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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화 〉3.경매 (37/100)



〈 37화 〉3.경매

"으윽.."



도로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 했다. 몸을 움직이자 순식간에 온 몸을 관통하는 통증에 그는 다시 철푸덕 엎드렸다. 마치 심각한 근육통이 온몸에 퍼진 듯, 약간만 힘을 줘도 저릿한 느낌과 함께 통증이 일었다. 거기에 뼈 마디마디도 쑤셨다.



"으으으..."



그는 인내력의 한계의 한계까지 발휘하여 어떻게든 간신히 앉았다. 통증 때문에 수 분이나 걸린 듯 했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나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어두컴컴했다. 쇠창살 밖의 복도에 달린 불빛만이 유일한 빛이었는데, 그마저도 침침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당황했다. 분명히 마지막으로 기절하기 전까진 파이프 안이었는데, 이곳은 믿을 수 없게도 건물 안이었다. 그는 닥터 윌슨을 찾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도로스의 옆에서 자고 있었는데 -혹은 기절한 것일 수도 있었다. -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보면 살아있는 것 같았다.




"다행이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기절하기 직전에  것이 다죽어가는 그였기 때문이다. 도로스는 닥터 윌슨을 흔들어 깨웠다. 정신을 차린 그는 다행히 어디 심하게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으으, 아픕,니다. 도로스, 여기,가 어디입,니까?"


그의 질문에 도로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도 막 깨어난 참이라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저도 금방 깨어난 참이라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구,속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닥터 윌슨은 자유로운 네 손을 보여줬다. 그제야 도로스도 아무것도 양손을 구속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유로운 손을 쳐다보던 그들은 빠르게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들이 있는 곳은 마치 감옥을 연상케 하는 방이었다. 한 면엔 주먹만한 두께의 쇠창살로 메꿔져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석벽으로 둘러쌓여있었다.




기다란 일자형의 복도에 양 옆으로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있는 곳과 비슷하게 생긴 방들이 줄줄이 있었다. 복도의 한쪽 끝엔 계단이 있었는데,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위치한 방 바로 옆이었다. 아무래도 감옥을 떠올리게 하는 방과 구조에 둘은 머리를 맞대고 살펴보기로 했다.


둘은 아무리 이곳저곳을 만지고 살펴봤으나 나가는 출구는 쇠창살에 달린 쪽문을 제외하곤 없는 것같았다. 문제는  쪽문에 달린 자물쇠였는데, 둘은 열쇠라 부를만 한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곤란,합니다."




"그러네요. 대체 여긴 어딜까요. 파이프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시간 꽤나 걸렸을 듯 한데. 대체 얼마나 기절해있던 거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지만, 의문에 대답해 줄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을 옮겨온 것으로 추정되는 플라잉 몽키즈는 보이지 않았고, 외부의 조그마한 잡음 조차 들리지 않았다. 도로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쇠창살을 당겨보았지만 주먹만한 두꼐의 쇠창살은 모습을 흐뜨러뜨리지 않은  우뚝 서 있었다.



둘은 초조감에 휩싸였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온갖 질문이 그들의 머릿속을 휘저어 놨으나 명쾌한 답변은 떠오르지 않았다. 최악의 가정이 떠올랐지만 둘은 애써 그 가정을 무시했다. 만약 최악의 가정대로라면 더 이상 탈출의 기회따윈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정신 차린 거우?"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둘은 누군가 있다는 사실에 놀라면서, 고개를 들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봤다. 맞은 편의 감옥. 조명이 원체 어두컴컴한 지라 누군가 있다는 사실 조차 몰랐다. 자세히, 눈을 찌푸리고 보자, 누군가 짙은 어둠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둘은 반쯤 매달리다 시피 쇠창살에 달라붙었다.



"거,기 누구 있습,니까?"



"아직은 있수."




목소리는 퉁명스럽게 응답했다. 목소리는 잔뜩 쉬고 갈라져, 알아듣기 힘들었다. 다만 곤충 계통 수인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는 천천히 쇠창살 쪽으로 걸어나왔다. 어슴푸레한 불빛이 어둠을 걷어내고 대략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개과 수인. 비죽하니 튀어나온 주둥이와 축처진 눈매, 그리고 우뚝 선 귀. 검고 짧은 털은 먼지와 세월에 바래 잿빛을 띄고 있었다. 한 때는 날카로웠을 눈매는  영광을 잃어버린 채 우울하게 아래로 쳐져있었다. 그는 아무런 의욕없는 눈으로 도로스와 닥터 윌슨을 응시했다. 그의 눈길이 도로스에게 닿았을 때 잠깐 커졌으나, 그것 뿐이었다. 그는 마치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태도로 쇠창살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에게서 풍기는 지독한 냄새에 도로스는 코를 쥐려는 손을 간신히 억제했다. 파이프의 시궁창같은 냄새가 났지만 그는 참았다. 어차피 방금까지 파이프에서 구른 그에게서도 비슷한 냄새가 날 게 뻔했다.




"저기, 저희가 대체 어디있는 거죠? 그리고 혹시 저희가 얼마만에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다급함이 묻어나는 도로스의 질문에도 그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으음.."하고 질질 끌었다. 행동 하나하나에서 포기한 자의 무기력함이 묻어났다. 정말로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그런 척 하는 건지 그의 침묵은 너무나 길었다. 둘이 인내심을 반쯤 잃었을 때쯤, 대답은 한참 뒤어나 들려왔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요? 여긴 '뒷경매'잖수."

그의 의욕없는 눈길이 경악한 도로스와 닥터 윌슨의 얼굴을 훑었다. 도로스는 믿기 힘든 사실에 말을 더듬었다.




