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0화 〉3.경매 (30/100)



〈 30화 〉3.경매


"조금 골치아,프게 되었습,니다."

닥터 윌슨은 진심으로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닥터 윌슨이 저 무리의 정체를 아는 것같아 도로스는 속삭여 물었다.



"대체 저 사람들은 누굽니까?"



그가 보기엔 원숭이 계통의 수인들이 모인 이상한 무리일 따름이었다. 그들은 파이프에 나선지 얼마 되지도 않은 도로스조차 아는 기본수칙인 '큰 소리 내지않기' 혹은 '사주경계' 따위는 돌연변이한테 던져준 듯 기본적인 것 조차 지키지 않고 있었다.


오합지졸인 것같았지만 무장은 생각 외로 뛰어난 편이라 무기를 든 아이들처럼 뭔가 괴리감이 들었다. 그로서는 도저히 저 무리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어, 도로스는 닥터 윌슨의 대답을 기다렸다.


"서부 최,대 파벌인 용병단 '플라잉 몽키즈'입,니다. 정말 골치아,프게 되었습,니다."


"아."




도로스는 나지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들은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더라? 기억을 되짚어가며 천천히 생각에 잠기던 그의 머리속에 무언가가 번뜩였다. 플라잉 몽키즈라. 도로스는 그를 카디프까지 데려다 주었던 수인들 중  명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발멘 또한 플라잉 몽키즈 소속이라고 했었지.



그와는 별로 좋은 관계는 아니었던 지라 그가 속해있다는 조직에 대해서도 별로 좋은 감정은 없었다. 그리고 저들은 척보기에도 그다지 질이 좋은 사람들 같진 않아보였다.



"골치아프다니요?"

"아시,다시피 '플라잉 몽키즈'는 원숭이 계통,의 수인들로 이루,어진 조직,입니다."




도로스는 반쯤 까먹고 있던 사실에 원래부터 알고있던 척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조금 개인,주의적이고 쾌락지,향적 성향이 강하던 원,숭이 계통의 수,인들을 한 곳에 묶어놓으니,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했,습니다."




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군. 도로스는 턱을 쓰다듬었다. 이번만큼은 닥터 윌슨도 도로스가 이해하지 못했다는 걸 깨닫고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굉장히 제,멋대로에 싸움,에 미친 전투중독자들,입니다."


음, 훨씬 낫네. 매우 이해하기 쉬운 설명에 도로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제멋대로라는  어느 정도죠?"



"대략 카,지트의 세,제곱 나누기 2 정도,입니다."



뭔지모르겠지만 악랄하단  하나 쯤을 알  같기에 도로스는 저도 모르는 새에 히익 하고 새된 비명을 내질렀다. 그런게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여섯 명이나 된다니! 방독면 안의 얼굴이 종말을 앞둔 사람처럼 홀쭉해졌다.

"뭐, 농담은 이 정,도로 하고, 저 녀석,들은 정말 위험합,니다. 워낙 공격,적이고 흉폭한 녀석,들이라 수틀,리면 살해한 후에 장비를 강탈,할 겁니다."


도로스는 얼굴을 굳혔다. 예전에 발멘이 했던 말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차라리 죽이고 빼앗는 게  낫겠군.'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발멘 또한 저들과 비슷한 부류라는 건 어느정도 짐작이 갔다. 저 녀석들은 발멘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지? 그는 고민했다.

발멘이 보여준 전투력은 가히 살육병기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워해머의 묵직한 일격 일격이 확실하게 돌연변이들의 두개골을 분쇄하고 그 안에 들어있는 뇌조직을 박살난 푸딩처럼 터뜨려버렸다. 무엇보다 대단했던 점은 단 한 치의 빗나감도 없이 일격으로 달려드는 돌연변이를 묵사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혹시나 저들이 발멘과 비슷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면 도로스와 닥터 윌슨에겐 승산이란 단  조각도 없을 것이 뻔했다. 만약 저들이 고만고만한 수준이라면..최소한 닥터 윌슨만은 어떻게 빼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도로스의 걱정을 눈치채기라도 한듯, 닥터 윌슨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을 겁니다. 여긴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거리가 좁혀짐에 따라 한층 더 줄어든 목소리는 숫제 중얼거림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 내용 또한 도로스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단 스스로를 달래기위한 말에 더 가까웠다.



