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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110화 (111/128)

110화

마법사의 도시를 향하여-9

늑대와 말은 엄연히 짐승이며 탈것. 그래서 소년 일행은 마차가 돌아다니는 넓은 도로를 이용해야 했다. 도로는 흙바닥을 모조리 돌로 덮은 상태였다. 딱딱한 돌바닥이 익숙하지 않은지 검둥이가 몇 걸음 걸다가 멈추며 자꾸만 발바닥을 보곤 했다.

“요녀석아 느려지잖아.”

[끄응......]

체고가 말만한 커다란 늑대의 등장에 마법사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와 늑대 진짜 크다.

-드루이드인가?

-근데 복장은 무슨 군인 같은데?

하지만 그 시선은 금방 흩어졌다.

별별 마법이 있는 마법계인 만큼 개성적인 마법사들이 하도 많다 보니 소년 역시 그냥 ‘특이한 마법사’정도로만 받아들여졌다.

브란트 역시 별 관심을 끌지 않았다. 기사 개인이나 귀족이 기사를 호위 삼아 마법물품을 사기 위해 베른에 들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년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시선은 은근히 많았다.

‘저 자가 대선장인가.’

‘검은 기사를 대동했다. 대선장이 맞아.’

‘늑대라니,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었어.’

마법사의 도시에 난데없이 나타난 바다 복장의 인물을 보며 바다에서 유명한 마법사, 대선장을 연상할 수 있는 이들이 없을 리가 없었다. 상층부의 정보인 ‘대선장의 사령술사 검증’에 대해 알고 있는 이라면 더욱 말이다.

“잠시 길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브란트가 길거리 상점 주인에게 선뜻 다가갔다. 상인 역시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티내듯 자신 학파의 문장이 붙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허허, 기사 나으리 아니십니까. 베른엔 처음이신 모양이군요?”

마법사의 도시에서 길을 물어보는 기사라. 은근히 자부심 넘치는 어투로 말하는 상점 주인이었다.

“이 도시의 모든 걸 총괄하는 곳이 있습니까?”

“아 당연히 있지요. 저기, 비쭉 튀어나온 첨탑들이 죄다 한 건물입니다.”

놀라운 일이었다. 멀리서는 그냥 마탑처럼만 보였는데 모두 한 건물이라고? 하늘을 향해 여기 비쭉 저기 비쭉 튀어나온 굵은 탑들은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 말이다.

“저 방향으로 쭉 가시면 성벽 같은 게 있는데 그게 다 건물 하나입니다. 거기가 ‘연맹 총괄 부서’라고, 그 안에 이 도시를 운영하는 모든 게 다 있지요. 연맹에 볼일이 있으신 모양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마다 중앙 홀이 있고 안내 부서가 있으니까 거기서 더 자세한 사항을 물어보면 됩니다.”

“자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뭐 여기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거니까요.”

그렇게 도착한 연맹 총괄 부서 건물은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이름만 들으면 일반적인 크기의 건물이 연상되기 쉽지만, 막상 만난 총괄 부서 건물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정말로 거대한 성이었다.

상인이 말한 대로 여기저기 튀어나온 첨탑은 모두 한 건물에 붙어있었다. 다른 첨탑보다 훨씬 크고 굵은 탑을 중심으로 다른 첨탑들이 멀리 떨어진 채 원을 그리듯 세워져 있는 형태였다.

‘총괄 부서라. 설마 저 첨탑 하나가 부서 하나는 아니겠지.’

정확히는 첨탑 하나당 학파 하나였다. 말 그대로 여러 마탑이 한데 모인 거나 다름없었다.

마법사의 도시 베른의 중심인 총괄 부서 내의 각 부서의 권력은 걸맞는 학파들이 하나씩 맡고 있기에 첨탑 하나가 부서 하나란 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큰 건물인 만큼 입구도 많았고 상인 말대로 입구 하나당 큼직한 홀 하나씩이 붙어 있었다. 홀은 바깥의 길거리처럼 사람들이 북적거리며 바쁘게 지나다녔다.

