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3.경매
하루가 지났다. 카지트, 프로바움과 헤어진지는 이틀 째가 된다.
그동안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알아낸 것들은 몇 가지인가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지는 이 플라잉 몽키즈 용병들은 돌연변이 토벌 겸 광신도 퇴치를 위해 고용되었다는 것이다. 고용주는 치안유지대라는 것같은데, 치안대가 나서서 용병을 고용해야 할 정도라면 상황이 어떤지는 불보듯 뻔했다.
"상황,이 별로 좋지않,습니까?"
닥터 윌슨의 질문에 얍삽하게 생긴 침팬지 계통의 수인이 대답했다. 체구는 닥터 윌슨과 비슷할 정도로 작았는데 목소리 또한 외형에 맞게 얇고 째졌다.
"보통 안좋은게 아냐. 마을 몇 군데 순회 중인데 가는데 마다 돌연변이가 들끓더라구. 그래서 인지 사람들도 한 둘 씩 계속 사라진다는 것 같고. 어라? 그건 광신도 놈들 때문이던가?"
침팬지는 머리를 긁적였다. 심상찮은 내용에 닥터 윌슨은 얕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최근들어 급증한 돌연변이들의 습격. 날뛰는 광신도. 파손된 파이프. 한 가지만 일어나도 심각한 문제인데 세 가지가 한 꺼번에 겹쳤으니. 이런 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필시 무언가가 뒤에서 조종하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정,세가 꽤 불안정,한 것 같습,니다."
닥터 윌슨은 도로스에게 말을 걸었지만 사색에 잠겨있는 그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도로스를 곁눈질 했다. 그러고보면 도로스의 마을 또한 갑자기 늘어난 돌연변이들의 습격을 받았다고 했지. 치안대와 용병들이 마을을 순회해며 돌연변이를 퇴치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것 같은데 그의 마을은 과연 무사할까? 그러나 그는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눈 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기에도 바쁜데 괜히 부담을 줄 필요까진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스 또한 나름대로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었다. 유적에서 건진 거라곤 유물 십 수개 뿐. 가치로 환산한다면 못해도 최소 만 너트가 넘을 것이다. 보통의 용병이라면 별로 만질 일이 많지 않은 큰 돈에 광희난무했겠지만, 도로스는 오히려 약간 의기소침 해 있었다.
1만, 잘쳐줘야 2만 남짓한 돈은 4등분으로 나누면 더욱 줄어든다. 문제는 그 돈으론 토벌대는 꿈도 못 꾼다는 것. 카지트의 말에 의하면 거리 등등을 따져서 최소 두당 3만 너트 정도가 필요하다고 하니, 5천 너트 정도론 한 명도 제대로 고용할 수 없었다.
"어쩌지.."
입을 비집고 나온 중얼거림에 그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닥터 윌슨이 무슨 일인지 물었으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 자신의 문제에 다른 동료들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마 동료들이라면 그를 돕겠다고 나설게 분명했지만, 이미 받은게 너무나 많아서 더 이상 폐를 끼치긴 싫었다.
그래도 카지트가 어떻게든 해주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으나, 아무리 그가 유능하다고 해도 순식간에 그런 거금을 만들어 낼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아직 시간은 한 달 넘게 남았다는 것이었다. 그 안에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엇? 돌연변이다! 소형 다섯!"
갑작스런 외침에 그의 정신은 빠르게 현실로 복귀했다. 플라잉 몽키즈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무기를 꼬나쥐고 쥐와 개를 섞어놓은 듯한 돌연변이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어찌나 매서웠는지 달려들던 돌연변이들 조차 움찔할 정도였다.
"으핫!"
"캬하!"
각종 해괴한 기합을 내지르며 원숭이들은 신나게 돌연변이들을 두들겼다. 모두 근거리 무기 뿐만 아니라 샷건이나 라이플같은 중,원거리 무기를 하나씩 가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냉병기를 들고 근접전을 고수하는 태도에는 일종의 강박증마저 어린 것 같았다.
무기가 한 번 휘둘러질 때마다 돌연변이들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움츠렸다. 원숭이 계통 수인들의 근력을 생각해볼 때 저런 작은 돌연변이들이라면 한 번 휘두르는 것을 충분히 끝낼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은 의도적으로 돌연변이를 끝장 내지않고 있었다. 마치 구타를 즐기는 것처럼.
"아, 뭐야. 벌써 죽었냐? 손맛 죽여줬는데."
"쯧, 그러게 힘 조절 좀 하라니까."
