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3.경매 (29/100)



〈 29화 〉3.경매

도로스는 삽을 들었다. 오랫만에 느끼는 묵직한 손맛에 그는 씨익 웃었다. 마치 소꿉친구를 맞이한 것처럼 괜히 기분이 들뜨고 신이 났다. 막다른 골목이  앞을 가로막았지만 삽을 꼬나쥐자 대략적인 가상의 통로가 눈 앞에 보이는  했다. 그의  또한 머릿속으로 그린 가상의 통로가 맞는 길이라고 알려주고 있으니 더 이상 지체할 것도 없었다.



"도로스, 정말 괜,찮겠습니까?"



그들의 앞을 가로막은 흙벽을 보면서 닥터 윌슨이 불안한 듯 물었다. 사실 그의 불안은 타당했다. 들쑥날쑥 나 있는 굴은 인간의 손길이라곤 닿은 흔적조차 전혀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건축 공법조차 쓰이지 않은 채 뻥 뚫린 터라, 조금만 잘못 건드린다면 그대로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도로스는 대답대신 벽에 삽을 푹 눌러꽂았다. 탄광에서 굴을 파제끼며 뛰어논 덕에 어디를 적절하게 적절한 힘과 적절한 각도로 파야 무너지지한고 적절한 통로를 만들 수 있는지 그는 적절하게 알고 있었다. 닥터 윌슨은 도저히 아슬아슬한 그 광경을  수 없어 마치 흙벽의 부모님이라도 된  마냥 눈을 질끈 감고 눈을 돌렸다.



한 삽 한  뜰 때마다 팡파레가 터지듯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주먹만한 돌덩어리와 뭉쳐진 흙더미가 떨어질 때마다 귀뚜라미는 신음을 지르며 벌벌 떨었다.



"도로스, 진짜, 괜찮,은 겁니까?"


"괜찮아요. 제가 한 두 번 흙을 파봤어야죠. 이런 흙은 어지간해선 잘 안무너진다니까요."



도로스는 마치 벽처럼 단단하게 쌓여있는 흙을 탁탁 두들겼다. 흙에서 풍기는 냉기와 투박함이 가죽장갑 너머로 느껴졌다. 닥터 윌슨은 그리 쉬이 수긍하진 못했지만 어찌됐건 길잡이는 그였고, 동굴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 또한 도로스였기에 그는 이 건에 관해선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는 다른 질문을 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곳,에 토굴,이 있는지 신기합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봐선 인,공적인  아니라는 듯 합니,다만.."



한창 신나게 막힌 벽에 구멍을 뚫던 도로스는 어꺠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마 돌연변이들이 만든 것 같습니다. 흙속에 사는 녀석들도 간간히 있거든요. 그래서 가끔 이런 굴같은 것도 볼  있죠. 뭐, 보통은 이것보다 훨씬 작은 크기지만요."

도로스는 태평한 어조로 끔찍한 이야기를 했다. 닥터 윌슨은 말해선 안되는 사람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기겁하며 그를 쳐다봤다.



"돌연,변이 말입,니까?! 그럼 마주,친다면 위험,한  아닙니까? 이런 굴을 뚫을, 정도의 크기라면 사람보,다  걸로 추정됩,니다만."

"아뇨, 괜찮아요. 이 굴은 안쓰인지 꽤   같으니, 아마 마주칠 일은 없을 겁니다."



도로스의 확신어린 대답에 귀뚜리미는 입을 다물었다. 길잡이가 저렇게 확신하는 걸 보면 아마 이곳에선 마주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막연한 불안함은 남았다.


도로스는 신들린 듯 삽을 놀렸다. 어릴 때부터 구멍을 파며 놀았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그 진행속도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는데, 과장 좀 버태서 삽질 서너 번에 한 두 걸음 씩 나아갈 수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지켜보던 닥터 윌슨 마저 가세하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벽을 뚫고 흙을 파고를 서너  반복하자, 둘은 조그마한 검은 구멍을 마주할 수 있었다. 삽을 구멍에 넣고 움직여 봤지만  주변엔 흙이 없는 듯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삽의 끝 부분으로 바닥을 때리자 캉캉, 하고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아스라히 들렸다. 둘은 서로를 마주봤다. 서로의 얼굴에 똑같이 쓰여있는 기대와 흥분을 읽고, 둘은 재빨리 구멍에 빛을 비추었다.

"도로스, 드디,어..드디어 파이프가 보입니,다!"



흙더미에 난 구멍 사이로 보이는 파이프에 감격한 닥터 윌슨은 신이 나서 실실 웃었다. 그는 드디어 좁고 답답한 토굴을 떠나 그나마 좀 익숙한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는  좋은 것 같았다. 도로스 또한 지긋지긋한 토굴에서 벗어날 생각에 들떴다.




눈 앞에 바로 보이는 결과에 한층 더 힘낸 결과,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아무런 문제 없이 유적과 이어지는, 그들이 지나다닐  있을 정도 크기의 통로를 개척하는데 성공했다. 오랫만에 파이프로 나온 둘은 감개무량한 얼굴로 파이프의 단단한 금속벽을 말없이 음미했다.

