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4. 구출 (50/100)



〈 50화 〉4. 구출

"결국 여기까지 왔군."



프로바움은 탄식했다. 뉴 펜리스. 서부 최대의 도시가 눈 앞에 펼쳐졌다.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끝없이 위로 치솟은 첨탑이나 만연한 파이프와 기계장치 따위가 아닌,  모든 것을 아우르는 도시 전체의 위용이었다. 어마어마하다. 음울한 강철의 도시, 바스톤이나  것과 현대가 서로 교차하는 카디프와는 전혀 달랐다.


시적인 표현을 빌리자면, 꿈꾸는 톱니바퀴의 도시. 이보다 더욱 적절한 표현은 없으리라.


건물들은 하나같이 휘황찬란한 황동색으로 빛났으며 각종 아름다운 문양과 장식들이 건물마다 즐비했다. 설계 당시부터 구획들을 나누었는지 건물들은 열을 맞춰 줄지어 서 있었으며 도로는 반듯하게  뻗어있었다. 거리 곳곳엔 가로등이 빛을 밝히고, 복잡무쌍한 문양들이 정교하게 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서부의 대도시라는 위명에 걸맞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솟은 탑과 건물들은 그야말로 하나의 종유석 같았다.


톱니바퀴들의 합창. 도시 곳곳에 알알이 박힌 톱니바퀴들과 기계장치들은 소리높여 도시의 웅장함을 찬송했고, 거미줄처럼 얽힌 황동색 파이프에선 쉴 새없이 증기와 매연이 쏟아져나왔다. 머리를 핑핑 돌게하는 스모그와 연기가 천장을 희뿌옇게 가리고 있다. 그 너머에선  줄기 인공조명들이 뉴 펜리스의 골목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석재로 마감된 대로 위엔 수많은 수인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그 수는 카디프와 비교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사람들이 물결처럼 너울거렸다. 제각기 다른 외형을  수인들. 동물형 수인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사이사이 곤충 계통의 수인들 또한 보였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적은 수의 자동인형들조차 아무런 걱정없이 도시를 거닐었다. 그 면면은 모두 밝다.



그와 반대로 그들을 지켜보는 프로바움과 카지트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사람들 진짜 많네. 여기서 어떻게 놈들을 찾지?"



"짐작가는 구석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확실하진 않군."



"짐작가는 구석은 어딘데?"



"..플라잉 몽키즈와 관련된 곳. 그 중에서도 경매를 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부지여야 하겠군. 그리고..아마 녀석들이 경비를 서는 곳일 확률이 높군. 호위나 경비 쪽에서 녀석들만큼 잔뼈가 굵은 녀석들은 없을테니."



"내가 생각한 거랑 비슷하네. 그런데 문제는 이 넓은 도시에서 그걸 어떻게 찾느냐는 거지."


카지트는 곤란하단 듯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활동지역이나 거주하는 도시가 동부이다 보니, 서부에 관해선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인맥 또한 동부 이외엔 거의 없다시피 해서 물어볼 깜냥도 없었다.

"그건 걱정말게. 예전에 만들어놓은 끈이 좀 있으니."


프로바움은 걱정할 것 없다는 듯이 말했다. 사실 뒷경매의 위치를 찾는 것에 대해선 그다지 걱정은 없었다. 녀석들이 경비라면 방비가 단단할  틀림없지만 카지트의 기술이라면 잡음없이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뒷처리를 하느냐이다. 섣불리 녀석들을 건드렸다간 사방이 적으로 넘칠 것이다. 특히 녀석들의 앞마당인 서부에선 더 하겠지. 몰래 잠입해서 둘만 빼돌리는 것이 제일 이상적이긴 했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그는 예전에 안면을 터놓은 의뢰중개상에게 향하면서 줄곧 이런 저런 방법을 강구해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전무라고 해도 좋았다. 단체 앞에서 개인의 힘은 약한 법이다. 어느 방법을 떠올려도 결과는 녀석들의 끝없는 추적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는 한숨을 연기에 담아 뿌렸다.


"하아, 답이 없군."



"뭘 그리 곰곰히 생각하는 거야? 장소를 알아내는 거라면 맡겨달라며. 혹시..그냥 해본 소리였어?"


