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마법사의 도시를 향하여-8
아우우우-!
늠름한 늑대가 된 검둥이를 탄 채, 소년은 옆을 돌아보았다. 길 너머 숲 속에서 수많은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그 처량한 수많은 울음은 우리를 두고 어딜 가냐고, 얼른 돌아와 달라는 것만 같았다.
[헥헥헥!]
그러거나 말거나, 검둥이는 헥헥대면서 좋다고 길을 걸었다. 입을 반쯤 벌린 것도 마치 헤벌쭉 웃은 것 같은데, 검은 구슬 같은 외눈이 곱게 휘어지기까지 했으니 영락없는 웃는 얼굴이었다.
“이거, 계속 늑대들이 따라오니 문제인데요.”
“검둥아, 이제 그만 따라오라 해.”
[헥헥헥!]
검둥이는 그저 똑같이 헥헥댔다. 혀도 없으면서.
따로 숲으로 들어간다거나 하지도 않고 말을 들은 건지 아닌 건지 그냥 소년의 옆에 있기만 했다.
그렇게 며칠이 흐르고. 밤낮없이 따라오던 늑대들의 기척과 소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뚝 그쳐 버렸다. 늑대들의 생활상은 잘 모르겠지만 나름 내부적 합의가 이뤄진 걸까?
한때 자신이 이끌던 무리였지만 검둥이는 뒷다리로 목덜미를 팍팍 긁기만 하는 것이 미련은 전혀 없는 듯했다.
***
[헥헥......]
혀도 없는 입을 헤 벌리고선 소년 옆을 지키고 앉은 검둥이. 누가 이 녀석을 늑대라 하리오.
‘덕분에 마을도 못 들어가게 됐지만, 뭐 상관없나.’
맛없는 음식에 지쳐서 건어포만 질겅거리는 비율이 늘어만 가던 상황이라 더 나빠지진 않았다.
“옛다.”
소년이 건어포 하나를 길게 찢어서 검둥이의 헤 벌린 입에다 넣어주었다.
그 옆에서 브란트가 검둥이의 풍성한 등 갈기를 슥슥 쓸었다. 부드럽고 풍성한 것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벨벳 외투를 만지는 듯했다.
“그나저나 편지는 잘 도착했을까요?”
“도착했겠지.”
소년은 마르세유에서 베른으로 편지를 보냈다. 교통편의 열악으로 인하여 한 달 안에는 도착 못하겠지만 어쨌건 가긴 간다는 성의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편지와는 달리 소년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져서 26일 만에 에크나르프와 스위체의 국경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베른에는 한 달 딱 맞춰서 도착하겠지.
계속 길바닥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을 바에야 그냥 빨리 베른에 도착이나 하자는 생각이었다.
소년은 지금 자신이 어떤 이유로 베른으로 향하게 된 건지는 뒷전이고 그저 식도락을 즐길 생각만 가득이었다.
“알프스라...... 저렇게 큰 산은 처음 봐.”
지평선 부근으로 알프스의 하얀 봉우리들이 어렴풋이 보였다. 마드리드의 산지도 저렇게 하얗다거나 날카롭게 하늘을 찌를 듯 서있다거나 하진 않았는데.
“그나마 베른이 산지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산지였다면 길이 끊기는 경우가 더 많았을 테니까요.”
“자, 얼른 가자.”
“예.”
[헥헥헥!]
***
마법사 연맹.
유로파 및 그 주변 지역의 마법사들이 모조리 연합하여 만들어진, 유서 깊은 거대 조직인 마법사 연맹은 중립국 스위체에 위치하고 있었다.
연맹이 만들어진 그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자면 한참 동안 설명해야 하겠으나 간단히 축약하자면, 오래 전 마법사들이 학파마다 국가마다 찢어져 서로 대립하며 무수한 희생자를 만들 때, 보다 못한 이들이 오랜 투쟁을 겪으며 구축한 견고한 성채다.
