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마법사의 도시를 향하여-7
[헥헥헥!]
인간보다 월등히 큰 체구에, 기사 따위도 손쉽게 갈라버릴 것만 같은 흉험한 기세를 내뿜던 늑대인간이 갑자기 추태를 보이는 이 상황은 모두의 머리에서 물음표를 떠올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
조심하라는 경고가 무색하게 된 그 상황에 브란트의 머리가 잠시 정지했다. 뭐지?
[헥헥!]
“......아. 설마.”
소년이 중얼거렸다. 감정 기복이 별로 없는 소년의 얼굴에 드물게 놀란 표정이 띄워졌다. 소년의 눈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기색을 띠고 있었다.
“주군, 뭔가 집히는 게 있습니까?”
“있긴 한데, 나조차도 믿기가 힘들어서.”
땅에 등을 댄 채, 애완견처럼 배를 드러낸 늑대인간에게 소년이 다가가 거침없이 가슴팍을 간질였다.
[헥헥헥헥!]
기분 좋다는 것처럼 늑대인간이 입을 헤 벌리고 소년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혀 없이 텅 빈 목구멍과 한쪽 눈구멍이 몹시 익숙했다.
“너 검둥이니?”
[컹컹!]
소년의 말에 대답하듯, 늑대인간이 개가 주인 앞에서 앉듯이 앉았다. 풍성한 털의 꼬리가 부러질 듯이 휘휘 흔들리고 있었다.
***
소년이 린던의 빈민가에 살던 때. 인간을 되살리는 법도 몰랐을 때.
소년은 일찌감치 죽은 동물을 되살릴 줄 알았다.
그 중 첫 번째가 죽은 까마귀였고. 두 번째가 죽은 개였다.
“그러니까, 이 늑대인간이 그 개란 겁니까?”
“응. 외눈에 혀가 없는 특징이 같아. 근데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네.”
[헥헥!]
개와는 거리가 먼, 검고 큼직한 늑대인간이 소년의 곁에 앉아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고 있고, 그 뒤편으론 마법에서 풀려난 늑대들이 눈치를 보며 우르르 몰려있는 묘한 상황.
“이상하군요. 분명히 죽은 개를 되살렸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이 늑대인간은......”
명백히 살아 있었다.
심장이 뛰고, 피가 돌고, 따스했다.
그렇게 보이도록 만든 브란트와는 전혀 달랐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리고 몸체도 이렇게 변했네.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 뭔가 다른가?”
“그렇다고 치면 갈매기도 뭔가 변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렇긴 해. 흐음......”
곰곰이 생각하던 소년이 다시 말했다.
“근데 난 얘가 살아있는지도 몰랐단 말이지.”
린던 빈민가의 뒷산에서 마법사가 자폭했을 때, 검둥개 역시 모습을 감추었다. 그래서 소년은 영락없이 폭발에 휩쓸려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줄 알았다.
다시 생각해 보니 검둥이는 마법사에게서 다소 떨어져서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반면 소년은 대화를 하느라 바로 앞에 있었고.
검둥이가 살아있는 걸 보면 폭발에 저 멀리 날아가서 몰랐던 걸까?
“그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되었는지.”
대화라도 할 수 있다면야 좋겠는데. 이 녀석은 말을 알아들을 줄은 아는데 할 줄은 모른다.
[헥헥헥!]
헐떡이는 숨을 내뱉으며 꼬리를 흔드는 검둥이. 만일 혀가 있었더라면 맹렬히 소년을 핥지 않았을까?
“그나저나 이 녀석을 데리고 다니긴 좀 힘들겠습니다. 영락없이 늑대인간이지 않습니까? 늑대를 몰고 다니는 괴수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한 상황에서 대동할 수는......”
“그러네. 검둥아, 널 데리고 다닐 수는 없겠다. 네가 너무 유명해졌어.”
