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마법사의 도시를 향하여-5
장교들의 말에 따르면, 놈들은 어둠을 틈타 습격해온다고 한다.
그 말에 병사들은 사방에 횃불과 등불을 밝혀 두고 언제라도 쏠 수 있도록 머스킷을 장전한 채 앞을 겨누고 방아쇠에 손을 가져다 둔 상태였다.
푸르고 흰 군복을 입은 병사들의 가슴팍에는 저마다 다른 가문에서 왔음을 상징하는 문장이 붙어 있었다.
몸은 서로 다른 지역 출신이지만, 마음만은 같았다.
‘무서워 죽겠네!’
그들은 제보당에 출몰한다는 사악한 늑대 떼와 그 늑대를 이끄는 괴물을 토벌하러 온 군대였다.
괴물이 출몰한 지 1년이 넘은 지금, 제보당의 괴물에 관한 소문은 한껏 몸집을 키운 지 오래였다. 제보당 지역의 모든 마을이 몰살당했다더라, 지역 귀족 가문도 멀쩡하지 않다더라, 이미 몰래 군대를 파견했는데 고작 늑대 떼에 모조리 죽었다더라, 마법사도 잡아먹혔다더라 하는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사방을 떠돌았다.
그 중 일부가 토벌하러 온 군대 내부로 새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기는 떨어지고, 장교들은 발악하며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어디 그런다고 쉽게 잊혀질까. 미신이 만연하고 마법을 두려워하는 시대다. 자신이 상대할 수 없으리라 판단되는 괴물에게 두려움을 갖는 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컹컹컹!
저 멀리서부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늑대를 상대하기 위해 토벌대는 군견을 상당수 데려왔다. 경계 및 탐색 목적도 있었고 총을 겨누고 쏠 때까지의 시간을 벌어주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깨갱!
그런데 개 짖는 소리는 금방 낑낑대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개소리는 금방 잦아들며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빈자리를 거친 짐승의 소리가 대신했다.
쿠왁! 커엉! 커엉!
갈라지고 굵은 늑대 특유의 거친 울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겁먹지 마라! 놈들은 겨우 늑대다! 머스킷 소리에 도망갈 거다! 그 뒤로 횃불을 휘두르고 총검으로......”
한 장교가 칼을 뽑아들고 외쳤으나 그의 말소리는 도중에 끊겼다. 잠시의 침묵 뒤.
“흐아아아아!”
“괴물이다! 괴물이다아아아!”
[쿠와아아아아악!]
다수의 비명과 함께 거대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곰? 아니다. 사자? 들어본 적도 없어서 모르지만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저 울음소리는 매우 불길하여 손을 절로 떨리게 만들었다. 영혼을 긁어내는 듯, 소름이 온몸에서 돋아났다. 당장이라도 총을 내버리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미 사방은 어둠이 깔려 있는 상황. 저 안으로 들어가면 정말로 죽는다는 확신 때문에 오히려 도망가는 이는 적었다.
-망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움직이지 마. 전열 유지하라 했잖아.
-아니 뒤에서부터 올지도 모르는데 무슨 전열이야!
한쪽 방향을 경계한 병사 전열의 내부에서 공포 가득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들 저 멀리 뒤편에서는 계속해서 끔찍한 비명과 총소리가 이리저리 뒤섞이고 숲 속에서는 늑대의 긴 울음소리. 앞이나 뒤나 그들의 심장을 조여드는 소리뿐이었다.
“느, 늑대다!”
타타타탕!
누군가의 외침에 그 근처에 있던 이들이 앞을 향해 일제사격을 가했다. 장교의 명령도 없이 마구잡이로 쏜 것이고 나무투성이인 숲 속이라 효험은 없었다.
그들 앞의 어둠 속에서는 횃불 빛을 반사하여 번들거리는 짐승의 안광이 가득했다.
“이놈들 와 봐라!”
“죽여주마!”
겁먹은 개가 크게 짖는 것처럼, 병사들이 허겁지겁 총알을 장전하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질러 장전시간 동안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술책이었다.
그러나 늑대들은 그 술책을 알기라도 하는 듯, 땅을 박차고 우르르 몰려오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장전하던 걸 멈추고 총검을 앞으로 겨눌 수밖에 없었다.
“찔러!”
“죽여!”
전열을 향해 달려든 늑대들이 날카로운 총검에 꽂혔으나, 그들은 마지막까지 발악을 해댔다. 죽으면서도 자신을 찌른 병사의 팔이나 목덜미를 꽉 깨물었다.
