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2.유적 (26/100)



〈 26화 〉2.유적


"무슨 일인데 호들갑인가?"

프로바움의 질문에도 카지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도로스의 양 어깨를 잡은 손에 한층 더 힘을 주었다. 당황에 젖은 도로스는 눈동자를 굴렸다.




"도로스. 네가 느낀 게 뭐라고?"



진지함이 묻어나오는 말에 도로스 또한 표정을 바로하고 성심성의 껏 대답했다. 이 사람이 이렇게 나오는 때면 그만큼 사안이 중하다는 건 그간의 경험으로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일행 또한 카지트와 도로스의 대화에 귀를 귀울였다.

"어,음..그러니까 설명하긴 좀 애매한데. 불안한 것같기도 하고 조금 긴장되는  같으면서도 안도? 기쁨? 그런 느낌도 동시에 들어요."


알아듣기 힘든 감각적인 설명은 그리 쉽게 알아듣기는 어려워서,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은 조용히 카지트의 답을 기다렸다. 애초에 이성과 합리를 따르는 둘에게 길잡이란 그 무엇보다도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일견 태평하게 보이는 둘과 달리 카지트는 심각한 얼굴로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소리는 사방이 적막한 복도에서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작아서, 그의 심상찮은 반응에 일행은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궁금해 했다.

한동안 찌푸린 표정으로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거칠게 머리를 긁으면서  내뱉었다.


"그게 아마 너와 나의 차이인 듯 하네."



"예?"


갑작스런 카지트의 영문모를 소리에 도로스는 얼떨떨한 채로 되물었다.




"내가 전에 말했었지? 길잡이는 선천적인 것과 후천적인 걸로 나뉜다고."



"네."



그러고보니 예전에 그가 말해준  같았다. 카지트는 후천적인 길잡이고 도로스 자신은 선천적인 길잡이고. 그는  기억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직 마음 한 구석엔 의문이 남아있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게 지금 그가 느끼는 상반된 기분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가 생각하기에 '감'이란 지표일 뿐이었다. 사냥 시, 이 녀석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라던가. 길을 찾을 때,  길이 맞는 것 같다 라던가. 그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처럼 그저 조금 더 나은 결과로 이끌어주는 지표.


무엇보다도, 그는 '감'이 그의 기분에 개입하는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만약 지금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단순히 농담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도로스는 대체 카지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건지 의아해 하면서도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난 후천적인 길잡이라 오감과 경험을 이용해서  길이 괜찮다, 이 길은 좀 위험할 것 같다, 이 정도 구분 밖에 못해. 선천적인 길잡이는 타고난 '감'으로 그런 걸 구분한다는데..맞지?"

도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오감이나 경험에 의지하지 않고, 막연한 '이쪽이 맞는  같은데' 같은 느낌에 의지해 길을 골랐다. 그리고 그가 고른 길은 거의 대부분이 맞는 길이 었고. 그러나 여전히 그것과 그가 느끼는 기분의 상관관계가 짐작가지 않았다.


"그...선천적인 길잡이는 워낙 수가 적어서 알려진  많이 없긴하지만, 나쯤 되면 이것저것 들은  많기 마련이야."



선천적인 감이란 건 복잡미묘한 것이라 카지트는 잠시 말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그가 설명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안그래도 숫자가 적은 길잡이 중에서도 선천적으로 타고난 녀석들은 더욱 희귀했기에 알려진 건 거의 없는 편이었다.




어차피 그 또한 알고 있는  별로 없기에, 전에 들었던 이야기나 해줄 심산이었다.

"옛날에 잠깐 같이 일했던 녀석이 자기가 의뢰 나갔을  선천적인 길잡이를 만났다면서 이야기 해준 적이 있어. 정확히 말해선 자랑질이지만.

어쨌든, 그때도 좋은 느낌이랑 나쁜 느낌? 그런 걸  번에 느끼곤 멈췄다고 하더라구. 갑자기 가다가 멈추니 일행이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파이프를 돌아다닐 때만큼은 길잡이의 명령이 우선이잖아?

할  없이 길잡이 말대로 숨었더니 중형 돌연변이가 지나쳐가더래. 그리고 그 큰 놈을 피해서 가니 사람시체들이 있어서 장비를 다 벗겨먹었다고,  꽤 많이 벌었다면서 좋아하던데."

마지막 대목에서 그를 바라보는 일행의 눈이 조금 식었다. 파이프에서 사람을 죽이고 물품을 강탈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세계에서 죽은 시체를 뒤지는 행위 따위야 평범한 일이었지만, 그가 말하니 심각한 범죄행위처럼 느껴졌다.



"어째 자네는 사귀는 친구도.."



"아,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그 길잡이 때 상황을 보면 이번에도 아마 그럴 것 같다고."

"허풍일 가능성은?"



"글쎄..없지않기는 한데, 허풍이라면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었겠지."


"뭐, 일단은 믿겠네."

