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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118화 (119/128)

118화

검증과 인정-8

내가 옳니 니가 그르니 하면서 떠들어 대는 마법사들의 말의 홍수 속에 갇힌 사령술 및 악마 대응 부서장 예르게니 구세프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정말, 대선장은 모두에게 위험한 걸까.’

드루이드와 합석한 맛없었던 식사 자리에서 대선장은 먹을 것을 향해 기쁨을 표현한 어린아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이에 맞지 않게 표정 변화가 별로 없긴 했지만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살짝씩 보이는 변화는 분명히 순수했다.

‘열여덟이라. 살아있었다면 그 정도 나이였을 텐데.’

그가 악마 대응 부서에 투신한 이유가 된, 지금은 없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마른세수를 했다.

마법사는 이성적이어야 한다. 감상에 젖어 섣불리 무언가를 판단한다면 더 큰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는 많다. 대선장의 어린 외모에 오류를 범하지 말자.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애써 감상에 젖은 머리를 말려버린 구세프는 회의장을 오가는 주장들에 귀를 기울였다. 회의를 제안한 건 그이나, 사안이 너무나 커 목소리를 내기는커녕 한낱 회의장에 참석한 이들 중 하나로 취급될 뿐이었다.

“그러니까 요지는, 당사자를 믿을 수 없고, 그 후폭풍 처리의 문제 때문에 반대한단 것인데......”

“그것만 해결된다면야 문제가 없지만, 그게 어떻게 해결될 수 있겠소?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마법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지 않소? 그렇다고 강제로 겁박하기도 뭐한 것이, 그는 대마법사고 세력이 크오. 그것만 아니었다면 차라리 저주 마법으로라도 제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냥 죽이자니까! 그깟 사령술사 하나 가지고!”

“당신이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랐는지 알 수가 없어. 그렇게 해결방안을 생각하지 않고 원인만 제거하자니. 저 돼지 연맹의 군대조직만큼이나 무식하군.”

“뭐야 말 다 했어!”

돼지나 먹는 감자를 널리 보급한 라인 연맹 지역에 대한 멸칭이 돼지였다. 그런데 돼지는 이슬람 쪽에서 종교적으로 불결한 짐승이며, 죽이자고 주장한 마법사는 무슬림이었다.

“내가 틀린 말 했나?”

“나와! 너 나와! 전부터 맘에 안 들었어, 한판 붙어!”

“아이고, 배운 분들끼리 무슨 소란이요, 조용조용!”

“자네는 저놈이 뭐가 좋다고 자꾸 편들어!”

“자네는 당장 연맹을 나가는 게 좋겠네. 마법사가 이성적이고 똑똑하다는 인식을 깨지 않는가.”

“안 닥쳐!?”

“허, 누가 이슬람 놈 아니랄까봐 신발을 던져? 저런 교양 없는 야만인이......”

“그래 나 야만인이다 이놈아!!!”

한쪽에서는 결국 멱살을 잡는 싸움이 일어났다. 마법사의 개성이 다양한 만큼, 가끔가다 저런 극단적인 인물이 나와서 문제긴 하다.

마법사들의 회의라면 종잇장만큼 날카로운 논리와 잉크만큼 진한 토론이 이뤄진다고 생각하고는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시정잡배 저리가라할 정도의 말싸움도 종종 벌어진다. 세상엔 별별 인물이 다 있으니까 말이다.

그냥 적당히 무시하고 넘어가자는 이도 있었다.

“그냥 엮이지 말자고! 모른 척 넘어가. 문제 일으키면 그때 처벌하면 될 일이지.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나?”

“그래도 용병처럼 써먹을 필요성도 있을 거 같은데...... 악마 숭배자가 문제인 건 사실이지 않나?”

“그 방안을 수용할지 안 할지는 대선, 큼. 당사자의 선택이라 이 말이오. 일단 겉으로는 예의바르다니 회의 결과에 트집을 잡을 것 같진 않소만 만약 거절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소이다.”

“수용하면 그것대로 불안하오. 정보부의 정보도 못 보셨소? 얼굴 가죽을 가면처럼 휙 바꿨다던데, 속으로 꿍꿍이를 품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소?”

차라리 연맹의 울타리 안에 두는 게 더 안전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연맹과의 문제보단 국제사회에서의 당사자의 위치가 더 문제라 보오. 지금이야 모두가 작위 문제 때문에 거절하고 있다지만, 언제 그 자존심을 꺾고 영입할지 모르오. 그리고 그 국가가 암암리에 사령술을 연구하기라도 한다면 추후 문제가 될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차라리 연맹에 묶어두는 게 낫다?”

