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화
희망봉의 유령선-11
카스테냐 해군의 상황은 그야말로 초상집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소르스 제도에서 한번 물마법사의 위력을 맛본 상황이다. 생존자가 있으니 아무리 정보를 통제한다 하더라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법. 암암리에 수병들 사이에 물마법사의 무서움이 퍼지면서 사기는 조금씩 하락하는 추세였다.
더구나 전쟁이 시작되고 에크나르프 해군의 비참한 전과가 전달되자 때가 되었다는 듯, 해군의 사기는 자기 스스로 절벽에서 몸을 던지며 정말로 장례식장이 되고 말았다.
언제 어디에서 물마법사가 나타나 자신이 타고 있는 배를 수장시킬지 모른다는 공포에 병사고 장교고 모두 불안장애 증세를 내보이며 바다로 나가는 걸 거부할 정도였다.
안 그래도 미신과 마법에 민감한 이들이거늘, 자신들이 앞으로 무시무시한 마법사를 상대할 거라는 생각만으로도 모두가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니아트리브의 물마법사는 포로를 사악한 마법에 제물로 바친다더라, 손짓 한번만으로 함대는 물론이고 나라 하나도 쓸어버린다더라 등등의 과장된 소문들이 전염병처럼 함대 내에 돌아다녔다.
이에 군기가 해이해지는 일도 일어났다. “군기를 지키고 빠릿하게 움직이면 뭘 하나, 마법사가 손짓만 하면 꼼짝없이 가라앉을 텐데.”하는 무기력증 역시 카스테냐 해군 상부를 괴롭혔다.
카스테냐가 자랑하는 ‘무적함대’ 역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 이루어졌으므로. 지금껏 져본 적이 없다는 자부심만으로는 마법사에 대한 공포를 억누르긴 힘들었다.
너무나 사기가 떨어진 탓에 카스테냐 반도 남쪽의 군항 카디스(Cadiz)에 집결은 했으나 감히 바다로 나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니아트리브의 제일가는 마법사라는 보이지 않는 공포가 항구를 포위하고 있는 셈이었다.
겁먹은 수병들을 채찍질하며 다그치는 것도 정도껏이지 대부분의 수병들이, 장교마저 겁에 질려 있는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싶었다.
해군 본부 회의실.
“왕실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비어버린 에크나르프 해군을 대신하여 바다를 장악하라는 명이다.”
무적함대의 제독인 알레한드로 후작이 무겁게 말했다. 각 선단의 장교들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한숨을 애써 집어넣으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무거운 공기가 그들의 목을 죄는 듯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는 알겠지만, 내 생각은 그 물마법사가 없는 전장에서 최대한 피해를 입히면 된다고 생각한다.”
말이야 쉽지 그 물마법사가 어딨을 줄 알고.
이는 제독 스스로를 포함한 모두의 생각이었다.
“첩보에 따르면 니아트리브의 두 개 함대가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물마법사는 도버 해협에서 병력 수송을 호위하고 있다 하니 그 함대에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그러자 한 장교가 손을 들었다.
“에크나르프 해군은 궤멸되었다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병력 호송에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물마법사가 내려올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생각해 보게나. 에크나르프 해군을 완전히 전멸시킨 상황에서 또 우리를 전멸시킨다면 니아트리브는 모두의 공적이 될 거다. 정치적 문제를 감수하고 대마법사를 동원해서 공격하려 들지는 않을 거다.”
물론 바다의 패권이 손에 들어오는데 그런 게 문제겠냐며 눈 딱 감고 달려들 수도 있어 섣불리 판단할 순 없었다. 하지만 제독은 낙관적인 가능성에 목을 매달아야 했다.
“니아트리브는 귀중한 마법사를 일선에 내보내는 도박을 감행하진 않을 것이야. 생각해 보게. 왜 니아트리브가 처음부터 에크나르프를 상대로 함대전을 벌이지 않고 병력 호위부터 시켰을까? 그렇게 강한 대마법사인데?”
“......!”
“정치적 위험도 있겠지만, 마법사에게도 한계가 있거나 니아트리브 스스로도 아직 마법사를 잃을 위험성을 감수하고 싶지 않은 거다. 어쩌면 에크나르프 해군과의 싸움에서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르지. 수백 척끼리 맞부딪쳤는데 멀쩡할 리가 없지. 지금 내려오고 있는 함대가 그 증거다. 그 물마법사는 제 1함대에 소속되었다 한다. 허나 내려오는 것들은 2함과 4함이야.”
