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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화 〉1.만남 (7/100)



〈 7화 〉1.만남

"와.."


도로스는 눈 앞에 펼쳐진 장엄한 도시의 모습에 말을 잃었다. 700년도 더   사람들의 유적을 기반으로 세월의 흐름을 쌓아온 도시는 돌과 금속, 그리고 톱니바퀴가 어우러져 기이한 아름다움을 발했다. 수백미터 위의 천장엔 매연과 가스가 구름과 안개처럼 천장을 가렸고 그 너머로 수백년 동안 이어진 인공조명의 빛이 어른어른하게 비췄다. 그 주위엔 톱니바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밤이 되면 낮의 강력한 조명대신 은은한 빛을 뿌렸다.




그 아래 땅바닥엔 지금은 잃어버린, 하늘조차 만들어내는 위대한 옛 기술을 찬양하는 듯 수많은 석조, 금속 건물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금속과 석재를 적당히 섞은 건물들은 각 시대별의 건축양식에 따라 그 모양이 미묘하게 나뉘었다. 가령 700년 이상 된 건물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탁한 은빛의 금속으로 지어졌는데 대부분의 모양은 일체의 장식없이 위로 길쭉한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에 반해 300년 전의 건물은 석재를 기반으로 약간의 강철 혹은 합금을 넣어 지었는데 외관을 화려하게 꾸미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한 다채로운 건물들이 대로를 기준으로  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건물 위에 얹힌 건물들도 심심찮게 보였는데 도로스의 눈엔 하나같이 이상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석재의 회색빛과 탁한 금속의 소리 위에 누르스름한 불빛을 끼얹은 것 같았다.  사이사이 보이는 가로등엔 램프들이 톱니바퀴의 챗바퀴에 맞춰 노란 불빛을 흔들고 있었다. 땅 속의 거대한 공동에 자리잡은 도시는 옛 것의 고풍스런 향내와 현대의 활기찬 정취가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도시의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대로는 거의 대형 파이프의 지름만큼이나 컸다. 대로엔 각종 수인종과 충인종, 자동인형들이 활보하고 있었는데 보이는 숫자만  자리는 가볍게 넘기는 듯 했다. 몇몇은 카지트와 일행처럼 가죽 혹은 강철 방어구와 무기를 장비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대로의 한 구석엔 검은색을 기조로 파란 장식이 들어간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이 있었는데, 차고있는 무장이나 군기잡힌 모습을 보아 아마 도시의 치안을 책임지는 치안대인 것 같았다.  다종다양한 물결을 바라보던 도로스는 문득 한 가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그 다채로운 인종 사이엔 '인간'이 없었다.


"카지트.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음? 뭔데?"

"여기에 인간은 없나요?"


"..허? 인간?"

"예."

잠시 침묵하던 카지트는 이내 파하하, 하고 박장대소하며 도로스의 등을 팡팡 때렸다.

"너, 진짜 순진한 녀석이구나! 흐하하하!"




도로스는 영문을 몰라 당황한 눈으로 카지트를 올려다봤다.



"'인간'같은 건 있을리가 없지. 애초에 그건 전설아냐? 옛날엔 '인간'이 많았다는데 말이지. 난 말야, 지금까지 살면서 '인간'은 만나 본  없다고."



"...그렇습니까."




도로스는 당황하여 고개를 숙이고 방독면을 매만졌다. 마을 사람들의 걱정어린 진중한 조언이 귓가에 흘렀다. 인간임을 숨겨라, 였지. 처음엔 이해 못했었지만 이제는 어렴풋이 그 뜻을 알  같았다. 도로스는 조심스레 일행을 살폈다. 벌써 저만치 앞서 나간 카라와 카노, 발멘이나 옆의 카지트에겐 딱히 들킨 것 같지 않았다.



카지트는 도로스의 그런 행동을 실망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는지, 또다시 등등 팡팡 두들기며 그를 달랬다. 수인의 근력이란 종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인 도로스보단 월등히 뛰어났다.

"뭐어, 머어어어언 곳에서 온 사람들이 도시엔 모든 게 있을거라 생각하는 건 흔한 일이니까. 나도 여기 올 땐 금방 부자가 될 수 있을 줄 알았지. 근데 사실은 별로 그렇지도 않더라구. 아마 인간을 보고 만지면 행운이 온다던가, 인간을 잡아서 팔면 삼 대가 놀고먹으면서 살 수 있다던가, 그런 소문을 들은 것 같은데 아마 다 거짓말일 거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기보다 왜 거기에 돌이 있는지 탓하는, 뭐 그런 멍청한 생각이라고."



앞뒤가 맞지않는  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은 카지트는 이내, "나 방금 멋있는 말하지 않았어?" 외치며 그걸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도로스는 카지트의 말에서 무언가 좋지않은 내용을 집어내고는 카지트의 엉망진창인 말을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곧바로 물어보는 쪽을 택했다.



"인간이..비싼가요?"




"글쎄? 아마 그렇겠지? 희귀하다 못해 전설의 생물취급이니 있다면 부르는 게 값일 테지. 근데 경매장엔 올라온 적 없어. 적어도 내가 아는 한. '뒷쪽'경매에선 인간이 나온 적 있다고는 하는데, 글쎄. 그쪽엔 별로 관여하고 싶지않아서 말이지."

나왔다고 해도 그게 진짠진 어떻게 알겠어? 카지트는 덧붙였다. 도로스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확실해진 게 있다면,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것이다. 도로스는 다시  번 방독면을 매만졌다. 항상 쓰고다니던 방독면 덕분에 얼떨결에 위험을 피한 셈이었다. 도로스는 속으로 안도하며 하루빨리 마을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쫑알쫑알 시끄럽다! 그만 떠들고 빨리 와라!"


