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2화 〉4. 구출 (42/100)



〈 42화 〉4. 구출

카지트와 프로바움의 행동은 재빨랐다.

카지트는 일행을 근처의 기둥 뒤로 숨긴 뒤, 자신 또한 다른 기둥 근처에 숨은 후 때를 기다렸다. 프로바움은 홀로 당당히 서서 장전된 페퍼박스를 먼 거리에서 달려오는 상대에게 겨눴다. 상대의 원거리 공격수는 고작해야 하나 둘 정도. 대부분은 근접무기에 샷건같은 중거리 무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다지 경계할 필욘 없었다. 아직까지 그들의 거리는 충분히 멀었다. 힘잃은 총알  두발 쯤은 너끈히 버틸 수 있었다. 그가 애용하는 정장이  찢어지겠지만.


프로바움은 말없이 페퍼박스를 겨누고 총신을 돌렸다. 마주 달려오던 원숭이 수인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회피동작을 취했으나, 프로바움의 손가락이 한층 더 빨랐다.




투콰콰쾅!!




마치 폭죽이라도 쏘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발사된 스물 네발의 총탄이, 사선 상의 모든 것을 가차없이 관통했다. 몇 초 전까진 살아움직이던 육편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방금까지 달려오던 플라잉 몽키즈는 고기조각과 핏물이 되어 땅바닥을 더럽혔다.



프로바움은 그가 만든 참상에  톨의 관심조차 주지않은 채, 다시 탄환을 장전하기 시작했다. 그 손놀림은 가히 달인의 영역에 도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스물 네발의 총탄을 장전하기 까지 20초 남짓한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호? 저 놈은 전장에서 좀 굴러먹었나보군."




프로바움은  놀랐다는 듯 눈을 들었다. 가까스로 포화를 피한 녀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덟의 플라잉 몽키즈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큰 체구를 가진 자, 멕도너였다. 그는 구르다시피 옆으로 몸을 던져서 간신히 총탄을 피할 수 있었다. 그는 순식간에 죽어버린 부하들을 마주하곤 프로바움을 향해 울부짖었다.




"이 빌어먹을 고철깡통이!! 언젠가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저놈이?"


그는 순식간에 뒤로 돌아 달아났다. 그대로 쏴버릴까 했지만, 영악하게도 기둥들을 이용해 사선에서 몸을 감춘 터라 쏴봤자 총알 낭비밖에 되지않을  뻔했다. 그리고 화약이 든 총알은 다른 것들과 비교해도 굉장히 비쌌다.


치열한 접전을 예상했지만, 생각보다도 훨씬 빠르게 끝난 싸움에 닥터 윌슨이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보통 싸우,기 전에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까? 저쪽도 그런 걸 생,각한 듯 합니,다만..."

"사내새끼가 주절주절 말 많은  질색이라네. 싸울 땐 거리가 중요하고, 먼저치는 놈이 이기는 거지. 그러니까 누가 근중거리 무기만 들고 다니랬는가?"



그는 카지트를 노려봤다. 말이 많고 무장 또한 근중거리 위주였다. 카지트는 남자의 로망 타령을 하며 시선을 회피했다.

"쯧, 어쨌든 움직이도록 합세. 혹여 다른 원숭이놈들이나 치안대를 만나기라도 하면 골치아파지니."


도로스는 어째서 치안대를 만나면 골치아파지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 터라 나중에 물어보기로 했다. 일행은 빠르게 뛰어 프로바움이 만들어놓은 시산혈해를 가로질렀다. 도로스는 그 와중에 멀쩡한 방독면을 안고 미소지었다. 더 이상 악취미적인 가면을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유,물이랑 무,기들은 완,전히.."

녀석들의 시체를 뒤져 무기를 얻은 닥터 윌슨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무기야 그가 가진 것보다 좋은 터라  불만은 없었지만, 유물과 그의 기록과 연구등이 적힌 수첩을 빼앗긴 것이 뼈아팠다. 아쉽게도 녀석들은 도로스의 방독면 외엔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아마 녀석들의 숙소같은데 두었을 것 같았다.




도로스 또한 유물과 무기를 녀석들에게 빼앗겨 버린 터라 조금 아쉽긴 했다. 돈이 되는 유물도 유물이었지만, 보우건 두 정은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만든 것이기 때문에  애정이 남달랐다. 그런 물건을 빼앗겨 버렸으니. 아쉽게도 죽은 녀석들은 보우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 했다. 그는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 다셨다. 무기의 내구도는 무한하지 않으니 언젠가 버려야 할 상황이 올 것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런 식으로 떠나보내게 되다니. 입맛이 썼다.




빠르게 시체를 뒤져서 챙길 것을 챙긴 일행은 걸음을 서둘렀다.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을 보면, 치안대가 갇혀있든 사람들을 발견하고 플라잉 몽키즈와 충돌하기 시작한 듯 했다. 이때가 기회였다.

