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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화 〉3.경매 (40/100)



〈 40화 〉3.경매

도로스는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사실 작업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게, 그저 바닥에 드러누워 앓는 소리를 내는 것 뿐. 왠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양상에 닥터 윌슨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연달아 쇠창살을 때리며 목소릴 높였다.



"여기 환,자가 있습니,다! 위급상,황입니,다!"


땡땡거리는 쇠창살과 목소리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감옥 속에서 웅크리며 잠을 청하던 수인들이 무슨 일인지 고개를 내밀고 상황을 살필 정도였다. 반대편에서 도로스들이 하는 모양을 살피던 검은 개는 자기는 모른다는 듯이 아예 돌아누웠다.

감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덕분에 위층에서 경계를 서는 것 같던 플라잉 몽키즈 소속 수인이 내려와 짜증내며 날카롭게 물었다. 오후가 되었는데도 여태까지 자고 있던 듯 입 옆에 침이 흥건했다.


"무슨 소란이냐! 엉? 죽고싶냐?"



그러나 그는 총괄관리인이 신신당부했던 특급 노예가 앓아누운 꼴을 보고 얼음물이라도 뒤집어 쓴 것처럼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다. 아마 제대로 감시 못한 자기 탓으로 돌릴 거라 생각한 것 같았다.

"빌어먹을! 어이, 거기 벌레. 꼼짝말고 있어! 허튼 짓하면 상품이고 뭐고 죽여버릴 줄 알아!"

그래도 얕잡아 보이긴 싫었는지, 그는 끝까지  마디를 남기고 뒤돌아 달려나갔다. 눈을 감은 채 신음하던 도로스는 힐끗 실눈을 떠 상황을 살피곤 닥터 윌슨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일났구먼."



검은 개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둘은 무시했다. 어차피 이미 각오한 바였다. 그리고 얕은 계산 또한 깔려있었다. 아마 내일 경매의 메인은 도로스가 될 텐데, 설마 그를 죽이기야 하겠는가?

여러 명의 발소리가 들렸다. 숫자는 아마  명. 한 명은 방금 달려나간 보초일 것이고, 다른 한 명은 아마 총괄관리인 말릭. 그럼 다른 하난 누구지? 도로스는 고민했지만, 고민은 생각보다 빨리 풀렸다. 철창 앞에 나타난 이는 그가 들은 발소리 대로 세 명이었는데, 보초, 말릭, 그리고 의사였다.




의사라면 전투원이 아니니 그리 경계할 필요 없었다.




도로스의 끙끙거리는 앓는 소리와 상태에 말릭은 굳은, 그러나 서늘한 눈으로 보초를 노려봤다.



"상태가 안좋아 보이는 군요. 왜 그런지 압니까?"


존댓말을 쓰고 있지만, 위에서 깔보듯 내려다보는 말투가 어조에 드러났다. 그러나 질문을 받은 보초는 그런 걸 느낄 새 없이 잔뜩 얼어있었다.




"그, 그게..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 르  다?"



한 음절 씩 끊어 말하는  그리 무서울 수 없었다. 플라잉 몽키즈의 수인은 금방이라도 오줌을 지릴 것같은 표정으로 눈알을 굴렸다. 아마 제대로 감시를 하지 않았다고 고하면 그대로 즉결처분이겠지. 얄팍한 생각이 표정에 나타났다.


"감시를 서고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쓰러져서 저렇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그는 씨익 작은 미소마저 지었다. 아마 꼬투리 잡힐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말릭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자, 방금 전까지 얼어있던 그는 자신감이 붙은 듯 가슴을 폈다.

그리고,


그의 머리가 떨어졌다.



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며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그는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입을 뻐끔댔다. 그리고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절단면에서 피분수가 터져나오며 머리잃은 몸은 뒤로 쓰러졌다.



"제가 말했을 텐데요?  저한테 거짓말하는 사람을 아주, 아주 싫어합니다."



샐쭉하게 초승달처럼 휜 눈에선 기분나쁜 살기가 흘렀다. 말릭은 언제 뽑았는지 보이지않았던 레이피어를 만지작 거렸다. 아주 잠깐, 도로스의 신음이 멎었다. 닥터 윌슨 또한 말을 잃었다. 거짓말을 했다고 부하의 목을 잘라? 검은 개 수인에게 이야기를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이건 숫제 훨씬 미친놈이었다.



이건 진짜 잘못 걸렸다. 도로스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왜 이런 짓을 한다고 했는지 약간의 후회까지 들었다. 저런 유형이라면 도로스가 내일 판매될 특급 노예라고 해서 봐주긴 할까? 회의적이었다.



도로스는 한층 더 진심을 담아 아픈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혼자 파이프를 돌아다녔을 때, 죽을 뻔 했을 때 등 각종 슬프고 위험했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릭은 무감정한 눈으로 의사에게 도로스를 향해 턱짓을 했다. 보초의 곁에 서있던 죄로 피범벅이 된 의사는, 사색이 된 얼굴로 벌벌 떨며 쇠창살로 다가갔다.

