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합법 사령술사-1
회의 사흘째.
삼파전은 아직도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마법사들의 정치적 우유부단함은 가열된 치즈처럼 길게 늘어져 끊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늘어지기만 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무의미한 언쟁을 누군가 좋은 방안을 내 멈추어야만 했다.
하지만 죽이자는 강경파를 제외한 나머지 두 파의 방안이 둘 다 그럴듯하게 들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중립파는 말수가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투표해서 정하자는 말은 아무도 꺼내지 않았다. 워낙 의견 간의 대립이 팽팽했고 이번 사안은 세상을 뒤흔들게 뻔한 일이다. 때문에 오히려 투표에는 신중했다.
그 사이에서 첩보 부서장은 의견을 듣는다는 핑계로 부지런히 각 파를 돌아다니며 기름을 뿌려댔다.
“첩보에 따르면......”
“아, 그러진 않을 거요. 대선장과 관련된 한 일화가 있는데......”
정작 말을 꺼낸 첩보 부서장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자신의 정보로 인해 한층 격화된 말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평소에 첩보 부서장은 연맹 내 일에 간섭하지 않는 편이었다. 이번 일에 관해 반대를 표명하는 게 이례적이긴 했지만 그 표명 한 것 외엔 다른 이의 토론에 끼어들지도 않고 그저 정보 제공만으로 그쳤기에 관심 갖는 이는 없었다.
그 행동거지는 첩보라는 이름답게 자연스럽고 은밀하여 정보 부서장 말고는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 첩보 부서장을 보는 정보 부서장의 눈길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
쿵 쿵 쿵
지축을 울리는 울림이 은은하게 땅을 진동시켰다. 누군가 대포를 쏜다거나 지진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명백히 무거운 물건이 땅을 밟으면서 일으키는 울림이었다.
“으악! 저게 뭐야!”
“비켜비켜!”
“조심해!”
베른의 넓은 길 한복판을 질주하는 기괴한 무언가에 사람들이 기겁하면서 건물에 바짝 붙거나 그대로 멈춰 섰다.
그건 집이었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집이 쿵쿵 걸어다니고 있었다. 집을 지탱하는 다리는 닭발이었다.
거대한 닭이 통나무집에 들어가 발만 내민 것처럼 보이는 기괴하고 큼직한 형체는 조그만 마차들을 용케 밟지 않으면서 드넓은 도로를 질주했다.
“집에 닭발이라니, 그럼 설마?”
“바바 야가다! 바바 야가가 왔어!”
저 요상한 집이 뭔지 아는 이들은 바바 야가가 베른에 왔다며 호들갑을 떨어댔다.
거대한 성곽이나 마찬가지인 총괄 지부 바로 앞에 쿵하고 멈춰선 닭발 통나무집의 문이 벌컥 열렸다.
문 밖으로 하얗고 매끄러운 다리가 제일 처음 삐져나왔다. 그 위로는 하얀색의 드레스 자락이 찰랑였다. 귀족 사교계 한복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길고 화려한 드레스였다.
그 위로는 드레스와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두툼한 검은색 목도리가 조그만 상체와 어깨를 모두 뒤덮고 있었고, 팔에는 역시 드레스와 맞지 않는 회색 털 토시를 끼고 있었다. 등 뒤로는 난데없이 길쭉한 절굿공이를 매달고 있었다.
푸른 눈에 새하얀 피부로 대표되는 유로파 동부 인종의 생김새를 지닌 여인이 검은 생머리를 찰랑이면서 통나무집에서 휙 뛰어내렸다.
“으따 나쎄도 참멜로 즣다 안카나!”
요상한 사투리를 구사하며, 미녀는 마치 산보 나온 노인처럼 뒷짐을 지고 지부의 1층 홀로 들어섰다.
“누, 누구지?”
“몰라. 밖이 소란스럽긴 했는데.”
어지간한 인물의 인상착의는 죄다 꿰고 있는 안내 부서 직원들은 이 미녀가 누군지를 몰라 멀뚱히 서 있어야만 했다.
“아 들아! 예서 헤이니 으쩌니 옐리브드만, 으데로 가 한제 아나?”
“......?”
-루, 루스 말인가? 뭔가 비슷하긴 한데?
-야, 너 루스 말 할 줄 안다 하지 않았냐?
-대충 들리긴 하는데, 저런 말은 처음 들어보는데......?
“왜이 말이 읎데? 누구 볼고다 말 아는 아 읍나?”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일단 루스 말 할 줄 아는 직원이 그렇게 말하고는 다른 직원을 시켜 안내 부서장을 불러오게 시켰다. 하지만 그들보다 빠른 이들이 있었으니.
“비켜비켜! 어디, 어디 계셔!”
정보 부서 직원들이었다.
악마 숭배자 출몰로 인해 한껏 민감해진 상황이다. 난동을 부리는 닭발 통나무집에 관한 말은 곧바로 신속히 정보 부서로 흘러들었다.
