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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125화 (126/128)

125화

합법 사령술사-2

바바 야가. 유로파 동부를 대표하는 초월자.

이 제멋대로의 미녀를 겪은 이라면 누구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적인 자리에서는 물이지만 공적인 자리에서는 얼음이다.’

그 말답게 규칙과 공정함에 관한 부문에서는 시베리아의 혹한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때문에 회의장에 모인 마법사들을 향해 차가운 조소를 흘렸다.

“다르긴 뭐가 달라. 내가 니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데 너희들 생각을 모를까봐?”

마법사들을 비웃은 바바 야가가 팔짱을 꼈다.

“사령술 공인하면 다른 마법사들이 막 항의하고 각국이 핀잔 주고 교황청이 옆구리 찌르고 그래서 너희들 권위 떨어지고 할 일 많아져서 그런 거잖아.”

마법사들이 오래도록 회의를 끈 이유를 딱 한 문장으로 함축한 바바 야가가 낄낄거렸다.

“......”

“어디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니. 할 말 있어?”

“그게 무서운 게 아니라 그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염려하는 것입니다. 저희의 선택으로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방지해야......”

“끝까지 변명하네. 그걸 원하면 내가 잡고 늘어져 줘야지. 내가 재밌는 얘기 하나 들려줄까?”

변명의 허리를 자른 바바 야가가 절구통에 자세를 고쳐앉고는 말을 이었다.

“검은 역병 끝나고 사령술사는 죄가 있건 없건 다 죽인 거 알지?”

검은 역병 때, 많은 사령술사들이 악마의 편으로 돌아섰지만 그러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사실상 역병을 종언시킨 공은 그들의 공이었다. 사령술은 사령술로 막는 게 가장 좋았으니.

그러나 사태가 끝나고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증오어린 칼날뿐이었다.

“너희들도 연맹의 역사에 대해 공부했다면 알겠지만, 나는 그때 학살에 반대했다. 악마한테로 돌아선 놈들이 문제지 학문 그 자체는 죄가 없다고. 언젠가는 저 혼 팔아먹은 것들이 다시 고개 쳐들 때가 있을 테니 그때 대비해서 보존하자, 굳이 왜 없애고 단절시키냐. 내가 그때 다른 초월자들하고 애들한테 무슨 말을 들었게?”

“......”

“걔네들도 나쁜 짓 할 수도 있으니까랬다? 웃기지 않냐? 일어나지도 않은 일 가지고 무서워서 그랬다는 거 아냐. 니네가 지금 딱 그짝이야. 어떻게 힘을 쓸지 모르니까 경계? 너희들 벌 무서워서 꿀 못 딸 일 있니? 창칼 무서워서 그동안 전쟁은 어떻게 나갔을까? 너희들 마법 수련 무서워서 어떻게 하고 살았니? 도중에 잘못하면 폐인 되는데? 야 이 머리에 물찬 놈들아. 니네 스승이나 부모가 그렇게 무식하게 생각하라고 가르치디? 야, 통역 똑바로 해. 그대로 말해라 순화시키지 말고.”

괜히 정보 부서 직원만 핀잔을 받았다. ‘에이 모르겠다’하고 직원은 바바 야가의 말을 그대로 통역했다. 말단 직원이 언제 또 고위 마법사들에게 합법적으로 욕할 기회가 있겠나.

“그게 아니라.......”

“오오, 억울해? 그럼 예 하나 들어봐?”

약 이백 년 전까지만 해도, 유로파 중부에는 강력한 국가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순간에 갈가리 찢겨나갔다. 사악한 마법을 연구했다는 것이 들켜 마법사 연맹과 강대국이 그들을 적으로 돌렸고, 내부 반란이 겹쳐 순식간에 멸망한 것이다.

하지만 그 나라는 억울했다.

유로파에서 더 공고한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당시 마법사 연맹의 간부들과, 다른 강대국 왕실의 경계심, 교황청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 멸망한 그 국가 내부의 야심찬 귀족들의 합작품이었다.

“대선장이 ‘혹시나’ 나쁜 짓 할까봐 공인이 힘들다? 뭐 그래. 그게 다수의 논리라면 나도 따라 줘야지. 연맹 자체가 또 그런 짓을 할지 ‘혹시’ 모르니까 예방 차원에서 너희들 죄다 잡아가둘까 하는데. 또 그런 나쁜 짓 할 수 있잖아 너희들. 어휴, 미래를 어떻게 알겠니. 아예 연맹도 해체하자 그럼.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마법사들하고 귀족하고 왕실도 싹 다 지하감옥에 처박아 놓자. 어때?”

마법사 연맹의 치부를 그대로 발언하며 모두를 비꼬는 바바 야가 앞에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일부는 처음 들었다는 듯 놀란 표정이기도 했다.

“그 나라 멸망한 다음에 거기 가담한 것들 다 내가 닭으로 만들어서 저 멀리 대서양에 갖다 뿌렸어. 관련 있는 왕족, 대귀족, 사제까지 싹 다. 그때 몇 나라 왕들이랑 교황도 책임지고 자리에서 내려왔다? 몰랐지? 그런 의미에서 너희들도 대서양 고기밥 되는 경험 한번 해볼까?”

그 커다란 사건 이후, 마법사 연맹은 주기적으로 초월자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공식적으로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규칙 역시 그때 더 보완되었다.

“내가 보기엔 말야, 너희들 슬슬 고여서 썩을 때가 됐어. 이미 완전히 실전된 마법을 용케도 복구한 녀석이 기특하진 못할망정, 문제가 없는데도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축출하려 해? 너희가 정말로 ‘지식을 수호하는’ 마법사가 맞냐?”

