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4화 〉3.경매 (34/100)



〈 34화 〉3.경매


"젠장!"




도로스는 나지막히 욕설을 내뱉었다. 뒤에서 따라붙은 기척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대체 어디서 잘못된 거지? 중간에 너무 쉬었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한 시간 전 쯤부터 따라붙은 기척은 도저히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떼어놓기 위해 일부러 몇 번이나 파이프를 갈아타고 흔적을 지웠지만, 마치 그의 노력을 비웃듯이 끝까지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뿐만 아니라, 가끔씩 도로스가 어디로 갈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그를 앞질러서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젠장, 반 나절만 더 가면 메드비크인데!"

도로스는 점점 초조해졌다. 보통 사냥꾼의 입장이던 그가 이번엔 사냥감의 입장이 되었다.  압박감은 상상이상이라,   시간 동안 그는 피가 말라가는 기분이 어떤 기분인지 직접 체험할  있었다. 그의 곁에선 닥터 윌슨이 헉헉대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미 체력이 거의 한계에 달한 듯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면, 그리 오래 버틸  있을  같지 않았다.

어디로 가야하지? 도로스는 숨을 죽이고 감에게 물었다. 감은 파이프의 갈림길에서 몇 군데 경고를 날렸지만, 이번만큼은 명확하게 어디로 가야한다는 답을 주진 않았다. 어째서지? 보통이라면 명확하게 올바른 길을 가르쳐줬을 텐데.


그는 조금씩 안달이 났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았다. 그는 닥터 윌슨과 함께 다시 뛰었다. 닥터 윌슨 대신 멘 가방들이 쩔그렁 거리며 잡음을 냈다. 녀석들은 멀리서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또야!"



또다시 저 멀리 앞쪽에서 불빛이 보였다. 도로스는 뒤를 쳐다봤다.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은 그대로 였다. 아무래도 녀석들은 두 패로 나뉘어 도로스와 닥터 윌슨을 압박하려고 하는 듯 했다. 몰이사냥 당하고 있군. 도로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파이프 속의 썩고 탁하게 오염된 공기 사이로 피냄새가 옅게 났다.



그는 닥터 윌슨을 이끌고 갈림길로 향했다. 점점 몰이당하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으로썬 딱히 계책이 없었다. 무장과 장비, 머릿수와 전투력은 모두 저쪽이 위. 이길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에 남은 볼트 수도 그리 많지않았다. 아마 몇 번 쏘고나면 바닥을 드러낼 터. 지금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전투를 회피하는 것 뿐.

그러나 도로스는 머리  구석에서 머지않아 잡힐 거라는 예감을 느꼈다. 마치 파이프를 전부 꿰뚫고 있는 듯한 움직임.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듯한 팀워크.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저들은 숙련된 '사냥꾼'이다. 사냥꾼으로서 그는 알 수 있었다.

"..맙소사.."

그리고 때가 왔다. 둘은 궁지에 몰렸다. 앞 뒤가 뚫린 일자 형태의 파이프. 그러나 앞과 뒤 모두 두 패로 나뉜 플라잉 몽키즈에게 점령당했다. 두 무리는 천천히,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태도로 천천히 포위망을 좁혔다. 사냥감이 안달이 나게 하려는 것이다. 혹은 두려움을 심어주려는 것일수도 있다. 어찌되었건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두 가지 모두 뼛속까지 느끼고 있으니까.



도로스는 다시 감에 귀를 귀울였다. 감이 침묵했다. 아니, 사방이 경고로 가득찼다.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 막힌 탈출구. 다가오는 적들.  이상 그가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째서지? 어째서 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까. 반쯤 자포자기한 도로스는 고민했다. 파이프는 더럽게 넓고 복잡했지만, 지금만큼은 그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짧았다.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나타났다. 앞과 뒤.  개의 불빛. 왁자지껄한 소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잡히면 어떻게 될까. 박제가 될까? 아니면 장기를 빼가려나? 해부될 지도 몰라. 어느쪽이든 암울하기 짝이 없었다. 닥터 윌슨도 비슷한 생각을  듯 짙은 갈색빛 키탄질 피부가 조금 창백해졌다. 아마 그는 온전히 죽지도 못할 것이다. 극한의 악취로 녀석들을 괴롭혔으니.


