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3.경매
고양이가 가버리고 나자, 닥터 윌슨에게 소유권이니 뭐니 하는 것에 대해 짧은 강의를 들은 도로스는 분노했다. 노예라는 생소한 개념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말도 안되는 소리였다.
"아니, 뭐 그딴 놈들이 다 있습니까? 노예? 진짜 뭣같네요!"
이를 갈며 날뛰는 그를 닥터 윌슨은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래도 그의 분노는 정당했다. 사람이 사람을 사고판다는 것도 말이 안되는데, 하필이면 둘이 그 '말도 안되는 일'에 연루되어 버렸으니. 도로스는 한동안 그렇게 날뛰고 서야 간신히 잠잠해졌다. 닥터 윌슨은 몇 십년 늙은 모습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탈출,할 방법을 찾,아 봐야 합,나다."
탈출할 방법? 말을 그렇게 했어도 도로스나 닥터 윌슨이나 그런 방법 따윈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주먹만한 두께의 쇠창살은 수인의 힘에도 버틸 정도 였으니, 당연히 둘에겐 무리였다. 그렇다고 자물쇠를 열고 싶어도 열쇠가 없었다. 만약 간수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꾀어서 갈취할 텐데, 이곳은 그런 것 마저 고려해둔 건지 간수조차 없었다.
도로스는 감옥 벽에 기대 주저앉았다. 믿기힘든 상황에 눈빛이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진짜 믿기 힘드네요. 우리가 3일이나 잠들어 있었다니."
그 3일 동안 깨어있었다면 어떻게든 수단이라도 마련했을지도 모르는데. 도로스는 스스로를 자채했다. 시기를 잘못잡은 건가? 그때 감은 분명 경고했지만, 그는 위험을 무시하고 감과 반대대로 행동했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혹시 그 때 도망치지 않았더라면. 만약의 이야기가 끝도 없이 그를 괴롭혔다.
닥터윌슨의 뛰어난 관찰력과 두뇌는 도로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숨에 잡아챘다. 그는 도로스의 곁에 걸터앉아 그를 위로했다.
"도로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압니다. 하지,만 그건 도로스 때문,은 아닙,니다. 그 때 도망,가지 않았,어도 어차피 도망,갈 틈은 없었,을 겁니다."
그는 감옥 안을 둘러봤다. 이런 대규모 시설을 준비했다는 건 꽤나 오래 전부터 이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약간 녹이 슨 쇠창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랫동안 들키지않고 이런 짓을 해온 녀석들에게서 잡힌 사람들이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녀석들이 허술할까? 닥터 윌슨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녀석들은 철두철미 했다. 둘이 아무런 문제 없이 도망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 또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랬다면 녀석들의 정체는 세상에 낱낱이 까발려지고, 몰락했으리라.
닥터 윌슨은 생각했던 것을 도로스에게 설명해주었다. 이번 건은 어디까지나 운이 없었다면서. 다행히 그의 설명을 들은 도로스는 약간 기운을 되찾았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그건...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닥터 윌슨은 고개를 저었다. 그 또한 이런 상황에 처한 건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하는 지 명확하게 알 수 없었다. 애초에 뭘 해야하는 지 안다고 해도, 이런 실마리조차 없는 상황이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터이다.
"남은 건...카지트와 프로바움이 구,하러 오는 걸 기다,리는 것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그것마저 회의적이었다.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고작 둘이고, 상대는 플라잉 몽키즈를 비롯해서 '뒷경매' 전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 조직에 속해있는 지 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개인과 단체의 대결. 승자가 누군진 명백했다. 그러나 닥터 윌슨은 일부러 이 사실을 숨겼다. 도시의 복잡한 인간관계와 이해관계에 무지한 도로스에겐 너무나 어려운 이야기였다.
"3일. 말릭이라는 녀석은 3일 후에 보자고 했어요. 그 말은 3일 후에 경매가 열린다는 말 아닐까요?"
닥터 윌슨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런 것 같,습니다. 3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져,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그 안에 카지트와 프로바움이 와줬,으면 합니다,만."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빠져나갈 수 있을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곳이 어디인지 조차 모르고 둘에게 말을 전할 수단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절망적인 상황. 도로스도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으음..그럼 일단 정보나 좀 얻어보죠. 혹시나 쓸만한 이야기가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도로스,는 걱정되,지 않습니,까?"
"물론 저도 걱정되고 불안하죠. 조금 있으면 노예..로 팔린다는데...그래도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최소한 이런 거라도 해야죠."
