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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화 〉4. 구출 (46/100)



〈 46화 〉4. 구출

카지트와 프로바움이 유적 입구로 나가자 둘은 맞이한 건, 따뜻한 포옹이나 격려섞인 박수따위가 아닌 차가운 금속들이었다. 유적 안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듯 그들의 분위기는 잔뜩 경직되어있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런 소란이 일어났으니 경계할  했다. 둘은 그들의 흉흉한 분위기를 이해했다.




둘은 공격의사가 없다는 것을 알리기위해 천천히 무기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스물이 넘는 인원이 입구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었는데, 아마 모든 인원이 모인 것 같았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살피던 둘의 눈이 빛났다. 착용한 장비들의 질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역시 에메랄드 컴퍼니 소속다웠다.

"대기!"



그들 사이로 낯익은 늑대 수인 하나가 걸어나왔다. 유적발굴대의 인솔자인 제롬이었다. 피를 한 바가지 뒤집어쓰고 있다곤 하나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제롬 또한 프로바움과 카지트의 얼굴을 기억해내곤 밝은 얼굴로 다가왔다. 남은 두 명의 멤버가 보이지않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진.



"돌아온 걸 환영합니다! 그...다른 두 분께선?"


"중간에 나뉘었습니다. 뭐, 눈치는 빠른 녀석들이니 알아서 올 겁니다."

카지트는 어꺠를 으쓱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제롬으로썬 어안이 벙벙한 일이다. 일행의 반이 아직 저 안에 남아있을 텐데 어쩜 이렇게 무관심한 것인가. 동료들에 대한 믿음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혹자는 카지트를 쓰레기라고 욕 할 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제롬은 전자였다.

"동료들을 신뢰하나 봅니다. 아직 다른 분들이 빠져나오지 못했는데도 별다른 걱정이 없는 걸 보니 말입니다."



"그렇소. 꽤 쓸만한 녀석들이니 무사히  헤쳐나오리라 믿소."



그건 진심이었다. 선천적인 길잡이로 태어난 도로스의 감은 카지트의 감보다 훨씬 뛰어나니, 어떠한 상황에서도 최선의 방안을 모색할  틀림없었다. 거기에 그의 곁엔 학식 높은 닥터 윌슨까지 붙어있으니 그야말로 범에게 날개를 달아준 꼴이다. 정말 재수가 없지않은 이상 왠만한 사건이 일어나도  피해 갈 것이다.



"그건 그렇고, 유물을 계산해 주겠소? 아직 갈 길이 머니 조금 서두르는 편이 낫겠구려. 보다시피  지친 터라 한시 빨리 푹신한 침대에 눕고싶은 마음이라네. 나이 먹어서 그런지 아직 관절이 뻑뻑해서 말일세."


둘은 챙겨온 유물 꺼내 제롬에게 들이밀었다. 빨리 그대로 쓰러져 잠에 취하고 싶었지만 유물을 처리하고 메드비크까지 한참을 걸어가야했다. 원한다면 유적발굴대가 거하는 이곳에서 쉬어갈 수 있었지만, 둘에겐 별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거의 군대에 가깝게 무장한 이들 곁에서 잠을 청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에메랄드 컴퍼니 산하의 이들이라 하더라도 항상 모난 돌은 있기 마련이다. 괜히 화를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제롬 또한 그들의 마음을 대강이나마 이해했는지 쓴웃음을 지으며 유물을 감별사에게 넘겨주었다. 감별 자체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최초 발견한 유물이 아닌 이상 그 정보나 외형은 유물 카탈로그에 기록된다. 감별사들이 하는 일이라곤 카탈로그에서 같은 유물을 찾고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확인하는 일 뿐이다. 좀 더 오래될 수록 가격이 약간 더 올라가는 구조다.



"우리 말고 다시 나온 사람들은 있습니까?"

카지트느 혹시나 해서 물었다. 혹시 도로스들이 그들보다 먼저 빠져나왔다면? 그럴 가능성이 없다곤 못한다. 건물의 구조는 아무도 모르니, 숨겨진 길 한두 개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아직은 없습니다. 현재까진  분이 최초죠."


군청색의 늑대 수인은 멋쩍은 듯이 하하 웃었다. 사실 그들도 별다른 기대를 하지않는 것 같았다.


"얼마나 들어갔죠? 다섯 파티? 혹은 그 이상?"


예리한 카지트의 질문에 그는 난처한  볼을 긁었다.




"죄송하지만 그건 비밀이라 대답 할  없습니다. 규정에 어긋나거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세한 표정과 행동의 차이로 알  있었다. 다섯 파티 이상이군. 카지트는 머리 한 구석으로 냉정하게 판단했다. 다섯 파티 이상 중 돌아온  그 둘이 전부였으니, 생존률은 최대20% 이하였다. 아무리 용병들의 쓰임새가 일회용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 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 카지트 였으나 입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숫자나 무장은 저쪽이 위였다.

"사실 저희도 당황스럽죠. 보통은 들어가서 유물만 가지고나오는 쉬운 임문데, 하필이면 이런 지독한 곳이 걸려서.."




"어쩔 수 없소. 누가 저런 곳에 돌연변이가 있다는 걸 알았겠소?"


