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검증과 인정-5
구조가 복잡하고 단단해 짐승 요새라고도 불리는 총괄 부서 건물의 마구간에 도착한 소년은 요상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한 축사 앞에 자연 그 자체를 입은 인물들이 모여 웅성거리고 있던 것이다.
“오오 저 털 좀 봐! 쓰다듬고 싶어!”
“꿀꺽!”
“늠름한 자태! 근육! 골격! 오오!”
“탈래, 탈래, 탈래, 탈래.......”
“......?”
소년은 옆에 있는 마구간 직원과 축사 번호를 번갈아 보았다. 직원이 말한 36번 축사.
‘저기 검둥이 있는 데인데.’
“아, 하하하. 드루이드 분들이시군요. 짐승을 참, 좋아하시는...... 분들입니다. 손님의 늑대가 그만큼 멋지단 거겠죠.”
자물쇠를 풀기 위해 같이 따라온 직원이 어색하게 웃었다.
저 떡대들이 드루이드라.
웬만한 기사 이상 가는 우락부락한 덩치들이었다. 열다섯 살 정도로 보일 정도의 왜소한 체구인 소년보다 서너 배는 더 큼직한 덩치를 가진 극한의 상남자들이었다.
“그런데, 저렇게 동물 하나에 꽂히면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 분들이신데......”
직원이 바로 다가가 저들을 헤치고 축사 문을 열지 못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관심이 꺼질 때까지 짐승 하나 보겠다고 계속 있다 보니 그 자체로 길을 막는 근육 벽이 되는 것이다.
어쩌다 베른에 신기하거나 멋진 짐승이 들어왔다 하면 어김없이 보이는 풍경이기도 했다.
“드루이드는 처음 들어보는데, 어떤 이들인지 알 수 있습니까?”
바다에서만 살던 소년이라 드루이드라는 생소한 단어를 물었다. 직원은 곧바로 대답했다.
“보시다시피 저렇게 자연에서 가공을 거의 하지 않은 재료로 옷을 입고 먹고 사는 분들이신데......”
허드렛일하는 직원들은 대부분 일반인이지만 마법사의 도시에 사는 만큼 정보는 빠삭했다.
드루이드는 일종의 주술사이며 원시적인 종교와 주술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긴 전통을 고수하는 이들이었다. 옷차림에서 알 수 있다시피 자연과의 조화를 중요시하며 평소에는 숲에 틀어박혀 산다고 한다.
그들이 가진 짐승과 식물에 대한 지식은 유용하여 국가에서도 자치를 보장해주는 이들이었다. 카톨릭의 세력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때는 은근히 탄압받으며 고초를 겪었지만, 연맹이라는 뒷배도 생기고 의학과 농업에 공을 세워 지금은 귀한 인재들이었다.
“역사적으로 문제가 좀 있어서 여기 조금 저기 조금씩 흩어져 계시는 분들이지요. 대부분은 에크나르프에 몰려 산다 들었습니다.”
드루이드는 오랫동안 그들의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조금씩 발전시켜 약초학, 추적술, 농법 및 숲 개간 등의 많은 잡다한 분야에 재능이 있었는데, 그 중 소년의 관심을 끈 건 ‘점성술’이었다.
‘별을 본다라......’
악마를 흡수하여 별에게서 멀어진 소년은 더 이상 별들의 반응을 관찰할 수 없게 되었다.
별들이 소년을 관찰하고 대응 수법을 만들어내듯, 소년 역시 별들의 반응을 분석해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검둥이로 좀 친해질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때 구세프가 안으로 들어왔다.
“왜 이리 늦는가? 아.”
그러고선 소년과 직원 앞에 몰려 있는 드루이드를 보고는 상황을 납득했다. 뭘 타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선장의 짐승이 드루이드의 관심을 끈 모양이었다.
“험험, 이보게들. 거기 짐승 주인이 왔다네.”
드루이드에게 함부로 비키라고 말하기 꺼리는 마구간 직원 대신, 한 학파의 고위 간부 직위를 가진 구세프가 말했다.
그 말에 드루이드들의 고개가 휙 뒤로 돌아갔다.
그들의 눈은 기이한 열망으로 번들대고 있었다. 일부는 다소 뒤틀려 있는 것이 소년조차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야 했다.
“무슨 동물인진 모르겠지만 여기 주인이 왔으니 비켜줄 수 있겠나?”