"여, 여기가 '뒷경매' 라고요?! 그럼 우리가 지금 뉴 펜리스 있다, 그,그 말입니까?"

개과 수인은 또다시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데우스시여, 닥터 윌슨이 비탄어린 외침을 토해냈다.




"그럼, 이곳,에 온 이후 저희,가 대체 얼마나 자,고 있었던 건지 압니,까?"

그는 또다시 허공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둘은 느릿느릿한 그의 태도에 반쯤 질려버렸다. 대답 하나 듣기 위해서 몇 분을 기다려야한다니. 한시가 급한 둘에겐 정말 복장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 사이 도로스는 재빨리 다른 옆에 붙은 감옥들을 훑었다. 다른 감옥에서 희미하게 나마 몇 명씩 사람들이 갇혀 있는  했다. 도로스는 그들을 향해 말을 걸었으나, 누구도 응답하지 않았다. 그저 간간히 '흐윽'하며 들썩이는 소리죽인 신음만이 들릴 뿐.

"아마...서너 시간 정도 쯤?"

도로스는 시간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이미 쓸만 한 걸 다 떼어갔는지 시계조차 없었다. 그건 닥터 윌슨 또한 마찬가지라 둘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누군가 오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 '누군가'가 호의적인 사람이면 좋을 텐데. 도로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들이 있는 곳을 봐선 그다지 호의적일  같진 않았다. 정말로 호의적인 사람들이라면 이런 꾀죄죄한 감옥같은 곳에 사람들을 쳐박아 놓지 않을 테니까.



초조한 마음에 한숨만 내쉬던 그의 날카로운 감각이, 다가오는 기척을 잡아냈다. 숫자는 하나인 것 같았다. 그는 닥터 윌슨에게 눈짓을 하고, 계단을 응시했다. 천천히  인영이 계단을 내려왔다. 고양이과의 수인. 흰색과 주황색의 털이 골고루 섞인 채 불빛 아래서 흐릿하게 빛났다. 그는 고양이과 특유의 날선 눈매를 반쯤 접으며 웃었다.

그러나 둘은 마치 벌레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녀석의 웃음에선 한 치의 진심조차 느낄 수 없었다. 정말로 웃는다기보단 가면을 쓴 느낌에 가까웠다.

"이야, 벌써 깨어나셨군요. 좋은 선택입니다. 괜히 힘들여 깨울 필요가 없으니까요. 하하!"


그는 유쾌한 듯 웃었지만 둘은 얼굴을 굳혔다. 그에게선 이유모를 피비린내가 났다.



"제 소개를 하자면, 저는 말릭. '뒷경매'의 경매를 주관하는 총괄관리인입니다."

그는 과장되게 허리를 숙이며 한 손을 가슴에 가져다 댔다. 검은 수트와 대비되는 새햐안 장갑이 불빛에 도드라져 보였다. '뒷경매'의 총괄관리인.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닥터 윌슨은 겁먹은 듯 한 걸음 물러났다. 그제야 실감이  것이다. 그들은 정말로 '뒷경매'의 상품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그럼  많은 사람들이 다? 닥터 윌슨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는 복도를 곁눈질했다. 대체 플라잉 몽키즈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노예로 잡아온 거란 말인가! 한 가지 가정이 그의 머릿속에서 번뜩였다. 설마 최근에 빈번한 실종사건은 광신도들이 아니라 이들이 한 짓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은 너무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에 발을 들이민 것이다.



닥터 윌슨과 다르게, 도로스는 총괄관리인이라는 직위가 무엇을 의미하는  잘 몰랐다. 다만 어감상  높은 사람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 그래서인지 그는 당당하게 말했다.



"저희들은 플라잉 몽키즈 놈들에게 잡혀왔습니다! 녀석들이 다시 돌아오기 전에 풀어주실  있겠습니까?"



닥터 윌슨은 할말을 잊고 그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도시에 대한 기본상식이 부족한 도로스는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았다. 말릭 또한 도로스의 어이없는 요구에 잠깐 동안 말을 잃었다. 그는 크게 소리내서 웃었다. 이번엔 미약한 즐거움이 담긴 진짜 웃음이었다.

"아하하하! 풀어달라구요? 아하하!"



배를 부여잡고 웃어제끼는 고양이의 모습에 도로스는 자기가 뭔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닥터 윌슨에게 시선을 주었다. 닥터 윌슨은 네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하하!..크큭.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모양이군요. 이렇게 큰 웃음을 줬으니 이번만은  드리죠."


그는 도로스를 깔보며 말했다.




"플라잉 몽키즈 한테 잡혔다고요? 예, 물론 그렇겠죠. 그렇게 쓸만한 상품을 잡아달라는 게 그들과 우리들의 계약이니까요. 저는 당신에 대한 소유권을 그들에게서 샀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당신은 이제 제 껍니다. 제가 뭘 하든 제 맘이라구요."



도로스는 도대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의 주인은 오로지 자신인데. 소유권이라니?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인가. 그래도 무지할 뿐, 멍청하지 않은 그의 머리는 대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플라잉 몽키즈와 '뒷경매'는 이미 결탁한 사이고, 원숭이들이 포획 겸 운반이고 '뒷경매'가 판매를 담당한다는 것. 그러나 여전히 한 사람의 소유권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귀한 '인간'이라니. 다른 불량품과는 달리 완벽한  같군요! 크게 홍보를 해야겠군요. 이번 경매는 성황이겠어요."



3일 후에 봐요, 말릭은 탐욕과 집착이 섞인 눈으로 그를 한 번 보곤 다시 위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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