소년이 니아트리브 어로 검둥이에게 말하자, 검둥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몸을 웅크렸다. 풀이 죽었나 싶었는데, 부드득거리는 가죽 당기는 소리가 들리며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근육이 줄어들고 털은 길어졌으며 팔다리가 짤막해지는 동시에 목이 조금 길어졌다.
그리고 그 끝에는 늠름한 검은 늑대로 변화한 검둥이가 있었다.
[컹!]
검둥이가 풍성한 털을 파르륵 털며 짖었다.
인간을 닮은 골격은 어디가고, 일반적인 늑대보다 훨씬 커다란, 말만한 늑대가 거기 있었다.
“......”
“......”
소년과 기사는 잠시 말이 없었다.
“어, 뭐. 그래. 개에서 늑대인간이 됐으면 그 반대도 되겠......지?”
대체 이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쾅!
산에서 있던 폭발 이후. 검둥이는 주인을 잃었다.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주인은 온데간데없었다.
한동안 껑껑 우짖으며 산을 돌아다니던 검둥이는 며칠이 지나고 빈민가에서 진동하던 탄내가 조금 줄어들자 간신히 주인의 냄새 한 줄기를 찾을 수 있었다.
냄새는 부둣가로 이어져 바다를 향해 있었다. 검둥이는 앞뒤 가리지 않고 냄새를 따라 바다로 뛰어들어 도버 해협을 건넜다.
하지만 바다 너머엔 주인의 냄새는 없었다. 짠 소금기와 바닷바람은 주인의 냄새를 쓸고 가버린 지 오래였다.
바다 건너 전혀 다른 세상에 도착한 검둥이는 하염없이 돌아다녔다. 냄새가 바다로 향했으니 바닷가를 걸으면 찾을 수 있을까 하며 계속해서 해안가를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검둥이는 어느덧 항구도시인 보르도에 도착했다.
그곳엔 주인의 냄새 말고도 주인에게서 별도로 느껴졌던 친숙한 냄새가 짙게 진동하며 아예 도시 전체를 메우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 가장 냄새가 짙은 시체 무더기가 있었다.
검둥이는 그 시체 무더기가 왜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린던 뒷산에 만들어 놓은 시체 구덩이와 비슷했기에 주인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
그 시체 주변에서 킁킁거리며 주인의 냄새를 찾았지만 역시나 사방에서 진동하는 주인의 힘의 냄새와 탄내 때문에 주인을 찾을 길은 요원했다.
“훠이, 저리 가라 훠이!”
시체에 손대는 들개를 쫓아내려는 사람들의 위협에 검둥이는 물러났다.
시체 냄새와 탄내가 모두 사라진 자리에는 다른 온갖 것들의 냄새뿐. 주인의 그리운 냄새는 찾을 수 없었다.
검둥이는 냄새가 끊겨 풀죽은 채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그렇게 검둥이는 내륙으로 들어갔다.
검둥이의 내면에서 뭔가 변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주 멀리, 저 먼 곳에서 소년의 힘이 ‘기사 서임’을 통해 변했던 시기였다. 너무 멀리 있어 소년이 그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게 된 검둥이었으나 검둥이 역시 소년의 힘에 의해 되살아난 짐승. 힘의 변화는 검둥이의 무언가를 변화시켰다.
한낱 떠돌이 들개인 검둥이는 내륙의 넓은 목초지를 만났다. 그 주변엔 이미 자리를 잡고 있던 늑대 한 무리가 있었다.
늑대 무리는 검둥이를 위협하며 자신의 영토에서 나가라고 위협했다. 검둥이는 길을 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앞을 막은 늑대 하나를 간단히 물어뜯어 해치웠다.
그런데 하필 그 늑대는 무리의 우두머리였고, 늑대들은 꼬리를 감추며 검둥이를 따르게 되었다.
검둥이는 늑대들이 따르건 말건 정처 없이 움직였다. 사방에 늑대가 산재해 있는 에크나르프의 특징으로 인해 산과 숲에서 검둥이를 막아서는 늑대무리는 많았다. 그 때마다 검둥이는 싸움을 치렀다.