닥터 윌슨은 쭈그린 자세에서 벌떡 일어서 다가오는 빛줄기 앞에 섰다. 갑작스런 그의 움직임을 막으려던 도로스는 반쯤 소리지를 뻔하다가 겨우 입을 틀어막았다.



"오, 여러분! 저,희를 도와주러 와,주신 겁,니까?"

 손을 허공에 번쩍  채로 불빛을 마주선 그의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짙게 묻어났다. 도로스는 천천히 일어서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언제든지 상대의 움직임에 반응할  있도록 한층 긴장된 몸과 정신. 지금 이 때만큼은 방독면을 쓰고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다행일 수 없었다.



도로스 또한 천천히 양손을 허공에 들어 자신이 무해하단 걸 보여줬다. 둘은 입을 다문 채 그들을 훑어보는 원숭이 수인들의 시선을 느끼곤 침을 꿀꺽 삼켰다. 닥터 윌슨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멈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플라잉 몽키즈는 두 명을 눈으로 훑고는 서로 눈짓을 주고 받았다. 상황 돌아가는 게 심상찮았다. 그들은 천천히 포위하듯 둘러싸며 다가왔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했다. 도로스는 재빨리 그들의 무장을 살폈다.



대부분 파이크, 할버드 등의 냉병기와 라이플 혹은 샷건 등의 중,원거리 무기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 또한 판금조각을 군데군데 이어붙인 레더아머로 성능이 뛰어나 보였다. 현재 둘이 보유한 무기론 전혀 상대가 되지않았다.




"저,희는 현재 에메랄드 컴퍼니의 의뢰,를 수행 중인 용,병들 입니다!"

그들이 무언가 행동하기 전, 닥터 윌슨이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내 보여주었다. 의뢰증 필사본을 만들어 놔서 정말다행이다! 닥터 윌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혹시나 카지트가 잃어버릴까 싶어 만들어놓은  이 상황에선 유일한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닥터 윌슨의 외침에 다가오던 무리가 멈칫했다. 서로를 바라보던 그들의 시선이 이내 한 인물에게 향했다. 무리의 누구보다도 얼굴 하나  큰 고릴라 수인. 저 정도 크기라면 2m는 가볍게 넘을 것 같았다. 덩치 또한 무리 중에서 제일 컸는데 도로스 둘이 양 옆으로 나란히 서야 간신히 가려진 정도였다.




큰 체구에서 나오는 위압감이 어마어마했는데 무표정한 얼굴과 들고있든 토마호크와 함께 맞물려 옛날 이야기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의 느낌을 줬다. 무리의 대장인 듯한 고릴라 수인은 앞으로 나와 빼앗듯 종이를 가져갔다. 그는 의뢰증을 대강 눈으로 몇 번 훑더니, 흥 콧방귀를 뀌며 닥터 윌슨에게 던졌다.

"진짜군. 일단 믿어주지."



거대한 바위보다도 무거운 목소리가 파이프 안을 징징 울렸다. 강렬한 대장의 목소리에 일원들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흩어졌다. 다시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 그들은 가끔씩 둘을 훑어보면서 뭐라뭐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만큼은 목소리를 줄인 터라 듣기가 쉽지 않았다.

"위,험은 넘긴 것 같습,니다."



닥터 윌슨은 반쯤 헐떡이며 말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가 받은 압박은 가히 돌연변이들의 우두머리의 그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리라. 닥터 윌슨은 거기서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인성은 둘째 치고 실력은 확실 할테니 이들에게 동행을 요청하면 어떨까?

둘에겐 에메랄드 컴퍼니의 보증서가 있으니 저들도 함부로 손을 대지는 못할 것이다. 고작  명을 죽이기엔 에메랄드 컴퍼니의 이름값은 너무나 비쌌으니까.


"저기..어,디까지 가시는 길입,니까?"