닥터 윌슨은 비장한 얼굴로 삽과 곡괭이 등 공구를 꺼내 바닥에 늘어 놨다. 조금이라도 달리기 편하게 무게를 줄이려는 속셈 같았다. 하지만 달리고 싶어도 도망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그는 바지 밑단을 찢더니 거기에 빠르게 뭐라고 휘갈긴 후  아래에 숨겼다.

둘은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가만히 처형대를 기다렸다. 무기를 들고 저항할까 해봤지만, 그래봤자 잡혔을  받을 고통만  길어질 것이다. 긴장과 불안, 걱정. 지난 날의 기쁨은 빠르게 사라지고 열정은 식었다. 남은  관에 들어갈 차디  오한과 두려움 뿐.


십 수 미터의 거리가 마치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들이 한 발자국 다가올 때마다 둘의 긴장과 두려움 또한 한 걸음 커졌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이윽고 그들이 다가왔다. 다섯의 원숭이 계통의 수인과 그들의 대장인 고릴라 수인.

"이게 누구야? 빌어먹을 벌레 새끼랑 우리 돈줄아니야?"

"인간은 잡아서 묶고 벌레는 죽여버려!"



여기저기서 야유와 욕설이 터져나왔다. 닥터 윌슨은 졸도할 것같은 표정을 지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켰다. 닥터 윌슨이 던진 연기구슬 때문에 독이 바짝오른 녀석들은 금방이라도 닥터 윌슨을 찢어죽일  마냥 달려들었다.



"잠깐!"



녀석  하나가 파이크를 찔러넣었다. 도로스가 닥터 윌슨을 뒤로 숨기며 앞으로 나섰다. 반사적을 고개를 젖히자 날카로운 파이크가 그의 볼을 스쳤다. 아릿한 아픔과 함께 상처입은 볼에서 피가 흘렀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닥터 윌슨은 정말로 살해당했을 것이다. 도로스는 떨리는 속을 감추고 최대한 의연하게 보이도록 노력하며 말했다.


"순순히 붙잡힐 테니 닥터는 놔줘."



"하, 이게 무슨 개소릴하고 있는 거야?"



"저 새끼 때문에 아직도 코가 얼얼하다고!"


그의 말이 오히려 기폭제가 된  원숭이들은 날개를 단 것처럼 광폭하게 날뛰었다. 말 그대로 플라잉 몽키즈라는 이름에 어울렸다.



"기다려라."




워해머처럼 묵직한 목소리가 파이프 벽을 때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리더의 말에 원숭이들이 전부 입을 다물고 멈췄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침묵에 둘은 잠깐동안 귀가 멀어버린 것같다고 느꼈다.




고릴라 수인은 도로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검은 눈엔 흥미와 탐욕이 짙게 껴 있었다.

"정말로 인간이로군."



무거운 목소리로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마치 바위가 웃는 것 같았다. 그는 선심썼다는 듯 턱짓으로 닥터 윌슨을 가리켰다. 둘에겐 다행스럽게도 무표정한 얼굴에 적게나마 웃음기를 띄운  여간 기분이 좋은 게 아닌 듯 했다.


"벌레도 사로잡아라. 저것도 팔면 나름 돈이 될테니."




"하,하지만 대장."


"지금. 내 말에 반항하는 건가?"


그는 순식간에 석상처럼 표정을 굳혔다. 목소리엔 미약한 살기마저 어려있었다. 폭군의 위압과 살기를  몸에 받은 부하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죽을 것만 같은 표정으로 조그맣게 응답했다.




"아,아닙니다."

대장은 나머진 알아서 하라는 듯 한 걸음 물러서서 기다렸다. 원숭이 수인들은 전보다 한껏 누그러졌지만, 그래도 난폭한 태도로 도로스와 닥터 윌슨의 몸을 뒤져서 무기란 무기는 모조리 빼앗고, 손을 묶었다. 둘은 원숭이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비틀거나 당겨보았지만 얼마나 단단히 매놨는지 혼자선 손을 빼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원숭이들은 바닥에 버려진 삽과 곡괭이를 보았으나 무시했다. 저런  돈도 안될 뿐더러 쓸데없이 무게만 나가기 때문이다. 모든 짐을 수거한 후, 도로스와 닥터 윌슨의 곁에 수인이 한 명씩 붙어 각각 감시하기 시작했다. 작전 모의나 탈출 계획같은 것조차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다. 그 철저함에 둘은 이들이 이 짓을 한 두번 해본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요."


