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2.유적 (18/100)



〈 18화 〉2.유적


발굴 작없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천장을 제외하고 온 바닥과 벽에 쇠막대기를 찔러대고 공구로 조금씩 파내본 결과, 온 사방이 토사로 꽉꽉 채워져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 밖에도 약간의 너트와 숫자와 문양이 각각 한 면에 새겨진 동그랗고 납작한 금속 쪼가리 몇 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다. 도로스들이 상상하던 금은보화나 값비싼 고대의 유물 따위는 털  만큼도 보이지 않았고, 쓰잘데기없는 찌꺼기나 흙, 돌멩이만이 세월의 저편에서 그들에게 얼굴을 비추었을 뿐.



이 보잘것없는 결과에 일행은 실망했다. 들인 시간에 비해 결과가 너무 초라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현재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조그마한 단서조차 얻을 수 없었던 까닭이다. 얼마나 쑤셔댔는지 주위는 구멍 투성이에 군데군데 움푹 패여있어 벌레들의 둥지를 떠올리게 했다.

 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결국 일행은 진행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이 속도론  달이 걸려도 끝내지 못할 걸 다들 눈치챘기 때문이다. 닥터 윌슨도 고안해냈던 방법의 결과가 예상과 다르자 당황해 허둥지둥했다.


"죄,송합니다. 유,적이 원체 큰 터라 이 방,법으론 안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그래도 약간의 소득은 있었으니까요."

도로스는 손에서 짤그랑 거리는 납작한 작은 원판들을 내려다 봤다. 처음엔 세기의 대발견이라도 한 것 마냥 기뻐했지만 오래된 유적에서 간간히 보이는 물건이라 그다지 학술적인 가치가 없다는 소리에 실망했었다. 기념품으로 누나에게 가져다 줘야지. 그는 둥근 금속 쪼가리를 품 속에 넣었다.


시간과 돌연변이들의 압박 때문일까.  번 발굴에 실패한 일행은 모두 어딘가 초조해 보였다. 카지트는 흙더미와 가방으로 막아놓은 입구를 계속해서 힐끗 쳐다봤고, 프로바움은 말 수가 줄었으며 닥터 윌슨은 조금 주눅 들었다. 사실 이곳에서 누구보다 초조해 있는 사람은 도로스 일 것이다. 유적이란  카지트의 말처럼 그리 간단하지 않다는 걸 체험했기에. 그리고 이 유적에 건 기대가 누구보다도 크기에.



도로스는 혹시나 싶어 물었다.

"가장 오래된 유적은 몇 백년 전입니까?"

만약 이 유적이 제일 오래되었다던가 희귀한 유적이라던가 특별한 내력이 있다면 분명 보상이 작지는 않을 터 였다. 도로스는 기대하며 닥터 윌슨의 대답을 기다렸다.




"현,재 제일 오래된 유,적은 700년 전후,입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이전의 유,적은 없습니,다. 기록도 희미,합니다. 700년 전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엔 거대,한 대전쟁이 있,었다, 라고 밖,에 쓰여져 있지않,습니다."


"그럼 이 유적이 제일 오래된 거네요?"



"700년 전의 유적은 흔한 정도 까진 아니더라도 그래도 생각보단  된다네. 카디프 또한 700년 전 유적을 기반으로 확장된 도시고."




혹시나 대단한 발견을 했다고 기대했던 도로스는 조금 실망했다. 후우, 그는 한숨을 내쉬곤 방독면의 필터를 갈아끼웠다. 그나마 필터는 넉넉하게 가지고 온 덕분에 수가 모자라진 않았다. 이것저것 챙겨온 덕분에 당분간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생활할 수 있다. 최소한 탐사는 계속 할 수 있겠네. 그는 복잡한 감정을 한숨에 담아 내보냈다.



"어이, 닥터 윌슨. 혹시 곡괭이나 삽같은 것도 있어?"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입구를 힐끔 거리던 카지트가 말했다.




"예? 있기,야 있습니,다만."

"잘 됐네. 다시 작업 들어가자고."


그는 입구의 맞은 편의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어딨는지도 모르고 유물같은  하나도 없잖냐. 그냥 저 흙더미들을 계속 파내자고. 진짜 벽이 나오면 그때부턴 뭐라도 되겠지."