마법사 연맹은 원래 거점을 두지 않는 일종의 모임 형태로 시작했지만 마법이 발달하고 국제 정세가 일정하게 고정됨에 따라 안정적인 거점의 필요성이 생겨났다.
그로 인해 유로파의 중심부면서 험한 산지 국가 스위체에 연맹이 둥지를 틀게 되었다.
베른이 마법사의 도시가 된 기간은 약 3백년 정도.
마법사들이 도시를 열심히 가꾸고 최신 마법 이론의 시험 무대가 되면서 베른은 당당히 ‘마법사들의 도시’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다른 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 도시인만큼 처음 방문하는 이들은 무슨 이런 별천지가 있나 하며 놀라게 되기 마련이었다.
“와.”
소년 역시 숱한 방문객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베른의 외곽에서 바라본 도시의 전경은 바깥과는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었다. 시간을 빠르게 돌려 백 년, 이백 년 후의 세상만을 똑 떼어 가지고 온 것처럼 달라도 너무 달랐다.
멀리서 봐도 눈에 확 띄는 8층, 10층 짜리 고층건물들이 즐비했다. 그보다 큰 건물들이야 마탑이나 성채처럼 베른 밖에도 얼마든지 있지만 베른에서는 그런 고층건물이 죄다 민간 용도로 쓰인다는 점이 큰 특징이었다.
베른의 건물들은 외적인 면에서부터 달랐다.
자연에서 채취한 나무와 돌의 결이 그대로 남아 있는 바깥의 건물과는 달리 베른의 건물은 벽이고 기둥이고 모두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자연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전혀 차갑거나 투박하지 않고 단촐하면서도 수수한 멋이 풍겼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다양한 시대의 건축양식들이 공존하면서도 불협화음을 내지 않고 미술관에 온 것처럼 다양한 매력을 풍기는 것이, 미술의 둥지라 불리는 이탈리 반도 북부보다도 한술 더 떴다.
소년의 시선은 하늘에 닿을 것만 같은 건물들에서 다소 아래로 내려왔다.
온갖 예쁜 간판들이 보르도의 거리처럼 손님더러 이리 오라며 손짓하고, 기기묘묘한 마법재료들이 그대로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다. 어떤 곳은 팔고 있는 물품의 성능을 길거리에서 직접 시현하기도 했다.
흙의 색깔은 전혀 보이지 않도록 돌로 빼곡하게 마감한 길 위로, 수많은 것들이 돌아다녔다.
마차 네 대가 나란히 지나다녀도 될 정도의 넓디넓은 길에는 각종 마차는 물론이고 말이 아닌 사슴 등의 짐승들이 끌고 다니는 탈것이 돌아다녔고 길의 양옆으로는 사람이 다니는 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소년이 린던의 ‘잘 사는 것들의 거리’에서 보았던 매끄러운 가로등 역시 줄줄이 세워져 있었다.
인도에는 몸을 가린 로브에서부터, 무기를 지닌 용병이나 기사, 귀족의 복장, 심지어는 터번에 풍성한 자락의 이슬람 복식까지 없는 복장이 없었고 다양한 인종과 국적의 인물들이 뒤섞여 돌아다니고 있었다.
‘보르도보다 더하네.’
보르도는 상업도시로써 성장하며 빈민가라던가 하는 비교적 낙후된 지역도 끼고 있는데 반해 이곳은 철저히 마법사들의 도시라 그런지 그런 면은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브란트, 나 저기 들어가도 되는 거지?”
“딱히 막아서는 것도 없으니까 괜찮지 않겠습니까?”
베른에는 대도시라면 흔한 성벽이 없었다. 해자로 이용할 목적으로 강의 지류를 인공적으로 틀거나 한 흔적도 없었다. 경비는 몇 있었지만 발에 채이는 게 마법사인 이곳에서 경비는 일종의 들러리나 전령의 역할이었다.
“뭔가, 나랑은 안 어울리는 느낌이야.”