일행은 카지트의 인도에 따라 조용히 혼란의 도가니에서 빠져나왔다. 그는 마치 뭐가 어디있고 어디로 가야 들키지않는지 전부 꿰고 있는  했다. 분명 감의 힘도 있었지만 후천적으로 배운 어떠한 기술을 이용하고 있는 듯했다. 단순히 감만으로 움직인다고 하기엔  움직임은 막힘이 없었고 매우 부드럽다 . 수많은 사람들의 시야각을 계산하고 사각死角을 파고드는 기술은 거의 예술에 가까웠다.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 현장에서 나와 프로바움이 사전에 마련한 안전가옥까지 도달하는데 2시간이면 충분했다.



"맙소사. 카지트, 전에 도둑질이라도 했었나요? 무슨 움직임이.."

도로스의 순수한 감탄은 되려 카지트에게 커다란 총알이 되어 박혔다.

"뭐 임마? 어디서 도둑따위랑 비교하고 있어!"


"그럼, 전엔 뭐했는데요?"

카지트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참는 듯 했다. 프로바움은 소파에 편히 기대 앉아 파이프를  모금 물었다. 파이프 연기가 조명에 희뿌옇게 퍼졌다. 그는 카지트에게 이것저것 캐묻는 도로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물었다. 카지트가 자신의 과거를 밝히길 꺼려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도로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네. 뭐부터 들을 텐가?"



도로스는 할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조르는 손자처럼 신나하며 물었다. 방독면 너머에 있을 얼굴은 분명 미소를 띄우고 싱글벙글하고 있으리라. 도로스는 생각 외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좋아하는 듯 했다.



"좋은 소식부터?"




"좋은 소식은 우리가 무사히 탈출했다는 사실이네. 여기서 조금 머물다가 치안대가 사라지면 그때부터 움직이세."




치안대. 또 다시 거론된 이름에 도로스는 전에 물어보고 싶은 질문을 입에 올렸다.


"그런데 치안대를 왜 피하는 거죠?"



프로바움은 다시 한 번 파이프 담배를 깊게 들이마셨다. 기화된 담배향이 입안에서 굴러나와 허공으로 잘게 찢겨졌다. 그는 덧없이 사라지는 연기를 바라보며 느릿느릿 말했다. 권태로운 태도에선 일말의 여유가 묻어났다.



"치안대와 만나면 사건경위 보고서같은 걸 쓰고 면담같은 것도 해야할 텐데, 저놈들 일처리로는 하루가 넘게 걸릴 게 뻔하다네. 재수없으면 일주일가까이 발목잡히겠지."

또다시 파이프 한 모금. 방안이 점점 안개로 가득 차는 것같아, 닥터 윌슨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옛날에 괴물들이 안개와 같이 나타나는 소설같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제목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저들 중에 플라잉 몽키즈가 심어놓은 간자가 없다고 누가 확신하겠나?"

일리있는 말이라며 닥터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그 또한 프로바움과 비슷한 결론을 내렸기에 잠자코 그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거말고도 또 있지."




카지트가 히죽 웃으며 프로바움을 응시했다. 자동인형은 그가 무슨 말을  지 알기에 괜히 헛기침을 했다. 이건 완전히 물에 빠진 놈을 구해줬더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격 아닌가. 배신감을 곱씸으며, 그는 나중에 꼭 그를 다시 한 번 걷어차리라고 맹세했다.


이상한 프로바움의 태도에 둘은 중간에 뭔가 일이 있었다는  깨달았다. 저 점잖고 고상한 신사가 치안대와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커져나가는 궁금증에 도로스가 물었다.

"치안대와 뭔가 일이 있었습니까?"


"조금..그렇다네."


프로바움은 카지트에게  좀 닥치라는 매서운 시선을 보내며 어쩔  없다는 듯 수긍했다. 그러나 멈추라고 해서 멈춘다면 카지트일 리가 없다. 카지트는 경청하는 두 동료에게 폭탄을 터뜨렸다.

"미술관을 폭파시키겠다고 메세지 겸 폭탄을 보냈거든."



예? 잘못들었슴다? 도로스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닥터 윌슨도 비슷한 얼굴이라,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제대로 들은 건지 확인했다. 잠깐의 이중확인이 끝나자 닥터 윌슨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런 짓을 했,습니까?!"



"제대로 가서 사실을 말한다면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걸세. 그 작자들은 엉덩이가 무겁거든. 그렇다고 메세지만 보내선 장난으로 치부하겠지."


"와..."



도로스는 할 말을 잃고 망연히 그를 쳐다봤다. 그렇다고 진짜 폭탄을 보내다니. 카지트나  짓이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폭탄을 대체 어디서 구했다는 말인가?

"폭,탄은 대체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수류탄 같은 게 아니라서 오로,지 군에,서만 생산, 관리,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원래 전쟁나가면 다들  몫 챙기려 이것저것 빼돌리는 게 보통이오. 난 그저..그래, 조금 큰 걸 빼돌린 거라오."