연맹은 마법사들에게 규칙을 제시함과 동시에 지식을 보호하고 교류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니들은 지금 창립 가치관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고 바바 야가가 눈치를 주고 있다는 걸 모를 마법사들이 아니었다.

연맹 부회장이 간곡히 말했다.

“저희가 일어나지 않은 점 때문에 지레 걱정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선장은 사령술사일 뿐만 아니라 해적입니다. 법을 무시하는 범죄자란 말입니다. 범죄자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자가 사악한 일을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저희는 어쩔 수 없이 신중한 태도와 그 여파를 고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악한 일이라. 그게 뭔데?”

“사령술은 죽은 이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그 개인 스스로 혹은 국가와 손잡고 선량한 이들을 죽여 군대로 만들고 그걸로 정복전쟁이라도 한다면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라 실제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글쎄? 내가 보기엔 그다지 문제없을 거 같은데. 신대륙에 너희가 한 짓을 봐봐. 사람 동원해서 사람 죽이는 거나, 시체 동원해서 사람 죽이는 거나 별반 달라보이진 않는데. 국가는 그래도 되고, 개인은 그러면 안 되나? 악마한테 영혼 판 것도 아닌데 자신의 능력으로 하는 게 뭐가 어때서? 역사 속에서 숱하게 왕과 장군이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럼 그 때마다 마법사 연맹은 왜 가만히 있었니?”

“능력도 능력 나름이지 도의적인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신대륙의 원주민은 이미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결정난 지가 오래입니다.”

“아 그래. 도의적인 문제라, 도의적인 문제. 그럼 그 대선장이란 애가 힘을 막 휘두르니까 걱정된다? 그거만 해결되면 되는 거야?”

“일단은, 그렇습니다.”

뭔가 말려드는 기분인데.

“좋아. 그럼 이제부터 이 의제는 초월자들한테 인계해라.”

폭탄선언이었다. 너희들이 떠들고 싸우고 난리친 건 다 무효고, 이제 초월자들끼리의 회의에서 결정하겠다는 얘기였다.

첩보 부서장이 깜짝 놀란 들쥐처럼 펄쩍 뛰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독선입니다! 아무리 초월자라 한들 회의에 이처럼 마음대로 개입해 저희들을 휘두를 권한은 없습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방금까지만 해도 너희들은 대선장 하나 두고 계속 결론 못 내고 있었잖아.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까봐, 저렇게 하면 이렇게 될까봐 무서워서. 그걸 우리가 해주겠다고. 너희같이 책임지기 싫어하는 애들이 좋아할 만한 제의 아니니? 아니면 설마 우리를 못 믿어서? 걔가 사령술로 일내면 우리가 가만히 있겠니?”

“......”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바바 야가의 말이 맞았다. 그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다. 정치적 문제에서 비껴가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었다.

그런 상황에서 초월자가 친히 개입해 준다? 두 팔 벌려 환영이었다.

초월자가 나선다는 건 모든 걸 납득할 수 있게 만드는 강력한 패였다. 책임도 떠넘겨지기 때문에 어느 한 사안을 결정하여 책임을 떠안게 될 마당이던 간부들은 속으로 환호를 질렀다.

첩보 부서장을 제외하곤.

“하지만 혼자만의 결정으로 중대사항을 처리하기엔......”

“어머 얘, 너 너무 나댄다.”

바바 야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알아듣기도 힘든 사투리가 아니었다. 매끄러운 에크나르프 어였다. 음색의 온도는 차가워져 마치 시베리아 한복판에 내던져진 것만 같았다.

“그 중대사항 앞에서 규칙은 생각 안하고 너희들 이득 먼저 생각하면서 떠들던 너희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너 이름 뭐니?”

“저, 저는 첩보 부서의 장을 맡고 있습니다. 제 자리는 비밀 자리라 이름을 말할 수는......”

“비밀이라. 그래, 이번은 넘어가줄게. 하지만 네가 누운 자리가 가시덤불인지 아닌지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지 않겠니? 정보를 다루는 부서에 있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머리가 없다. 너.”

“......”

“아무리 내가 시베리아에 틀어박혀서 과일이나 까먹고 있지만, 나는 얼마든지 너희에 대한 감사권을 주장할 수 있단다. 우리들이 과연 너희가 해온 자잘한 짓들을 몰라서 가만히 있는 거 같니? 한번 카펫 들춰봐?”

“......”

“뭐, 그게 불만이라면야 너희들 규칙을 존중은 해 줄게. 우리가 전적으로 세상을 휘둘러서야 되겠니 그지? 속세를 떠난 사람들이 구질구질하게 붙어 있는 것도 좋은 꼴은 아니니까. 오라비, 이제 그거 벗어.”

바바 야가의 손끝이 누군가를 향했다. 허름한 로브를 입은 이였다.

“아주 사방 난장판을 만들어놓는구만 그래.”

그가 두건을 벗는 순간, 얼굴 부분이 안개처럼 흐려지더니 가슴팍까지 길게 기른 순백의 수염이 드러나며 허름한 로브도 흰색과 푸른색이 적당이 뒤섞인 고풍스런 모습으로 변했다. 환상 마법이 해제된 것이다.

그 로브의 가슴팍에는 마법계에 있는 이라면 누구나 알아봐야 하는, 에크나르프의 한 학파의 학파장이라는 의미의 문장이 달려 있었다.

연맹 내부의 비밀 부서 소속이라 로브를 깊이 눌러 쓰고 있는 줄만 알았더니, 이게 웬걸!

“위, 위대한 에크나르프의 초월자를 뵙습니다!”

이구동성으로 그 문장이 모두에게서 내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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