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바다의 두 사자-10
정보는 군대에서 중요하다.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군대를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선택지가 더 넓어지며 동시에 적을 패퇴시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정보도 정보 나름이다.
‘오염된’ 정보는 득이 아니라 독이다.
상대방이 일부러 흘린 역정보인지 가늠해야 하며, 정보의 신빙성 역시 의심해 봐야 한다. 니아트리브 함대는 이를 소홀히 했기에 비고 항에서 참패를 당한 것이다.
정보의 신빙성을 1차적으로 검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정보를 가져오는 자의 신상 및 정보 습득 방식이다.
만일 정보 습득 방식이 주먹구구식이거나 정보를 가져오는 이의 신상이 불분명하다면, 얻은 정보가 과연 맞는 정보인지 추가적인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게 마련이라 정보를 받는 쪽이 매우 피로해진다.
카스테냐의 무적함대를 이끄는 알레한드로 제독의 현 상황이 딱 이 꼴이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진지한 표정으로 되묻는 알레한드로 제독과 그에 대답하는 소년.
나이를 먹을 대로 먹어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의 깊숙한 목소리와, 변성기도 오지 않아 다소 높고 얕은 목소리가 교차했다.
산탄데르까지 조금만 더 가면 되는 거리에서 갑자기 나타난 대선장의 조촐한 배. 그리고 전해준 산탄데르에 니아트리브가 함정을 파놓고 있다는 정보.
제독은 우묵하게 들어간 그늘진 눈두덩 밑으로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대선장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눈을 내리깐 채 깍지를 끼고 정자세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예의바른 몸가짐의 표본과도 같이 가만히 앉아 있어 사람과 똑닮은 인형을 앉혀 놓은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였다.
그에 걸맞게 인형이라 봐도 문제없을 정도로 변화 없는 대선장의 표정. 애초에 대선장은 제독을 바라보지도 않고 있어 아무리 진지한 표정을 지어 상대방을 압박하려 한들 소용이 없었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나 표정이 없다니,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인가.’
알레한드로 제독은 자신의 작품에 흠이 있는가 찾아보는 도공처럼, 무표정하고 앳된 소년의 얼굴에서 조금이라도 심경의 변화를 찾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앞으로의 싸움의 결과가 바다의 패권을 누가 잡을지 결정하게 된다. 여러 가지 변수를 신경 써야 하는 제독의 입장에서는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아직도 대선장이 카스테냐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저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서 갑자기 동북쪽에서 나타났지. 혹시 니아트리브와 내통한 게 아닐까? 아무리 스승을 니아트리브가 죽였다지만 대선장은 니아트리브 인이고 해적에게 작위를 줄 확률도 니아트리브가 더 높으니......’
대선장이 배신을 했다는 가정 하에, 카스테냐 함대가 산탄데르에 정박하는 시간이 늦어지면 니아트리브에 도움이 되는가는 따져보기로 했다.
히혼에서 산탄데르까지는 바람이 잘 분다면 배로 반나절도 걸리지 않는다. 다만 함대의 규모도 있고, 바람 방향이나 암초도 고려해야 하며 함대의 진형을 유지하면서 가야 되기에 한나절 정도 걸린다. 지금은 한 시간만 더 전진하여 저 멀리 보이는 해안선을 따라 돌아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바로 코앞이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다 와서 진격을 가로막는다 한들 니아트리브에 득 될 것은 없다. 만약 그게 득이 된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끌기 위해 있는 말 없는 말 다 해야 하겠지만 소년은 할 말만 딱 하고는 ‘그 다음은 네 판단에 맡기겠다’ 하는 식으로 대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능성을 따져 본 결과, 대선장은 ‘아직은’ 배신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났다.
“함정이 어떤 방식인지는 알고 있나?”
소년은 펼쳐진 해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다로 나오는 이곳 두 강의 하구가 만나는 곳이면서 구부러진 지역하고, 만 입구의 산타 마리나 섬(Isla de santa marina) 동편에 매복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자세히도 알고 있군.”
“좋은 정보원이 있거든요.”
그때 한 장교가 의문을 품었다.
“제독님, 뭔가 이상합니다. 산타 마리나 섬은 아주 낮은 섬입니다. 아무리 잘 숨어도 전열함 꼭대기쯤은 다 보이고 섬 자체도 작아서 많이 숨어있을 수도 없습니다. 잘못 알아온 게 아닌가 합니다.”
무적함대는 카스테냐 북부 해안을 무대로 싸울 계획이니 카스테냐 북부 해안 출신의 장교진을 대동한 상태였다. 의문을 제기한 장교는 다름 아닌 산탄데르 출신이었다.
“또 이쪽 곶 부분도 높이가 낮아 건너편 바다에서 훤히 볼 수 있는 지대입니다. 매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곳입니다.”
산탄데르 만 안쪽의 강 하구에서부터 시작되는 만의 S부분의 남쪽 곶을 가리키며 장교가 설명을 덧붙였다.
“대선장, 제대로 알아온 게 맞는가?”
“저는 정보원이 들은 대로 전하는 것뿐입니다. 혹시 압니까? 니아트리브 함대가 지도만 보고 대충 결정했을지.”
“정탐선을 보내라. 함대는 전진하다가 저 지형을 돌기 전에 멈추도록.”
믿기는 힘들지만 니아트리브 함대가 그런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면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으리라.
***
“......아니 여기서 어떻게 매복을 하라는 거야?”