닥터 윌슨은 감탄했다. 그의 친애하는 동료는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살짝 흔들리던 자신을 다잡았다. 둘은 쇠창살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아,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웅크리고 있었을 뿐이었지만, 의외로 아직 그들처럼 희망을 버리지않은 사람들도 적잖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두 달이나 갇혀있다는 겁니까?"
도로스는 혀를 내둘렀다. 어쩐지 냄새가 심하게 나더니만. 이런 비위생적인 곳에서 두 달이나 갇혀있으니 그럴만도 했다. 아무래도 그들의 말에 의하면 음식은 꼬박꼬박 준다는 것 같았다. 그나마 일정한 시간에 주니 그걸로 대략적이나마 시간을 파악할 수 있다는 듯 하다.
거리와 각도 때문에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최소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그들 또한 탈출하기 위해 이것저것 노력해봤다고 하는데, 정작 성공한 건 없는 듯 하다.
그는 닥터 윌슨과 시선을 교환했다.
"그럼 정,리해 봅시,다. '뒷경매'는 3개월에 한 번씩 개최된,다. 그걸 위해,서 플라잉 몽키즈는 각지,에서 사람들을 잡아,온다. 이곳에 갇히,면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갈 수 없다. 음식,은 삼시 세 끼 일,정하게 준다. 그걸로 시간,을 알 수 있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사람 또,한 플라잉 몽키즈다."
이것저것 많으면서도 동시에 적은 정보였다. 역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어 있었다. 닥터 윌슨은 고민했다. 이중에서 그나마 쓸만한 정보는 배식 받는 것으로 대략적인 시간을 알 수 있는 것과 경매가 3개월에 한 번 씩 열린다는 것 정도일까.
그 외엔 이미 알고있거나 혹은 그다지 쓸모있다고 말하기 힘든 정보였다. 이것저것 고민하던 닥터 윌슨의 명석한 두뇌는 문득 한 가지 위화감을 잡아챘다.
"'뒷경매'는 3,개월에 한 번씩 개,최되는 게 맞습니,까?"
"맞소. 밥주러오는 원숭이 놈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소."
갇혀있는 누군가가 말했다. 마음같아선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감옥은 복도의 양 옆에 일렬로 늘어져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그는 맞은 편과 그 바로 옆의 감옥 밖에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뒷경매'는 이미 몇 번이,고 열렸습니,까?"
"그렇다는 것 같소. 족히 수 년은 되었겠지."
역시 이상했다. 닥터 윌슨은 의문을 표했다. 실종사건이 그 빈번함으로 표면화된 건 최근의 일이었다. 처음엔 광신도들이 아니라 '뒷경매' 놈들이 벌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따지면 앞뒤가 맞지않았다. 최근에 포획하는 수를 늘였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 경우 광신도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뒷경매'가 일을 벌이고 광신도에게 덤터기를 씌웠다는 가설은...말이 되긴 한다. 옛날부터 실종사건엔 광신도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으니까. 하지만, 그들을 잡아온 플라잉 몽키즈의 태도가 걸렸다. 녀석들은 실종사건을 광신도의 소행으로 생각하는 듯 했기 때문이다. 속였던 걸까? 잠시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가 본 이들은 그런 것까지 계산할 정도로 똑똑하지 못했다.
"이,거 참 복잡,합니다."
그는 골치아프다는 듯 머리를 싸맸다.
"뭘 그렇게 고민합니까?"
다른 감옥에 갇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던 도로스는 사색에 잠긴 닥터 윌슨의 곁에 앉았다. 그가 생각해도 마땅히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아마 카지트와 프로바움만이 현재 유일한 희망이리라.
"조금..어째,서 광,신도와 관련된 실종사,건으로 소문이 난 건지 생,각해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도로스에게 설명했다. 도로스 또한 잘 모르겠다는 고개를 저었다.
"음..잘은 모르겠지만, 그 문제가 탈출하는 것과 뭔가 관련이 있나요?"
순진한 물음에 닥터 윌슨은 아차 했다. 지금 중요한 문제는 누가 실종사건을 일으켰냐가 아니라 어떻게 이곳에서 탈출하느냐 였다. 그는 도로스에게 감사의 표시로 목례했다.
"으음..현재 가,진 정보들을 조,합 해봤을 때, 아무래도 나갈 수 있,는 방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죠?"
둘은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뭐, 카지트와 프로바움을 기다리는 것 외엔 정말 방법이 없었다. 둘다 동료를 끔찍히도 여기는 이들이니 분명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올 것이다. 다만, 어떻게 위치도 모르는 이곳까지 오는 지, 그리고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건지가 문제일 뿐.
도시 사정에 무지한 도로스조차 이대로 탈출한다고 해도 무슨 일이 벌어질 지는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둘은 미안함과 걱정에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