“그렇다면 거기엔 마법사가 없단 것이로군요!”
“그래. 그래도 2함은 1함에 버금가는 부대라 긴장해야 하겠지만 4함은 사령술사와 싸운 이후로 해체되고 새로 편제되었어. 따라서 비교적 약한 4함을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나름 논리적인 제독의 말에 장교들의 표정이 조금이나 펴졌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제독도 사실 속마음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사기를 증진시키기 위해 낙관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반박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헛소리와 다름없다는 걸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니아트리브도 바보는 아니다. 마법사를 잃을 위험성을 두려워했다면 에크나르프 해군을 상대로 그렇게 맞서 싸우지도 않았겠지. 막말로 사략함대처럼 치고 빠지는 식으로 조금씩 배를 수장시키면서 운용한다면 정말 최악 중 최악이 되어버린다.’
수병부터 제독까지. 사기는 썩은 동아줄을 잡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얼마나 갈지......’
겨우 끌어올린 사기가 과연 얼마나 갈까. 제독의 시름은 깊어져만 갔다.
***
파도가 절벽에 부딪히며 고즈넉한 느낌을 주는 소리를 냈다. 심신을 평안하게 해주는 간질거리는 물보라 소리.
그러나 그건 바다를 가끔 가다 보는 이나 바다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감상일 뿐, 지겹도록 바다의 광경을 보고 바다의 소리를 들어온 소년에게 있어서는 의미 없기 짝이 없는 소리였다.
소년의 뒤쪽 저편에서 시체 선원들이 악기를 연주하면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깔깔거리고 있었다. 살점이 여기저기 떨어져나가 흉물스러웠지만 그들 역시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려는 듯이 참으로 흥겹게들 잘도 놀았다.
그 사이에서 큼직한 트롤 스프링밀이 크헤헤거리며 독보적으로 시선을 끌었다. 여기 오기 전에 잡은 큼직한 다랑어 한 마리를 양 손으로 잡고 와구와구 뜯어먹고 있었다.
소년은 그들과 떨어져 절벽 끝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깊은 바닷물을 닮은 검푸른 하늘, 진주를 으깨 뿌려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물론 소년 입장에서는 자신을 적대한 가증스러운 적일 뿐이었다.
‘반응이 없어.’
하늘만 봤다 하면 별들이 으르릉거리며 야수처럼 경계를 했건만, 지금은 그저 조그만 반짝임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그 싸움 이후였을 거야.’
니아트리브의 물마법사에게 된통 깨진 이후부터 별들은 소년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소년이 물마법사가 만든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면서 마지막으로 봤던 밤하늘. 별들이 서로 즐겁게 하하호호 거리는 모습.
그때는 마냥 구름에 가려져 있어서 그런가 생각을 했지만, 희망봉으로 향하는 와중의 밤하늘에서도 자신에게 별 관심을 주지 않고 자기들끼리만 떠드는 것을 보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 별들이 물마법사처럼 자신이 죽었다고 속을 리는 없을 테고,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는 소년에 대한 적의를 지웠을 리도 없으니까.
그리고 희망봉에서 악마를 잡아먹고 다시 올라오는 길에는 아예 떠드니 마니 하는 느낌조차 더 이상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달라진 것은 오직 하나.
‘악마.’
악마의 영혼을 먹은 것.
물마법사와의 전투 때 사탄을 잡아먹었고 희망봉에선 이름 모를 악마 하나를 더 먹었다.
사탄을 먹고 난 뒤엔 별들이 소년에게 관심을 껐으나 별들이 떠드는 걸 들을 수는 있었다. 악마 하나를 더 먹은 뒤에는 이제는 별들이 떠드는지 아닌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별들이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기 이전처럼.
‘악마의 영혼을 먹으면 먹을수록 세상의 시선에서 점점 멀어지는 걸까?’
소년은 악마와의 싸움을 복기하면서 악마가 했던 말들을 곱씹었다.
‘악마는 내게 별의 사생아라 했어. 그전엔 사탄이라 착각하고서 땅의 피조물 운운했지. 그러면 인간은 별의 피조물, 악마는 땅의 피조물...... 하늘과 땅이라.’
소년은 오른눈을 가린 안대를 쓸었다.
