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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107화 (108/128)

107화

마법사의 도시를 향하여-6

초소의 병사들이 둘의 앞을 가로막았다. 책임자인 하급 장교로 보이는 이가 통행제한이라 외쳤다.

“통행제한이라니? 늑대가 출몰한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길 가는 사람을 막을 정도인가?”

장교를 비롯한 병사들은 당당히 대답했다.

“제보당 백작께서 내리신 명령입니다.”

제보당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귀족이 그랬다고? 지역 가문이 그 정도라면......

[이거 생각보다 일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통행을 끊는단 것은 극약처방이다. 물류 흐름이 끊겼을 때 가장 많이 피해를 보는 장본인은 많은 물자가 필요한 귀족 가문이다. 그걸 감수하면서 통행제한을 걸었을 정도라면, 어쩌면 소문이 많이 과장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초소는 초소답지 않았다. 마치 조그만 요새처럼 돌을 쌓아 숨을 수 있게 만들었고 늑대의 후각을 방해하기 위해서인지 검댕을 여기저기 묻혀 놓고 있었다.

병사들의 복장도 사뭇 달랐다. 총의 발달 이후 갑옷을 입지 않게 되었음에도 병사들은 여기저기 철제 및 가죽제 보호대를 감고 송곳까지 달아놓고 있었다.

“상황을 좀 더 알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는가?”

“그건 기밀이라, 곤란합니다.”

머뭇거리는 것이 장교라 그런지 일반 민중보다는 조금 더 많이 알고 있는 듯했다.

“오면서 소문을 좀 들었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만 알 수 있겠나.”

“죄, 죄송합니만 그건......”

“그럼 어쩔 수 없지. 다만 길은 열어줬으면 좋겠네. 여기 계신 이분은 마법사시다. 뭔가 수가 있을지도 모르니 길을 열어줄 수 있겠나?”

마법사란 말에 초소 인원들의 얼굴이 조금 밝아지는 것 같았다. 그들 기준에선 마법은 뭐든지 뚝딱 해결할 수 있는 것만 같을 테니.

“그렇다면야,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다소 주저하는 것이 늑대와 괴물에 대해 어지간히 두려워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

길은 열렸지만 사람이 있는 곳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많이 가야 했다. 날은 조금씩 어두워져갔다.

“잠시 쉬었다 가야겠습니다.”

그 둘이야 잠을 잘 필요가 없지만 말은 눈을 붙여야 했다.

푸르륵거리며 투레질하는 말의 고삐를 나뭇가지에 묶은 브란트가 나무 밑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소년이 손을 슥 휘두르자 여기저기서 잔가지가 뚝뚝 부러지더니 한데 모였다. 모닥불이 금방 완성되었다.

“정말 마법은 편리하군요. 주군께서 그런 마법을 쓸 때마다 부러워집니다.”

“너도 배울래?”

“하하, 그러면 좋겠지만 기사의 마력과 마법사의 마력은 동시 공존이 불가합니다.”

“글쎄?”

말이 주저앉은 곳과 나무줄기 사이의 틈새에 몸을 끼워 넣은 소년이 다리를 모아 앉았다. 소년의 조그만 등판에 차갑고 거친 나무껍질과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털이 동시에 닿았다. 자세만 보면 추위를 피하기 위해 어떻게든 웅크려 앉은 자세라 처량해 보였다.

‘심심하다. 책이라도 가져올걸 그랬나.’

보르도에서 약탈했던 책들은 바다의 진주 호에 아직도 가득 쌓여 있었다. 물론 모두 다 독파한 지 오래지만 이런 심심할 때 책의 삽화만 슥 훑어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소년은 말안장에 매달린 주머니에서 건량을 꺼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마르세유에서 구입한 건어포였다.

맛은 없었지만 뭔가 씹을 거리가 있다는 게 의외로 허기를 덜어주었다.

밤잠이 없는 소년과 잠을 안 자도 되는 브란트는 이렇게 다음날 아침까지 심심하고 지겨운 밤을 지새야 했다.

원래라면 말이다.

“......뭔가 옵니다.”

“나도 느꼈어.”

푸르륵!

바람을 타고 짐승 특유의 노린내가 흘러들어왔다. 브란트와 소년이 냄새와 기척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이 둘보다 조금 늦게 냄새를 맡고 깼을 정도로 둘의 감각은 예민했다.

사박거리는 수많은 숨죽인 발소리가 어둠 한복판의 유일한 광원인 모닥불을 응시하며 다가왔다.

“늑대라......”

아니나 다를까, 이 주변을 들쑤시고 다닌다던 늑대 떼였다.

모닥불을 반사하여 번쩍거리는 짐승의 안광이 두두둑 숲의 어둠 속에서 피어올랐다.

[늑대 떼는 보통 열 마리에서 많아 봤자 스무 마리인데, 이 녀석들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예삿일은 아닌 듯합니다.]

늑대 떼라. 소년은 그 말에 디야브의 해적단 늑대 떼가 생각났다. 소년이 늑대 떼의 대장인 디야브의 기함만을 따로 떼놓아 죽이자 늑대 떼가 후퇴했듯, 이 늑대의 우두머리만 죽인다면 지레 겁먹고 모두 도망가리라.

‘근데 어느 녀석이 늑대 대장이지?’

으르렁거리며 서서히 다가오는 늑대들. 사방에서 조여오는 노린내에 말들이 겁먹어 뒷걸음질치다가 중심부인 모닥불에 뒷발이 닿아 놀라며 날뛰었다.

푸히힝!

그걸 기점으로 늑대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브란트가 검을 빼들었으나, 소년은 피튀기는 난전을 치룰 생각이 없었다.