결국 몇 차례 더 냉병기들의 세례를 견디던 마지막 돌연변이까지 죽어버리자, 녀석들은 김샜다는 표정으로 물러섰다. 얼마나 무기를 휘둘러댔는지 돌연변이의 가죽은 넝마조각처럼 변해 있었다.
도로스와 카지트는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착잡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전투에 미쳤다는 표현은 종종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이미 몇 번이나 본 광경이었지만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 없었다.
도로스는 어째서 닥터 윌슨이 이들과 마주쳤을 때 곤란하다고 했는지 십분 이해할 것 같았다. 그야말로 난폭하고 싸움에 미쳐있었다. 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잘한 일인가 생각해봤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래뵈도 무력 하나는 무시못할 정도로 강하니.
다른 다섯의 수인들은 충분히 강했지만 그래도 카지트나 발멘보다는 좀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있었다. 그러나 나머지 한 명, 저들 무리의 대장인 고릴라 수인은 얼마나 센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항상 무리의 뒷편에서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기 때문이었다. 다만 저런 구성원들을 통솔한다는 점으로 볼 때 다른 단원들보다 월등히 강할 것 같았다.
걸레 조각이 된 돌연변이에게선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에 일행은 시체를 내버려두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음..얼마나 더 가야할까요."
"그래도 그리 멀,지않은 것같,습니다. 우리,에겐 다행히 파이,프가 막힌 덕분에 메드비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들이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파이프가 막힌 덕분에 플라잉 몽키즈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야했는데, 그 루트는 메드비크에서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메드비크까지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진 않을 것 같았다.
"어이."
무리의 수인 중 한 명이 둘의 대화에 멋대로 끼어들었다.
"이봐, 너. 도로스라고 했냐? 너, 무슨 종족이냐?"
그는 멋대로 방독면에 손을 대려 해, 도로스는 고개를 젖혀 그의 손길을 피했다. 흘낏 곁눈질 하니 다른 수인들은 도로스 쪽을 바라보며 뭐라고 수근대고 있었다. 중간중간 걸리는 단어로 짐작컨대 도로스의 종족을 맞추는 걸로 내기를 건 것 같았다.
"도로스는 호,흡기가 약해서 방독,면을 벗으면 큰 일 납니,다."
"에이, 뭐 어때. 잠깐만 보자고, 응? 잠깐만."
닥터 윌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무가내로 도로스에게 손을 뻗었다. 도로스 또한 그에게서 물러났다. 사실 이런 오염된 곳에서도 숨쉴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폐는 튼튼했지만 그는 절대로 방독면을 벗지 않았다. 그가 인간이란 사실은 절대 들켜선 안되기 때문이다. 아직 동료들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저런 무례한 놈들에게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저 녀석들이라면 돈을 위해 무슨 짓을 벌일 지 모르니.
도로스는 근육을 한껏 긴장시켰다. 닥터 윌슨과 놈의 몸싸움은 점점 거칠어지고 있었다. 이러다 무슨 사단이 날 것 같았다. 그들의 리더는 별로 관심없는 듯 무심하게 걸어가고 있을 뿐. 결국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건 자신 밖에 없었다.
"도우, 그만해라."
닥터 윌슨을 밀치고 도로스 에게 반쯤 달려들려던 수인은 묵직하게 머리를 강타하는 목소리에 그대로 멈췄다.
"하지만 대장, 내기가.."
"시끄럽다. 두 번 말하진 않아."
"예,옙!"
미약한 살기까지 담은 대장의 눈빛에 수인은 바싹 얼어붙은 채 대답했다. 그는 도로스와 닥터 윌슨에게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대장의 눈치를 보여 쭈뼛쭈뼛 무리 안으로 돌아갔다. 고릴라 수인은 그걸로 끝이라는 듯 다시 흥미를 잃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의 길잡이를 따랐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사과조차 하지않는 그들의 행동에 이를 갈면서도 별다른 수가 없어 잠자코 그들의 뒤를 따랐다. 숫자든 전투력이든 플라잉 몽키즈 소속의 그들이 월등히 높았다.
"좀 더 조,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닥터 윌슨은 방금 그들에게 접근했던 수인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도로스에게 속삭였다. 도로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의 눈치를 보면서 이쪽을 힐끔거리는 녀석의 태도를 보아, 조만간 또다시 방독면을 벗기기 위해 접근해올 것 같았다.
둘은 조심스럽게 대장이 있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위치를 옮겼다. 제 아무리 제멋대로인 녀석들이라도 자기들의 대장이 바로 옆에 있는데 섣부른 행동을 하진 않을 것이다. 왠지 유적에 발을 들인 이후로 재수가 없어진 것 같다며 도로스는 작게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