“그렇소. 예전에 어떤 나라가 사악한 마법을 연구하다 들켜서 멸망하지 않았소? 그와 똑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소? 그럴 바에야 연맹의 시야 안에 두고 감시하면서 써먹는 것이......”

역시나 회의는 한쪽으로 푹 기울어 있었다. 모두 대선장의 사령술을 공식 인정하는 것은 반대라는 것을 전제로 떠들고 있었다. 이런 정치판 속에서 학문적 탐구를 주장하는 극소수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갑론을박의 결과, 의견은 대체로 이렇게 나뉘었다.

1. 대선장의 사령술을 공식 인정하게 되면 정치적 위험성과 수많은 마법사들의 반발을 감수해야 하니, 공식 인정은 불가하다. 대신 대선장에게 적당한 보상을 주며 용병처럼 써먹자. 연맹에 소속되게 되면 어지간한 작위 이상의 대접을 받으니까 작위를 원한다는 대선장의 입맛에도 맞을 것이다. 물론 허튼 짓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붙여야 할 것이다.

2. 사령술 공식 인정이 불가한 건 당연한 거고, 도구로 쓰기에도 대선장은 너무 위험하다. 아예 모른 척 하여 연맹과 엮일 일을 만들지 말자! 사령술 쓰다가 괜히 나중에 드러나기라도 하면 수습이 힘들다. 적어도 푸대접은 하지 않았으니 원한 쌓을 일은 없겠고, 그냥 서로 갈 길 가는 게 낫다. 문제를 일으키면 그때 다시 생각하자.

3. 그냥 제거하자. 문제는 제거하는 게 제일 낫다. 연맹이 뭐가 아쉬워서 그런 놈의 비위를 맞춰야 하나?

대선장에 대해 우호적인 의견은 그놈의 신뢰 문제 때문에 금방 반박당해 묻혀버렸다. 연맹에 들였다가 배신하기라도 하면 그 후폭풍을 어찌 감당할 거냐는 말 앞에는 뾰족한 답이 없었다. 그걸 방지하자니 대선장이 반발할 가능성이 크다.

세찬 비바람처럼 몰아쳤던 주장과 반박의 물결은 조금 가라앉았으나 의견 종합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아직 많이 걸릴 것 같았다.

***

회의실에서 드높은 어르신들의 고매하신 토론이 이뤄지는 동안, 소년은 점성술사 조합에 가 있었다.

‘여기가 별을 보는 이들의 단체......’

뛰어난 점성술사인 브르타뉴 드루이드 우두머리(통칭 엘더)는 점성술사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른에 들린 것이었다. 점성술사의 회의가 어떤 것이냐 묻는 소년의 말에 엘더는 이렇게 대답했다.

-별의 변화를 얼마나 보았는가, 어떤 식으로 해석했느냐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란다.

오오 하며 점성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척 고개를 끄덕인 소년은 은근슬쩍 물었다.

-그럼 요즘은 별이 어떤가요?

그 말에 엘더는 어깨를 으쓱하면서도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지럽지. 언제는 갑작스럽게 지금껏 보인 적이 없는 변화를 보였으면서 지금은 또 방황하는 것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게 피곤해.

소년은 눈을 번득였다.

역시. 별들은 소년이 자신들의 시야에 잡히지 않자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마치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진 벌레 때문에 허둥거리는 것과도 비슷했다.

이는 소년을 심각하게 생각하고는 있단 뜻이다. 별 거 아니면 사라졌다고 혼란스러워하진 않을 테니까.

소년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그 회의에 가보고 싶다 말했고, 엘더는 순순히 허락했다. 점성술사 단체는 그리 폐쇄적이지 않았다. 어차피 별을 볼 줄 아는 이들만 모이는 곳이라, 누가 들어오건 상관이 없었다. 재능 있는 이가 온다면 좋은 거고 재능이 없으면 제풀에 지쳐 나가떨어지기 때문.

“신기하느냐?”

점성술사 조합 본부에서 이리저리 돌아보고 있는 소년에게 엘더가 물어왔다.

이 인자한 노인은 해적에 대해,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잘 몰랐기에 오히려 편견이 없었다. 그에게 소년은 그저 잘 못 먹고 큰 불쌍한 어린 마법사이면서 드루이드가 좋아하는 동물애호가였다.

물론 그것도 시선을 마주치기 전까지겠지. 소년은 계속 눈을 깔고 시선을 절대 사람 가슴팍 위로 향하질 않았다.

“얼른 올라가자. 마법사들의 시간약속은 잘 지켜야 하는 법이란다.”

