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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9화 〉4. 구출 (49/100)



〈 49화 〉4. 구출

얼마나 달렸을까, 둘은 닥터 윌슨이 남긴 두 번째 단서를 얻었다. 단서를 발견하긴 쉬웠다. 더러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하얀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소매는 녹이슨 적갈색 파이프에서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찢어진 소매에 남겨진 글. 얼마나 급하게 썼는지 글씨는 그답지않게 거칠고 조악해서 알아보기 힘들정도였다.



[뒷경매. 뉴 펜리스]

짤막한 두 단어. 그러나 충분하다. 닥터 윌슨 또한 그들과 비슷한 생각을   같았다. 카지트는  번째 쪽지를  안에 쥐었다. 목적지가 한층 확실해진 느낌이다.

"최소한 맞는 길로 가고 있는 것같네."



프로바움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로잡힌 와중에도 어떻게든 카지트와 프로바움에게 단서를 남기려고 하는 그의 노력. 둘은 확실히 그것을 느꼈다. 존경스러울 정도의 집념이다.

그로부터 수 시간을 더 걸어가자, 둘은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을 발견했다. 겉보기엔 다른 쓰레기 파편들이나 먼지들과 다름없어보였지만, 분명 잘 감춰진 흔적이다. 카지트의 날카로운 안목이 아니었다면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둘은 감춰진 흔적에 다가갔다. 마치 파이프 한 켠의 쓰레기와 먼지더미 처럼 숨겨져있는 것은 누군가 불을 피운 흔적이었다.



"모닥불이군."




"그리 오래되진 않았어. 아마 하루나 이틀 정도  것 같은데?"



카지트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타고남은 고형연료를 뒤적였다. 고운 잿가루가 별다른 저항없이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렸다. 먼지 등을 고려해도 거의 최근에 태운 것 같았다. 손을 털고 일어나자, 손에 묻은 잿더미가 춤추며 떨어졌다.


그는 모닥불 흔적의 주위를 주의깊게 살폈다. 간간히 냄새를 맡거나 손으로 쓸어보는 등, 프로바움으로썬  수 없는 행동을 했다.

"모닥불 크기가 이 정도인  보면 머리수는  네 다섯 정도? 망보는 놈이  명 정도 있다고하면  일곱  되겠지."




프로바움은 잠자코 전문가의 분석에 귀를 귀울였다. 전투 뿐만아니라 추적과 은신에 있어서 그의 솜씨는 달인의 영역에 이르러있었다. 어디에서 배웠는지는 말해주지않지만 추측컨대 뛰어난 스승 아래서 시사받았음이 분명했다.



"대충 알 수 있는 건 이정도려나. 그다지 쓸만  건 없네."



"무얼. 우리가 제대로 가고있다는 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수확일세."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목표와의 거리가 하루이틀 정도란 걸 안 이상 서두르는 편이 좋다. 녀석들의 최종목표는 뉴 펜리스겠지만 만약 중간에 바스톤에서 쉬어간다면, 잘 하면 따라잡을 수도 있다. 바스톤까진 이틀. 아마 녀석들은 이미 도착했거나 도착하기 직전일 터였다. 조금 빠듯하다.

이틀의 시간.

그동안 둘은 쉴새없이 달렸다. 수면 시간을 최저로 줄이고, 식사조차 걷는 동안 해결할 정도. 속도는 줄이되 절대 멈추지 않았다. 오로지 수면을 취할 때만 이따금 멈출 뿐.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위해 돌연변이가 나오는 길도 서슴치않았다. 어차피 바스톤에 도착할 때까지 탄약은 충분하니, 강력한 돌연변이만 아니라면 충분히 상대할 만 했다.



덕분에 이틀보다 약간 일찍 바스톤에 도착 할 수 있었다.



바스톤은 지난 번 왔을 때보다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치안대가 사방을 돌아다니고 곳곳에선 검문이 이어졌다. 검문은 주로 외지인, 그것도 조금이라도 수상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실시하는  했는데, 서두른다고 돌연변이고 뭐고 닥치고 때려잡은 덕분에 이곳저곳 헤지고 피범벅인 둘은 당연히 피해갈 수 없었다.


"정지! 자네들, 이름이 뭔가."