마법계에서 닭발 통나무집이란 것은 단 한 명을 상징하는 건축물이었다.
‘바바 야가!’
시베리아의 관찰자, 닭다리 마귀 할멈, 절굿공이 시해자 등으로 불리는 바바 야가는 대마법사를 넘어선 ‘초월자’였다.
인세를 떠나 조용히 사는 초월자이지만 그 중에서도 바바 야가는 극도로 폐쇄적인 초월자로 유명했다. 눈과 나무만 존재하는 척박한 시베리아 심처에 처박혀 산다는 바바 야가가 유로파 한복판에 나타났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일이었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관찰자님. 베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정보 부서 직원 중 하나가 루스 어를 할 줄 안다는 명목으로 모든 책임을 떠맡았다. 바바 야가는 루스 계통 언어의 사투리인 볼고다 어. 시베리아 깊숙한 곳에서나 쓰는 말이라 그 직원도 간신히 알아듣는 수준이었다. 같이 온 다른 직원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슬슬 빠졌다. 의리 없는 것들.
“으이, 역시 귀빠리 말고 인간 아 들이 예가 바르다 안카나. 귀빠리 그치들은 하도 귀마크냥 목이 뺘샥해서리 대 기가 귀찮데.”
“......”
루스 말은 알아듣는 것 같긴 한데, 정작 바바 야가는 정상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인간이 더 예의가 바르다며 귀 큰 엘프와 비교하면서 흡족해하고 있었다.
“어쩐 일로 베른에 오신 것인지......”
“헤이 하르 왔데, 헤이.”
“회, 회의 말씀하시는 겁니까?”
“으이.”
“이, 일단 절 따라오십시오.”
거, 말 좀 제대로 해주면 안 되나?
***
쾅!
유수의 마법사들이 고상하게 토론하는 신성한 회의장의 문이 요란스럽게 열렸다.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했다.
얼굴을 싸쥔 채 한숨을 내쉬는 정보 부서 직원 하나와 아름다운 미녀가 거기 있었다.
미녀는 문을 걷어찬 다리를 슥 내리고 드레스 자락을 톡톡 털더니 외쳤다.
“아 들아! 예서 짐지리 기 한다마! 나도 함 브게보자 안카나!”
“얘들아, 여기서 재밌는, 어, 재밌는 걸 한다는데 나도 한 번 끼러 왔단다!”
정보 부서 직원이 통역했다. 물론 다소 의역이 좀 섞여 있었다.
“저건 무슨 미친 여자야! 당장 내쫓지 못해!”
바바 야가를 모르는 마법사들은 많았고, 그 중 하나가 바바 야가를 향해 소리치며 손가락질했다.
“머이?”
바바 야가의 표정이 찌그러졌다.
방금 마법사의 호통은 에크나르프 어였다. 정보 부서 직원은 알 수 있었다. 바바 야가는 사실 다 알아들을 수 있는데 일부러 이런 말을 쓰는 게 분명했다. 참으로 고약한 성정일세.
“그, 그러면 안 되네!”
“잠시만, 잠시만 참아 주......”
“이 친구가 뭘 몰......”
바바 야가를 알아본 루스 출신 마법사들이 기겁하면서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바바 야가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커튼이 세찬 바람에 휙 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오듯, 바바 야가의 몸놀림은 마법사라고 보기에는 너무 빨랐다.
하얀 자락이 허공에 일렁이나 싶더니, 바바 야가의 신형은 자신에게 손가락질을 한 마법사의 코앞에 와 있었다.
깡!
그리고 무슨 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등에 매고 있던 절굿공이가 그 나이든 마법사의 머리에 찍혔다. 그와 동시에 펑! 하는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뽝? 뽁뽁뽜악?”
그 연기가 흩어진 자리에는 사람 머리 대신 털 빠진 닭대가리 하나가 있었다.
“아 가 쓱바가지 읎씨 하고 메라이여. 무신 귀빠리마녜.”
연기가 펑 터지는 순간 다시 그 자리에서 사라진 바바 야가는 어느새 원래 있던 자리에 돌아와 있었다. 변한 것이라곤 등에 매고 있던 절굿공이를 창처럼 세우고 있단 것이었다.
“꼭꽈악! 뽝뽝- 뽁뽁뽝!”
졸지에 사람 머리 대신 닭 머리를 달게 된 마법사가 닭처럼 고개를 까닥거리며 손을 허둥거렸다.
“저, 저분은 루스 지방의 초월자이신 바바 야. 헙!”
깡!
“꼭, 꼬꽉......”
또 한 명의 마법사가 닭대가리가 되었다.
“내이 으딜 봐이야 힐마이라는깅가?”
바바 야가는 내가 어딜 봐서 할머니라는 거야? 라고 투덜거렸다. 바바 야가는 루스 쪽 말로 마녀 할멈이란 의미였다. 아름다운 미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별명이라, 바바 야가를 부를 때는 절대로 바바 야가라 부르지 않고 다른 별칭인 시베리아의 관찰자에서 따온 관찰자라 불러야 했다.
