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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화 〉2.유적 (20/100)



〈 20화 〉2.유적

"장전하겠네. 엄호를!"

다섯 발을 마저 쏜 프로바움은 장전에 들어갔다. 차르르륵 떨어지는 탄피 소리를 들으며 도로스는 굳은 얼굴로 보우건을 끊임없이 쏘아냈다.



쌓아올린 시체 더미 덕에 녀석들의 행동 반경이 줄어들고 속도 또한 느려진 덕에 어찌어찌 막아낼 수 있을 것 같긴 했다. 또한, 돌연변이 시체라는 게 무게가 은근히 나가는 터라 녀석들은 쌓아놓은 바리케이트를 부술 수 없었다.

보우건에 약점을 적중당한 돌연변이 하나가 단말마를 내지르며 무너졌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마치 바퀴벌레 마냥 하나를 죽여도 하나가 또 튀어나왔다. 하나. 다시 하나.  다시 하나.

먹이를 향해 죽음도 불사하고 달려드는 역겨운 돌변연이들의 모습에 도로스는 구역질이 치솟는  같았다. 아직인가? 언제까지 버텨야 하지? 시간은 무한했지만 그의 체력과 볼트는 무한하지 않았다.

볼트의 장탄수가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지만 방어전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은 장갑이 두터운 녀석을 필두로 조금씩 시체의  너머로 발을 들이밀고 있었다. 화력의 부재가 뼈아팠다.



"다 되었네!"

프로바움은 페퍼박스의 트리거를 당겼다. 폭음과 매캐한 화약의 냄새가 동굴을 거칠게 두들겼다. 프로바움이 벌어준 잠깐의 시간. 도로스는 다른  동료를 향해 소리쳤다.




"아직입니까!?"


잠깐의 침묵. 먹이가 싱싱한 것을 확인한 돌연변이들은 한층 난동을 부렸다. 거뭇거뭇한 새로운 통로의 너머에서 대답이 메아리처럼 퍼졌다.



"조금,만 더! 벽같,은 건 찾았습,니다! 주위 입,구를 확인,할 겁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벌어주십,시오!"



되돌아온 대답은 약간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카지트와 닥터 윌슨이 보이지않을 정도로 깊게 파인 굴은 그들이 얼마나 전력을 쏟아붓고 있는지 여실히 나타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티자.



그나마 둘에겐 다행스럽게도 페퍼박스의 강력한 화력이 돌아오자 바리케이트를 넘어오는 녀석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아마 계속되는 전투로 장전 중일 때가 화력이 제일 낮아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달은 듯 했다.



"..프로바움."

"알고있네."



자동인형 또한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녀석들이 장전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쏘지않을 수는 없었다. 수가 적어젔다고 해도 몇몇 돌연변이들이 꾸준히 시체의 탑을 넘어오려 하기 때문이다.


도로스 또한 페퍼박스의 장탄을 한 발이라도 아끼기 위해 돌연변이들의 약점을 공략했다.



그 때였다. 소름끼치는, 마치 뱀과같은 무언가가 기어오르는 것같은 기이한 공포가 그들을 덮쳤다. 그것은 적아를 가릴 것없이 전장에 있던 모든 것들을 옥죘다. 도로스와 프로바움은 신경을 짓누르는 불쾌함과 맹독마냥 몸을 좀먹어가는 살의의 파동에 반사적으로 흙더미에 몸을 숨겼다.

돌연변이들 또한 그 불경한 기척에 잔뜩 얼어 꼬리를 말고 도망치거나 그대로 복종의 자세를 취하며 벌벌 떨었다. 기이한 침묵이 전장에 떨어졌다. 깡!깡! 하고 곡괭이 소리가 그들의 뒤에서 아련히 들려왔다.


퍽.퍽.퍽.




끼이이익!!
깨애앵!




무언가 고기써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포에 찬 돌연변이들의 절규가 합주곡처럼 전장에 넘실댔다. 프로바움은 굳은 얼굴로 재빨리 장전을 시작했다.



좋지않아. 위험한데. 마치 귀 옆에서 자명종을 틀어놓은 것처럼 감이 맹렬하게 울렸다. 등줄기에 차가운 얼음이 들어찬 것처럼 소름이 돋았다. 심장이 통제를 벗어나 미친 듯이 쿵쾅 거렸다. 고기써는 소리와 함께 하나둘씩 돌연변이들의 기척이 사라졌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둘은 잘 알고 있었다.



호랑이 돌연변이와 비슷한 급의 저 놈들을 압도하고 손쉽게 죽일 수 있는 존재. 상위의 돌연변이.  근방의 먹이사슬 꼭대기에 있는 존재.


크엑!




촤아악!

위험하다고 경종을 울리는 직감에 도로스는 재빨리 위치에서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누르스름한 액체가 그가 있던 장소를 덥쳤다.



익숙치않은 화약냄새와 뒤섞인 신내에 도리질을 치면서 그는 액체를 노려봤다. 점액질에 뒤덮인 대형 크로스보우가 천천히 그 형태를 잃어버리는  눈에 들어왔다.