"쯧, 그런 건 아닐세. 다만 뒷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 지 조금 고민하고 있었다네. 자네는 뭔가 좋은 방안이라도 있는가?"



프로바움은 기대를 담아 물었다. 카지트라면 그와는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서 해답을 도출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수 많큼 그 생각이나 접근하는 방식도 다양하고 많으니까. 다행히 카지트는 그의 기대에 부응할 만한 답변을 내놓았다.



"나도 대충 생각해놓은 게 있긴 한데..뭔가 좋은 수라도 있어?"


"없으니 문제라네. 자네의 생각 좀 들어보고 싶구먼."

카지트는 생각을 정리하는 듯, 눈을 감고 고양이 수염을 배배 꼬았다.

"둘을 어찌 구해낸다고 해도 플라잉 몽키즈에게 쫓기겠지. 아무래도 우리들만으론 큰 조직에 대항하기 힘들잖아?"


"그건 알고있네."

"그럼 다른 조직을 끼워넣으면 되는 거지."




다른 조직을 끼워넣는다? 프로바움은 그 단어를  안에서 굴려보았다. 과연 새로운 관점이다. 그가 놓치고 있던 맹점을 정확히 꼬집은  하다. 조금씩 솟아오르는 기대와 관심을 적당히 조절하며 그는 귀를 귀울였다.


"어떤 조직을?"


"왜, 있잖아. 플라잉 몽키즈의 세력이 너무 커진 덕분에, 제대로 된 간섭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녀석들."



"설마..치안대를 쓰자는 말인가!"




그는 손바닥을 짝, 쳤다. 그렇다! 굳이 플라잉 몽키즈라는 거대한 집단과 맞대결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손이 부족하면 다른 손을 빌리면 된다. 수많은 상념이 빠르게 머리속을 스쳐지나갔다. 치안대. 플라잉 몽키즈. 구조.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몇 개의 조각들이 서로 들어맞기 시작했다.

"맞아. 치안대 입장에서도 플라잉 몽키즈는 밟아두고 싶은 상대겠지. 녀석들 덕분에 범죄발생률은 조금씩 오르고, 그렇다고 녀석들을 견제하자니 너무나 커져버렸고."

"호오, 둘이서 싸움을 붙이고 우린 살짝 빠지면 되겠군. 여차하면 사정을 말하고 치안대 쪽으로 붙어도 되고. 물론, 그 안에 원숭이놈들의 끄나풀이 없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네."



프로바움은 속으로 가능성을 검토해봤다. 결과는 꽤 좋았다. 만일 플라잉 몽키즈가 치안유지대와 전면전을 선포한다면  이상 그들에게 신경을 쏟을 여력따윈 없을 것이다. 물론 인간인 도로스를 잡기위해 사람을 풀겠지만, 치안대가 눈을 똑똑히 뜨고있는 이상  수는 많지않을 터. 그 정도라면 해볼만 했다. 정 안되면 당분간 마련해둔 안가安家에서 숨어지내도 괜찮고. 그는 만족스럽게 입술을 비틀었다.



"꽤 괜찮군. 역시 전 '레인져'다워."


"..프로바움."


카지트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으르렁거리는 듯한 어조로 자동인형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으드득, 이빨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프로바움은 실수를 인정하며 태연한 척 파이프를 피웠다.



"어이쿠, 실례했군. 뭐어, 그래도 언제까지나 피하기만 할 수는 없다네."



그래, 피하기만 할 수는 없지. 프로바움은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한참을 노려보던 카지트는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며 사나운 눈길을 거두었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프로바움 또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응수했다.



계획에 열중해있던 둘은 어느새 의뢰중개상의 거처에 이르렀다. 그곳 또한 카디프의 그곳과 비슷하게 여관을 겸업하고 있었다. 대로에서 골목으로 조금 들어가야하는 위치. 주위엔 음식물 쓰레기와 돌조각들이 굴러다녔다. 마치 슬럼가를 연상케 하는 곳. 삭막한 그곳에서 여관만이 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어서옵셔! ..어라? 이게 누구야, 영감탱이잖아! 한동안 안보이길래 뒈졌나 싶었는데 용케 아직도 살아있잖아?"