병사들의 비명과 늑대의 울음소리가 뒤섞이며 숲 속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피냄새가 짙어지며 늑대들의 흉성을 더욱 끌어냈고, 그 늑대 떼를 이끄는 ‘괴물’ 역시 흥분시켰다.
“살려줘!”
“후퇴! 후퇴!”
다양한 비명을 지르는 이들을 향해 매정한 죽음의 손길이 날아들었다. 괴물은 칼날 같은 발톱으로 나약한 인간의 육신 따위는 가뿐하게 갈랐다. 숲으로 들어온 병사들의 삼분의 일 정도는 그 괴물이 직접 죽인 것이었다. 팔다리가 날카로운 검에 잘린 것처럼 동강나고 내장이 흩뿌려지며 야수들의 눈이 충혈되었다.
횃불을 든 손이 핏물에 적셔졌다. 횃불이 떨어지며 겨울 동안 썩지 않은 낙엽에 불이 붙었으나, 늑대들은 횃불 위에 흙을 덮어 산불을 미연에 방지했다. 도저히 일개 짐승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지능이었다.
그렇게 모든 횃불과 숲으로 들어온 인간의 생명이 꺼진 뒤에는 으득거리는 생고기 씹는 소리 가득한 연회가 시작되었다.
그 한가운데에서는, 거대한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 있었다. 괴물은 시체를 가득 쌓아둔 더미 위에 올라가 고개를 위로 쳐들었다.
[아우우우우-!]
일반적인 늑대 울음소리와는 다른 불길하고 거친 긴 울음이 숲 속을 울렸다. 그에 화답하여 주변 지역의 늑대들이 다 모인 듯 수많은 늑대 소리가 길게 늘어졌다.
거대한 울음의 탑이 쌓아지며 승리를 자축했다.
이로써, 제 7차 제보당의 괴수 토벌대가 전멸당했다.
***
마차와 사람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땅이 다져져 생긴 흙길을 두 필의 말이 걸었다. 하나는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가, 하나는 바다를 누비는 사람이 입을 듯한 푸른 옷을 입은 소년이 타고 있었다.
“맛있는 거......”
퀭한 눈으로 소년이 말의 목덜미 위에 걸쳐지다시피 한 채 중얼거렸다.
마르세유에서부터 북상하면서 만난 마을은 여럿 있었으나, 그곳에서 먹은 음식들은 소년의 맛에 대한 허기를 전혀 채워주지 못했다.
끓이거나 굽는다. 해상에서 먹었던 그 조리법과 똑같이, 하지만 향신료는 전혀 없이 식재료만 다른 음식들. 말 그대로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의 조리법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브란트으으...... 에크나르프는 분명, 식재료가 다양하다고 하지 않았어......?”
소년이 먹은 건 빵인지 돌인지 알 수 없는 덩어리를 갈아 만든 죽이나 여러 재료를 다 때려넣어 양을 불린 국물 음식이 전부였다. 가축을 키우는 곳도 간간이 있긴 했지만 그 역시 잡내를 제거하는 향신료가 없어 대부분 훈연 아니면 건조된 고기뿐.
“......”
브란트는 ‘그게, 상류층 기준입니다.’ 라는 말을 목 뒤로 꿀꺽 넘겼다. 그건 위로가 아니라 화만 돋굴 말이었으니까.
검은 역병으로 인해 사회가 크게 변했다지만, 평민들 생활은 수백 년 동안 그렇게 달라진 게 없었다.
좋은 건 무조건 상류층의 것이고, 상류층을 위해 일하는 이들 역시 가문에 속박되면서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었다. 과거에 비하면 경제적 계급상승을 이룬 이들이 있기야 했지만 그거야 여건과 시대적 상황을 잘 탄 소수뿐.
검은 역병이 많은 걸 바꾸어놓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일반 평민의 가치가 조금 올라갔을 뿐이지, 그 이전과 생활수준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당연히 그들이 먹는 음식에 큰 발전이 있을 리가 없었다. 소출의 절반 이상을 부농이나 지역 유지에게 뺏기고, 사냥이 늘 잘되리란 법은 없다.
맛보다는 양을 중요시할 수밖에.
‘린던 빈민가랑 다를 게 없잖아......’
굳이 따지자면야 빈민가와 농민 둘 다 일장일단이 있긴 했지만 소년의 기준은 ‘맛’이다.
“저 멀리 마을입니다. 조금만 버티십시오. 저기선 나름 솜씨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습니까.”
“안 믿어.”
마을이 나올 때마다 위로를 하겠답시고 브란트가 저리 말하긴 했는데, 소년의 기대를 번번이 저버리곤 했다. 갈수록 소년은 의욕만 떨어져 갔다.