카지트를 제외한 셋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계획없이 대충대충인 것 같지만 생각해보니 괜찮은 방법 같았다. 어차피 그들이 머물고 있는 동굴 밖엔 돌연변이들이 득시글 거리고 있어서 이런 장소를 다시 발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소득도 없이 언제까지고 이 안에 앉아있을 수는 없잖은가?


행여 카지트 말대로 유적 밖에서 봤던 튼튼한 외벽을 발견한다면 제대로 된 방 또한 발견하기 쉬울 터 였다. 방이란  사방이 벽에 둘러쌓인 곳이니까. 그곳에서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겠지.


일행은 다시 봤다는 감탄어린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런 시선을  알아볼 카지트가 아니었기에 손을 휘휘 휘두르며 빽 소리를 질렀다.


"아오, 그렇게 쳐다보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하라고!"

"근데 파내다보면 소리때문에 돌연변이들이 몰려들지 않을까요?"



"그거야 뭐, 저게 어느정돈 버텨주겠지."


그는 입구를 막고 있는 흙더미 바리케이트를 가리켰다. 저게 돌연변이 상대로 얼마나 버텨줄까 싶었지만 그렇다고 마땅히 다른 대안은 없었다. 정 안되면 인원을 나눠서 입구를 지키면 되겠지. 도로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막을 인원을 정하지. 닥터, 힘쓰는 일엔 자신있는가?"



"어,느정도는 있습니,다만?"




닥터 윌슨은 프로바움의 갑작스런 질문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착실히 대답했다. 프로바움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더니 일행을 카지트와 닥터 윌슨, 프로바움과 도로스, 둘로 나누었다.

"간단하게 가도록 합세. 벽을 뚫는 중에 돌연변이들이 온다면 나와 도로스가 가서 막도록 하겠네. 자네들은 계속 파주게."



"흠. 영감, 어떻게 나눈 거야?"



"카지트 자네는 근접전 위주고 닥터의 무기론 화력이 부족하지. 도로스는 연사력 위주의 전투를 할 것 같은데..아닌가?"

도로스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기만으로 전투 성향을 파악하는 눈썰미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그는 프로바움 또한 백전연마의 전사임을 깨달았다.




"도로스의 연사력과 내 화력이라면 어느정도 견제는 가능할 걸세. 물론 그때가 되면 주변에 어슬렁 거리는 돌연변이들이 전부 달려들테지만 말이야."



도로스는 프로바움의 말에 숨겨진 뜻을 헤아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도시의 화법이란 그와는 전혀 맞지않는 방법이라 생각할 수록 난해함만 더했다. 그는 생각하는 걸 그만두곤 하는 수 없이 카지트에게 조용히 물었다.



"카지트, 대체 프로바움이 뭐라고  거죠?"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더니 답지않게 속삭이듯 조용히 말했다.




"저 영감이 전투에 들어가면 알게 될 거야. 엄청 시끄럽거든."


아, 하고 깨달음이 소리가 되어 도로스의 입을 박차고 나왔다. 프로바움의 말은 무기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때문인지 주변의 돌연변이들이 몰려들 만큼 시끄러울 거라는 소리였다.


도로스가 오묘한 도시의 대화법에 대해 생각을 하던 말던 일행은 카지트의 즉흥적인 계획대로 진행했다. 닥터 윌슨의 상체만한 가방에선 삽과 곡괭이가 2자루 씩 나왔는데 가방자체가 크진 않은터라 대체 어떻게 해야 저 많은 게 나오는건지 일행은 신기한 눈으로 공구가방을 훑없다.


네 사람이 힘을 합치자 벽에 난 구멍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카지트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수인과 자동인형의 힘과 충인족의 지혜, 그리고 인간의 기교가 합쳐지자 점점 가속도가 붙더니 어마어마한 속도로 통로가 개척되기 시작했다. 특히 육체적인 피로를 느끼지 못하는 자동인형과 네 손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귀뚜라미의 진행도는 가공할만 했다.




물론 그 속도만큼이나 단점 또한 만만치 않았다. 도로스들의 작업 소리가 통로에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사각거리며 움직이는 벌레 소리를 제외하곤 조용한 유적 내에  소리는 폭탄이 터지 듯 크게 울렸다. 그에 따라 주위를 배회하던 돌연변이들의 이목이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적어도 수 마리. 혹은 그 이상.