강철을 부식시킬 정도의 산도酸度. 그는 굳은 얼굴로 산성용액을 쏘아낸 돌연변이를 눈에 담았다. 시체의 산 너머로 녀석의 얼굴이 들어왔다. 악어처럼 울퉁불퉁한 적갈색의 피부. 인간의 해골을 닮은 얼굴 위에 기다란 버섯의 갓같은 걸 얹혀 놓은 듯한 머리. 기형적인 머리 위엔 뿔과 같은 돌기들이 자잘히  있었다. 입엔 가시같은 치아가 빼곡해 들어차 있었으며 아래턱은 좌우로 열리는 듯 벌름거리고 있었다. 흉폭함을 담은 노란 눈이 그들을 주시했다.

크기는 동굴에 꽉 들어차는 정도. 대략 3~4m정도의 크기와 2~3m정도의 넓이. 시체더미 위로 나와있는  얼굴밖에 없는 지라 얼굴 이외의 것은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보는 것만으로 절대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중형 돌연변이보다 세겠군."




곁에서 프로바움이 으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이길 수 있을까? 도로스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악어의 피부를 닮은 듯한 적갈색 갑옷은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아마 지금의 화력으론 상처조차 입힐 수 없겠지. 그나마 데미지를 기대할 수 있는  프로바움의 페퍼박스 뿐인가.



'감'이 도망가라고 경고하는 존재. 아마 싸운다면 필패일 것이다.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죽겠지. 사냥꾼의 머리는 냉철하게 판단했다.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도망친다' 였지만 그것조차 신통치 않았다. 도망친다고 해도 어디로 도망친다는 말인가? 아직 닥터 윌슨과 카지트는 길을 찾지 못한  하니, 그들은 독 안에 든 쥐였다.

녀석도 그것을 아는 듯 느긋하게 다가왔다. 머리에 달린 길쭉한 갓이 천장에 긁혀 흙부스러기를 떨구었다. 무력감과 탈력감. 온갖 선택지를 검토해보았지만 그의 전투논리와 감은 전부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죽음.




"쯧. 도로스,  챙기게. 후퇴하도록 하지."


노병은 혀를 차고 페퍼박스를 겨눴다. 이제 믿을 건 이것 밖에 없었다.



투쾅! 투쾅!


화약의 힘으로 물리력을 얻은 납탄환은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날아가 적을 노렸다. 폭음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튼 돌연변이의 갓을 긁었다. 약간의 피. 생채기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미미한 상처였다. 그러나 돌연변이의 화를 돋구기엔 충분했다.




캬아아아!!!



도로스는 흙더미 사이사이의 가방을 모조리 쓸어 담았다. 대형 크로스보우 또한 가져가고 싶었지만 이미 반쯤 녹아내린 터라 쓰레기나 다름 없어 방치했다. 프로바움 또한 가방들을 쥐고 동료들이 파놓은 통로를 향해 냅다 뛰었다.

크엑!

촤아악!



그들의 바로 뒤에 산성용액이 쏟아졌다. 도로스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조금이라도, 1초라도 늦었다면 저 용액을 뒤집어 쓰고 순식간에 녹아내렸으리라.

녀석이 발버둥치는 듯 동굴이 무너질 듯 흔들렸다. 시체 더미가 버텨줄까? 잠깐의 의문이 머릿속에 들어왔으나 곧 녀석의 포효에 도망쳤다. 저 산성침 앞에선 아주 잠깐의 시간 밖에 못 벌을 것이다. 날뛰는 기척과 신경을 갉아먹는 듯한 불쾌한 소음이 그들의 바로 뒤를 따랐다.




그러나 도로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왠지 돌아본다면 죽을 것 같은 예감이 엄습했기에. 마치 영원과도 같은 시간을 건너 그들은 통로에 몸을 던졌다. 거의 중형에 가까운 녀석의 크기로 보아 이곳엔 들어오지 못할  였다.


그제서야 둘은 뒤를 돌아 상황을 살폈다. 이미 시체의 탑은 반쯤 무너져 있었고 그 사이로 녀석의 몸체가 보였다. 사마귀의 그것과 닮은 거대한 낫이 손을 대신 하고 있었다. 다리없는 애벌레같은  또한 적갈색의 울퉁불퉁한 피부로 덮혀있었으며 그 위로 뾰족한 돌기가 침처럼 빽빽하게 나 있었다.




녀석은 각각 한 손에 달린 낫으로 분풀이 하듯 시체의 탑을 찍어대었다. 그 때마다 시체들이 폭산하며 사방으로 비산했다. 녀석의 이글거리는 잔혹한 노란 눈이 둘의 눈과 맞았다.



캬아아아!!



녀석을 한 차례 울부짖고는 뱀처럼 무너진 시체의 탑 위를 미끄러져 내려왔다. 저걸 상대하려면 치안대 반 이상이 달라붙어야 겠군. 프로바움은 냉철하게 녀석을 평가하곤 도로스와 통로 안쪽으로 향했다.