뚱뚱한 D자 몸매에 앞치마를 두른 갈색 돼지 수인이 그들을 반겼다. 그는 모히칸 스타일로 자른 밤색 갈기를 거칠게 쓸어내리며 프로바움에게 다가왔다. 큰 눈에 가득찬 반가움을 보고 프로바움은 피식 웃고는 마주 껴안았다.



"오랫만이오, 데릭. 못본 새에 살이  찐듯하군."



"그게 다 인복이라네. 흐하하하!!"


그는 툭 불거져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호탕하게 웃어 제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감?"


"나야 뭐 한결같소. 용병질이 내 천직이지."



"흐하하! 역시 영감탱이 답구만. 근데 이 잘빠진 녀석은 누구요? 영감 아들은 아닐테고."



"카지트, 내 동료요. 십 년 전쯤 부터 이 녀석과 팀으로 일하고 있소."

"오호! 팀인가..그립구먼. 아무튼 처음뵙소, 난 데릭이라 하오. 저 양반과는 20년 지기 친구지."




카지트는 데릭의 손을 마주 잡았다. 발굽처럼 단단한 굳은살과 가공 할 만한 악력. 예사 인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납득했다. 프로바움과 20년 정도를 알고지냈을 정도라면 보통 인물은 아니다. 보통 은퇴한 용병들이 의뢰중개소를 차린다는 걸 생각한다면,  또한 한 때는 용병이었을 것이다.



약간의 시시껄렁한 잡담을 나누던 둘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인감? 뭔가 사건이라도 터졌나?"




"별건 아니고, 조금 궁금한 게 있어서 왔다네. 자네, 혹시 뒷경매가 열리는 장소에 대해 아는  있나?"



프로바움은 목소리를 낮췄다. 다른 사람이 들어서 그리 좋을  없기 때문이다. 그 질문에 데릭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그는 고개를 카운터 뒤쪽의 방을 가리키곤 그쪽으로 향했다.



"이것 참 세월이 변하긴 변했는가봐. 영감이 그런 걸  묻고."



방 안에 들어온 데릭은 씁쓸하게 말했다. 프로바움의 성정을 아는 그에게 뒷경매에 관해 묻는 프로바움의 모습은 조금 충격인 듯 했다.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닐세. 동료가 그쪽에 납치되었거든. 아마 뒷경매에 나올테지."

"그,그렇구만. 이거 오해해서 미안한데."

그는 모히칸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필요한   위치와 정보 뿐인감? 그 외에도 이것저것 준비하고 뭐하고 손이 많이 갈 텐데."




"오랫만에 만났는데 자네에게 폐를 끼칠 순 없지. 그걸로 충분하네."

데릭은 뭔가 더 해주고 싶은 눈치였지만, 강경한 자동인형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프로바움의 고집은 그도 잘 알았다.




"에휴, 자네 쇠고집도 여전하구먼. 뒷경매의 위치는  펜리스 시가지 북쪽에 있다네. 미술관인데 부지가 엄청 넓어 그리고 플라잉 몽키즈가 경비를 맡고 있지. 녀석들이 경비를 맡은 덴 아마 거기가 유일 할 거야. 플라잉 몽키즈는 몸값도 그리 싼 편은 아니니까 다들 경비로 고용하고 싶어하진 않거든. 부지가 쓸 데 없이 넓어서 경비 인원도 상당해. 아마 30명 정도 될 걸."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 정도면 어떠냐는 시선에 프로바움은 만족스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왕이면 조금 상세한 정보를 얻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썬 이 정도가 전부 인 것 같았다. 그래도 대략적인 인원 수를 알아냈으니 그것만으로 잠입이 한층 쉬워질 것이다.



"이 정도면 충분하네. 사람들을 가둬둔 곳도 그 부지  어딘가에 있을 테지. 큰 도움이 되었네."



"뭘, 나도 더 알려주고 싶지만 더 이상 아는  없다네. 아 참, 경매 시작일이 이틀 후라네. 동료를 빼낼 거라면 서두르는 게 좋아."



둘은 소리없는 경악을 내질렀다. 이틀 후가 경매라니! 그렇다면 시간은 오늘과 내일 밖에 없었다. 시간이 꽤나 빠듯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