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1.만남 (13/100)



〈 13화 〉1.만남



서부의 소도시 바스톤은 카디프와는 조금 달랐다. 카디프가 주거지와 상업 위주로 형성, 발달 된 도시라면 바스톤은 공장을 기반으로 한 서부답게 산업과 제조시설이 발달 해 있었다. 도시 곳곳에선 증기가 연기가 뒤섞여 하늘을 내달렸고 덕분에 천장에 달린 인공조명은 수많은 공장으로 부터 나온 매연과 스모그에 가려져 흐리게 빛났다. 전체적인 도시의 인상은 흐리고 어두웠는데 뾰족하게 솟아있는 지붕양식들이 우울감을 더했다.

"음, 드디어 도착했네요."

도시를 여기저기 둘러보던 도로스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말했다.


"5일이나 자서 그런가? 아님 잠을 잘못잤나? 목이 왜 이렇게 아프지."

일행은 그의 혼잣말에 시선을 피했다. 굳이 카지트가 그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티가 역력했다. 카지트는 재빠르게 무언가 말하려는 윌슨의 입을 틀어막아서 비밀을 지켜냈다.




"자자, 일단 여관부터 잡자고.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여기서 하루묵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 거니까."


도로스는 하늘의 천장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어두웠던 건 단순히 스모그나 안개 탓만은 아닌  같았다. 시계는 벌써 저녁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행은 근처의 여관에 짐을 풀었다. 가격은 카디프의 여관과 비슷했으나 질은 그보다 살짝 위였다. 도로스는 처음 사용해 보는 여관에 신기해 하면서도 이런 값싼 여관조차 마을에 있는 자신의 집보다 좋다는 점에 어떤 얼굴을 해야할 지 몰라 머리를 긁적였다.


"카지트. 궁금한  있는대요."




"엉? 뭔데?"


"전에 브리핑에서 말할 때, 동부가 거주지역이라고 그랬잖습니까."

"어. 그랬지."

"카디프에도 공장이 있던 것 같은데요. 그러고보면 저희 마을엔 탄광이랑 갱도가 있는데요? 그건 생산지역인 남부에 어울리는 게 아닙니까?"


"흠..그러네."

도로스의 질문에 닥터 윌슨이 끼어들었다.



"그 질문, 제가 대답,해도 됩니까?"


어디를 보고 있는지   없는 겹눈엔 대답하고 싶다는 열망이 강렬하게 들어차 있던 지라, 도로스는 거부할 수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부탁드릴게요."



"예전부터, 각 지방에선, 다른, 지방의 도움없이 성장,하기 위해서, 다양한 정,책을 시도해, 왔었습니다. 아마 그 탄광, 마을도 남부의, 자원, 생산량에 의지,하지 않고,자립하기 위해서,만든 것 같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도로스는 명연설을 들은 사람처럼 열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부턴 닥터 윌슨한텐 질문하지 말아야지. 도로스는 속으로 작게 다짐했다.




윌슨도 자신의 설명이 제법 만족스러운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의외로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에 카지트는 피식 웃었다.




다음 날, 일행은 출발하기 앞서 상점을 둘러 보았다. 공업위주의 서부이기에 장비나 기계장치의 가격은 동부와 비교해 훨씬 싼 편이라 이곳에서 탄약과 장비를 보급하는 편이 더 이익이었기에 도로스들은 카디프에선 식료품 위주로 샀었다.



"..엄청나군요."


무기와 장비를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들을 둘러본 도로스는 혀를 내둘렀다. 그에겐 하나같이 처음보는 무기였는데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성능이 뛰어나다는 걸   있을 정도로 정교하면서도 튼튼한 무기들이 많았다. 뿐만 아니라 가격 또한 그 수준에 걸맞게 높았으므로 그는 무기를 둘러보는  포기했다. 눈 만 높아져봤자 성에 안 찰 뿐이지. 도로스는 어마어마한 가격에 고개를 내저었다.



어차피 무기는 쓰던  있기에 굳이 살 필요는 없었다. 도로스는 다시금 장비를 점검했다.