“관찰자님을 잘 모르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정보 부서 직원이 굽신거리자 바바 야가는 흥 하고 곱게 코웃음을 치더니 두툼한 목도리 안에서 방울을 꺼내 두 닭대가리에게 던졌다.
짤랑! 짤랑!
펑!
“허, 허억, 헉, 헉......”
“도, 돌아왔다. 허이구......”
바바 야가는 두려움 가득한 마법사들의 시선을 한껏 받으며 말했다.
“뭐 처음이니까 실수로 보고 봐준다. 그나저나 여기 사령술사 얘기로 한껏 시끄럽다던데 나도 함 끼러 왔다. 대충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
라고 정보 부서 직원이 통역했다.
초월자의 회의 난입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인해 마법사들이 경악하는 가운데, 루스 어를 할 줄 아는 마법사들이 바바 야가에게 현재 삼파전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설명했다. 물론 그 와중에 말실수로 한 명이 닭대가리가 된 탓에 설명시간은 좀 길어졌다.
모든 마법사들이 속삭이지도 못하고 손짓발짓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심정을 서로 나누었다. 아니 대체 초월자가, 그것도 유로파 구석 중 구석에 있던 초월자가 왜 나온 거지?
“그래? 재밌게들 굴러가네 그냥. 혹시 나 말고 초월자 더 왔냐?”
“없습니다.”
그 말에 바바 야가의 시선이 은근히 한쪽을 향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참나, 저기 끝에 있는 나도 왔는데 딴 놈들이 눈도 안 비춰? 아주 다들 까막눈이네 까막눈.”
그렇게 말한(번역된) 바바 야가는 어디선가 뿅 꺼낸 절구통 위에 턱 앉더니만 선언했다.
“공인해.”
잠시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예?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정보 부서 직원이 잠시 못 알아들어 다시 물었다.
“공인 하라고. 사령술사, 걔 인정 해.”
그 드넓은 회의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한심한 눈으로 마법사들을 쓱 훑어본 바바 야가가 한 마디를 던졌다.
“왜? 문제 있냐? 검증 했다며?”
“......”
모두가 불만이었지만 말은 못하고 눈빛만으로 투덜거렸다.
대선장의 사령술에 대해 그토록 옥신각신한 이유는 따지고 보면 공인 이후의 정치적 여파 때문이었다. 사령술 그 자체만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악마와 연관되지 않은 게 이미 검증된 마당이니까.
“대답도 제대로 못하네. 이것들아, 내가 공인했다고 도장이라도 찍어줘? 어? 그런 걸로 책임을 남에게 떠넘겨야 뭘 좀 바꿀 수 있겠냐? 어? 아주 애들이 간은 콩알만해가지고.”
“......”
공인 이후의 상황인 정치 문제 때문에 염려되어서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다간 닭대가리가 될 게 뻔한데 누가 말을 하랴. 초월자의 권위는 그들의 입을 강제로 다물게 만들었다.
“어휴 이것들아. 아주 귀족정이 다 됐어 귀족정이. 어? 너희들, 마법사 연맹이 왜 만들어졌는지 읊어봐라. 너 임마 너. 제일 높은 애 너.”
바바 야가의 흰 손가락이 제일 늙은 마법사를 가리켰다. 연맹의 부회장이었다. 연맹의 회장 자리는 초대 회장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공석인 바, 사실상 그 노인이 연맹에서 가장 높은 이였다. 물론 초월자를 제외하고.
“누, 누구라도 마법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도록, 마법에 의해 세상을 더 낫게 만들 수 있도록, 마법을 악하게 쓰지 못하도록...... 입니다.”
“잘 아네. 그래서 문제 있어?”
“바, 발언해도 되겠습니까?”
부회장이 눈치를 살피며 살며시 손을 들었다.
“읊어 봐.”
“공인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는 건 저희도 압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올 문제와 떨어뜨려 생각하기는 너무 힘들기에 이러는 것입니다. 사령술이 어떤 마법인지 아시잖습니까! 정치적 여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당사자, 아니 대선장이 사령술로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악마 숭배자들을 봐도 아시잖습니까? 그 힘을 가지고 강대국에 소속된 이후에는 어떻게 그 힘을 쓸지 모......”
“거기까지. 악마한테 지 혼 팔아넘긴 애들하고 같은 선상에 두면 쓰겠니. 너희 말로는 최소한 대선장이는 연맹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먼저 밝혔다며? 거기에 악마와 손잡은 증거도 없어. 여기서 뭐가 더 문제가 되니?”
“그래도 대선장 건은 조금 다른 얘기입니다.”
그 말에 바바 야가는 피식 비웃었다.
“다르긴 뭐가 달라. 내가 니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데 너희들 생각을 모를까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