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1화 〉4. 구출 (51/100)



〈 51화 〉4. 구출

"그래서, 지금 당장 들어갈 거야?"


"아니, 일단 정찰을 해야겠지."


그는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바늘은 12시를 지나 오후 1시로 향하고 있었다. 미술관은 5시 쯤에 문을 닫을 테니 시간은 넉넉하다면 넉넉하고, 부족하다면 부족한 정도. 미술관까지  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다.


둘은 머뭇거림 없이 바로 미술관으로 향했다. 다행히 미술관은  인지도가 있는 장소였던 지라 가는 길은 쉬웠다.




미술관의 넓이는 어마어마 했다. 건물 여섯 일곱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로 광활한 부지는 대리석과 금속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있었고, 그 위로 고풍스런 양식의 미술관 건물 세 채가 우뚝 서 있었다. 이곳에 처음으로 방문한 이라면  위용과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만도 하건만, 외형보단 실속을 중시하는 둘은 아무런 감상없이 본관으로 들어갔다.



"이런..생각보다 방비가 단단하구만. 쯧."




프로바움은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미술관 내는 전시된 유적과 미술작품 등을 구경하러온 사람들로 가득 미어터졌다. 유적을 탐사하던 동안 봤던 몇몇 유물들과 명작의 반열에 들어가는 작품들이 온 천지 사방에 전시되어있었지만 둘은 작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먼 곳에 있는 그림을 구경하는 척 하는 프로바움의 눈이 빠르게 주위를 훑었다.



일반인들은 모르겠지만 군데군데 존재하는 사각지대엔 사복차림의 플라잉 몽키즈들이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아마 내부를 감시하는 이들인 듯 했다. 언뜻 보기엔 그저 두리번 거리고 있는 것 처럼 보였지만, 둘은 알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수상한 거동을 보일 시엔 저들 모두가 진압에 나설 것이다.

생각 외로 빡빡한 보안체계에 카지트도 혀를 찼다. 거기에 숨긴다고 숨겼지만 둘의 눈을 속이기엔 역부족이다. 은근히 드러나는 살벌함은 녀석들의 경험이 풍부하단  보여줬다. 걸리면 단순히 귀찮아지는 걸론 끝나지 않을 듯 했다.

"그러게. 밤이 되면 경계는 더 심해지겠지. 경매가  앞이니까 말이야. 차라리 내일 아침에 하는 게 어때? 밤이라면 부지 안으로 들어오는데만 해도 꽤 어려울 텐데, 적어도 낮엔 손님으로 위장해서 들어올  있잖아."



"..그게 낫겠군."




낮에도 이 정도인데 밤엔 얼마나  심해질  둘은 혀를 내둘렀다.  이상 돌아다녀 봤자 얻을 수 있는 게 더는 없었다. 그래도 적어도 미술관의 내부 구조나 호위들의 실력 따위를 알 수 있었으니 본전은 건진 셈이다. 미술관의 부지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는데 돌아다니는 데만 세 시간 가까이 걸릴 정도였다.




그러나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갇혀있을 만한 장소를 특정하긴 어려웠다. 미술관 내부엔 그럴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갇혀있던 사람들이 탈출한다면 큰 소란이 벌어질 테니, 본관에서 조금 떨어뜨려놓았을 확률이 높았다.



"내 생각엔 저 쪽에 있을 것 같은데."



턱을 쓰다듬으며 카지트는 눈을 좁혔다. 그가 가리킨 곳은 본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외부 통로였는데,  가운데에 떡하니 [관계자  출입금지]라고 쓰인 표시가 걸려 있었다. 평소같았다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쳤을 테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선 확실히 신경쓰였다.

"그래도 어쩔  없지. 일단 돌아가세. 조금 있으면 미술관도 문 닫을테고, 잠깐 들릴 데가 있다네."




"으음, 이대로 가긴 조금 아쉬운데..어쩔  없지. 근데 잠깐 들릴 곳이라니?"




"가보면 알 걸세. 이것저것 모아둔 창곤데 거기서 쓸만한  몇 개를 추려가야지. 치안유지대에게 바칠 선물도 고를 겸."

카지트는 프로바움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번이고 물었으나,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가보면 안다는 것이다. 그는 할 수 없이 프로바움을 따라 미술관에서 벗어났다. 그냥 돌아가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제대로 준비해서 오는 편이 좀 더 확률이 높았다. 보통 이런 구출 작전은 단판 승부이니, 보다 철저히 준비해야한다.




프로바움은 카지트를 이끌고 그의 '창고'에 도착했다. '창고'란 그가 반 세기가 넘는 용병생활 속에서 이것저것 모으고 모은 '쓸만한 잡동사니들'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중엔 위법적인 물건들도 상당 수 있었기 때문에, 일반 가정집으로 위장한 창고는 프로바움의 열쇠없이 들어올 수 없도록 단단히 봉해져있었다. 입구 또한 인적이 거의 없는 장소에 위치한 터라 의심을 살 여지는 없었다. 혹시나 누가 들어올 걸 대비해서 안 또한 일반 가정집처럼 꾸며놓았다. 실질적인 잡동사니들은 지하실에 처박아둔 채.