한편, 산탄데르의 매복지에 도착한 니아트리브 함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야음을 틈타 은밀히 들어오긴 했는데, 날이 밝자마자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숨은 곳 주변 지대의 높이가 너무 낮아서 건너편에서 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숨은 의미가 없었다.
알렉산더 제독은 말 그대로 지도만 보고 매복지를 정한 것이다.
니아트리브 함대는 산탄데르도 약탈한 적이 있었으니 그 지리는 숙지해 두었긴 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산탄데르 약탈에 참여했던 장교들은 3함대 소속으로, 지난번 비고 항 습격에 참여했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당연히 산탄데르의 상세한 지리를 기록한 자료 역시 날아갔다.
비아리츠의 본부에는 주변 해안선과 도로 등을 간략하게 그려넣은 지도밖에 비치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스크 공국은 카스테냐와 붙어 있기에 첩자가 들어와 방화나 절도 등을 저지를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각 함대의 장교들이 자신들이 들렀던 곳의 주요 건물 위치나 지형의 특징까지 기록된 상세한 지도를 가지고 있다가 회의에 참석할 때 소지하는 방식이었다.
알렉산더 제독은 간략하게 그려진 지도의 섬과 곶의 형태만 보고는 절벽투성이인 니아트리브의 지형과 같을 거라 간주하고 막연히 ‘배는 가려주겠지’ 하면서 매복지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 결정에 지적을 해줄 산탄데르 지형 지도를 가진 장교는 없었다. 만일 있었다면 그런 작전은 시행하지 않았을 것이다.
“카스테냐 함대가 코앞까지 왔을 텐데 이 무슨...... 당장 연락선을 파견해라! 매복을 철수하겠다고 해!”
니아트리브 함대는 맞춘 대로 딱딱 움직이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아왔다. 그래서 정탐선을 통해 카스테냐 함대의 위치를 파악하고 산탄데르에 도착하는 시간을 계산하여 정확한 시기에 매복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독이 되었다. 설마하니 매복지가 ‘영 아니올시다’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카스테냐 함대가 오기 전에 서둘러 철수해야 했다.
하지만 비아리츠로 보낸 연락선이 도착하기도 전, 코앞에 있던 카스테냐 함대의 정탐선이 어설픈 매복을 하고 있던 니아트리브 함대를 먼저 포착하고 말았다.
“......부관, 내 눈이 잘못되지 않았다면 저 배들이 돛 꼭대기가 다 드러나는 섬 뒤에 숨어 있는 걸로 보이는데.”
“아, 예...... 깃발로 보건대 니아트리브 함대가 맞습니다.”
정탐선의 선장과 선원들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놈들은 우리가 장님으로 보이나?
“저들이 멍청한 건가 아니면 대마법사가 있다고 자만한 건가? 역시 멍청한 섬나라 놈들답군. 지금까지 도망친 게 다 부끄러울 정도야.”
그 날, 카스테냐 함대를 샌드위치처럼 포갤 예정이었던 니아트리브 함대는 만 입구를 포위해 버린 카스테냐 함대에게 역으로 철창 안에 갇힌 짐승 신세가 되어버렸다.
***
‘마음이 급해 정탐선으로 매복지 정찰도 하지 않고 섣불리 명령을 내린 게 잘못이었어.’
알렉산더 제독은 또다시 배를 모두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얼굴이 새파래졌다. 폐쇄적인 만 내에서의 전투라 빠져나올 수 있던 배는 고작 세 척.
‘최소한 만 바깥 근처에 본대가 있었다면 물러나게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기습만 하고 빠르게 빠지자는 욕심 때문에......’
비고 항에 이어 또 한 번의 패배.
샌드위치 작전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50여 척의 함선을 잃어버린 니아트리브 함대의 분위기는 바닷속에 던진 바위처럼 가라앉았다.
원래 세 개 함대 282척을 몰고 내려왔던 니아트리브 함대는 두 번의 패배로 인해 한 개 함대에 달하는 배를 잃고 183척으로 쪼그라들었다. 잃은 배들이 모두 전열함급인 배여서 타격은 더 컸다.
안 그래도 전체 배 숫자가 카스테냐에 비해 모자란데 거기서 격차가 더 벌어져 버리고 말았다.
거기에 한번 재편된 4함대의 전력은 전열함 미만의 배가 많아 전투력이 평균에 미달한 상태라 문제는 더 심각했다.
샌드위치 작전을 크게 한 입 베어 물어준 카스테냐 해군은 산탄데르를 거쳐 카스테냐 북부의 마지막 종착지인 빌바오에 도착함으로써, 카스테냐의 해안을 니아트리브의 손아귀에서부터 완전히 탈환했다며 대대적으로 알리고 해군의 사기를 한껏 끌어 올리는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카스테냐 북부 해안이 원주인에게 돌아감에 따라, 카스테냐 해군은 그동안 카디스에 처박혀 있던 굴욕을 그대로 갚아주듯 니아트리브 함대를 비아리츠로 몰아넣었다.
“결국에는 한판 함대전을 벌일 수밖에 없겠지. 자, 나와라. 삼백이 넘는 카스테냐의 배가 너희를 반겨 주리라.”
“결국에는 함대전으로 끝장을 볼 수밖에 없겠지. 자, 나가자. 수적 우세보다 기술적 우세가 더 강하다는 것을 보여 주리라.”
카스테냐의 알레한드로 제독과 니아트리브의 알렉산더 제독. 이름마저 같은 두 제독이 서로의 자존심과 국가의 자존심을 건 대규모의 함대전을 목전에 두고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