저만치 앞서간 발멘이 화를 내며 재촉했다. 곁의 카노와 카라도 얼른 들어가 쉬고싶은지 재촉하는 눈치였다. 도로스는 상념에서 벗어나 휘황찬란한 도시의 광경에 몸이 달아서 카지트에게 은근한 시선을 던졌다. 순진한 눈망울에 카지트는 피식 웃고는 일행을 따라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도착했군. 그럼 정산을 시작할까."

카라가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고생을  까닭인지 얼굴엔 짙은 피로가 누덕누덕 붙어있었다. 본래 고급품이었을 가죽옷도 험한 꼴을 겪은 탓에 군데군데가 넝마조각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너덜거렸다. 일행 중 별다른 피해없는 사람은 역시 카지트와 발멘이었는데, 파이프 속에서 묻은 먼지 따위가 그들이 입은 피해의 전부였다. 산책이라도 갔다온 듯한 모습에도 카라와 카노는 감흥없는 모습으로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돌을 재료삼아 특수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 종이는 쉽게 손상되지 않았으므로 그간의 격전 속에서도 무사했다. 도로스는 어렴풋이 저것이 의뢰보상금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들이 종이를 내밀었을 때, 발멘은 빼앗듯이 낚아챘다. 그리고는 나머지 한 손을 다시 내밀었다. 카라와 카노는 카지트의 반응을 살피듯 그를 잠깐 쳐다보았다. 카지트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으므로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나머지 종이에 무언가를 마저 적고 발멘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정산을 마치도록 하지. 그간 수고 많았다."



카노와 카라는 지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재빠른 걸음으로 멀어졌다. 분명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관련되고 싶지않다는 비장감마저 느껴졌다.


"흥,  귀찮은 짓거리도 드디어 끝이군. 이 돈은 감사히 쓰지."



발멘은 끝까지 이죽거리더니 손에 든 문서들을 탁탁 치곤 도로스와 카지트에게서 멀어졌다.


그렇게 힘들게 돌아왔건만 건진 건 하나도 없다니. 도로스는 카지트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목숨을 구해준 것도 모잘라 자신 때문에 의뢰보상비 마저 잃지 않았는가. 도로스는 무언가 말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를 짓누르는 죄책감은 그의 입을 단단히 잠구어버렸다.



"..에휴."

카지트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뜻모를 한숨에 도로스는 잔뜩 긴장한 채 조심스레 그를 바라봤다.

"얌마,  괜찮으니까 신경쓰지마."



카지트는 그의 등을 팡팡 때렸다. 힘조절을 했다 해도 기본적인 힘이 어디가는 건 아니라 맞을 때마다 몸이 덜커덕 거렸지만 도로스는 이번만큼은 별로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위로하려다 오히려 위로받은 꼴이잖은가. 머리 한 구석에선 그렇게 생각하면서 도로스는 카지트의 배려에 감사했다.


"그보다, 이제 어떻게  거야? 도움을 요청할 거라며?"


"예, 토벌대를 요청해야죠. 저기..."


도로스는 말을 흐렸다. 받은  많아 또 무언가 부탁하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음? 뭔데?"

카지트는 도로스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음, 그러니까.."




"그러니까?"




"혹시 토벌대를 요청하려면 어디로 가야할 지 압니까?"



주저하던 도로스는 이내 원하던 바를 입밖으로 꺼냈다. 목구멍에서 입으로 나오는 동안 말이 조금 걸러졌는데, 그가 본디 하고 싶었던 말은 '길을 잘 몰라서 그러는데 좀 데려다 주실 수 있습니까?' 였다. 눈치하난 기가 막히게 좋은 카지트는 그 속뜻을 깨닫고, 길이 복잡하니 데려다 주겠다 라는 말로 그를 기쁘게 하는 한편 죄책감을 늘렸다.



"근데,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카지트는 씨익 웃고는 앞장섰다.

출발한 지 5분만에 도로스는 카지트가 곁에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사를 느꼈다. 길은 왼쪽으로 갔다가 살짝 꺾은 후 위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왼쪽으로 가는 등 변화무쌍하고 기괴막측해서 도로스는 깊은 탈력감을 느꼈다. 그가 원하는 장소에 도착 하자마자 쌓여있던 피로가 몰려오는 까닭에 도로스는 반쯤 무너질 뻔했다. 역시 도시사람은 다르구나. 매일 저런 길을 이용한다고 생각하니 깊은 경이와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런데 들어올  본 대로는 이렇게 복잡하지 않은  같았는데?

"세상에, 원래 도시는 이렇게 복잡합니까?"

"그럼, 건물들이 하도 여기저기 많아서 복잡하지."


"그럼 다른 사람들도 매일 이렇게 다니는 겁니까? 도시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네요."


"설마, 매일 이렇게 다닌다고 한다면 여긴 진작에 버려졌을 걸? 누구나 편한  좋아하니 말이야."

카지트는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가리켰다. 그들이 지나온 인지능력과 균형감각을 시험하는 길과는 달리 제대로 정비된-심지어 도로포장마저 흰색과 검은색 돌로 문양을 그리도록 배치되어 있었다.-길이 있었다. 도로스는 말 못할 허탈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 반쯤 맛이간 눈으로 카지트를 바라보자 그는 어깨를 으쓱 했다.


"보통은 저길 쓰지. 편하거든."

태평한 어조에 화조차 나지않았다.


"그럼 왜..?"


"그냥. 재밌잖아."

뭐가 재밌다는 건지 피식 거리는 카지트를 앞에두고 도로스는 죄책감이든 뭐든 다 갖다버리고 눈앞의 고양이놈을 쏴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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