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프롤로그 (1/100)



〈 1화 〉프롤로그

축축한 어둠 위로 도로스의 발자국이 흐릿하게 찍혔다.
새까맣게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왼쪽 어깨에 달린 조명만이 외로이 검은 장막을 가르고 앞을 비추었다. 이 조명마저 없다면  앞에 도사린 기이한 어둠속에 잡아먹혔으리라.


그는 조심스레  발자국 씩, 그러나 느리지않은 속도로 걸음을 내딛었다.
발 딛음 할 때마다 신발 아래서 느껴지는 흙과 폐기물들의 단단한 감촉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암흑 속에서 그의 이정표이자 길잡이가 되어주었다.

후욱.


나비의 날개짓 마냥 작은 한숨은 방독면 필터를 거쳐 태풍처럼 커다랗게 울렸다.
만약 누군가 곁에 있었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걸음을 옮기던 도로스는 돌연 멈춰섰다. 내뱉은 한숨에 놀라서가 아니다.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귀가 짙게 깔린 침묵의 장막 너머의 소란스러움을 잡아챘기 때문이다.

도로스는 재빠르게 라이트를 끄고 가만히 서서 소음에 귀를 귀울였다. 라이트를 끄자마자 삽시간에 새까만 암흑이 그의 주위를 베어먹었다. 이윽고 그의 몸은 어둠에 녹아 사라지고, 후욱후욱 거친 숨소리만이 방독면너머로 새어나왔다.



시꺼먼 통로 너머에서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듣는 것만으로 불쾌해지는  소리는 전혀 우호적이지 않았다.



아드득 끄레렉 끄렉.




괴이한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빛을 보고 왔나, 도로스는 속으로 혀를 찼다. 파이프는 일직선이다. 즉, 뒤돌아가지않는 이상 서로 마주칠 수 밖에 없다.


파이프의 넓이는 성인 서넛이 나란히 서면 꽉 찰 정도. 대형 파이프였다면 벽에 바짝 붙어 녀석들이 지나치길 기대할  있지만, 이런 소형 파이프에선 불가능하다.




도로스는 허리춤에 찬 두 보우건을 천천히, 그러나 강하게 움켜쥐었다. 꾸득, 하고 가죽장갑이 약한 신음을 흘렸다. 도로스는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악취와 유독가스로 범벅된 공기가 방독면 필터에 걸러져 그의 폐부 깊숙한 곳까지 가득 메웠다.


그는 조용히 보우건 한 정을 뽑아들었다. 놈들의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로스는 보우건을 앞에 겨누고 다른  손으로 라이트의 스위치에 갖다 대었다. 한 쪽 눈을 감았다.

소리는 그의 근처까지 다가왔다. 거리로 치자면 대략 8m 전후. 점점 또렷하게 들리는 돌연변이들의 신음에 그는 천천히 놈들의 머릿수를 가늠했다. 소리를 들어보니 한 놈은 아니었다. 아마 두 놈.


 놈이면 충분히 해치울 수 있다.



거리가 5m 남짓 좁혀졌을 때, 도로스는  쪽 눈을 감은 채로 왼쪽 어깨에 달린 라이트를 재빨리 켰다가 껐다. 시야를 교란 시킬 셈이었다.



끼야아악! 키이이익!

퉁퉁퉁퉁.



라이트의 광량은 순간적으로 돌연변이들의 시력을 앗아가기 충분했다. 괴물들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와 함께, 북을 치는 것같은 소리가 연달아 났다. 사위가 다시 새카매졌다. 감았던  쪽 눈을 뜨자, 암순응된 시야에 죽어 나자빠진  돌연변이가 보였다.


살가죽밖에 없는 것과 파충류를 닮은 듯한 것. 다시 라이트를 켜보니, 군데군데 썩어있거나 상한 곳이 있었다. 아무래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로스는 녀석들의 얼굴(로 추정되는) 부위에 박힌 볼트를 뺐다. 끈적이는 피가 볼트에 묻어났다. 도로스는 코트자락으로 볼트를 슥슥 닦고는 보우건에 달린 탄창을 떼어 거기에 집어넣었다.

잠시 서서, 멍하니 흰색과 검은색의 경계선을 쳐다보던 도로스는 발걸음을 옮겼다. 터벅이는 발소리는 점점 작아지더니, 이윽고 사라졌다.



밝은 빛에 몸을 뒤틀던 어둠이 적막을 베개 삼아 파이프 속에 몸을 뉘였다. 아무것도 보이지않고, 들리지않는 곳에 시체  구만이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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