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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1.만남 (12/100)



〈 12화 〉1.만남

다각열차라.


다각? 열차?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의 조합은 그에게 어떠한 이미지조차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그의 안에 기이한 감흥과 흥미를 불어넣었다. 그러나  신기한 감정이 공포와 두려움으로 전환되는 데엔 한 호흡조차 걸리지 않았다.




고철을 짜집기해서 만든 것 같은 거미.




다각열차를 마주한 도로스가 느낀 첫 인상이었다. 건물을 옆으로 눕힌 듯한 직사각형의 금속에 여덜 개의 기계다리와 수많은 톱니바퀴가 박혀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거미를 닮아있었다. 다만 차이점이라면 다각열차의 크기는 사람 수  정돈 가뿐히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컸으며, 기계다리 하나 하나가 카지트의 키보다 컸다. 2미터가 넘는 다리와 10미터 이상인 몸체. 다만 몸체에 비해 다리의 재질이나 사용된 기술은 뒤쳐져있는 느낌이 났다.

차체와 다리에 붙어있는 다종다양한 톱니바퀴 또한 사용된 지 오래된  여기저기 녹이 슬어있고 닳은 곳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도로스는 그 위용에 작게 침음성을 흘렸다. 거대한 크기의 고철덩어리에 압도 되었다고 해도 좋다. 과연 이것이 정말  것 일까? 그는 침을 삼켰다. 그 거체가 한 발자국 내딛을  마다 타각타각, 하고 커다란 소음을 만들었다. 거체의 뒤쪽에 달려있는 배기구에선 취이익 하고 희뿌연 연기가 솟아올랐다.


이윽고 순식간에 그들 근처에 도달한 다각열차는 천천히, 그 커다란 몸체의 바닥이 도로스의 무릎 께에 올 만큼 주저앉았다. 푸쉬익 하고 또다시 어마어마

 양의 증기가 솟구쳤다. 거체의 앞부분에 달린 쌍미닫이 문이 옆으로 열렸다. 차체엔 신기하게도 일정한 패턴으로 유리창이 박혀있어 안에서 바깥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입구가 열렸지만 도로스는 들어가길 주저했다. 마치 돌연변이의 아가리에 스스로 몸을 넣는 꼴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꼭 이걸 타야합니까? 별로 좋은 느낌이 들진 않는데."


저걸 타면 별로 좋지 못한 꼴을  거라고 '감'이 경고했다. 그리고 군데군데 슬어있는 녹은 전혀 믿음직스러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기계가 가는 도중 터지거나 돌연변이 소굴로 돌진한다는 불안한 상상이 그의 심상에 몰아쳤다.




그러나 일행은 그의 의견을 단 칼에 일축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다각열차를 타본 이들은 이것이 얼마나 안전한 이동수단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맞다. 말해주는 걸 까먹었네."



카지트는 누가봐도 방금 지어낸 것같은 어색한 어조로 말했다. 어떻게든 도로스는 안심시킬 속셈이었겠지만 오히려 그 어색한 연기에 의심만을 부풀릴 것 같아 프로바움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너 데리고 카디프로 온 날 기억해?   네가 말했었지. 처음 만났을 때 계속 잘못된 길로 가고 있었다고."

도로스는 갑작스러운 말돌리기에 의아해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각열차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 갑자기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니 되려 다각열차에 대한 의심이 깊어졌다.



"보통 사람들은 안전한 길로 가고 싶어하니깐.  반대엔 위험이 있다는 거지. 좀  빨리 갈  있는 대신 위험을 감수해야하는 길. 내가 고른 건 그 길이야. 안전한 길을 선택한 내 '감'과 상반된 선택이지."



"이봐! 안탈거냐? 안타면 그냥 간다!"



다각열차의 운전기사가 일행을 향해 소리질렀다. 문이 열렸는데 타지 않고 서로 떠들기만 하고 있으니 향하는 눈초리가 고울  없었다.



"아오, 잠깐만 기다려! 곧 탈 거니까!"




큼큼, 카지트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골랐다.

"너무 감에 의지하진 마. 때때론 '옳은 것'과  반대의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어. 그리고 그럴 땐 항상 감은 네 의지완 반대되지. 길잡이의..그...디? 딜라이라마? 그거야."



"..딜레마다."