생각없이 프로바움을 따라 계단을 내려간 카지트는, 지하 창고를 보고 경악했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밝혀진 내부는 그야말로 충격의 도가니였다. 냉병기와 총포가 물처럼 흘렀다. 한 뼘 될까말까한 단검부터 그의 키보다 큰 파이크와 할버드까지. 그리고 장난감처럼 생긴 여자들의 기압식 호신용 권총부터 전쟁터에서나 볼 법한 화약식 대포까지!



불법으로 증축의 증축을 거듭한 넓은 지하실엔 마치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전쟁사를 구현해놓은 듯, 온갖 무기들이 넘쳐났다. 카지트는 비명을 질렀다.



"맙소사! 이게 다 뭐야!"



"훗,  노후는 내가 챙겨야지 않겠나."



프로바움은 컬렉션을 자랑하는 아이처럼 훗, 웃으며 카이저 수염을 만지작 거렸다. 자부심에 가득찬 그 외형은 중후한 귀족 노신사의 그것이었지만 내용물은 완전히 테러리스트나 다름없었다.




"확실히, 뉴 펜리스 창고는 조금 넓은 편이긴 하지."



"맙소사! 설마 다른 곳에도 있는 거야?!"



"물론이라네. 먼 지역에서 무기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여기까지 올 수 없진 않은가?"

당연하다는 듯한 반문에 카지트는 당황했다.

"어찌됐건 중요한 건 이게 아니라네. 잠시만, 어디보자.."

무기사이를 거닐며 이것저것 뒤적이던 그는 곧 몇 가지를 꺼내 가져왔다. 그의 주먹 네 개가 들어갈 수 있을 크기의 두꺼운 원반과 그 5분의 1 크기 쯤 되는 원반 하나. 친숙하면서도 오싹한 그 외형에 카지트는 입을 열였다. 그러나 목이 꽉 막힌 듯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몇 번이고 입술을 달싹인 후에야 그의 입이 열렸다.



"설마...아니지?"


"음? 무슨 말인가?"

모르겠다는 듯 능청스럽게 프로바움은 웃음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거 말야, 설마..폭탄은 아니지?"

카지트는 속으로 기계장치의 신의 이름을 애타게 외쳤다. 그러나 기계장치의 신은 고작 그런 일로 기도하지 말라며 그를 외면했다. 프로바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생각하는 게 맞다네. 32년 전 전쟁에서 주워온 폭탄이지."

"이 미친 영감아! 그걸로 대체 뭘 할 작정인데! 설마..설마, 미술관을 날려버릴 작정이야?"



카지트의 경악에 그는 한쪽 눈을 찡그렸다. 다분히 카지트를 짜증나게 하려는 의식적인 태도였다.

"허, 무슨 사람이 그리 무식한가?"

"으아악, 이 영감이 진짜!"



"흐흐, 농담이라네. 이건 치안대에게 보낼 선물일세.  엉덩이 무거운 녀석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하지 않겠나?"


맙소사. 카지트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치안대에게 폭탄을 선물로 주다니. 치안대를 움직여서 플라잉 몽키즈를 견제하자고 한 건 그였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 그는 몇 시간 전의 자신을  방 세게 때려주고 싶었다.


"분명 미친 듯이 움직이긴 하겠지. 그런데 뒷감당은 어쩌려고?"


아이고 머리야.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보통이라면 그가 저지르고 프로바움이 뒷처리를 할 텐데, 이번만큼은 상황이 반대가 되어버렸다. 치안대라면 정말로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할 게 뻔했다. 그리고 심증만 있고 제대로 된 물증이 아직 없는  경우엔 더욱이. 따지고 보면 폭탄같은 극단적인 충격요법이 빠르게 먹히긴 할 것이다. 결국 시간싸움이니까.

"자네 말대로 치안대와 플라잉 몽키즈를 싸움 붙일 걸세. 그렇다면 폭탄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겠지. 여긴 일종의 안가安家 비슷한 용도이기도 해서, 한 달은 족히 버틸 수 있다네.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면 되겠지."

"도로스는?  녀석 마을이 위험에 처했다고 했잖아?  달이면 좀 위험할 것 같은데."



카지트의 질문에 그는 이미 생각해둔 대답을 읊었다.



"최대 한 달 정도는 버틸 수 있다고 했지 굳이  달 동안 여기서 묵을 필요는 없네. 잠시 몸을 숨기고 때를 봐서 카디프로 돌아가면 괜찮겠지.  땐 도로스의 마을에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군."



에이, 젠장 모르겠다.  그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아는 카지트는 반쯤 포기했다. 이미 대략적인 계획을 세워둔 프로바움을 말리기란 그리 쉽지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다른 질문을 했다.

"역시 마음에 들었나봐?  녀석 꽤 괜찮은 놈이라니까."

"자네 말대로 빚지워두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것 뿐일세."

흥, 말은 잘하네. 그는 툴툴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