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1.만남 (8/100)



〈 8화 〉1.만남

카지트의 작은 복수 끝에 간신히 건물 안에 들어온 도로스는 이곳에 도시 치안대 본부라는 걸 깨달았다. 대로에서 봤던  차림을  인물들이 넓은  여기저기 활보하고 있으니 알아보지 못  수가 없었다.



건물 내부는 마치 고급 호텔의 로비처럼 꾸며져 있었는데 바닥은 매끄러운 돌로 이루어져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줬다. 석재와 금속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건물 내부는 건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감탄을 터뜨릴 정도로 고급스러우면서도 내구성을 잘 살린 모습이었다. 특히 천장에 달린 거대한 샹들리에가 인상적이었는데 수천개의 수정이 불빛을 반사시켜 극채색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마치 동화 속에서나  법한 화려한 모습에 도로스는 위축되었다.

도로스는 괜시리 옷매무새를 다듬고는 한쪽에 위치한 카운터로 발을 옮겼다.

 다섯 개의 카운터엔 근무중인 직원들이 고객들과 한창 말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조용한 언쟁이라는 것이 이러할까. 분명히 어조나 내용은 평이하기 짝이 없었지만 맴도는 분위기만큼은 돌연변이  섯은 너끈히 잡아낼 전사의 그것과 같았다.



도로스는 도시의 살벌함에 놀라면서도 눈치껏 줄을 섰다. 의뢰보상비의 작은 복수를 끝마친 카지트는 근처의 소파에서 손톱을 매만지며 늘어져있었다.


이윽고 차례가 되자 도로스는 카운터로 다가갔다.




"어서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수인의 기계적인 친절에 도로스는 잠깐 말을 잃었다. 마을에서 이런 경험  볼 기회는 없었으니, '기계적인 친절'에 도로스가 느낀 것은 맞지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위화감이었다.


"음, 토벌대를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만.."

도시의 고풍스런 대화법을 모르는 도로스는 다짜고짜 용건을 내밀었다.


"어...예?"


완곡한 표현법을 기준으로 삼는 도시인의 입장에서 도로스의 직설적인 화법은 상대를 당황시키기 충분했다. 거기에 앞뒤 설명없이 다짜고짜 토벌대를 보내달라고 하니 당연히 직원은 당황했다. 도로스는 실수를 깨닫고 어안이 벙벙한 직원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순식간에 썩어들어가는 직원의 표정을 볼 수 있었다. 금새 다시 표정을 웃는 얼굴로 바꾸긴 했지만 그너머에서 '왜 하필 내가 일할 때 이런 일이 생기는가!' 외치는 소리없는 절규는 여실히 느껴졌다. 타는 속을 삼킨  직원은 기다려달라 말하며 자리를 비웠다. 말단인 그에겐 벅찬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도로스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잔뜩 긴장한 그의 감각은 발소리로 주위 사람들을 구분할 정도로 민감해졌다. 그리고 그 감각 속에서 그는 카운터로 되돌아오는 직원의 발소리를 잡아냈다.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현재 저희들의 여건이 되지않아 토벌대는 파견할 수 없습니다. 고객님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여건이   가능한 빨리 토벌대를 조직해서 파견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기다려주십시오."

도로스의 감정은 절망, 안도, 기대로 순차적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처지가 웃긴지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지트는 피식 웃었다.



"그게 얼마나 걸립니까?"



"그건...현재 저희로썬   없습니다. 고객님의 마을을 제외하고도 여러 도시와 마을에서 토벌대를 신청했기 때문에 그 이후에나 가능할 듯 합니다. 불편을 드려죄송합니다."



끄응, 그는 낮은 신음을 흘렸다. 도로스가 무언가  물어보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누군가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아유, 아닙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도로스는 만류한 카지트는 팔을 두른 채 그를 끌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건물 밖은 가라앉은 도로스의 기분과 달리 활기찼다.

"카지트씨..좀 더 물어보려고 했는데.."



방독면에 가려져 볼 수는 없었지만 대강 도로스의 마음을 짐작한 카지트는 도로스의 목을 끌어안고 가볍게 꿀밤을 먹였다.




"얌마, 그냥 그만둬. 저건 그냥 바쁘고 귀찮으니까 꺼지란 소리야."