쿠웅! 쿠웅!

녀석이 한  부딪힐 때마다 통로가 지진난 것처럼 뒤흔들렸다. 둘은 진동탓에 휘청거리면서 다른 둘에 합류했다. 카지트와 닥터 윌슨은 아래로 구멍을 파 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어, 왔냐? 근데 밖에 대체 뭐가 있는 거야? 엄청 소름끼치던데."



카지트는 소름돋은 팔을 긁으면서 물었다.  몸에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둘은 꾀죄죄해 보였지만 딱히 이상있는 곳은 없는 것같아 도로스는 안심했다.

"이 근방의 우두머리까지 왔더군. 낫을 든 뚱뚱한 도마뱀같은 녀석일세."


프로바움은 피곤한  황동빛도는 금속 손으로 얼굴을 내리 쓸었다. 카지트가 골치아프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미쳤군. 이러다 진짜 죽겠는데."



"그보다, 진행은 어떻게 되어갑니까?"

도로스는 재촉했다. 녀석과 거리를 벌렸으나 아직 윙윙대는 감이 위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렸다. 빨리 다른 곳으로 가야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면 한동안은 괜찮을 것 같았다.




"벽,은 찾았습,니다만 아직 문,을 찾지 못했,습니다."

닥터 윌슨은 그들의 앞에 위치한 회색빛 암석을 가리켰다. 도로스는 장갑낀 손으로 거대한 암석을 쓸었다. 자연적인 것은 아닌  깔끔한 단면이 보였다. 거슬거슬한 벽의 감촉이 손 끝에서 느껴졌다.

"이게 외,벽인 건 확,실합니다. 재,질 등을  때 700년 전의 그것,과 흡사합니,다. 해서, 밑,으로 구멍을 파서 바닥 또,한 찾았습,니다만, 문이,나 건물 안의 공간,을 나누는 벽은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캬아아아!!




분노에  고함이 또다시 동굴을 한바탕 휩쓸었다. 푸스스, 천장에서 흙과 먼지가 쏟아졌다. 감이 한층 더 예민하게 빛났다. 카지트 또한 비슷한 걸 느꼈는지 천장을 노려보았다.

"이러다 문을 찾기 전에 생매장 되겠군. 별로 즐겁진 않을 것 같은데."

도로스는 드러난 회색 벽과 바닥을 노려봤다. 어떻게 해야하지? 시간이 없는데. 궁지에 몰리니 머리가 평소 이상으로 휭휭 돌았다. 그러나 전투를 제외하곤 별로 머리쓰는 일에 자신이 없는 터라 그다지 좋은 생각이 떠오르진 않았다.



 한 번의 진동. 이번엔 전보다 많은 양의 흙더미가 쏟아졌다. 시간이 없었다.

일행은 머리를 싸맸다. 다시 터널을 뚫기엔 시간도 없었고 뚫는 와중에 돌연변이의 난동 탓에 무너질 게 불보듯 뻔했다.

벽. 바닥. 벽. 바닥. 공간. 벽. 공간. 바닥. 공간. 띵! 하고 머릿속에서 무언가 울렸다. 벽. 바닥. 공간. 바닥. 공간. 바닥..공간?




그는 홀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행 또한 무언가 느낀 듯 그를 쳐다봤다. 도로스는 바닥을 두들겼다. 두께가 꽤 되기에 판별하긴 좀 힘들었지만 바닥 너머에 공간이 있는 듯 했다.

"프로바움. 페퍼박스  빌려도 되겠습니까?"




"무언가 방법을 찾은 거로군? 믿겠네."

그는 앞 뒤 잘라먹은 도로스의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곤 페퍼박스를 넘겨줬다. 예상보다 무거운 그 무기에 휘청거렸지만 도로스는 어떻게든 그것을 들고 바닥을 조준했다.


"프로바움. 이거 한 번에 못 쏩니까?"




그의 자세에 일행은 탄성을 내질렀다.



"바,닥을 뚫고 갈 작정이,군요! 훌,륭한 발상입니,다!"




"총신을 돌리게. 부드럽게..그렇지, 바로 그렇게."


도로스는 페퍼박스의 총신을 돌렸다.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한  기세를 받자 총신은 홀로 차르릉 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 아니면 도. 그러나 그에겐 '감'이라는 훌륭한 해답지가 있었다. 감은  바닥 너머라면 당분간 안전할 것이라 고했다.



차르르르릉.


돌아가는 총신을 보며 도로스는 숨을 삼켰다. 일행 또한 앞으로 닥칠 폭풍에 잔뜬 준비를 했다.


"갑니다."



투콰콰콰쾅!!!


그는 페퍼박스의 트리거를 당겼다. 장전된 24발의 화약이 일제히 터지면서 귀를 부수는 어마어마한 소음의 폭풍이 발생했다. 일행은 쑤욱 밑으로 꺼지는 바닥을 느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기이한 부유감을 느끼며 그들은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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