소년이 손을 부드럽게 휘저으며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야수에게 등을 보이는 위험한 행위였으나 소년에겐 하등 문제될 것이 없었다.

소년의 부채처럼 살짝 편 손이 지나가는 궤적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늑대들이 뚝하고 동작을 멈추었기 때문이었다.

끄응, 끄으응......!

끼잉!

컹컹거리는 소음은 시작되자마자 멈추었다. 늑대들이 몸을 움츠린 채 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주둥이를 닫은 채 끙끙대는 신음을 흘릴 뿐이었다.

“주군, 무슨 마법입니까?”

“그냥 바윗돌을 진 기분을 느끼게 해줬을 뿐이야.”

늑대들의 등허리 부분 털이 무거운 것이 올라앉은 것처럼 짓눌려 있었다. 허리가 밑으로 굽어져 그걸 버티느라 달달 떨고 있는 것이었다.

“역시 마법은 신기하군요.”

“너도 배우려면 배울 수 있을걸? 나도 장담은 못하겠지만.”

그때 늑대 무리 뒤편에서 팍팍거리는 흙 박차는 소리가 멀어져갔다.

늑대들을 짓누른 마법의 범위가 협소하여 무리 저 뒤쪽에 있던 늑대들에겐 영향을 미치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렇게 많은 늑대 무리라면, 다른 무리가 더 있을 확률도 있겠지요?”

“그야 모르지. 소문이 과장된 건지, 아니면 우리가 일부만 보고 있는 건지.”

소년은 늑대를 죽이진 않았다. 그저 가까이 있는 몇 마리를 신기한 듯 이리저리 살펴볼 뿐이었다. 니아트리브엔 늑대가 씨가 말랐고, 소년은 큼직한 산 속 야생동물을 사실상 처음 보는 거라 호기심이 동했던 것이다.

강제로 허리 근력 운동을 하게 된 늑대 떼의 한가운데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워우우우우우-!]

저 멀리. 족히 산 한두 개는 넘을 듯한 저 멀리에서 섬뜩한 긴 울음이 메아리쳤다.

“정말 괴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울음소리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유령인 자신을 심적으로 고동치게 만드는 불길한 울음소리에 브란트가 검을 고쳐 쥐었다.

반면 소년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디서 들어본 울음소리 같은데?

퍼석! 퍼석!

고요한 한밤중의 숲에서, 나무를 뒤흔드는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를 껴안고 힘껏 흔드는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갔다.

[나무를 발판삼아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무게가 상당한 모양입니다.]

나무 사이를 뛰어넘는 거친 소리는 조금씩 가까워졌다.

파스슥거리며 나뭇잎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이 부스스 떨어져 내리고, 턱 하는 나무 박차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서 다른 늑대들과는 다른 빛깔과 크기의 안광이 불쑥 나타나더니 늑대들 한가운데에 쿵하고 떨어졌다.

“맙소사.”

놈은 나무를 밟고 온 게 아니었다. 나무의 줄기를 발판 삼아 Z자로 이리저리 움직이며 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무가 세차게 흔들릴 정도라면, 힘과 무게가 꽤나 된단 뜻이었다.

그 추측대로, 놈은 큼직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허리를 앞으로 숙여 구부정해서 그렇지 몸체를 쫙 펴면 트롤 스프링밀의 목까지는 올 정도였다. 등줄기를 따라 길게 돋아난 털이 마치 말갈기 같았다.

놈은 남자들이 동경할 만한 부풀어 오른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털로도 가려지지 않는 우락부락한 근육의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톱은 어찌나 길고 날카로운지 단검을 대신 매달아 놓은 것 같았고 입가에 드러나는 이빨 역시 톱날을 잘라 붙여놓은 것 같았다.

더욱 놀라운 건 놈의 몸통은 인간의 형상인데, 머리는 늑대의 머리라는 것이었다.

‘늑대인간? 단순한 설화가 아니었단 건가.’

에크나르프를 비롯한 서부 유로파에선 늑대인간에 대한 설화가 내려져 오곤 했다. 물론 그런 설화는 마법사들의 연구로 논파된 지 오래였다. 그저 늑대가 하도 많아서 생겨난 낭설이라는 것.

에크나르프는 물론이고 레흐텐과 라인 연맹을 나다니며 숱하게 괴물을 잡던 브란트조차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더욱 그랬다.

그런데 눈앞에 늑대의 머리와 인간의 몸통을 가진 괴물이 떡하니 나타났으니 마법사들의 연구는 헛짓거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크르르르릉......]

늑대인간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하나밖에 없는 안광을 빛냈다. 검푸른 빛의 눈빛이 검은 기사와 조그만 소년을 훑었고.

킁, 킁킁.

늑대의 본능대로 코를 킁킁댔다.

그러더니 갑자기 입술을 말아 올린 걸 도로 되돌리고 이빨을 감추었다. 길쭉하게 뽑았던 손톱도 짧게 줄이고 곤두세우고 있던 털도 다시 눕혔다. 상체를 앞으로 살짝 숙인 채 당장이라도 돌격할 자세조차도 풀어버리곤 사족보행의 자세를 취했다.

‘위험하다.’

브란트는 늑대인간이 갑자기 경계를 푸는 것 같자 더 긴장했다. 괴물 중 영악한 놈들은 방심하는 척하면서 갑자기 달려들곤 했기 때문이엇다.

[조심하십시오. 저보단 주군을 먼저 노릴지도 모릅니다.]

킁킁킁

늑대인간은 계속해서 코를 벌름거리더니 그 다음 순간 믿을 수 없는 행동을 선보였다.

[헥헥헥!]

입을 반쯤 벌린 채 배를 드러내며 벌렁 땅에 누워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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