"아 참."



장내의 모두가 그 한 마디에 몸을 긴장시키며 멈췄다. 말릭은 가면처럼 가공된 웃음띈
얼굴로 도로스가 있는 철창으로 다가왔다.



"문 여는 걸 깜박 했군요."

그제서야 도로스나 의사 할  없이, 말릭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약속한 듯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말릭은 사람 피를 말리는데 아주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했다. 의사는 두려운 눈으로 말릭을 곁눈질하며 문에 가까이 섰다.



그가 감옥문을 열고 한 발자국 물러서자, 눈치를 보던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재빨리 문으로 질주했다.

말릭이 주선한 의사가 안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문을 닫을 수는 없었다. 도로스는 숄더 태클로 의사에게 부딪힌 후 빠르게 한 바퀴 굴러 일어섰다. 닥터 윌슨 또한 그의 뒤를 이어 감옥 밖으로 탈출했다.

예상 못했다는  그 광경을 손 놓고 구경하고 있던 말릭은, 웃음을 지우고 치켜올라간 고양이의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감정조차 사라진 눈에 그들은 소름이 끼치는 걸 느꼈다.


"이거..이거."


 방 먹었군요. 그는 무감정하게 중얼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아무것도 느껴지지않는 어조라, 오히려 그게 더욱 두렵게 했다.

"제가, 말했을 텐데요? 전, 저한테, 거짓말, 하는 게, 싫어요."

그는 레이피어를 겨눴다. 날카롭게 벼러진 끝이 마치 포식자을 연상케하는 그의 눈빛같아 둘은 쉽사리 움직일  없었다. 보초를 베어낸 실력이나 순발력을 고려한다면, 아무런 무기도 없는 둘을 해치우는 건 밥먹는 것보다 쉬울 터였다.


도로스는 천천히, 그에게 들키지 않을 정도로 보초의 시신을 훑었다. 그의 허리춤엔 보통 해쳇Hatchet이라 불리는 손도끼와 화약식 리볼버가 매여 있었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시신과 말릭의 사이에 있었으므로 바로 뒤로 돌면 간단히 시신에서 장비를 얻을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말릭이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두느냐 이다. 찌르기를 중점으로 하는 레이피어로 원숭이 계통 수인의 목을 베어낸 솜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분명했다. 그런 상대로 아주 약간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그 순간이 마지막이 될 것이 자명했다.




도로스는 그를 견제하면서 천천히 닥터 윌슨의 옆에 붙었다. 한 손을 그의 뒤로 감춰 말릭의 시야에서 숨긴 후, 그는 닥터 윌슨의 등껍질에 천천히 글씨를 썼다. 뒤. 시체. 무기. 영민한 닥터 윌슨은 즉각 알아듣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뭔가 작전이라도 짜는 건가요?"



말릭은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검의 사정권에 들어오는 순간 순식간에 베어버릴 속셈이 분명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닥터 윌슨은 생각했다. 인간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곤충 계통 수인인 그는 아마  번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곤충 계통 수인 특유의 외골격, 그것도 제일 두꺼운 등껍질로 막는다면.

몸을 쓰는 건 다른 일행의 역할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계속 도움만 받아서야 체면이 살지않으니. 그는 다가오는 말릭에게 오히려 돌진하며 외쳤다.




"도로스! 무기를!"



말릭의 검은 빠르다. 닥터 윌슨은 그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아마 그의 검을 제대로 보는 것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곤충 계통의 방어력만은 모든 수인 중에서 손꼽힌다!
그는 거리가 좁혀지자 재빨리 등을 돌렸다.



지이익, 하고 무언가 날카로운게 그의 등껍질을 훑었다. 레이피어가 악마의 발톱처럼 그의 등껍질에 거대한 상흔을 남겼다. 조금만  깊게 베였으면 등껍질이 떨어지고 연약한 날개가 보였으리라. 입에서 새어나오는 비명을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억눌렀다.  정돈 아무것도 아니다. 깊이 베이긴 했지만 아직 그의 등껍질은 건재했다.

닥터 윌슨이 벌어준  순간. 도로스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재빠른 움직임으로 보초의 시체로 다가가 리볼버를 빼 들었다. 닥터 윌슨은 재빨리 사선 상에서 벗어났다. 말릭은 겨눠진 총구에 가만히 멈췄다. 그전까진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마치 표정이 사라진 인형같은 모습이었다.




"당장 내려놔."

"개소리!"



마치 인형처럼 특징없는 모호한 어조로 말릭은 말했다. 아예 감정이 지워진 것 같은 말투였다. 도로스의 일갈에 검은 개 수인이 뭐라 불평하는 듯 했으나, 도로스에게 그는 안중에도 없었다.



"당장 내려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어."



다시 한 번 말릭이 말했다. 특색이 없어진 그의 말투는 오히려 폭풍전야를 연상케 하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도로스는 반항하  리볼버를 허공에 몇 발 쐈다. 말릭의 머리 위로 조준한 터라, 총알  발이 그의 머리 바로 위를 날았다. 틱틱 하고, 총알이 말릭이 서있는 곳의 천장에 부딪혔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엔 변화가 없었다.