소년의 힘으로 인해 일개 늑대보다 강한 검둥이는 늑대 무리를 하나둘씩 아래에 두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검둥이를 따르는 늑대 무리는 떼거지로 늘어나 결국엔 꽤 큰 목초지를 낀 에크나르프 남부의 제보당 지역에 머무르게 되었다.
별 관심도 없었는데 난데없이 큰 대가족을 책임지게 되어버린 검둥이는 어쩔 수 없이 늑대 무리를 이끌기로 했다. 그건 늑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개의 본능이기도 했다.
그 무렵 검둥이의 모습은 변해 있었다.
비쩍 말랐던 개의 모습은 어디 가고, 위풍당당하게 풍성한 털을 휘날리는 거대한 늑대가 되어 있었다. 늑대를 하도 많이 물어죽이고 그 피를 맛본 탓인지 점점 형태가 변해갔던 것이다.
거대한 늑대 무리는 목초지의 가축들을 손쉽게 몰이사냥하며 그 씨를 말렸다. 그리고 먹을 게 없어진 이빨은 인간을 향했다.
검둥이 역시 인간을 공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빈민가 뒷산에서 주인이 죽인 인간을 뜯어먹고 살던 검둥이다. 빈민가에 오랫동안 살며 인간의 행동방식을 많이 배운 터라 늑대 무리를 지휘해 마을 몇 개를 잡아먹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인간을 뜯어먹기 시작하면서 검둥이의 몸은 또다시 변화했다.
점점 인간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능은 더 높아졌고 늑대에 대한 지배력 역시 더욱 커져갔다.
신고로 인해 제보당 백작이 파견한 기사와 종자들을 잡아먹은 뒤부터는 점점 거칠 것이 없었다. 늑대를 잡겠다며 나선 사냥꾼과 병사들 역시 손쉽게 사냥했다.
시체도 남기지 못한 마을이 열 개가 넘어갔다. 사망자도 수백을 넘겼다. 왕도까지 괴물이 날뛴다는 소문이 전달되었으나, 때마침 카스테냐 왕위 전쟁이 터져버렸다. 전쟁으로 인해 소원해진 관심과 시원찮은 중앙에서의 지원으로 인해 토벌대 조직은 더 늦어졌다.
겨울을 난 뒤 배고파진 검둥이의 무리가 더욱 기승을 부리자 그제야 부랴부랴 토벌대가 조직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검둥이는 너무 강해졌고 늑대 떼는 너무 커져 있었다.
서른, 쉰, 백, 이백...... 토벌대의 수는 점점 늘어갔지만 그들은 빠짐없이 몰살당했다. 이미 평범한 인간의 손으로 죽일 수 없게 된 검둥이 때문이었다.
[커어어엉!]
빈민가의 개였을 때부터 검둥이는 뇌리를 자극하는 울음을 질러대곤 했다. 검둥이의 상징이 되어버린 공포스런 울음을 내뱉으며 사기를 저하시키고, 큼직한 손톱으로 병사들의 전열을 헤집으니 어지간한 숫자로는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토벌대의 총칼로 늑대들이 죽어나갔지만 검둥이가 결투에서 승리해 휘하에 두는 늑대 무리 때문에 수는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오히려 풍부해진 먹이로 인해 수가 더 늘어났다.
1차에서 7차까지 토벌대의 수는 점점 늘어났지만 모두 늑대의 저녁잔치가 될 뿐이었다.
최근에 있던 7차 토벌대는 늑대 떼에 피해를 입은 여러 지역이 닥닥 긁어서 보낸 사병과 징집병, 사냥꾼들을 합한, 무려 칠백에 가까운 수였지만 다른 토벌대처럼 결국 숲 속에서 모조리 몰살당하고야 말았다.
[헥헥헥!]
그런 무시무시한 업적을 이뤘으나, 검둥이는 이제 늑대 떼 따위엔 관심이 없다.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주인을 찾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