건물은 고급스러웠다. 이음매 없이 매끈한 대리석 기둥과 벽은 물론이요, 장식이 가득한 것이 꼭 왕궁 같았다. 어떤 면에서는 왕궁보다도 더 고풍스러웠다.

장식은 복잡하지 않고 간결해 눈이 아프지 않았고 곡선 위주가 아니라 직선 위주의 건축 양식은 딱딱해 보이긴 해도 절제미가 느껴져 현 시대보다 앞서나간 느낌이었다.

마드리드 왕궁 내부가 허세와 자존심을 위해 마구잡이로 장식 가득한 옷을 입은 졸부라면, 베른의 총괄 부서 건물 내부는 꾸미지 않아도 기품이 흘러나오는 도도한 마법사처럼 느껴졌다.

소년이 홀을 가로질러 한쪽의 안내 부서라고 큼직하게 여러 언어로 쓰여 있는 간판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이들에게 미소와 함께 안내를 해주던 안내 부서의 직원들은 소년과 그 일행을 보자 표정이 조금 굳어졌다.

‘대선장?!’

‘뭐야, 예상보다 늦게 올 거라 했는데!’

안내 부서는 베른의 얼굴이며 귀빈을 제일 처음 맞이하여 안내하는 부서다. 때문에 언제 누가 온다더라 하는 정보를 모조리 갖고 있고, 주요 인물의 목록도 죄다 꿰고 있어야 했다.

때문에 곧 베른을 방문할 거라는 대선장에 대한 신상정보는 당연히 가지고 있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어떤 일로 방문하셨는지요?”

마찬가지로 소년은 가만히 있고 귀족의 하수인이 귀족을 대신 소개하듯, 브란트가 나서서 대신 답했다.

“여기 계신 분께선 아소르스의 대선장이십니다. 선약이 있어 왔는데 혹 준비가 되어 있는지요?”

“아, 잠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로 대선장이라는 걸 확인한 안내 부서 직원들이 등을 돌려 속닥였다.

-빨리 연락해!

-아이씨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최소한 두 달은 걸릴 거라 했는데?

그들은 비싸디 비싼 마법 통신구를 통해 접대 부서로 연락했다. 안내 부서의 정보를 받아 접대 부서가 귀빈을 맞이하는 수순이었다.

[뭐? 벌써?]

접대 부서 역시 당황한 눈치였다. 너무 빨리 왔다.

대선장의 성격을 분석한 이들에 따르면 대선장은 오만하고 상류층에 대한 질시로 인하여 자신을 높이기 위해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인물이라 했다. 당장 늦게 올 거라고 보낸 편지도 있었고.

그런데 예상과 편지 둘 다 무시하고 한 달이 다 되어가는 날짜에 딱 맞춰 온 것이다. 소년이 딱히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마법사들의 입장에서는 한방 먹은 거나 다름없었다.

접대 준비는 물론이고, 대선장이 베른에 온 목적인 악마의 힘 검증을 맡을 마법사 역시 초빙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늦게 온다며!

[일단 응접실에서 대기시켜! 애들 내려 보낼 테니까!]

쨍!

대화가 끝나고 마법 통신구가 깨져나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비축분은 많으니까. 소모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생산지인 베른에서만 이렇게 두고두고 쓸 수 있지만 말이다.

안내 부서의 카운터테이블 너머, 소년이 신기한 눈으로 통신구를 통해 조그맣게 대화하는 직원들을 보았다.

[저 마법 통신구란 거. 꽤 신기한데.]

[방금 보셨다시피 대화 몇 마디에 깨져버리기 때문에 소모가 극심해 굉장히 비쌉니다.]

그런데 소년은 통신구가 왜 소모품이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해가 안 되는데. 왜 마력을 저렇게 쓰지?’

마법 통신구 내에 집적된 마력이 너무나도 비효율적으로 흘렀다. 목소리를 전달한다는 기능을 발휘할 때마다 기기 자체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몸체를 이루는 둥근 수정에 금이 가며 깨지는 소모품인 것.