그는 아예 다가오기 시작했다. 총이 무섭지않은 듯 대담한 움직임에 도로스는 살짝 갈등했다. 쏠까? 쏴야하나? 남은 탄환은 세 발.  거리라면 반드시 맞추겠지만, 저 기묘한 태도를 본다면 또 모른다. 뭔가 숨겨둔  수가 있을지도.



찰나의 갈등. 감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저릿저릿한 느낌이 온몸에 내달렸다. 도로스는 반사적으로 트리거에 건 검지에 힘을 주었다. 녀석이 몸을 낮췄다. 뛴다. 빠르다. 늦었나? 아직 맞출 수 있나? 본능 아래 무의식적인 계산이 폭주했다.


도로스는 찰나, 시간이 느려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트리거를 당기는 검지가 너무 느렸다. 그에 반해 뱀처럼 사행巳行으로 다가와, 밑에서 목젖을 노리고 위로 찌르는 레이피어의 속도는 느려진 세상 속에서도 충분히 빨랐다.

죽는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총이 발사되기 전에 레이피어의 날이 목젖을 훑고 지나갈 터였다. 정말 말도안되는 빠르기였다. 갈등하지 말고 그냥 쏠 걸. 그의 숨겨진 한 수는 도로스가 만든 찰나의 갈등이었다.

곁에서 닥터 윌슨이 기함하며 몸을 던지는  보였다. 미안 닥터. 미안 카지트, 프로바움. 이것저것 신세 많이 졌는데. 갚지도 못하고 난 항상 신세지기만 하는구나.  미안, 누나. 마을 사람들. 내 가족들. 토벌대를 보내서 돌연변이한테 해방시켜 주고 싶었는데.



레이피어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왔다. 앞으로 찰나 속의 1초. 죽음을 받아들이며 감는 눈 사이로 부서져내리는 천장이 보였다. 반쯤 감긴 눈이 크게 떠졌다. 어라? 천장이 부서져? 어째서?



쿠아---



시간이 다시 빠르게 감겼다.

아앙!!




"으윽!"


먼저, 갑작스런 폭음과 천장의 붕괴엔 천하의 말릭이라 해도 당황할  밖에 없었다. 덕분에 흔들린 그의 검로는 목젖이 아닌, 도로스의 눈을 향해 날아갔다. 원래라면 눈을 꿰뚫고 뇌까지 한 번에 뚫어버릴 강력한 찌르기.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더. 닥터 윌슨이 몸을 던져 도로스의 몸을 안고 허공을 날았다. 그가 힘껏 점프해 도로스에게 부딪힌 덕분에, 도로스의 몸이 원래 있던 곳에서 조금 뒤로 밀렸다. 그리고 그 충격량에 도로스의 고개가 뒤로 꺾였다.


우연과 우연의 일치로 말릭의 레이피어는 도로스의 목젖이나 눈 대신, 젖혀진 그의  머리카락을 관통했다.



"이게, 무ㅅ..!"



무언가 말을 하려던 그는 무너진 천장에 깔려 바닥에 엎어졌다. 무너진 천장의 파편들 사이로 보이는 그는 아직 살아있는 듯 조금씩 꿈틀거렸지만 정신을 잃은 듯 했다. 몸을 날려 도로스를 껴안은 닥터 윌슨은 아주 잠깐의 유영끝에 바닥에 떨어졌다. 쿵, 하고 또다른 큰소리가 났다. 도로스는 등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아픔에 눈물이 찔끔 새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닥터 윌슨이 아니었다면 말릭과 함께 사이좋게 무너진 천장 아래 깔렸으리라.



그러나 도대체 왜 멀쩡한 천장이 갑자기 폭발했는지, 그들은 알 수 없었다. 아직 상황파악이 덜 끝난 도로스는 풀풀 일어나는 먼지를 손으로 휘휘 내저으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흙먼지 너머 누군가 있었다.

또다른 적인가 싶어 둘은 한껏 몸을 긴장시켰으나, 이내 들려오는 목소리에 무엇보다 환하게 웃었다.




"어이, 친구들. 보고싶었냐? 어라? 이거 플라잉 몽키즈 놈아냐? 얼굴에 탈모난 탈모협회원들. 으억! 뭐야, 죽었잖아? 어이, 도로스! 이거 니가 했냐? 잘했어! 이놈들 옛날부터 마음에 안들었거든. 죽어도 싸지."




경박스러운 목소리와,


"하아, 정말 큰 일을 저질렀소. 앞으로가 또 고달퍼지겠군 그래. 안그래도 요즘 관절이 뻑뻑한  같은데 말야. 정말이지 4라는 단어는 재수가 없다는 게 확실하오. 이로써 증명되었소."

진중하면서 위트넘치는 목소리.



"카지트! 프로바움!"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고대하던 동료들과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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