 바탕에 검은 색 점박이를 가진 개과 수인이 그들을 멈춰세웠다. 동부와는 디자인이 약간 다르나 검은색 바탕에 푸른 선이 박힌 옷은 치안대의 그것이 분명했다. 둘은 멈춰섰다. 굳이 치안대를 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딱히 그들이 잘못한 건 없지 않은가? 프로바움은 당당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프로바움이오. 이 친구는 카지트라고 하오."




"여기 온 목적은?"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오. 바스톤은 뉴 펜리스로 가기 전에 잠깐 들렸소만?"




"혹시 보증 수표나 의뢰를 증명 할 만한  있나?"

"의뢰보상금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받았으니 수표는 없소. 의뢰를 증명 할 만한 것이라면..이게 있군."


프로바움은  안에서 의뢰서 한 장을 꺼냈다. 혹시 몰라 의뢰서를 사본으로 만든 것으로, 유물을 전달했을 때 사본에 의뢰를 완료했다는 사인을 받은 것이다. 그 종이를 건내받은 개과 수인은 흠, 침음성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어떻게든 위엄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으나, 둘은 그가 당황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에메랄드 컴퍼니는 그 명성만큼 위세 또한 높았으므로 실수했다 여긴 까닭이다. 에메랄드 컴퍼니같은 거대 회사의 의뢰를 받기 위해선 그만한 실력과 신뢰도가 필요하다.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어느 곳에서든 환영이니 밉보여서 좋을 리는 없었다. 속으로 안달복달하는 모습이 뻔히 보여, 프로바움은 웃음기 섞인 배려를 던졌다.

"뭐, 이해하오. 우리 둘  꼴이 이러니 말이지."


치안대의 위엄과 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에겐 그야말로 구원의 빛이었다. 그는 조금 밝아진 안색으로 근엄한 척 고개를 끄덕였다.



"에메랄드 컴퍼니라, 이 정도면 충분히 신원 보증이 되겠군."


"대체 무슨 난리랍니까? 조금 뒤숭숭한 것 같은데."



카지트는 주위를 둘러보며 물었다. 기계장치와 톱니바퀴 섞인 강철과 회색의 도시는  색상에 맞게 한층 주눅들고 차가웠다. 전과 같은 활기참은 없었다. 마치 전쟁 직후의 도시같았다. 이번만큼은 프로바움 또한 그간의 경험으로 쌓은 안목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가오는 불길한 그림자를. 마치 다가오는 재앙의 전조처럼 여기저기에서 사건이 점점 터지고, 덩치를 불려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네들은 없었으니 모르겠군. 한 일주일 전 쯤에 다수의 돌연변이들이 도시 주위에서 목격되었다네. 비슷한 시기에 광신도들이 사람들을 납치해갔다는 제보도 있었고."



이건 또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카지트는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보통은 농담삼아 건네곤 하던 이야기가 사실이되어 돌아오다니. 돌연변이들은 도시 근처에서 얼씬도 하지않는다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백년 동안 씨를 말리다시피 보는 족족 잡아죽였으니 도시 근방에선 보고싶어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동안 학습이란 걸 했을테니 도시에 다가오는 녀석도 없었고.


광신도 또한 마찬가지이다. 최근들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듣긴했지만, 이런 큰 도시를 습격 할 정도로 머릿수가 많았던가? 마지막으로 관측된 조직적 활동은 수 십년 전이니, 제대로 된 숫자는 파악 할 수도 없었다.



"것 참 이상하네? 돌연변이들은 어지간하면 도시엔 얼씬도  할 텐데요? 모습을 드러내봤자 포화에 녹아내릴 거란  본능적으로 알 놈들인데."



"그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이런 일도 있는 거겠지. 애초에 생각 할 머리 따윈 없는 놈들 아닌가."



치안대의 말에 카지트는 어깨를 으쓱였다. 돌연변이들은 개체 마다 특징이나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정신나간 놈들이 있다해도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그렇긴 하죠. 그나저나 광신도? 그놈들이란 건 어떻게 알았답니까? 목격이라도 하지않는 이상 모를텐데. 그게 광신돈지 돌연변이인지 그런 것도 모를텐데."