다만 불만이라면 그들이 있는 중형 파이프의 한 방향을 가득 메운 토사들이 문제였다. 그들이 나온 토굴또한 파이프를 막아버린 흙더미의 일부인 듯 했다.




"음..그런데 어떻게 파이프로 들어온 걸까요?"



"아마 이 파이,프 또한 손상,된 걸로 사료,됩니다. 부서진 파이프 틈,으로 토사가 밀려들,면서 저렇게 파이프를 반,쯤 막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 손상된 곳으로 길을 파고 나왔구요?"




"그런 것 같,습니다."



도로스는 카지트와 처음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분명 최근에 파이프가 손상되는 일이 많아서 조사의뢰를 나왔다고 했지. 아마 이것 또한 그 손상인  같았다.




"이렇게 보니 좀 신기하네요. 전에도 흙으로 막힌 파이프를 봤는데, 이번엔 아예 바깥에서 그 틈을 뚫고 나오다니."


닥터 윌슨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체 누가 파이,프를 부순 건지 궁금합,니다. 파이프 자체,의 수명이 다 했,을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할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우라면 이렇게 한 부,분만이 아니라 거의 파,이프 전체가 매몰 될 가,능성이  큽니다."


도로스는 머리를 긁적였다. 닥터 윌슨과 어느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전문용어와 고급어휘로 점칠된 말을 이해하긴 힘들었다. 도로스는 있는 힘껏 머리를 굴려서 그가 대체  말하고 싶은지 생각했다. 그리고 간신히 의미를 반쯤 이해하고는 나머지 반을 자기멋대로 내린 결론으로 메꿨다.

간단히 말해서 누가 파이프를 부쉈는지 궁금하단 거지? 그는 대략적으로 간추린 내용에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그럼 돌연변이 아닐까요? 우리가 나온 곳도 따지고 보면 돌연변이가 파놓은 통로고,  정도 크기의 굴을 파는 돌연변이라면 파이프를 부술 수도 있을  같은데.."




"가능,성이 없잖아 있습,니다만 그걸론 어째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지 설명,할 수 없습니다."

동시..뭐라고? 이해할  없는 단어에 도로스는 당황했다. 어째서 도시 사람들은 이상한 단어를 좋아하는 거지. 도시 사람들의 이해할 수 없는 취향에 머리를 싸매면서, 그는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그것도 그러네요. 최근들어 돌연변이 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거랑도 딱히 상관은 없어보이고."


닥터 윌슨에게 단어의 뜻을 물어본다면 분명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지만,  가르침 속에 의문이 피어나고 그걸 물어보고 설명을 듣다보면 또 이상한 단어때문에 의문이 생기고... 아무튼 밑도 끝도 없이 괴로워질 것 같아 도로스는 본능적으로 질문하기를 회피했다. 거기에 애초에 공부라는 단어는 그다지 그와 어울리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 주제로 대화한다면 닥터 윌슨이 뭘 말하는 지 이해못해서 곤란할 게 뻔한 지라 도로스는 어떻게든 주제를 돌리기위해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때마침, 저 너머 그들의 진행방향에서 두런두런 소리가 들렸다.

"어? 닥터 윌슨, 저쪽에서 뭔가 소리가 들려요!"




그들은 재빨리 조명을 끄고 숨을 죽였다.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이내 파이프 내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시끄러워 졌다. 도로스와 닥터 윌슨은 서로 얼굴을 마주봤다. 파이프 내에서 저렇게 고래고래 떠드는 건 돌연변이를 끌어모으는 정신나간 행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떠드는 소리로 보건대 상대는 최소 다섯 혹은 여섯 이상의 일행인 듯 한데, 그래도 위험천만하긴 마찬가지 였다. 저러다 중형 돌연변이라도 마주친다면 전멸할 가능성도 있었다.



새까만 시야  너머에서 희미한 불빛이 나타났다. 도로스는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한쪽 눈을 가린 채 보우건을 꺼내 쥐었다. 볼트 수가 좀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 혹시라도 싸우게 된다면 라이트를 모조리 없애버릴 작정이었다.



눈부신 불빛 너머로 여러 인영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서로 떠드는 왁자지껄한 소음이 거리가 가까워지자 한층 더 시끄럽게 파이프를 뒤흔들었다. 도로스는 침을 삼키며 온 몸을 긴장시켰다. 불빛에 먼저 발각되느냐 아니면 둘이 먼저 저들의 정체를 파악하느냐.


다행히 파이프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긴 도로스와 닥터 윌슨이 접근하는 무리의 면면을 먼저 파악할  있었다. 기묘하게도 그들은 전부 원숭이 계통의 수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는데, 하나같이 보기만해도 질릴 것같은 무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에겐 경계라는 단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조차 없이 서로 떠들기 바밨다.



별로 우호적인 것 같진 않아보였다. 어떡하지? 발견당하기 전에 먼저 쏠까? 도로스의 고민을 눈치챈 듯, 닥터 윌슨이 팔을 들어 그를 막았다. 도로스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는 도로스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조금 골치아,프게 되었습,니다."

닥터 윌슨은 진심으로 골치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