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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 〉1.만남 (4/100)



〈 4화 〉1.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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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스는 부러진 볼트 끝을 깨어진 파이프에 쌓인 흙더미에 대고 돌멩이로 내리쳤다. 깡깡 울리는 쇳소리와 함께 후두둑 흙덩미가 쏟아져내렸다. 처음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 지 조금 망설였으나 이내 감을 잡은  속도가 붙기 시작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얕은 굴이 생겼다.



도로스는 훌쩍 굴로 뛰어올랐다. 등에 맨 대형 크로스보우를 고려해서 굴을 넓게 팠기에 쭈그려앉아야 한다는 점을 빼면 그리 큰 불편은 없었다. 장갑낀 손으로 천장을 툭툭 건드리자 흙가루가 조금 떨어졌지만, 감촉이 단단한 게 무른 흙은 아니라 그리 쉬이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볼트와 돌멩이를 끌과 망치삼아 굴을 팠다. 볼트 끝에서 느껴지는 흙의 감촉에 따라 강약을 조절하는 솜씨는 누가봐도 하루이틀 파본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한 두시간을 파자, 마침내 그가 기대했던 광경이 그를 반겼다. 넓은 파이프였다. 라이트는 파이프 속에 똬리를 튼 어둠을 쫓아내고 내부를 밝혔다. 둘레는 그가 예상했던 대로 약 6m미터 전후인 것 같았다. 도로스는 파이프 벽에 다가가 벽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단단한 무쇠의 감촉. 어디하니 깨지거나 금간 곳 없이, 약간 녹이 슨 정도였다. 도로스는 좁은 소형 파이프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곳도 흙더미가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소형 파이프의 외벽만이 군데군데 나와있었다. 큰 파이프를 작은 파이프가 가로지르는 형식은 그리 흔하진 않지만 가끔  수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그런 구조를 생각해 봤을 때, 아마 이곳도 원래는 뻥 뚫린 통로였을 것이다. 그걸 저 흙더미가 메워버렸겠지. 이 파이프도 어딘가 파손된 것 같았다. 천장까지 가득 메운 토사 어딘가에 구멍이 나있을 것이다.


생각을 마친 그는 뒤돌아서 눈 앞에 펼쳐진 어두운 통로를 잠시 노려보다 걸음을 옮겼다. 이미 되돌아가기엔 늦었다. 그리고 감뿐이지만, 왠지 모르게  길이 맞는  같았다.




++


통로는 넓고 어두웠다. 좁은 파이프에서야 라이트의 광량만으로 파이프 좌우 전체를 비출  있었지만, 이런 넓은 파이프에선 고작 자기 앞이나 밝히는 게 다였다. 도로스는 오른쪽 벽에 붙어서 걸어갔다. 가끔씩 몸을 왼쪽으로 틀어 빛을 비추는 것도 잊지않았다. 돌연변이 중엔 어둠 속에 숨어있다 기습하는 녀석도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벽에 붙어있던 녀석이 기습한다면 꽤 곤란해지리라.



투둑. 투두둑.



수 십미터 밖에서 떨어지는 돌멩이 소리도 들을  있도록 단련된 그의 귀는 저 멀리 들리는 소리를 감지했다. 도로스는 황급히 불빛을 끄고 최대한 소리를 죽였다.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타닥 타닥.


거리는 빠르게 좁혀졌다. 도로스는 다가오는 대상이  발이라는 것, 뛰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한 마리라는  눈치챘다. 그러나 그는 방심하기는 커녕 한층 더 긴장한 모습으로 천천히 보우건을 꺼냈다. 달리는 속도가 심상찮기 때문이었다. 분명  십 미터도 넘게 있었는데 눈 깜짝할 새에 수 미터는 우습게 제꼈다. 거기다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걸 보니 불빛을 눈치챈 게 확실했다. 도로스는 이번 싸움이 힘들어질 거라는  어렴풋이 느꼈다.


