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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화 〉2.유적 (23/100)



〈 23화 〉2.유적

조금만 크게 움직여도 삐걱대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계단. 대체 옛날 사람들은 무슨 정신으로 이런 걸 이용했었을까. 도로스는 질렸다는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한 걸음 내려왔다.

급격하게 기울어지는 경사 때문에 내려가는 길은 올라가는 길보다  배는 길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 몇 배 라는 기준은 일행 따라 각기 달랐지만 대략적으로 3배 이상이란 점에선 만장일치로 고개를 끄덕였다. 급격히 기울어지는 경사에 따라 내려가는 일행의 자세 또한 가지각색으로 나뉘었다.

도로스는 엎드린 채로 발부터 한 칸 씩 천천히 내려갔다. 약간의 움직임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휘청이는 계단때문에 자칫하면 그대로 주르륵 아래로 미꾸러질 것만 같았다.

닥터 윌슨 또한 후미에서 도로스처럼 엎드린 자세로 내려왔는데, 아무래도  독특한 외관과 엎드린 자세의 조합은 일행에게 기괴한 생리적인 혐오감을 조장했다. 도로스들의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물론 쇠긁는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계단 탓에 다시 원래 속도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지만.

카지트는 둘과는 조금 다른 자세로 내려왔다. 대자로 누운 자세에서 다리가 아니라 엉덩이를 이용해 한 칸 씩 내려왔는데 그다지 볼품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겐 다행스럽게도 그런 것에 신경쓸 정도로 여유있는 일행은 없었다.

유일하게 프로바움만이 그대로 서서 내려왔는데, 그의 뒤로 뿜어져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증기와 연기를 보아하니  또한 그다지 제정신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올라온 시간의 두 세 배를 소모한 끝에서야 일행은 간신히 올라오기 전의 위치에 도착했다. 말이 올라온 시간의 두 세 배였지 일행에겐 끝나지않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음이 틀림 없었다.


"카아악, 퉷! 이딴 거지같은 유적. 빨리 대충 주울거 줍고 나야가지 원."



"으..계속 흔들리는 것 위에 있었더니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네요."

땅에 발을 딛자마자 카지트는 바닥에 걸쭉한 침을 찍 뱉었다. 보통이라면 그 천박한 행동에 고지식한 프로바움이  소리 하겠건만 이번만큼은 그도 묵인했다. 말하는 것조차 귀찮을 정도로 녹초가 된 모습이었다. 제 아무리 신경줄이 두꺼운 사람이라 하더라도 저런 곳에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면 그들과 같은 반응을 보일  틀림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추스린 일행은 새삼  기술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연결이 끊겨도 700년 동안 무너지지않는 계단이란! 제조방법만  수 있다면 큰 돈은 기본이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있을텐데. 일행은 입맛을 쩝쩝다셨다.


"괜히 에메랄드 컴퍼니가 유물에 눈독을 들이는 게 아니군."


"그럴 가,능성은 없습니다,만 혹시라도 실전,된 기술이나 제조법,을 발견한다면 억만,장자가 되,는 것도 꿈은 아닐 겁,니다."

"그건 좀 아쉽군 그래."


물론 놀라움은 놀라움이고 싫은 건 싫은 거였다. 돈을 얼마나 준다고 해도 도로스일행 중 그 누구도  위로 다시는 올라가지 않으리라. 길이 끊긴 계단이란  정도로 무시무시한 악몽이었다.




"그럼..이제 어디로 가죠?"



일행은 또다른 계단을 복잡한 감정이 섞인 눈으로 노려봤다. 아래로 향하는 계단은 다른 곳처럼 침침한 암흑으로 몸을 감싼 채 그 속을 보여주지 않았다. 만약 저기 마저도 끊겨있다면? 일행은 불안함에 눈동자를 굴렸다.



"이번엔 조금만 내려가보자.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하면 바로 올라오자고."

"다행,히 내려가 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닥터 윌슨은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한참 가방을 뒤적이다 검은 액체가 든 병과 말린 옷뭉치같은 걸 꺼냈다.



"그건..?"


"기름과 붕대입,니다."



그는 보란듯이 붕대를 둘둘 말아 기름에 적셨다. 불을 붙인 후 던지자 기름먹은 붕대는 활활 타오르며 잠시 동안 주위를 밝혔다.



그제야 도로스들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깨닫고 감탄사를 터뜨렸다. 역시 일행 최고의 두뇌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불타는 붕대를 계단 쪽으로 떨어뜨리자, 붕대는 주위의 어둠을 걷어내며 아래로 떨어졌다. 도로스들은  정신을 집중해서 윤곽이 드러난 아래층을 살폈다.


천만다행히 계단은 연결되어 있었다. 높이 또한 대략 1층하고 반 정도의 높이로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았다. 붕대가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주위엔 계단 이외의 구조물이 없는 걸 보아하니 위층으로 올라갈 때와 비슷하게 허공인 것 같았다.




아랫층은 대략 4제곱미터 정도의 그리 크지 않은 크기였는데 타들어가는 불씨 너머로 언뜻 거대한 문 같은 것이 보였다.


"어? 저기 저거 문!"



"그나마 막힌 길은 아니라 다행이군 그래."

일행은 고개를 빼고 문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나 붕대는 금방 타버려 빼곡한 어둠이 다시 문을 가렸다.

"위험은 없는 것 같은데..어떡할까요?"