허리춤에 하나  꽂은 연발 보우건 2정. 한 탄창에 30볼트 씩 각각 세 탄창. 한  쏠  세 발 씩 쏘니,  번 쏘면 탄창이 빈다. 각각 삼십 번 쏘면 끝이겠군.


등에 맨 대형 크로스보우는 보우건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이다. 화살은  발. 위력은 상당하지만 단점으론 휴대성의 부재와 무게, 그리고 장전의 어려움이다. 장전 하기 위해선 양 손을 전부 써야하고 장전하는 시간도  걸리니 실전에선 사용하기가 조금 까다로웠다.

장비는 얼굴 전체를 덮는 방독면과 돌연변이 가죽으로 만든 튼튼한 검정색 바지와 상의. 거기에 마을 아저씨에게서 물려받은 군용 베스트. 그리고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든 검은 외투. 바지와 외투는 최근에 폐수를 지나오느라 조금 더러워지긴 했지만 몇 번이고 씻어내니 악취가 빠져서 다행이었다. 악취가 그대로 였다면 다른 장비로 바꿔야 했는데 이만한 장비와 비슷한 걸 구하기 위해선 얼마가 필요할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지금 끼고 있는 방어구들은 전부 제 역할을 다 하고 있고 방호력도 뛰어난 수준이니 굳이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굳이 사야한다면 근거리 병기와 보우건의 부족한 화력을 뒷받침  수 있는 원거리 무기 정도 려나. 하지만 지금 당장은 돈이 없어 뭐 하나 제대로 살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근거리 무기야 대형 크로스보우 화살을 좀 다듬어서 찌르기용으로 쓰면 될 테고, 부족한 화력은 동료들이 메꾸어  것이다. 단념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쉬운 마음이 남아 도로스는 진열된 무기들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카지트, 뭘 샀어요?"




"탄약 좀 샀지. 확실히 여기가 싸긴 싸네."



카지트는 한 손에 든 탄약 꾸러미를 내보이며 싱글벙글 웃었다. 프로바움과 닥터 윌슨도 탄약 꾸러미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아하니 단단히 준비한 듯 싶었다.

"음, 그러고 보니 프로바움이랑 닥터의 무긴 뭡니까? 저는 보다시피 보우건과 대형 크로스보우입니다만."



도로스는 허리춤을 탁탁 두들겼다.



"도로스, 용병들 사이에선 상대의 무기에 대해 묻는 건 별로 좋지못한 행동이라네. 혹여 나중에 적으로 만난다면 골치아파지거든."

쓴웃음을 지으며 말하는 프로바움의 모습에서 그는 경험과 연륜을 느꼈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네. 자넨 초행이니까. 그리고 저 카지트가 데려온 동료이기도 하니 말해줘도 괜찮겠지."




프로바움은 등에 맨 검은 케이스를 가리켰다.




"내 무긴 이 녀석이라네. 돈 잡아먹는 귀신이긴 하지만 그만큼 위력은 확신한 친구지."



케이스는 프로바움의  정도되는 직사각형이었는데 외관으로봐선 대체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도리가 없었다. 도로스는 안의 내용물이 궁금하긴 했지만 프로바움이 방금 한 말을 되새기곤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전투에 들어가면 볼 수 있을 터 였다.


"그리고 보조론  녀석들."

그는 호주머니에서 두 너클을 꺼냈다. 아니, 하나는 너클 더스터이었고 다른 하나는 너클을 닮은 아파치 리볼버라 부르는 무기였다. 둘은 굉장히 닮아있었는데, 너클 더스터에도 리볼버와 같은 탄창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용도로 짐작해볼 때 너클을 낀 상태에서 상대를 때리면 그대로 탄환이 발사되는 용도  것 같았다.



주먹을 상대에게 부딪힌 상태에서 탄환이 발사 된 다면 사용자에게도 데미지가 클 테지만 단단한 금속으로 둘러쌓인 자동인형의 주먹이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리라.