8m,7m,6m..눈 한  깜빡이는 사이에 상대는 그의 지척까지 도달해있었다. 캄캄한 어둠에 익숙해진 한  눈에 어렴풋한 실루엣이 스쳤다. 빌어먹을, 도로스는 목구멍까지 기어올라온 욕지거리를 내리눌렀다. 잠깐 눈으로 훑었음에도 실루엣의 크기는


그보다 확연히 컸다. 도로스는 재빨리 라이트를 키면서 보우건을 쐈다. 굳이 조준할 필요는 없었다. 도로스의 두 배만한 크기라면 대충 쏘는 데로 다 맞을 테니까!

한 순간 세상이 하얗게 물들었다. 백내장에 걸린 것처럼 하얗게 녹아내리는 시야에 그를 향해 뛰어오른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크롸아아!!



팅팅팅!!



도로스는 라이트를 끔과 동시에 바닥을 굴렀다. 동시에 후웅, 하는 풍압이 그의 뒷머리를 스쳤다. 그는 튕기듯이 일어나 거리를 벌렸다. 한쪽 눈을 맞춘 것 외엔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그의 머릿 속엔 방금 봤던 녀석의 모습이 선명했다.


크기는 그의 두배 정도. 누렇게 바란 갈색 털과 검은 색 줄무늬는 군데군데 녹아서 핑크빛 살갗을 드러내고 있었다. 반쯤 녹아내린 주둥이엔 그의 주먹만한 이빨들이 빽빽히 들어차있었다.

녀석은 비틀거리면서 고개를 좌우로 털었다. 눈을 파고드는 격렬한 고통에 정신을 못차리는  같았다.

도로스는 재빨리 등에  대형 크로스 보우를 꺼내 자세를 잡았다. 이 때가 아니면 기회는 없었다.

"후우..흡!"

그는 맞추기 힘든 머리보다 몸통을 겨누고 쐈다. 기동력을 빼앗는다면 상대하기 한층 수월해 질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그의 예상만큼 녹록치 않았다.


고통으로 혼란스런 와중에 다가오는 위기를 느꼈는지, 놈은 옆으로 훌쩍 뛰었다. 대형 크로스보우의 볼트가 잔털을 긁고 저 너머로 사라졌다.



크르릉!




놈은 이를 드러내며 자신을 죽일 최고의 찬스를 놓친 사냥꾼을 비웃었다.

돌연변이는 몸을 잔뜩 웅크렸다. 눈 하나가 없어졌다해도 그 속도는 어디가는 게 아니라서  번 뛰는 것만으로 도로스와의 거리를 줄일 수 있었다.



도로스는 발리스타를 옆으로 던지고 자신도 몸을 옆으로 던져 굴렀다. 그러나 놈이  발자국  빨랐다.




"크윽!"




팔뚝만한 놈의 발톱이 그의 옆구리를 긁었다. 질긴 코트가 단번에 지익 잘리며 단말마를 내뱉었다. 덕분에 상처는 생채기에 그쳤다.




도로스 구르는 힘을 이용해 몸을 일으키면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의지해 놈의 뒤통수에  보우건을 갈겼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녀석의 가죽은 방호력이 특히 뛰어난지 볼트들이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 몇몇 개는 박히긴 했지만 달랑거리는 걸보니 표면에만 살짝 박힌 듯 했다.




도로스는 암담한 현실에 입술을 깨물며 발리스타를 힐끗 쳐다봤다. 저것이라면 충분한 피해를 입힐  있겠지만 놈은 아마 그럴 기회를 주지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보우건만으로 싸우자니 답이 없었다. 눈이나 입같은 약한 곳을 노려야하는데, 한 쪽 눈을 잃는 녀석도  사실을 충분히 알 것이다.



녀석은 느긋하게 몸을 돌려 도로스를 쳐다봤다. 놈도 도로스에게 방법이 없다는 걸 아는 듯 했다.