그 말에 소년을 향해 열 쌍의 소름 돋는 눈빛이 집중되었다.
‘왜 이렇게 무섭냐.’
그들의 짐승에 대한 열망은 소년도 질리게 만들었다. 드루이드의 동물 사랑은 마법사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가죽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이유가 그 짐승의 힘을 얻고자 하는 주술적 의미가 아니라 그 짐승에게 욕정을 품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어흠, 비켜라 이 녀석들아.”
떡대들을 헤집고 나온 수염이 풍성한 늙은 드루이드가 모습을 보이자 구세프가 눈을 크게 뜨며 하하 웃었다.
“이게 누구십니까. 브르타뉴의 엘더께서 어쩐 일로 여길 다 오셨습니까?”
“일이 있어서 베른에 왔다가 심심해서 들렀네. 동물 좋아하는 건 늙어서도 어쩔 수 없더구만. 자네도 오랜만에 보는구만. 구세프라 했나?”
드루이드 우두머리, 통칭 엘더가 허허 웃었다. 얼굴의 주름살은 드루이드 쪽이 더 많았지만 양쪽 다 풍성한 수염으로 인해 나잇대가 비슷해 보였다.
“그나저나, 이 어린 친구는 누구신가?”
“아, 요즘 유명세를 올리는 사람입니다. 대선장이라고.......”
“대선장? 으음, 미안하네. 우리가 좀 폐쇄적이라 소문에는 좀 어둡다네.”
“바다에서 해적을 규합한 사람입니다. 카스테냐를 꺾고 바다를 누비고 있지요.”
드루이드가 정치에 무심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해적이니 카스테냐니하는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이도 꽤 어려보이는데, 이 친구도 마법사인가? 마력은 안 느껴지고.”
구세프는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대선장이 대마법사급이라는 건 암암리에 퍼져 있기에 그냥 말하기로 했다.
“아주 걸출한 인물이지요. 올해 열여덟인데 마법실력 하나만큼은 대마법사 수준입니다.”
“오, 그런가? 그 나이에 대단하구려. 만나서 반갑다네.”
소년은 그 굵은 손을 선뜻 내미는 드루이드 노인의 손을 맞잡았다. 덩치도 덩치지만 근육도 단단해 무슨 돌 사이에 손을 넣은 것처럼 딱딱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왜 이리 조그마한가? 잘 먹지 못해서 그런가?”
“제가, 빈민가 출신이라 말입니다.”
“저런...... 많이 힘들었겠구나.”
엘더는 오늘 종일 굶었다고 말하는 손자를 보는 것처럼 소년을 내려다보았다.
드루이드는 자연과 동화하는 것을 추구함과 동시에 기아 퇴치에도 힘쓰고 있다. 에크나르프의 다양한 품종 개량 작물들이 바로 그들의 솜씨였다. 그런 직종에 종사하다보니 못 먹었다는 말에 민감할 수밖에.
엘더가 구세프에게 말했다.
“모처럼 아는 얼굴도 만났는데 같이 뭐라도 먹으러 가겠는가?”
“안 그래도 대선장과 식사 약속을 잡은 참입니다. 같이 가시지요?”
“거절하진 않겠네. 아차, 동물을 데리러 왔댔지? 얘들아 비켜서거라.”
소년이 축사의 두꺼운 철창 근처로 다가가자 쿨쿨 자고 있던 검둥이가 코를 벌름거리더니 눈도 안 뜨고 꼬리부터 휘휘 흔들었다.
그 움직임에 드루이드들이 덩치에 맞지 않게 오오하고 감탄하며 마치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반응을 보였다.
“거참 귀여운 녀석일세. 어디서 나서 키웠는가? 이렇게 큰 늑대는 처음 보는데.”
“그냥 주웠습니다.”
그때는 시체였지만.
마구간 직원이 문을 따고 들어가 절그럭거리며 검둥이를 묶은 쇠사슬을 풀었다. 검둥이의 덩치에 주저할 만도 하건만, 하도 기이한 짐승들을 봐 와서 그런지 그 손길이 느리지 않았다.
[헥헥헥!]
“허허, 딱 봐도 애정이 보이는구만. 그런데 몸이 성치 않은데? 혀도 없고 눈도 하나 없고. 혹 사고라도 당했나?”
“주웠을 때부터 그랬습니다.”
그 말에 드루이드들의 대선장에 대한 평가가 쑥 올라갔다.