"뭐, 내려가는  외엔 방법이 있나? 딱보니 아까처럼 위험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지."

일행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방금 계단에 크게 데인 일행은 또다시 계단을 이용하는 것이 좀 꺼려졌지만  이외에 마땅한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최소한 계단이 연결되어 있다는  확인했으니 전과 같은 흔들림 같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행의 예상대로 끊긴 곳없는 계단은 흔들림없이 굳건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도로스들은 이내 아무런 문제가 없자 별다른 지체없이 빠르게 내려올 수 있었다.




5분도 걸리지않는 짧은 시간에 내려온 그들은 약간의 허무함까지 느꼈다. 위험을 무릎쓰고 올라갔던  긴 시간들은 대체 뭐였을까. 도로스는 애꿏은 바닥을 발로 찼다.

"이건.."




닥터 윌슨은 누구보다 빠르게  앞에 도달해 문을 살펴보고 있었다. 문은 유리로 만들어진  투명했으나  위에 하얗게 씌워진 거칠거칠한 무언가 때문에 반대편이 보이지 않았다.


문을 몇 번 두들겨본 그는 이내 그것이 유리가 아닌 비슷한 무언가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아냈다. 만졌을 때의 감촉이나 약하게 손을 튕겼을 때의 반탄력 등이 유리와는 달랐던 까닭이다. 또한 그 강도도 유리보다 월등히 강한  했다.



문에 달린 손잡이들 당겨보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아마 잠겨있는 듯 했다.



뒤늦게 다가온 일행 또한 문의 이곳저곳을 살폈다. 문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궁금했지만 문에 붙은 불투명한 껍데기와 반대편의 시꺼먼 암흑 때문에 살펴볼  없었다.


카지트와 도로스는 문에 귀를 대고 반대편의 소리에 귀를 귀울였다. 그러나 사위는 적막했다. 일행의 숨소리를 제외하곤 조그마한 잡음조차 들리지않았다.



"부술까?"

카지트는 문을 가리키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유리보다 단단하다고 하나 부수는데 그리 큰 힘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았다. 문제라면 소리. 안에 무언가가 있다면 소릴 듣고 몰려들  뻔했다.



도로스는 눈을 감고 주위에 신경을 기울였다. 감에 걸리는 건 딱히 없었다. 그렇다는  위험한 건 없다는 소린데. 그는 머리를 긁적였다.


"소리가 날텐데요?"




"그거야 나한테 맡기면 되고. 좋은 생각있는 사람?"


카지트는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느냐는 듯 그의 팀원들을 둘러보았다. 인간, 자동인형, 곤충형 수인. 그들은 잠자코 서로 눈을 맞췄다. 이견은 없었다.



"뭐, 여기선 여는 수 밖에 없는 것 같군 그래."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다들 전투준비하라고."



카지트는  표면에 접착제를 바른 후, 그 위에 헝겊과 붕대를 둘렀다.


"카지트, 뭐합니까? 문한테 옷입혀주는 건가요?"

"시끄러 임마.  보고 배우라고."

그는 아밍소드를 빼들고 손잡이  부분으로 헝겊과 붕대 위를 가격했다. 처음엔 버티던 문이었지만, 몇 번이고 같은 위치를 가격하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수인의 힘 앞에 무너졌다.



파직.


원래라면 째지는 소리와 함께 작은 파편으로 갈라져 사방으로 퍼져야 했지만, 접착제가 그것을 막았다. 심지어 깨지는 소리조차 그리 크지않았다.


"오오, 신기,한 방법,입니다."



닥터 윌슨은 눈을 빛내며 조용히 말했다. 제아무리 지식욕이 넘치더라도 현재 상황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기에 목소리를 높이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먹이를 노리는 매같은 눈빛으로 볼 때, 차후에 카지트에게 달려들 것이 틀림없었다.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이 만들어지자, 카지트는 제일 먼저 들어가 주위를 경계했다. 도로스 또한 곧바로 카지트의 뒤를 따라 들어가 경계를 섰다. 몇 분을 그렇게 서서 사방을 경계하던 둘은 위험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닥터 윌슨과 프로바움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맙,소사.."



뒤따라 들어온 닥터 윌슨은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공간에 나지막한 감탄을 토했다.

거대한 공동. 조명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은 천장과 대형 파이프 두 셋은 너끈히 들어갈 정도의 넓이. 둥그런 원을 그리고 있는 공터의 바닥은 대리석으로 추정되는 바닥재로 마감되어 있었으며 공터의 주위를 두꺼운 기둥들이 호위하듯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들이 있는 층을 제외하곤 기둥과 기둥의 사이에 작은 테라스 같은 구조가 층층이 올라와 있었는데 의자와 테이블 등이 있는 것을 보아, 거주 혹은 휴식 지역인 것 같았다.

특이하게도 광장의 가운데엔 거대한 조각상 같은 게 홀로 서 있었다. 동그란 구체처럼 보이는 조각상은 그들이  있는 입구에서도 쉽게 볼  있을 정도로 컸다. 도로스들은 -정확히 닥터 윌슨은- 홀린 것처럼 그 조각상을 향해 다가갔다.


"잠깐, 저기 뭔가 있는데?"




조각상과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졌을 무렵, 무언가를 발견한 카지트가 조각상 주변을 가리켰다. 일행은 천천히 그가 가리킨 곳을 응시하다, 숨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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