‘머리 좋은 마법사들이 저걸 생각 못했을 리는 없고.’

저 이상한 마력 집적 방식은 소년이 봐도 개선점이 훤히 보이는 만큼 머리 좋은 마법사들이 저걸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리는 없었다. 무슨 이유가 있나?

‘이상한 곳이란 말이지.’

거리에서부터 끈질기게 따라붙는 수많은 시선과 기척도 껄끄러운데 저런 사소한 곳에서부터 결점이 있다니.

‘은은하니 풍기는 악마 냄새도 좀 있고 말이야......’

그리고 거리를 걷는 동안 어디선가 풍겨온 악마 특유의 역겨운 냄새. 비록 정도는 미미했지만 깃털로 얼굴을 간질이는 것 같이 분명히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마법사의 도시는 생각보다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

대선장의 방문 소식은 접대 부서를 통해 삽시간에 총괄 부서 전체로 퍼져 나갔다. 공식적인 정보 전달 구조가 안내 부서-접대 부서-다른 모든 부서 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부서와의 연결다리가 되는 접대 부서에서부터 날아온 소식은 대선장이 베른에 온 목적과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부서에게도 연결되었다.

“뭐야, 놈이 왔다고!”

바로 마법사 연맹의 수많은 비밀 조직 중 하나인 ‘사령술 및 악마 대응 부서’였다. 소년이 악마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검증을 맡은 부서기도 했다.

‘아니 왜 그놈은 벌써 온 거야! 애들 다 출장 나가고 없는데!’

부서 특성상 물밑에서 은밀히 날뛰는 악마 숭배자들을 색출하고 추적하는 역할을 맡고 있어 출장이 굉장히 잦았다. 특히나 요즘 악마 숭배자 놈들이 여기저기 꼬리가 보이는 마당이라 바빠 죽겠는데 대선장이 뭐니 하는 해적놈마저 이렇게 속을 썩이다니!

“환장하겠네. 난 그렇게 민감하지 못한데.”

악마 대응 부서장이 자신의 붉은 수염을 쥐어뜯으며 고민했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악마 대응 부서의 장은 악마의 힘을 잘 못 느꼈다. 그가 그 자리에 앉은 이유는 놈들에 대한 지식과 실전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이지 악마의 힘을 느끼는 재능으로 올라간 건 아니었다.

‘가뜩이나 슈라이크의 말도 신경쓰이는데.’

지브롤터의 세우타에서 대선장을 직접 만난 조사단장 슈라이크는 ‘어쩌면 대선장은 악마의 힘을 숨기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한 바 있었다. 악마의 힘을 빌리지 않은 사령술에 대해 자꾸 물어봤단 것이다.

슈라이크는 연맹의 정보 부서 소속이기도 했다. 그 부서 소속 마법사들은 여러 가능성을 파헤치는데 능할 뿐 아니라 예감도 좋은 이들이라 상층부에서는 그들의 말은 흘려 듣지 않는 편이었다.

악마 대응 부서장은 자신의 2류에 불과한 감지 능력으로 위험을 놓치기보단 차라리 출장 나간 인재를 불러오기로 결정했다.

“아아, 접대 부서장? 어떻게든 대선장을 구슬려서 며칠 붙들어 놓게. 검증할 사람 불러올 거니까.”

[뭐? 하지만 저 까다로운 놈을 뭘로 붙잡으란 건가? 지금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이란 말이야!]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봐! 하다못해 도시 관광이나 시켜주라고. 아 그래, 식도락가라니까 식당이라도 데려다 주던가. 여러 나라 사람 다 몰려서 음식점도 많으니까, 한번 순회라도 시켜. 최대한 시간 많이 걸리는 고급 식당 위주로 데려가기라도 해!”

[아니, 그러면 부서 예산은......]

“내 알 바냐!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대충 열흘 정도만 버텨봐!”

악마 대응 부서장의 홧김에 한 말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마법사들 사이에서 머리카락이 빠지는 병이 돌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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