저런 커다란 녀석을 다 컸을 때 주운 걸 아닐 테고 작았을 때 주웠을 터. 다친 어린 짐승을 저렇게 커질 때까지 잘 먹이고 키운 데다 주인에 대한 반응까지 좋다니 분명 사랑으로 키웠을 것이다.
‘자고로 동물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이는 없는 법이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지만 남이 뭐라 하건 드루이드에겐 그게 진실이었다.
“오늘 좋은 인연을 만났군. 구세프, 어디로 갈지 안 정했다면 내 좋은 식당을 알고 있는데 같이 가겠나?”
그 말에 구세프가 살짝 움찔했다. 드루이드의 기준에서 ‘좋은 음식’은 자연 그대로의 풍미를 갖춘 것이다.
말이 자연 그대로의 풍미지, 고기를 제외하곤 그냥 생식을 말하는 것이다. 잎사귀 낱장, 과일, 심지어 돼지나 먹는 도토리까지. 향신료도 향이 강하지 않은 유로파의 것만 쓴다. 그래서 드루이드와의 식사는 머리를 비우라는 말을 하곤 한다. 맛없으니 각오하란 거다.
“그, 그러지요.”
그렇다고 드루이드 세력 중 가장 큰 브르타뉴 지역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말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
인간은 신을 섬긴다.
그 이전에는 별을 섬겼다.
인간보다 강한 짐승이나 인간의 손으론 어떻게 할 수 없는 날씨나 자연재해를 섬길 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우선적으로 별을 섬겼다.
마치 본능에 이끌린 듯 별을 향해 손을 내밀고 별에 닿기를 갈망했다.
그들은 별에 의미를 부여했다. 이건 무슨 신, 저건 무슨 신. 저건 동물이 붙박인 것, 이건 영웅이 붙박인 것.
그것이 꼬이고 꼬이고 또 꼬이고, 위대한 선지자의 등장 이후로는 마구잡이로 뒤섞였다.
거기에 소금 같은 권력욕을 뿌리고 후추 같은 금전욕이 뿌려졌으며 허브 같이 은은한 누군가의 허풍과 과시가 첨가되었다.
그 끝에는 수천 년 가상의 역사가 압축된 종교적 색채가 진한 책 한 권이 버무려졌다.
한때, 많은 이들이 거짓에 진실이 첨가된 이 책을 섬기자고 이야기하였다. 돈으로 죄를 사한다는 종이쪼가리나 파는 타락한 교황청에 삶을 의지하지 말고 오로지 진실이 담긴 책을 따라 그것만을 따르자!
부패한 카톨릭의 어둠은 루터, 츠빙글리, 칼뱅이라는 세 등불에 의해 걷혔다.
그리고 그 등불 모두 바닥에 부딪혀 깨지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루터는 침실에서 누군가의 칼에 맞아, 츠빙글리는 실종되어, 칼뱅은 신원불문의 광신도에게 백주대낮에 참수되어 죽음을 맞았다.
하지만 유리가 깨진 등불에서 튀어나온 불길은 마른 짚에 불을 붙여 결국에는 어둠을 몰아냈다. 개혁을 원하는 세력과 각국 왕실이 손을 잡아 교황청을 짓누른 것이다.
교회의 저항이 없진 않았다. 그러나 후세에 칸 제국이라 불린 유목 엘프와 용의 침공으로 인하여 교회는 몰락하고 말았다. 역설적이게도 엘프의 대학살로 인해 종교 말고는 모든 게 억압되던 암흑기가 끝나 비로소 문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로 인해 카톨릭이 가지던 무소불위의 권력은 사라졌다. 교회의 재산은 쪼그라들었으며 파문은 의미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부잣집은 망해도 3년은 간다 했다.
하물며 천 년 가까이 존속해온 교황청이 비밀스러운 칼날 하나 마련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들은 실세도 없고 그저 명분만이 존재하는 이들이 되었으나 마법사 연맹이 오래도록 유지되며 각종 은밀한 하부조직을 가지고 있듯, 암암리에 세력을 꾸리고는 있다고 의심하지 않는 권력층은 없었다.
***
교황청의 심처.
검은 사제복 위로 푸른 서코트를 걸치고 그 위에 또 붉은 숄을 얹은 고위 사제가 둥글납작한 유리판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유리판에는 투구를 쓴 기사의 모습이 투영되고 있었다.
[성전 정기 보고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