아파치 리볼버는 브라스 너클과 단검, 그리고 리볼버가 합쳐진 무기로서 그다지 흔한 무기는 아니었다. 세 종류의 무기를 섞어놓은 탓에 내구성은 그다지별 볼 일 없고 총열이 없는 탓에 총의 명중률이 낮긴하지만 다용도라는 점에선 나름 참신한 무기였다.




둘 다  번도   없는 무기들이라 도로스는 신기해 하는 표정으로 잠시 그의 무기들을 관찰한 뒤 윌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전, 이게 답,니다."

닥터 윌슨은 도로스처럼 허리춤에 한 정 씩 찬 기압식 핸드건을 꺼내 보여줬다. 총에 달린 기계장치 옆에 릴 형식의 장치가 달려있었는데, 아마 손잡이들 돌려서 공기압을 채우는 식인 것 같았다. 도로스는 그것 외에 또 다른 무기를 기대했으나 기압식 핸드건 두 정 뿐이란 것을 깨닫고 조금 당황했다. 지금까지 그가 만난 용병들은 전부 두 가지 이상의 무기를 취급했던 까닭이다.

"꽤...간소하네요?"


"하하, 전 용,병이라기 보,단 의사 겸, 고고학자,라서. 전투엔 그,다지 소질,이 없,거든요."




도로스는 그가 의사라는 사실은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고고학자라는 사실을 들은 건 이번이 처음 이었다.

"고고학자요?"

"엉. 내가 안 말해줬나? 닥터는 고고학자 중에서도 꽤 이름있는 사람이야. 덕분에 유물 발굴하는데 딱이지."



도로스는 그제야 한  운운하며 옆 동네 마실 나가는 것처럼 유물 발굴을 쉬이 입에 올렸던 카지트의 태도가 이해되었다. 도로스가 감탄 섞인 눈으로 바라보자 닥터 윌슨은 손사래를 치면서 얼굴을 붉혔다. 도로스는 곤충 수인도 얼굴을 붉힐 수 있다는 사실에 가볍게 놀랐다.

"큼,큼. 어,쨌든  건 다,  것 같,으니 슬,슬 움직입시,다."




일행은 채근하는 윌슨에 못 이긴척 여관으로 돌아와 짐을 챙겼다. 어차피 필요한 것 대부분은 카디프에서 구매했으니 따로 살 건 없었다.

짐을 챙기고 나와 도시의 입구에 섰을 때, 도로스는 유물을 얻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는 걸 실감했다. 그리고 그는 이 모험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아직 마음 한 구석에선 마을과 누이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지만 다른 한 구석에선  여행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도로스는 짧은 신음을 흘렸다. 마을이 위험에 처해 있는데 혼자만 먼 곳에서 모험같은  즐길 생각을 하다니! 지금쯤 고생하고 있을 마을사람들을 떠올리니 죄책감이 들었다.

그는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지금 해야 할 건, 하루 빨리 돈을 모아서 마을에 토벌대를 보내는 것이다. 모험을 즐길 시간적 여유따윈 없어. 그는 다시금 되새겼다. 그에게 50일 정도의 시간이 주어졌지만 사실 그 안에 어떤 변수가 일어날 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 '변수'는 당장 일어날 수도, 바로 내일 일어날 수도 있었다.



도로스는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며칠간 너무 풀어져있었던  같았다. 도로스는 굳게 다문 얼굴을 방독면 뒤에 숨긴  일행의 뒤를 따랐다.

"음?"


한 발자국 내민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선가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도로스,  오냐?"


그러나 시선은 순식간에 사라졌기에, 그는 착각이겠지, 생각했다. 애초에 사람으로 넘치는 도시이니 일행은 쳐다보는 눈만 수십은 넘을 터 였다.



"갑니다."


도로스는 마을과 누이에 대한 불안을 가슴 한 켠으로 밀어넣은 채 카지트들에게 합류했다.


일행은 흐릿한 안개로 몸을 감싼 도시를 뒤로 하고 어두운 파이프 속에 몸을 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