셋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계산이 끝났는지, 감별사가 돈 주머니를 들고 왔다. 기다란 볼트에 50개 씩 꿰어진 너트가 400개. 2만 너트였다. 개인에겐  많은 돈이었으나 4분의 1을 하자 약간 많은 돈이 되었다. 5000너트라. 임무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3천 너트 정도 받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보다 약간 많은 정도였다. 목숨값을 생각하면 손해였다. 그 고생을 하고 고작 일반 임무보다 약간 더 받다니. 부디 도로스와 카지트가 충분한 유물들을 모았길 기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약간 부족하긴 하지만, 첫 번째고 하니 조금 더 쳐드렸습니다."

2만도  안되었다니! 남은 건 도로스들에게 달렸지만 아직까진 손해였다. 그것도  심한. 둘은 내색 하지않으며 제롬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시간이 되신다면 돌연변이의 분포나 대략적인 숫자 등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안에서 뭔가 흥미로운 것이나 그런 걸 발견했다면 거기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싶습니다만. 물론 추가보수는 따로 드리겠습니다."

프로바움과 카지트는 잠깐 서로를 바라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그들로썬 말해봐야 손해는 없었다. 발굴이나 유적의 기원 등을 파악하는  개인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뿐만 아니라 추가보수를 준다하니 마다 할 리 없었다.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나가며 그들이 유적 안에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냈다. 논리보다 감각을 중시하는 카지트의 설명은 엉성하고 여기저기 주제가 튀었으므로 프로바움이 그 대신 이야기했다. 연륜의 힘은 언변에도 깃드는 것인지, 그저 담담히 이야기하는 것 뿐인데도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처럼 흡입력있으며 재미있었다. 조금씩 힐끔거리며 듣던 발굴대나 호위들은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씩 숫자가 늘기 시작하더니, 나중가선 아예 모든 이들이 둘러앉아 귀를 귀울였다.


돌연변이들의 우두머리와 해골광장이 나오는 대목에선 다들 숨도 못쉴 정도로 긴장하고, 무사히 탈출하는 장면에선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 터져나왔다. 덕분에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손에 땀을 쥐며 집중하던 이들은 질문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이야기가 끝나자 하나둘 씩 감탄을 토해내던 이들은 그제서야 본분을 깨닫고 질문하기 시작했다.




"우두머리는 어떻게 생겼습니까? 공격 패턴은? 장갑은 어느 정돕니까?"




"해골이 쌓인 광장이라구요? 그 가운데 있던 구체는 뭔지 알아보겠습니까? 거기에  있던 글씨는 대체 뭐죠? 짐작가시는 구석이 있습니까?"

그야말로 질문의 폭풍이었다. 얼마나 질문을 해대는지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한참을 소비해서야 간신히 대답한 둘은 몸을 일으켰다. 아직은 생각에 잠겨있거나 뭔가 글을 쓰고있는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하던 일을 끝마치면 다시 질문 공세를 시작할  같았다.  전에 떠나야했다.




"아주 흥미롭군요. 위대한 지도자, 오즈라..."



제롬은 길쭉한 턱을 긁으며 오묘한 표정을 골똘했다. 마치 뭔가 짐작가는 게 있는 모양이다. 그는 얼마나 깊히 사색에 잠겨있는지, 떠나겠다고 말하는 프로바움과 카지트의 목소리도 듣지 못 할 정도였다. 다행히 다른 수인이 그들에게 돈 주머니를 건넸다. 6천 너트. 이야기하고 얻은  치곤 나쁘지않았다. 오히려  좋은 수준이다.




몇몇 발굴대는 아직 뭔가 물어보고 싶은  있는 모양이지만 둘은 무시하고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닥터 윌슨과의 경험이 있어, 저런 부류에게 잡히면 문답으로 끝없이 시간을 보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런! 두 분 다 벌써 가셨나? 안타깝게 됐군."




사색의 미로에서 빠져나온 제롬은 뒤늦게 둘 모두 떠나버렸다는  눈치챘다. 그 또한 이것저것 물어볼 게 많았기 때문인지 아쉬움이 남았다. 그는 할 수 없다는 듯, 간이 막사 한 구석에 설치된 커다란 기계에 다가가 이곳저곳을 두들겼다. 톱니바퀴와 기계장치가 군데군데 붙은 정체모를 기계는 증기를 뿜어내며 작동하기 시작했다.



"서부 유적 발굴대, 인솔자 제롬. 최초 탐사 완료자  명 확인. 카지트, 프로바움. 일급 키워드 '오즈'의 언급을 확인."


 일을 마친 그는 기계를 껐다. 에메랄드 컴퍼니 본사로 송출 될 메세지를 작성한 것이다. 일급 키워드라.. 그는 여전히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어디까지나 본사에서 일급 키워드를 언급한 대상을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았을 뿐이다. 에메랄드 컴퍼니 산하에서 일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회사에 대해 모르는 게 훨씬 많았다. 어째서 유물들을 모으고 있는 건지, 이런 일급 키워드가 무엇인지. 심지어 간부조차 모르는 눈치었다. 유물 중 몇몇은 중간을 거치지않고 바로 사장에게 전해졌다. 아마 사장만이 유일하게 모든 걸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제롬은 관심을 끊었다. 이런 세상에서 좋아하는 걸 하면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선 불필요한 관심을 끊는 것이다. 그의 아래에 있는 발굴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입이 무거운 녀석들만이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는 방금전까지의 대화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어떻게 돌연변이들을 무찌르고 유적을 탈환할까 고민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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