도로스는 조금씩 뒤로 물러나면서 보우건을 쐈다. 통하지않을 걸 알고있었지만 그래도 남은  그것밖에 없었다.

보우건의 속사를 몸으로 때우던 녀석은 별안간 땅을 박차고 뛰었다.



도로스는 본능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하지만 그게 최대의 실수였다!



놈은 영악하게도 파이프의 벽을 향해 뛴 다음, 벽을 박차고 한 번 더 뛰었다. 놈이 착지할 위치는 당연히 한  구른 도로스의 위였다!


도로스는 재빨리  손의 보우건을 버리고 단검을 꺼내 역수로 쥐었다.


"흐, 컥!"

팔과 다리로 최대한 몸을 방어한다고 했지만 녀석의 육중한 몸은 그에게 빈사상태에 준하는 충격을 가져다줬다. 극심한 충격 속에서도 그는 반사적으로 단검을 든 손을 녀석의 턱과 목 사이에 끼우며 최대한 녀석에게 바짝 붙었다.


녀석이 깨무려는 걸 어떻게든 저지하면서 도로스는 호흡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징징 울리는 팔다리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않아, 단검을 쥔 왼손으로 녀석을 저지하는데 온 신경을 집중해야했다.



쿠웅!




녀석의 앞발이 땅을 긁었다. 도로스가 녀석에게 바짝 붙어있어 제대로 맞추기 힘들었다. 도로스는 녀석이 물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왼팔에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무언가 하지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죽을지도 몰랐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 보우건을  오른팔로 녀석의 머리를 끌어안고 두 다리를 녀석에게 끌러메어서 매달렸다.



크아아앙!!

당황한 녀석이 몸을 굴려가며 난리를 피우자 도로스는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지만 필사적으로 명멸하는 정신을 일깨웠다. 여기서 기절하면 죽는다!!

그는 단검의 끝을 녀석에게 겨눌  있도록 놈의 목을 받치고 있는 왼팔을 조금씩 움직였다. 놈의 목을 받치는 부분이 팔목에서 팔뚝으로 바뀌었을 때쯤, 그는 날카로운 단검의 끝을 녀석의 목에 겨눌 수 있었다. 녀석도 그가 목을 노리고 있다는 걸 아

는지 그를 떼어놓기 위해 난동을 피웠다.

쿵!쿵!




돌연변이가 파이프 벽에 부딪힐 때마다 충격이 도로스의 내부를 울렸다. 도로스는 힘겹게 단검의 칼끝을 내리눌렀지만 힘이 부족해 녀석의 가죽을 뚫을  없었다.

"흐,으으으.."




도로스는 힘겹게 신음을 흘리다 결국 놈에게서 떨어졌다. 팔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부들부들 떨렸고, 몸에 겹겹이 쌓인 충격으로 입가엔 핏물이 새어나왔다. 도로스는 힘이 들어가지않는 팔을 애써 들어올려, 보우건을 양손으로 쥐고 쐈다. 그러나 볼




트는 애꿏은 허공을 때렸다. 그나마 목표를 맞춘 소수의 볼트마저도 힘없이 땅바닥에 나뒹굴렀다.



여기서 죽는가, 도로스는 눈을 감았다. 어둠속에서 광기와 분노로 번들거리는 노란 눈알이 눈에 선했다. 결정타를 먹어 제대로 싸울  없는 상황에서 그는 최선을 다했다. 남는 미련이 있다면 토벌대를 부르지못한 것 뿐이다. 그의 누이와 친구, 가족들


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작은 걱정이 거품처럼 일었다 터졌다.




천천히.


승리를 기념하려는 듯 놈은 크아앙 울부짖고는 움직였다.




타앙!



..그리곤 거꾸라졌다.




도로스는 상황판단이 안되 멍하게 눈을 떴다.



"이봐! 아직 살아있나?"

 멀리에서 메아리처럼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래도 아직 죽을 때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도로스는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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