***

조촐한 회의장은 떡갈나무의 갈색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각자의 지역에서 보편적인 복장을 한 점성술사들이 드루이드 우두머리를 반겼다.

“저 친구는 누굽니까?”

“아, 대선장이란 아이일세. 점성술에 흥미가 있다고 해서 구경꾼으로 왔어.”

점성술사들은 놀란 눈치로 파랗고 단정한 복장의 조그만 소년을 쳐다보았다. 소년은 눈을 내리깔고 마찬가지로 꾸벅 목례했다.

“미욱하지만 대선장이라 불리고 있습니다.”

“생각보다는 많이 어린데, 나이가 어떻게 되나?”

트란실바니아에서 온 창백한 얼굴의 점성술사가 물었다.

“올해로 열여덟이 됩니다.”

“그런가? 흐음.”

분칠을 한 것처럼 흰 얼굴에 살짝 충혈된 붉은 눈을 지닌 점성술사는 시선을 돌렸다. 대선장이건 뭐건 별로 상관없고 궁금증 해결했으니 별 관심없다는 투였다.

“바다의 바람을 맞으며 욕망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친구로군! 끝나고 다시 얘기합세!”

드루이드보다도 풍성한 수염을 가진 스칸디아 룬 마법사 부족장이 껄껄 웃었다.

앉아 있던 열다섯 명의 점성술사 중 소년에게 말을 건넨 건 그 둘 뿐이었다. 나머지는 호기심만 살짝 든 표정이었지만 이내 사그라들었다. 소년에 대한 것보다 중요한 문제에 신경이 쏠려 있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따로 인사를 나눌 시간이라거나 그런 건 없이 곧바로 의제에 걸맞는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소년은 부외자이자 구경꾼이라 회의실 한쪽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그저 듣기만 했다.

“별이 갑자기 잠잠해져서......”

“그래도 아직은 혼란스러운 게......”

“무슨 징조인지 아는 바가......”

“옛 기록에서도 이는 드물다고 이미 확인한......”

“초월자 분들도 아는 바가 없......”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심각한 표정으로 조곤조곤 얘기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졸음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년은 어느 누구보다도 그들의 회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체계적으로 점성술을 배워야 아는 단어들이 이것저것 튀어나왔지만 별과 한때 적대감을 나누며 으르렁거린 전적이 있을 만큼 별의 의도를 선명하게 관찰한 적 있는 소년이다. 그 은유적인 의미는 어느 정도 파악 가능했다.

“저번에 별의 시선도 그렇고......”

‘시선이라.’

보나마나 날 보고 있던 거겠지. 별의 시선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살짝 불길한 기분이 들었지만 내용을 듣자하니, 그 시선이 매우 포괄적이어서 자세히 특정할 수는 없다는 투라 안심할 수 있었다.

“교황청에서 서쪽으로 배를 보냈다는 것만 봐도 교황청 역시 시선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거라고 저번에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대서양을 건넜다는 걸 봐서는 자세한 위치는 잘 모른다고 했......”

‘교황청? 아 그래. 별을 섬긴다니 그럴 만도 하지.’

카톨릭은 별을 섬겼다.

그들이 모시는 신은 하나지만,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신은 밑에 수많은 신들을 부하로 부리며 그 신들의 사자가 바로 별이니 별 역시 숭배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소년은 약탈한 책더미에 있던 성경을 읽어본 적이 있었다.

그 골자가 뭔고 하니, 가장 위에 있는 신은 너무나 지고지순하여 인간이 개미를 바라보는 것처럼 지상의 존재는 너무나 하찮아 말이 닿지 않으니, 그 밑의 별을 통하여 우리들이 당신을 섬깁니다 하고 관심을 받으려 발버둥치는 것이다.

소년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는다면 수많은 교인들이 돌을 던질 축약본이었으나,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교황청도 내 잠재적인 적이구나.’

만일 별이 지상에 영향을 끼치려 한다면, 그들의 말이라면 넙죽 따르는 인간들을 통해 뭔갈 시키는 게 가장 빠르게 먹힐 테니 말이다.

이미 전적도 있다. 교황청이 갑작스레 군대를 움직여 나갔다는 것.

‘날 죽이라 명령을 내린 거겠지.’

교황청이 오판이라도 했는지, 교황청 군은 아소르스 제도가 아니라 훨씬 먼 서쪽인 신대륙으로 갔지만.

“그러니까, 자꾸 별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말하시지 마시지요. 여기는 별을 비판하는 장소가 아니라니까요?”

조용히 얘기하던 점성술사 사이에서 살짝 언성이 높아지는 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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