“베른...... 베른에는 맛있는 게 많겠지? 그래야만 해. 없으면 마법사들 모두에게 저주를 걸어버리겠어. 모두 대머리로 만들어 버릴 거야......”
소년의 오싹한 넋두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둘은 한 마을의 앞에 도착했다. 통나무 목책이 높게 세워진 마을이었다. 곳곳에 존재하는 맹수나 간혹 출몰하는 괴물 등에 대비한 목책은 에크나르프뿐 아니라 유로파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축물이었다.
목책 위쪽에서 머리를 내민 마을 주민 몇이 화들짝 놀라며 목책 뒤로 몸을 숨겼다.
“마을을 지나가야겠다. 문을 열어라!”
브란트의 외침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문이 스르르 열리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기사님이다! 기사님이야!”하며 기쁨이 섞인 외침이 들렸다.
‘뭐지? 보통은 외지인을 환영하진 않는 편인데.’
외딴 시골은 지리적으로 고립된 만큼 폐쇄적이다. 당연히 외부인을 꺼린다.
완전히 열린 목책 문 뒤로 마을 사람 열 정도가 우르르 몰려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의 초췌하고 꾀죄죄한 얼굴 한가운데에서 기대감 가득한 눈이 반짝였다.
“무슨 일이 있나?”
“예? 아, 아니 왕실에서 내려오신 기사 분이 아니신지요?”
“그저 떠돌이 기사일 뿐이다.”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돌아보면서 김샜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희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브란트는 그들에게 건방지니 뭐니 하며 권위를 내세우는 대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다.
“요 주변 지역에서 괴물이 거느리는 늑대 떼가 횡행한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벌써 마을 수십이 잡아먹히고 토벌대까지 수백이나 잡아먹혔답니다!”
“기사단도 몇 개 전멸당했다고도 들었습니다!”
하나 물어보자마자 주민들이 벌떼처럼 말을 내뱉었다. 그동안 긴장하고 있던 것이 수다라는 형태로 튀어나온 모양이었다. 뭐? 수백이 죽어? 기사단이 전멸해?
“소문이 너무 과장되었는데. 자세한 얘기는 없나?”
“과장이 아닙니다요! 아무리 저희가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는 못한다지만 상인들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상인이 허풍쟁이라면 소문의 신뢰도는 떨어진다. 소문은 늘 걸러들어야 한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밌을 거 같은데. 좀 더 물어봐.]
소년의 말에 브란트는 몇 가지를 더 캐물었다.
하지만 폐쇄적인 시골 주민이 아는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괴물이 늑대 떼를 몰고 다니면서 마을을 잡아먹었고 토벌하러 간 이들까지 모두 늑대 밥이 되었다는 말이 전부였다.
‘제보당이라...... 넓은 목초지로 유명한 곳이지. 가축을 따라 늑대가 갑자기 몰린 건가?’
이 마을에서부터 북서쪽에 있는 제보당 지역이 늑대가 출몰하는 곳이라는 걸 듣고는 마을을 나온 둘. 조금씩 땅거미가 지는 하늘을 쳐다보며 소년이 말했다.
“늑대가 에크나르프엔 흔한가?”
“예, 많습니다.”
에크나르프는 농경지가 많다. 그 얘기는 평야가 넓단 얘기고, 따라서 목초지 역시 많은 나라다. 당연히 오래 전부터 목축을 해왔고 가축을 따라 맹수 역시 곳곳에 자리를 잡았다.
1년에도 수백, 심하면 수천 건까지 늑대에 대한 피해가 보고되곤 하는 나라가 에크나르프였다. 보통은 기껏해야 양 한 마리를 물어갔습니다, 애 하나가 물렸습니다, 늑대 잡으려다가 팔다리를 다쳤습니다 정도지만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고려한다면 맹수 피해가 얼마나 흔한지를 알 수 있었다.
“괴물도 곧잘 잡는데 맹수를 처리 못 해?”
“땅은 넓고, 행정력도 다 닿지 못합니다. 더구나 여기저기 전쟁이나 벌이고 다니잖습니까.”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전쟁이나 하고 다니는 나라’라고 일축한 브란트. 괴물이야 수도 적고 흉조라 여기니 있는 족족 잡아대며 국가나 가문의 위엄을 살리는 용도지만 넓은 땅에 산개해 있는 그 많은 짐승을 모조리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길을 따라 좀 더 걷다 보니, 불을 밝히고 있는 초소가 길 한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정지! 이 앞은 통행제한 지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