그는 잠시 이걸 말해도 좋을 지 고민하는 게  눈에 보였다. 상황을 봐서 저희들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하고 카지트는 은근슬쩍 그를 부추겼다. 실력자들을 꼬셨다면 보너스는 기본에 인사고과 점수에도 추가점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는 헤벌레 풀리려는 얼굴을 최선을 다해 다스렸다. 그러나 꼬리까진 생각이 미치지않은 듯 하다. 그의 꼬리는 맹렬하게 좌우로 반복운동했다.

큼, 크흠! 둘은 웃지않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입술을 꽈악 눌렀다.



"흠, 이 정도는 알아두는 게 낫겠지. 목격 정보가 있었다네. 하얀 로브에 고깔처럼 생긴 흰 두건을 쓰고있는 놈들이었다더군. 옛날 기록의 광신도 복장과 일치하지."

이번엔 프로바움이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한 가지 여쭙겠소만, 혹시 며칠 전에 플라잉 몽키즈들이 오지 않았소? 숫자는 대략 5~7명 정도이고, 곤충족 수인 한 명과 방독면 쓴 녀석 하나가 붙어있을 거요."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동자가 허공을 읽어내려가며 지나간 기억들을 되짚어보고 있는 듯 했다. 이윽고 그는 기억해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녀석들이라면 어제 도착했었다네. 왜 찾는가?"



둘의 얼굴이 밝아졌다. 고작 하루 차이. 녀석들은 아마 둘이 추적하고 있다는 것 조차 모를 것이다. 닥터 윌슨과 도로스라면 그런 주절주절 이야기하진 않을 테니까. 녀석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 될 것이다. 아직 도시에 있다면 치안대에게 도움을 청해도 될 테고. 괜히 둘이 아무런 생각없이 치안대의 비위를 맞춰주는  아니다.

카지트는 대충 둘러댔다.

"같이 있는 녀석들이 저희 동료인데 플라잉 몽키즈와 먼저 가겠다고 해서 말이죠. 혹시 있으면 저희도 같이 따라가고 싶어서...아시잖습니까. 녀석들 전투력 하난 최고라 안전은 보장되니까요."



"흠, 그런가. 하지만 안됐군. 녀석들은 어제 도착한지 얼마 지나지않아 떠났거든. 그리고 어디보자..자네 동료들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네. 플라잉 몽키즈 여섯 뿐이었거든."

"없었다구요?"


카지트는 애써 당황을 숨기며 물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분명 뒷경매가 열리는 장소는  펜리스라고 들은 적있다. 혹시 옮겼을까? 둘의 눈에 불안함이 아른거렸다. 만약 벌써 둘의 신원이 넘겨졌다면 찾기 힘들 것이다. 치안대의 눈을 피해 암약하는 녀석들의 음습함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이어지는 치안대의 말에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눈에서 힘을 뺐다.

"그래. 여섯 뿐이었네. 다만 뭔가 큰 관짝 같은 걸 두 개 짊어지고 왔었지."

그거다. 둘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마취든 수면제든 무언가를 써서 두 일행을 운반하고 있는 것 같다. 설마 정말로 죽이진 않았겠지? 마음 한 구석엔 여전히 불안감이 남는다. 그러나 애써 가설을 무시한  둘은 가볍게 인사했다. 도착하자마자 떠났다니 다시 추적하기 위해선 서둘러야 한다.

"이런..아무래도 다른 플라잉 몽키즈였나 봅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상황을 봐서 저희도  팔 거들도록 하죠."

"그거 고맙군. 그래도 이곳에서 사고는 치지 말게."



치안대는 간단히 목례를 하고 자리를 떠났다. 프로바움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속삭였다.


"미치겠군. 설마 그대로 떠났을 줄이야."


"그래도 뭐, 녀석들이 하루 앞서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그것만 해도 어디야."




"어쩔건가."

프로바움의 질문에 카지트는 씨익 웃었다. 여관에서 하루 푹 쉰게 전부라 몰골은 아직 초췌했으나 눈빛만은 형형하게 빛났다. 답은 정해져있지. 그는 혀로 입술을 쓸었다.

"따라가야지. 빌어먹을 원숭이놈들 엉덩이를 걷어차야 속이 풀리겠어."




프로바움은 흥, 하고 코웃음 치곤 뉴 펜리스로 가는 파이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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