다른 도시와는 분위기 자체가 다르다. 말로만 들었던 교황청이 이런 느낌일까? 티없이 깨끗한 흰 천을 밟고 들어가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묘하게 들어가기가 꺼려졌다.
“주군. 주군께서는 공식 작위만 없지 신분상으로는 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누구도 주군을 함부로 업신여기지 않을 겁니다.”
기억의 시작부터가 빈민가의 초췌한 몰골이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워낙 오랜 시간을 구질구질한 밑바닥에서 보낸 탓일까. 자신이 빈민가 출신이라는 심리는 소년에게 가시처럼 깊이 박혀 있었다. 정작 그 빈민가는 완전히 불타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음에도.
“......그렇지.”
지금에 이르러 비로소 오랫동안 박힌 그 가시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 보르도와 마드리드 같은 대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었지만, 베른이 가지고 있는 일정 수준 이상의 웅장함에 그 가시가 자극당한 것이다.
귀족의 예절을 배운 이유, 말투를 바꾼 이유, 사령술을 참은 이유...... 모두 세상에게서 경멸받고 핍박받고 결국엔 멸망시킬 운명을 이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운명을 거부하기로 마음먹은 판에, 그런 열등감과 같은 졸렬한 감정에 휘둘릴 수는 없었다.
이 심리적인 사슬을 풀어내야 했다.
소년은 더 이상 빈민가를 돌아다니는 고아가 아니었다.
소년은 당당한 권력과 재산을 지닌 대선장이다.
맨발이 아니라 가죽 밑창이 대신 땅을 디뎠고 남루한 옷차림은 단정하고 깔끔한 제복이 대체했다.
한낱 빈민들의 경멸 어린 시선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던, 기분 나쁜 소년은 더 이상 없었다.
이제는 국가조차 떨게 하는 강대한 마법사가 그 자리에 있을 뿐이었다.
빈민가 판자촌에 살던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도약이었다.
음식 찌꺼기를 주워먹으며 추위에 떨며 죽은 짐승을 곁에 두던 때엔 상상도 할 수 없던 하늘로 날아오른 신분 상승 그 자체.
“......”
자신이 이룬 것을 생각하며 소년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마음속에서 걸리적거리던 심리적인 불안감이 조금 줄어든 느낌이었다. 하지만 소년이 빈민가를 나온 지는 이제 2년이 다 되어간다. 그보다 오랫동안 빈민가에서 지내며 그만큼 깊숙하게 박힌 가시를 빼내려면 조금 더 시간이 걸리리라.
그러다가 문득.
‘좀 더 자신감을 가져 봐도 되지 않을까?’
조금 욕심이 생겼다.
서 있으면 앉고 싶은 법이고 앉으면 눕고 싶은 법이다. 소년은 한 발짝 더 나아가보고 싶었다. 그 한 발짝 앞에 욕심을 자극하는 목표가 있다면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내 힘을, 사령술을...... 드러내도 되지 않을까?’
소년의 힘은 악마에게 기반한 힘이 아니다. 악마의 힘을 흡수하긴 했지만 악마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고 완전히 소년의 힘에 동화되었다. 그러니 악마와의 계약에 의존한 힘에 경계를 가지는 마법사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믿지 못하는 이들의 시선은 따라다니겠지만 백방 살펴봐도 물증이 없으니 결국엔 사그라들 터. 그런 경계 정도야 빈민가에서 겪은 경멸 섞인 시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리라.
‘너무 이른가?’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내 힘을 드러낸다면......’
소년을 마주하는 이들은 모두 공포를 느낄 것이다. 죽여서 시체를 부하로 되살리는 극악한 마법사!
공포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된다면 제거해야 한다는 위협감보다는 항거할 수 없어 납작 엎드리자는 비중이 더 커진다. 정말 손도 댈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가 된다면, 카스테냐에서처럼 푸대접을 받지 않아도 되고 어딜 가든 소년에게 허리를 수그리게 되지 않을까. 악마의 힘도 없으니 마법사들이 소년을 막아설 명분도 없다.