어차피 상대의 폭탄이었으니 장부에 대조해도 나오지 않을 거요. 프로바움은 그저 껄껄 웃었다. 둘은 플라잉 몽키즈를 학살하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곤, 그에게도 의외로 막나가는 일면이 있음을 상기했다. 동료의 새로운 모습을 깨달은 둘은 전율했다. 본인 말대로라면 수 많은 전쟁에 참가했었다는데, 그렇다면 대체 얼마나 많은 병기들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둘은 폭탄과 병기에 관해 물어보길 포기했다. 어차피 들어봤자 속만 쓰릴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 도로스는 본래 주제로 돌아가 물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니에요? 플라잉 몽키즈한테 총질까지 했는데. 폭탄마로 우릴 지명하는 건 아닌지.."



폭탄마라는 말에 프로바움은 다른 곳을 쳐다봤다. 그로 나름 양심이란 게 있는지 찔리긴 하는 모양이다. 그는 대뜸 변명하듯 내뱉었다.




"어차피 감옥의 천장을 부수었을 때부터 끝난 거였네."

물론 도로스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나마 닥터 윌슨은 뛰어난 두뇌를 이용해 그  뜻을 파악하곤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왠지 그 혼자만 소외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도로스는 조용히 답을 기다렸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우리의 인상착의를 전부 말할 거라오.  사람들은 영웅인지 뭔지 떠들겠지만, 치안대 입장에선 이놈들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겠지."

"아하! 그렇군요."

도로스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가 이해하기엔, 어차피 잡혀있던 사람들을 풀어줄 때 들킨 입장이니, 거기에 죄목 한   정도야 추가해도 상관없다는  같았다. 하긴, 잡히지만 않으면 된다. 물론 운신의 폭이 많이 줄어들겠지만.




"그런,데 생각보다 치안대의 숫,자가 많은 듯 합,니다만?"

"미술관을 경비하는 게 플라잉 몽키즈이니 혹시모를 충돌에 대비해서 인원 좀 뽑아왔을 거라네. 원래 다들 그렇다오."



프로바움의 명쾌한 답변에 닥터 윌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들끼린 뭔가 통하는 게 있는  같았다. 도로스는 그나마 그와 머리가 비슷한 카지트 쪽을 바라봤다. 그는 이미 고개를 꾸벅이며 반쯤 졸고 있었다. ..나는  정도 머리인 건가? 부정하고 싶었지만, 왠지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애써 사실을 외면하며 다른  가지 소식에 대해 물었다.

"그럼 나쁜 소식은요?"




"이제 플라잉 몽키즈가 우릴 미친 듯이 쫓을 거라는 사실이지."



"역시.."




예상했다는 듯 닥터 윌슨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다행히 여기까진 도로스도 어느정도는 이해했기에 맞장구 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유나 그로 인해 벌어질 결과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생각해  적이 없는 터라, 머리 좋은 그의 해설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노예거래를 했다는 걸 세상이 알게 될 텐데요?"

"그거야 겉으론 반성하는 척, 뒤집어 씌울 녀석을 정해서 묻어버리겠지. 뒤에선 아마 미친듯이 쫓아올 걸? 자존심의 문제야. 원래 이 바닥에선 얕보이면 끝이거든."

어느새 깨어난 카지트가 하품을 하며 말했다. 위 아래로 쫙 벌려진 입 사이로 날카로운 육식동물의 이빨이 누렇게 빛났다.



"그,리고 도로스가 인간,이라는 걸 안 이상 그 값어치때,문이라도 쫓을 겁니,다. 그리고 경,매 바로 전날 메인 디쉬를 잃어버,렸으니, 신뢰도에도 다대한 타격을 입었,을 거라 추측됩니다.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도 도로스를 노릴 것 같습,니다."




"정말 총체적 난국이군 그래."



일행 중 가장 현명한 자동인형이 단  마디로 모든 것을 일축했다. 그리고나서 그는 지겨운 4타령을 했다. 계속해서  타령을 들으니 왠지 도로스도 4라는 숫자가 재수없게 보였다. 아, 안돼지. 세뇌되면 안돼. 그는 머리를 흔들어서 악마의 속삭임을 쫓아냈다.

"근데 나쁜 소식이 하나가 아니라 두  아닙니까? 플라잉 몽키즈랑 치안대, 둘에게 쫓기는 신세인데."


"뭘, 미운놈 주먹  방 더 먹인다는 소리지."



그는 껄껄 웃었다. 아니 그게 웃을 일입니까? 도로스는 조금 따지고 싶었지만, 도저히 말로 그를 이길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자기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대화가 끊긴 방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카지트는 다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고, 닥터 윌슨은 오랜만에 재회한 그의 수첩과 글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으며, 프로바움은 파이프만 뻑뻑 피워대고 있었다. 꽤나 무료해 보였다.


사실 무료하긴 도로스 또한 마찬가지 인 터라, 그는 애써 대화주제를 찾아 헤맸다. 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더니, 더 이상 머리 아픈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기에, 신중하게 골라야했다. 그리고, 그는 그 조건에 딱 맞는 주제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카지트랑 프로바움은 대체 그 괴물한테서 어떻게 도망간 겁니까? 이야기 좀 해주세요."



도로스의 말에 프로바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의자에 앉아, 손자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의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수첩에 눈을 고정한 닥터 윌슨도, 눈을 비비며 잠깐 깨어난 카지트도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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