음, 하고 침음성을 흘리며 카지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어찌되었건 일단 타 보시오. 안전성 하나 만큼은 꽤 믿음직스러우니."


"원래 처음 타면 다들 적응하느라 힘들어하는데, 금방 괜찮아져."


카지트의 말을 그럴 듯 했지만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도로스는 카지트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길잡이의 경험이라면 카지트의 쪽이 훨씬 위이니 그에 걸맞는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기껏 여기까지 와놓고 저거 하나 못타서 돌아 갈 수는 없잖은가. 그러니까 도로스는 속는  치고 다각열차 위로 올라갔다. 길잡이도   더 있고 사람 수도 어느 정도 되는데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도로스는 애써 감을 무시하며 앞으로 일어날 '좋은 일'에 대해 상상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런 낙관적인 생각은 다각열차가 출발한  깨끗하게 사라졌다.






타각타각타각.


"읍..이거..죽게ㅆ..으읍!"

도로스는 입을 부여잡고 옆으로 쓰러졌다. 배와 입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는 모습이 여간 심상치 않았다. 죽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지만 간간이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아하니 다행히 아직 살아있는 것 같았다. 일행은 깊은 고통에 시달리는 동료의 모습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보며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어떻게 도와주고 싶어도 할  있는 게 없군."



"그,러게 말,입니다."


타각타각타각.

자동인형과 곤충형 수인은 쯧쯧 혀를 찼다. 만약 도로스가 멀쩡한 상태였다면 자동인형과 곤충형 수인의 구강구조에 관심을 보였을 지도 모른다. 둘은 카지트 쪽을 힐끔 바라봤다. 다각열차가 출발하자마자 잠에 빠진 카지트는 좌석에 누운 채 아직까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저 녀석은 잘도 자는 군."



"존,경스러울 정,도 입니,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도로스는 재빨리 일어나 유리창 너머로 또 한 번 속을 게워냈다. 닥터 윌슨은 그걸 보고 인상-그런게 있다면-을 찌푸렸다.


"저 친,구를 깨워봐야 겠,군요.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간 탈수증,세가 일어날 겁,니다."




윌슨은 카지트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나 어지간히 깊게 잠든  카지트는 잠에서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둘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곤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거  시끄럽네. 이거 혼자 쓰는 것도 아니고..대체 뭐하자는 거요?"



앞 줄에 앉은 사내가 투덜댔다. 뒤에서 일어난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했다. 그건 다른 좌석의 승객들도 같은 마음인지 그들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곱지 못했다.


"미안하오. 일행이 다각열차는 처음이라."




하는 수 없이 둘은 사과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이런 일이 한 두 번은 아닌 듯, 도로스가 다각열차는 초행이란  들은 승객들은 더 이상 뭐라고 하진 않았다. 윌슨은 조용히 카지트를 계속 흔들었다.




"흐아암. 거 참 시끄럽네. 다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어?"


드디어 카지트를 깨운 닥터 윌슨은 두 팔을 들어 하마터면 환호성을 내지를 뻔한 입을 막았다. 프로바움은 말없이 한 구석에 널부러진 도로스를 가리켰다.


잠에 취해 반쯤 뜬 눈으로 머리를 긁적이던 카지트는 상황파악이  듯 아, 하고 감흥없는 감탄사를 툭 내뱉었다.




"죽..여..줘.."



멀미냐. 카지트는 곤란하다는 듯 읊조렸다.


"이봐 닥터. 저 녀석 좀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이미, 이것저것 해, 봤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닥터 윌슨은 고개를 휘휘 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안그래도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이것저것 방법을 써봤지만 희안하게도 도로스에겐 먹히지 않았다. 아마 특이체질인 것 같았다.



"그거 참.."


머리를 긁적이던 카지트는 무언가 방법을 떠올렸다는 듯 말했다.




"음..그러고보니 특효약이라고 해야하나 치료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게 있긴 한데."


자신도 모르는 치료방법에 학구열을 불태우며 닥터 윌슨이 카지트에게 달려들 듯이 말했다.

"그, 방법,이 뭡니,까!"




당황한 카지트는 뒤로 슬슬 물러났다.

"어? 닥터, 잠깐만. 일단 진정하라고."