"예? 설마요.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들었는데."



"아니, 그게 꺼지라는 소리라니까. 니가 뭐라고 하든 우린 상관 안  테니까 가라는 거지."


"그렇게 친절했는데요?"



"걔넨 원래 그래. 그게 일이니까."


"예? 정말요? 진짭니까? 그럼 가능한 빨리 보내겠다는 소리는요?"


"언제 보낸다고 구체적으로 말 안했잖아? 결국 안보내겠단 얘기지. 다른 곳에서도 신청했다는 건 그냥 안 보낼테니까 가라는 소리고."


도로스는 복잡무쌍하고 속뜻을 읽어야하는 도시의 표현법에 지쳤다. 완곡하게 에둘러서 말하는  아무래도 그와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냥 싫으면 싫다 말하면 좋을텐데.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은가. 카지트도 그 의견에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뭐, 도시에 처음 온 방문자들이 으레 저지르는 실수지. 여긴 체면이니 뭐니 신경쓰는 게 많단 말야."




흥, 하등 도움도 안되는 건데 말이지. 카지트는 콧방귀를 꼈다. 도로스는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그럼..결국, 토벌대는 안온다는 소리죠?"



"응, 맞아."


"..빌어먹을."



도로스는 울분을 토해냈다. 고생을 하면서 이곳까지 왔건만, 방금의 문답으로  고생이 헛수고가 되어버렸다. 마을의 위험을 해결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 지 알 수 없어 도로스는 우두커니 섰다.

카지트는 좌절한 도로스의 모습을 안타깝게 보면서 은근슬쩍 떠봤다.




"이봐, 도로스. 혹시 토벌대를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할래?"



도로스는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순간 잘못 들었나 고민하던  도로스는 다시 한 번 물어보는 카지트의 말에 귀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확인했다.



"예? 그게 무슨.."


"말 그대로야. 다른 방법이 있다면?"


도로스는 카지트가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음을 눈치챘다. 누구라도 이런 서로 짠 듯한 타이밍에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내놓는다면 상대가 무언가 원하는 게 있음을 손쉽게 눈치채리라. 또한 그 대가가 절대 작지않다는 사실 또한.

그러나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다는 게 바로 이런 경우일까. 그 정체모를 제안을 거절하기엔 보상이 너무나 간절했다. 도로스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카지트는 빙그레 소리없이 미소지었다.


"좋아. 자세한 이야기는 내 집에 가서 하자. 여긴 너무 시끄럽거든."

새끼 손가락으로 귀를 후벼파며 카지트는 익살맞게 말했다. 아마 단 둘이 이야기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혹은 비밀스러운 이야기일  같았다. 그리고 도로스는 카지트가 어째서 자신으로 정했는지 그 이유를 몰랐다. 특징이라고 해봤자 체구가  작고 먼 마을에서 왔다는  뿐인데.


도로스가 생각에 빠져있을 때, 카지트 또한 난감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어..잠깐. 데려가야하나."



동료들이 그의 집을 볼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떠올랐다. 하는 짓과 안맞는다는 소리부터 이중인격자 소리까지 들어본지라 굳이 누군가를 집에 데려가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딱히 집에 문제가 있다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런 소릴 듣는 건 달갑지 않았다.


카지트는 당황스런 얼굴로 잠시 멈춰서 중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며 "에라 모르겠다" 말했다.



"어..? 집이요? 카지트의?"




"어? 어. 왜, 불만 있냐?"



"아뇨, 불만있겠어요? 그런데 카지트가 사는 집이라면.."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도로스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카지트는 그럴 줄 알았다며 한숨을 내쉬곤 그의 등짝을 후려쳤다.

"임마, 난 쓰레기의 바닥이라던가 그런데 안 산다고! 장담하는데,  집이 너네 집보단 깨끗할 걸?"


도로스는 자신이 카지트와 만난 선지자들의 뒤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음을 느꼈다. 저렇게 먼저 할 정도면 얼마나 많이 같은 질문을 받았던 걸까? 쓰레기의 바닥이란 구체적인 소리까지 나온 걸 보면 그에 대한 세간 혹은 주위의 평을 대강이나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는 카지트의 의외의 소심함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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