소리와 진동을 감지한 돌연변이들이 일행 쪽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일행 중 누구보다 빨리 그 사실을 알아챈 건 도로스였다. 노련한 사냥꾼의 경험과 감이 다가오는 위험에 경종을 울렸다. 그는 다급하게 외쳤다. 무언가를 느낀 듯한 도로스의 모습에 일행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뭔가 옵니다!"



"닥터 윌슨! 좀 더 빠르게! 프로바움, 도로스! 부탁한다!"



카지트와 닥터 윌슨은 젖먹던 힘까지 끌어내 한층 더 빠른 속도로 굴을 팠다. 닥터 윌슨의 경우 윗손과 아랫손에 각각 삽을 하나씩 꼬나쥐고 반복적으로 흙을 팠다. 도로스들의 노력 끝에 짧은 시간 내에 3m남짓 개통된 통로엔 아직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도로스와 프로바움은 삽과 곡괭이를 버리곤 재빨리 무기를 장비해 바리케이트에 섰다.


바리케이트는 흙더미와 가방 몇 개로 급조한 터라 오래 버틸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가방에 든 내용물을 생각했을  바리케이트가 무너진다면 돌연변이들을 무찔렀다 해도 손실이 꽤  것 같았다. 돌연변이가 접근하기 전에 물리치는 게 최상. 돌연변이를 무찔렀으나 소모품에 타격이 간다면 중간. 최악은 전멸인가. 프로바움은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그는 가지고 왔던 검은 케이스를 꺼내 열었다. 그의 키 반쯤되는 검은 케이스는 크기만큼 무거워 그조차 한 손으로 손쉽게  순 없을 정도였다. 검은 광택의 케이스를 열자, 거대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총이 그를 반겼다. 그의 애병인 페퍼박스였다. 다만 보통의 페퍼박스가 권총크기의 사이즈였다면 그의 페퍼박스는 라이플이나 저격총 크기라는 게 차이점일까.

페퍼박스라는 이름 그대로 총열 끝엔 총구가 후추상자처럼 둥그렇게 다닥다닥 규칙적으로 붙어있었다. 총 24개의 구멍에서 발사되는 화약식 탄환이라면 어마어마한 제압력과 화력을 보여주리라. 그는 애병의 총신을 룰렛 돌리듯 돌렸다. 24개의 총신이 하나로 묶여 마치 신전의 기둥처럼 보이는 두꺼운 총열이 리볼버의 탄창처럼 빙그르르 매끄럽게 회전했다.

전투를 앞에 두고도 냉철하고 평온한 프로바움과 달리 도로스는 잔뜩 긴장해 있었다.  수 있을까? 아냐, 해야만 해. 도로스는 스스로를 달랬다. 사냥과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사냥이라면 자신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경험한 적이 없어 조금 곤란했다. 애초에 치고 빠지는 사냥꾼의 전술이 기본이었기에 이런 방어전엔 조금 취약할 지도 몰랐다.

도로스는 대형 크로스보우를 바리케이트 위에 올려두고 화살 또한 언제든지 장전 할 수 있게 그 옆에 정리해 두었다. 보우건을 쥔 손은 앞으로 있을 전투에 대한 흥분과 두려움으로 잘게 떨렸다.


프로바움은 그의 어깨를 약하게 쳤다.


"너무 긴장하진 말게. 상황이 정 안좋으면 한 명을 더 부르면 그만이니."



굴파는 속도는 느려지겠지만 말야. 프로바움은 뒷말을 삼켰다. 잔뜩 긴장해있는 동료에게 쓸데없는 말을  필요는 없었다. 그는 바리케이트 너머 좁은 통로를 가리켰다.


"저길 보게. 둘이 간신히 지나갈 정도라네. 우리에겐 아주 큰 행운이지."


이번엔 도로스도 그 속뜻을 파악하곤 아하, 탄성을 질렀다.


"두 마리씩만 상대하면 된다는 거군요?"




"맞네."



프로바움의 긍정에 도로스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제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도 들어올  있는 숫자는  뿐. 그 정도라면 충분히 해볼만 했다. 도로스는 방금 전보다 조금 긴장이 풀리는  느끼곤 프로바움에게 감사를 표했다. 프로바움의  주도로 잠시 이야기를 나누던 둘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좁은 통로를 노려봤다.

그 너머에서 희미하게 불온한 기척이 느껴졌다.



전투의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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