윌슨은 그제야 추태를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어떠한 원리인지는 모른다- 그에게 사죄했다. 거대 바퀴벌레 비슷한 무언가에 덮쳐질 뻔한 카지트는 놀라 반쯤 뽑힌 무기를 집어넣으며 그를 달랬다.



"큼, 죄,송합니다. 너,무 흥분했군,요. 새,로운 발,견이란 항,상 매력적,인지,라.."



"근데 말이지, 이 방법이라는 게 좀 난폭하거든?"

"잠깐. 자네..설마?"

프로바움은 그 '방법'이라는 게 뭔지 알아챈 듯 눈을 치켜떴다. 닥터 윌슨은 그의 반응에서  '치료 혹은 방법'이 절대 정상적인  아니라고 확신했다.


하긴  사내가 하는 방법인데 정상적일 리 없지. 어딘가 마음 한 구석에서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는 그가 '예상하지못한 치료법'이 도대체 어떤 것이길래 프로바움이 저런 반응까지 보이는 건지 학자의 탐구심이 꿈틀대었다.

"대,체 그 방,법이라는,  뭡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어? 어..그래. 보면  거야. 일단 도로스한테 동의 좀 받고."


카지트는 엎어져서 꼼지락 거리고 있는 도로스 앞에 쭈그려 앉았다. 도로스는 안색이 창백하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게 절대 괜찮아 보이지않았다. 방독면틈새에서 흘러나온 토사물 냄새가 풍겨 카지트는 코를 막고 물었다.

"어이! 도로스. 괜찮냐?"



"..죽을 것 같 ㅅ..웁!"



"별로 좋아보이진 않네. 하긴 이게 좀 흔들리나. 원래 처음타면 다들 적응 못하더라. 넌 좀 심한 편이지만."


카지트는 큼큼 목을 가다듬고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고 도로스는 그의 질문에서 왠지 모를 오한을 느꼈다.




"이봐, 도로스. 나한테 치료법? 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편해지게 하는 방법이 있긴 한데...시도해 볼래?"




그러나 지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뭔지 모를 치료법에 대한 공포감보단 지금 당장 뱃속을 괴롭히는 메스꺼움과 멀리를 몰아내는 것이 먼저였다. 도로스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겪는 이 지옥같은 멀미를 없앨 수만 있다면 설령 악마에게 영혼조차 팔아 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음! 훌륭해! 본인동의도 받았으니 해 볼까?"

카지트는 도로스는 앉히고 그 뒤로 돌아섰다. 맙소사. 프로바움은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는 이제 카지트가 무슨 짓을 할 지 확신하고 있었다. 하긴 저것만큼 확실한 방법은 몇 안될 것이다. 그만큼 효과하난 확실하니까.


"자, 목에 힘빼고."



그렇게 말하며 카지트는 도로스의 목을 시원하게 꺽었다. 도로스는 억, 하는 단말마를 내뱉으며 고꾸라졌다.

그래, 효과 하난 확실하다.
...다만 시술받은 사람이 정신을 잃어버려서 문제지.

"이,게 무슨!?"


경악한 윌슨이 도로스에게 달려가 상태를 살폈다.

"...진짜 해버렸군. "


"아니, 그러니까 말했잖아. 좀 난폭하다고."


프로바움은 손에  파이프를 던질까 말까 갈등에  표정으로 카지트를 응시했다. 사실 이 방법은 용병들 사이에서도 가끔 쓰이는 방법인지라 뭐라 탓하기가 어려웠다.



"영감, 내가 힘조절 하난 끝내주게 하잖아. 괜찮다구."


"정,말 이군,요. 어디 상,한  없,이 멀쩡합,니다. 그냥 기절했,을  입,니다."


닥터 윌슨은 절묘한 힘조절에 감탄했다. 그리고 '새로운 방법'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자면 멀미를 하지 않는다는 발상을 이렇게 활용할 줄이야! 용병 경험이 적은 윌슨은  신기한 역발상에 연이어 감탄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이 '방법'이 꽤나 마음에 드는 듯 했다.




"하아. 자네, 정말이지."



자동인형은 쓸쓸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시술의 효과는 확실했다. 정신을 잃은 도로스는 더 이상의 고통없이 확실히 잠이 든 듯 했다. 그리고 카지트는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도로스가 깨어날 때마다 같은 방법을 사용함으로서 시술의 신뢰도를 대폭 향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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