도로스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딱히 대답을 기대한  아니다. 닥터 윌슨 또한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모르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대답은 의외로 곁에 있던 원숭이 수인에게서 돌아왔다. 그는 입이 가볍고 수다스러운 듯, 이런저런 내용을 주절거렸다.



"어디로 가긴, 경매로 가지."

"경매? 경,매에선 사람,을 팔 지 않습,니다만?"




"등신. 앞에서나 그렇지. '뒷경매'에선 불법적인 걸 다루거든? 사람도 팔고."




그는 음흉한 눈으로 도로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쓸만한 상품을 보는 듯한 무감정한 눈에 도로스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는 도로스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뻣뻣한 털이 목에 닿아 불쾌했다.


"이런 대박을 쳤으니 당분간은 원없이 놀고 먹겠네. 크흐흐. 아 맞다. 어떻게 니가 바로 인간인지 알아맞힌지 안 줄 알아?"

그는 자랑하고 싶어 죽겠다는 듯한 어조로, 정해진 대답을 이끌었다. 어떻게 알아봤냐고? 그거야 당연히 외모로...잠깐만. 도로스는 이상한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은 희귀한 동물이라고 했는데, 만지면 행운을 준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런 헛소문까지  정도이니 당연히 구체적인 외형이나 특징같은 건 알려져 있을 턱이 없었다.


그런데 이들은 어떻게 알아챘을까? 닥터 윌슨이야, 뼈가 쌓인 광장에서도 두개골만 보고 인간일 거라고 판단을 내렸으니, 이번에도 어떤 근거로 알아챘을 게 뻔했다. 하지만 이들은? 도로스는 순순히 그가 바라는 대답을 들려줬다.

"어떻게 알아차린 겁니까?"


"뒷경매엔 가끔 인간들이 잡혀오거든. 너도 거기로 가게될 거야. 넌 동족들을 만나니 좋고, 우린 엄청난 돈을 벌  있어서 좋고. 이게 바로 누이좋고 매부좋다는 거 아니겠어!"


크흐흐, 녀석은 소름끼치게 웃었다. 동족? 도로스는 멍하니 동족이란 단어를 입안에서 굴려봤다. 누나를 제외하곤 만나본 적이 없어, 도로스는 뭐라고 해야할  갈피를 잡지 못했다. 누나의 부모님 또한 그를 입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으니, 그가 아는 동족이라곤 누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에게 누나를 제외한 동족이란 건 다른 수인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으리라. 만나도 그다지 별 감흥이 없을 것같았다.


어쨋든 그건 그거고. 도로스는 잠자코 기다렸다. 언젠가 반드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는 올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힘을 저축해놔야 한다. 또한 벌써부터 탈출시도를 한다면 감시가 강화될 건 뻔했다. 벌써부터 난리칠 필요는 없지. 도로스는 애써 차오르는 불안감을 내리누르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어차피 경매에 내놓을 거라면 죽이진 않을 거야.



뒤따르는 불안과 걱정에서 눈을 돌릴 겸, 내친 김에 그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봤다.

"대체 어떻게 계속 따라온 겁니까? 분명 떼어놓으려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거기다 어디로  지 아는 것처럼 앞에서도 나왔고."

 중 키가 제일 작은, 침팬지 계통의 수인이 말했다.

"내가 이걸 하루이틀 해보나. 여긴 우리 구역이라 길을 빠삭하게 잘 안다고. 그리고 이게 우리 부수입이ㄹ.."


"제미슨. 닥쳐라."




고릴라 수인의 말에 제미슨이라 불린 침팬지는 바로 입을 닫았다. 도로스는 약간의 불합리함과 분노를 느끼고 그를 노려봤다. 한 대라도 좀 때리고 싶었지만 그러나 곧 경매 상품이 될 그에겐 아무런 수단이 없었다. 도로스는 그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걸 깨닫고 질문했다.


"당신..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고릴라는 웃었다. 마치 화상처럼 일그러진 미소는 한층 더 그의 흉폭성을 부추겼다.



"멕도너다."



마치 발악할 테면 해보라는 눈으로 그는 오만하게 도로스와 닥터 윌슨을 내려다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