조심스러운 닥터 윌슨의 질문에 대장은 콧방귀를 뀌며 짧게 응답했다.



"뉴 펜리스. 뭔가 용무라도 있나?"



도로스와 닥터 윌슨의 상태를 훑어보던 그는 알겠다는  흥 낮게 코웃음을 쳤다. 둘이 대답을 망설이고 있자, 그는 말해보라는 듯 턱짓을 했다.

"가,시는 길에 메,드비크가 있다면, 혹시 그곳까,지 호위를 해주,실 수 있습니까? 돈은 지불하,겠습니다."

"메드비크?"

그는 산울림같은 낮은 목소리를 내며 한쪽 눈을 찡그렸다.




"그곳이라면 반대 방향이군. 거긴 안간다."



"그럼, 다음 목,표인 마을이 어딥니까? 그곳,까지 같이 갈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바스톤."

둘은 반색했다. 바스톤이라면 메드비크까지 이틀하고 반나절 정도면 갈 수 있었다. 여기서 바스톤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릴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너무 늦지는 않을 것이다. 도로스는 시간을 확인했다. 돌연변이들의 우두머리를 만나고 카지트와 프로바움과 헤어진지 벌써 하루가 넘게 지나있었다.



"그곳까지 같이 갈 수 있을까요? 돈은..."




도로스는 가진 돈이 별로 없다는  깨닫고 말을 흐렸다. 그의 목숨을 구해줬던 발멘도 고작 100너트 운운하며 죽이고 갈취하는 게 낫다고 했는데, 수가 더 많은 이들이 어떻게 나올까 싶어 약간 두려웠다.

"돈,은 물론 지불하,겠습니다."


닥터 윌슨이 도로스의 말을 받아 이었다. 도로스는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그는 돈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를 툭 쳤다. 일행에겐 항상 도움받기만 하는 것같아 도로스는 창피함과 고마움에 고개를 숙였다. 코끝이 찡했다.




"그래? 두 당 2000너트다."

말도안되는 가격에 도로스는 뭐라고 항의하고 싶었지만 닥터 윌슨은 도로스의 팔을 잡아 만류했다. 닥터 윌슨은 별다른 이견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고릴라 수인은 무리 안으로 들어가 팔짱을 끼고 턱짓으로 앞을 가리켰다. 원숭이 수인들은 다시 시끄럽게 떠들며 앞으로 향했다. 그 방향은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걸어온 곳으로 이미 흙더미에 막혀버린 파이프 쪽이었다.

"잠시만요."


도로스는 그들을 제지했다. 순식간에 사방에서 날아드는 칼날처럼 시린 눈빛에 그는 주눅든  더듬더듬 앞에 뭐가 있는지 말했다. 흙더미에 가로막힌 파이프와 막다른 골목. 이야기를 들은 다섯의 원숭이 수인들은 서로 재잘대기 시작했다.




"그러게 내가 뭐랬냐? 응? 내 말 안듣더니 꼴좋다!"




"아 좀 닥쳐! 길잡인 니가 아니라 나라고!"




"그만 좀 싸워 멍청한 놈들아. 그러니까 네놈들이 밥먹다가 쫓겨나고 그러지. 모자란 것들."



"그만."



서로 아웅다웅 다투는 걸 보다못한 그들의 대장이  마디 하자, 마치 마법처럼 다섯 수인은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파이프 안엔 먼지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생각하던 그는, 다시 눈을 뜨고 도로스에게 물었다.

"확실한가?"



"예?"

"확실하냐고 물었다. 파이프가 정말 막혀있나?"



도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는 도로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았다. 거짓말 할 이유따윈 없었다. 설사 거짓말을 한다해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면  맞닥뜨릴 텐데, 금방 탈로날 거짓말을 해서 뭘하는가?



"..운이 좋은 놈이군."


한참을 도로스의 눈을 응시하던 그는 등을 돌려 그의 일행에게 말했다.



"왔던 길로 돌아간다. 길을 찾아라."



위압과 위엄 섞인 말에 원숭이들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곤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노칠 새라 그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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