또한 더 중요한 것 한 가지가 더해진다.
‘별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어.’
테르세이라 섬을 안개로 덮은 이유가 뭔가. 별에게 사령술이 들킬까봐서다.
확신은 못하지만 소년은 니아트리브의 대마법사가 아소르스 제도에 다시 찾아오게 만들도록 유도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었다. 한 번 쑥밭으로 만들고 떠났다가 사령술 소문도 퍼지지 않았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다시 찾아오지 않았는가.
지금은 악마의 힘을 흡수해 별들에게서 다소 멀어졌지만 소년을 발견하기만 하면 다시 방해하려 들지 모른다.
그런데 막상 사령술이 세간의 인정을 받게 된다면? 별들이 아무리 수를 써도 소년을 해할 방도가 없게 된다면? 소년을 견제하려는 수도 일일이 박살낸다면?
그리 하여 소년이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된다면?
‘그거야말로 나의 승리가 되는 거야.’
별들에게 외쳤던 선전포고에 대해서 당당히 승리를 쥐게 되는 것이다.
기대감이 한층 더 타오르려는 찰나, 불타는 열망 사이로 차가운 한겨울의 한기가 불어닥쳤다.
‘그런데 과연 정말로 그게 가능할까?’
소년이 빈민가에서의 첫 패배로 인해 배운, ‘만약의 경우’에 대한 걱정이 소년의 욕심의 등짝을 후려치며 방으로 밀어넣었다.
소년은 고개를 휘휘 저어 제정신을 차렸다. 머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신중하자. 신중하자. 깊이 생각하자.’
충동에, 유혹에 단번에 휩쓸리는 삶은 거부하기로 맘먹지 않았는가.
소년은 두근대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최대한 비관적으로 생각했다.
‘내 세력은 사실 보잘것없다.’
해적 군벌의 대장이라는 지위는 국가에 비하면 작디 작다. 카스테냐가 이를 갈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건 오로지 소년의 마법실력 때문. 소년의 힘을 제외한다면 전열함 이백 척을 가진 해적세력은 분명 큰 위험이긴 하나, 국가 하나가 출혈을 각오하고 작정하고 덤비면 와해될 수 있다.
만일 소년을 큰 위협으로 생각해 여러 나라가 힘을 합치기라도 하면 소년은 멀쩡할지라도 소년의 세력은 또다시 와해될 것이다.
‘나보다 강한 이들도 있겠지.’
마법사들 중에는 초월자 대마법사라 하여, 인간을 뛰어넘은 괴물 같은 존재들이 있다고 어렴풋이 들었다. 그런 이들이 소년에게 어떻게 나올지 장담을 할 수가 없다. 명분이야 높은 이들이 만들고자 하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안다.
‘마법사들도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소년은 현재 마법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마법사들은 귀족 대우를 받는단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 귀족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소년에게 작위를 주지 않으려는 것처럼, 마법계 전체가 지레 겁먹고 경계하여 악마에게 의존하지 않는 사령술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년을 짓밟으려 할지도 모른다. 죄가 없으면 만들면 되는 법이니.
소년의 예상과는 달리 사령술에 대한 공포의 수위가 어중간해, 굴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소년을 제거하려만 들 수도 있다.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공포의 한계선이 어디서부터인지는 소년도 모른다.
조그만 조직이라면 몰라도 유로파 전체를 적으로 돌리면 곤란하다. 자기방어를 위해서 살육이 이어질 것이고, 이는 더 큰 적의를 불러오며 정말로 모든 생명체를 끝장내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겠지.
‘......좀, 나중에 생각해 봐야겠어.’
결국 소년은 사령술을 드러내는 걸 보류하기로 했다. 최소한 마법사들의 반응까진 보고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정말로 힘들다. 세상은 왜 이리 장애물이 많은 걸까.
소년은 남몰래 속으로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