이 미묘하게 그 건물을 가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이곳으로 오지않았다면 프로바움과 카지트는 이런 건물이 있단 사실 조차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세 명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지켜봤다. 아마 지하에 동료들을 가둬놓은 듯 했다.
"이제 어쩔텐가."
프로바움의 질문에 카지트는 씨익 웃고 건물 근처의 땅을 자세히 살폈다.
"영감, 소형 폭탄있지? 그걸로 천장을 날려버리자.
"뭐라고? 자네 제정신인가?"
"안에 몇 놈이나 있을지도 모르니까 섣불리 들어갈 수 없잖아? 들어갔는데 재수없게 한 무더기라도 있어봐, 우린 그냥 끝일 걸. 그러니까 여기 바닥을 날려버리고 들어가자고. 녀석들도 이건 예상치 못했을 테니 좋은 기회가 될 거야."
"혹시 닥터 윌슨이나 도로스, 아니면 다른 무고한 사람들이 바로 아래 있다면 어쩔텐가."
그러니까 지금 열심히 조사하고 있잖아? 카지트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바닥에 정신을 집중했다. 이쯤? 아니야 여긴 좀 불안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감에 의지해서 조금씩 조금씩 탐색한다. 시간싸움. 녀석들이 올라오기 전에 제대로 된 폭발 장소를 찾아야 한다. 섬광탄을 던져넣고 안으로 돌입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랬다간 동료들 또한 한동안 실명되어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한 순간.
열심히 땅바닥을 조사하던 카지트는 한 순간 저 너머에서 들린 작은 소음을 포착했다. 총소리. 이윽고 무언가가 아래서 천장을 때린 소리. 아마 발포된 총알이 천장을 때렸을 것이다. 아주 찰나의 소음이라 바닥에 집중하고 있지않았다면 잡아낼 수 없었으리라. 그는 소음이 들린 곳으로 다가갔다. 그래, 이곳이다! 그의 감또한 이곳에 폭탄을 터뜨리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영감! 폭탄을 줘!"
"빌어먹을. 진짜 하는 거냐?"
"시간없어! 빨리 줘!"
프로바움은 카지트의 재촉에 할 수 없이 소형 폭탄을 던져주고 저 멀리 거기를 두었다. 카지트는 재빨리 폭탄을 바닥에 부착하고 전력을 다해 폭발 범위에서 벗어났다.
콰앙!!
소형이라고 하나 폭탄은 폭탄. 폭탄은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터졌다. 순식간에 바닥이 아래로 무너지기 시작하는게 눈에 보였다. 그와 동시에 둘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안으로 뛰어들었다.
"..여기까지라네. 나머진 자네들도 잘 알테니 굳이 말할 필욘 없겠군 그래."
이야기를 마친 프로바움은 후우, 담배연기를 길게 뿜었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다시 한 번 고개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프로바움과 카지트는 이런 큰 일까지 벌인 것이다. 몇 번이고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괜찮다네. 오랜만에 옛날 장난감도 가지고 놀 수 있었으니까. 아 참, 기왕 이렇게 된 거 자네들도 무기나 한 번 골라보게. 녀석들에게 무기를 빼앗겼으니 하나 쯤은 필요하지 않겠나?"
프로바움은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콜렉션이 있는 지하로 안내했다. 거실엔 남은 카지트만이 고로롱 잠에 취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