프로바움은 어깨를 으쓱였다. 솔직히 말도안되는 이야기였지만, 도로스의 길을 찾는 능력 또한 말도 안되긴 했다. 도로스 또한 곰곰히 생각했다. 결론은 선천적인 감은 복잡무쌍하고 오묘하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이 정도였다. 뭐가 일어나도 있을 법하단 건가.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어찌되었건 최소한 선례가 있으니, 이번만큼은 왜 그런지 이유를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위와 아래로 나뉘는 저 두 길은 맞는 길이고 거기까지 가는 중에 뭔가 위험한  나온다.


도로스의 이야기를 들은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비슷한  생각하고 있었다.



"도로스, 그 불안한 느낌이란 건 어느정도야?"



"심장소리에 맞춰 조금씩 커지고 있긴하지만 아직 작은 느낌이에요."



"커진다고? 그럼 다가오거나 아직 우릴 발견 못했다던가...뭐 그런거려나?"



"그럼 뭐가 오는 거지?"


"아마 돌연,변이로 사료됩,니다."


"어떤 돌연변이?"




일행은 입을 다물었다. 대략적인 생김새가 모두의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모습을 보지못한 카지트와 닥터 윌슨 또한 나머지 둘에게 그 위용을 들어서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설마 그 녀석이겠어?"

도로스는 침을 꼴깍 삼켰다. 어째 불안한 게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혹시라도 우두머리가 나타난다면 일행에겐 도망친다는 선택지 외엔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런 괴물이 죽는다는 것조차 상상할 수 없었다.




"젠장, 혹시나 하지만 말야. 만약 진짜 그런게 튀어나오면  죽는다고."


"동감일세. 크기도 거의 중형 돌연변이에 가까우니 치안대가 몰려와야 간신히 동수겠지."




일행 또한 도로스와 비슷하게 느꼈는지 진행을 멈추고 무기와 탄약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도로스도 남은 볼트를 확인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탄창. 그것도 꽉 차있는 게 아니라 3/4정도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몇  쏘면 끝이겠네. 우두머리만 아니었다면 주워올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우두머리를 탓했다.




사실 가지고 있는 무기라고는 숏소드와 보우건 두 정이  였기에, 무장이 빈약한 도로스는 제일 먼저 무기체크를 끝냈다. 상대적으로 무기가 많은 카지트와 프로바움은 무기의 이곳저곳을 체크하고 잔탄수를 확인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다. 그와 비슷한 시간에 체크를 끝낸 닥터 윌슨이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도로스.  다 맞는 길,이라고 느꼈,습니까?"



"예? 예. 둘 다 그대로 쭉 가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느꼈어요."


"흠. 그럼 우리,가 왔던 길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왔던 길..."



도로스는 뒤로 돌아 조각상이 있던 광장을 응시했다. 그러나 위와 아래로 나뉜 길과는 달리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 말 없는 그의 모습에서 대답을 짐작한 귀뚜라미는 턱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까. 그럼 역시 앞,으로 나가는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애초에 돌아가는 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그였기에 가볍게 고갤 끄덕였다. 그 순간에도 심장박동에 맞춰 쿵쿵 울리는 뒤섞인 기분은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기이한 불안과 흥분. 조금씩 커지는 그것은, 마치 어두운 저 너머에서 기어오는 괴물같았다.


"다들 준비됐냐?"

"어이, 도로스. 그 이상한 기분에 집중해. 위험하다 싶으면 말하고."

도로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계획같은 건 있는가?"

"일단은 도로스가 위험하다고 느낄 때까지 접근한다."

"그리고?"

"무언가 나온다 싶으면 무조건 앞으로 달려. 저기 위쪽 계단 보이지? 거기로 가자고."

그는 저 너머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힐끗 보이는 계단을 가리켰다. 석재 재질의 계단은 위로 곧게 뻗어있었는데 빛이 닿지 않아 어디로 이어져 있는지 확인 불가능했다. 그래도 도로스의 감에 의하면 그곳이 맞는 길이니 무사히 일행을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할까. 보우건을 잡은 손이 꽉 쥐어졌다. 불안, 긴장, 흥분, 안도. 다양한 색채가 뒤섞여 머릿속에서 난동을 피웠다. 불안함과 긴장이 조금씩 기지개를 폈다. 한 걸음 씩 내딛는 동료들의 발걸음마다 그것이 배가 되었다.




두근.두근.




그대로  미터를 전진하자 한층 더 소리가 커졌다. 마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카지트의 말대로라면 무언가 위험한 게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인데, 과연 모두 무사할 수 있을까? 도로스는  이상 생각하는  그만두었다.

모두 함께 살아돌아갈 것이다. 돌아가서 유물을 돈으로 바꾸고 토벌대를 불러야지. 아직 돈이 얼마 되지 않기는 하지만 조각상에 대한 정보만으로 어느정도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초발견이라고 닥터 윌슨이 말했으니.

조금씩 차오르는 불안함을 감추며 도로스는 일행을 이끌었다. 한 발자국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 걸음마다 일행은 최대한 소리나지 않게 신경썼다. 무언가 위험한 게 앞에 있다고 안 이상 최대한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일행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사건은 일행이 통로를 반쯤 가로질렀을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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