악마의 영혼을 먹으니까 별의 관심에서 멀어졌다고?
‘나는, 악마가 되어가는 걸까?’
순간적인 두려움이 들었으나, 살짝 다르게 생각해보니 별 문제없지 않나 싶었다.
어차피 빈민가에서부터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는데, 악마가 되었건 무슨 상관이랴. 소년은 자신이 정한 기준대로 살면서 그 운명인지 뭔지만 벗어나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면 된다.
삶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소년은 자신에게 다짐하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래. 그거면 돼.
잠시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자, 다시금 현실적인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면 별들은, 세상은 날 적대하는 걸 그만 둔 걸까?’
언뜻 보면 별들이 적대하지 않게 된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소년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지. 그건 아닐 거야.’
소년에게 낙관론이란 건 저 멀리 집어치울 쓸모없는 잡동사니에 불과했다. 악마도 인정한 세상을 멸망시킬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별이 그런 자신을 적대하는 걸 그만뒀을 리가 없다.
혹시, 악마의 힘을 얻었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일 뿐인 게 아닐까? 마치 두건을 뒤집어쓰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별들의 반응을 알 수만 있었더라면 이 가정이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텐데. 그저 답답할 따름이었다.
‘별이 날 계속 적대하고 있는 거라면...... 날 못 보게 된 대신 내가 일으키는 현상을 중점으로 내 위치를 가늠할지도 몰라.’
소년은 빈민가의 깡패 사채업자들이 빚을 진 채무자가 자신들의 눈을 피해 도주했을 때의 반응을 기억한다. 눈에 불을 켜고 반드시 찾아내겠다며 분노를 불태웠고, 채무자가 붙잡혔을 때는 어김없이 분풀이를 했다.
마찬가지로 소년을 다시 찾아낸 별들 역시 더욱 분노할 것이다. 안 그래도 경계대상인데 자신들의 시선을 피할 수단까지 가지고 있단 얘기니.
언젠가는 소년이 사령술사라는 걸 들킬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별은 소년을 제거하기 위해 더 노골적으로 굴겠지.
‘그렇다면 그날을 최대한 늦추기 위해 세상의 눈을 가릴 수단이 필요해.’
소년은 눈을 반쯤 감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 자신이 가진 능력 하에서, 밤이면 온 세상을 내려다보는 별의 눈을 피하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
단순히 사령술과 저주 능력을 안 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언젠가는 쓸 때가 있을 테고, 쓰는 순간 발각될 가능성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소년의 머릿속에서 여러 단어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이리저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그루의 거대한 나무를 이루었으며 그 나무가 쓰러지며 한 줄기의 구불구불한 강물이 되면서 온갖 생각들이 넘쳐흐르는 바다로 이어졌다.
소년이 내리깔고 있던 눈을 슥 들었다.
그 생각의 끝에, 소년은 시체를 되살리는 것 말고 자신이 가장 자신있어하는 부문을 떠올렸다.
‘저주라......’
소년은 플라잉 레흐텐을 만든 악마가 행했던 것들을 생각했다.
이 세상이 아닌 듯한 폭풍우의 내부. 온 바다에 악마의 힘이, 악마의 저주가 스며들어 있던 그 해역. 저주를 살아있는 대상에게 거는 게 아니라, 환경 그 자체에 적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운용하던 악마.
소년 역시 악마의 방식을 그대로 응용하여 물마법을 사용할 줄 모르면서도 물의 거인을 만들지 않았던가.
소년이 씩 웃었다.
꽤나 괜찮은 방법이 떠올랐다.
‘뭐 일단은.’
소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섬들이 수평선에서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다시 자리부터 찾고.’
아소르스 제도에 다시 돌아온 소년이 목을 뚜둑 꺾었다.
섬 위로는 무기질적인 빛을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에 수없이 깔려 있었다.
소년에게는 저 별들이 마치 평소에는 똑같이 생활하다가 자신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공포와 경멸에 찬 눈빛을 하는 빈민들처럼 보였다. 지금은 소년이 안 보이니 맘이 편할 터다.
‘언젠간 너희들도 내 앞에서 벌벌 기게 만들어주마.’
판자촌의 빈민들처럼, 소년이 나타나기만 하면 불안해하며 공포에 찬 시선을 보내게 해주마.
소년이 하늘을 향해 손등을 내보인 채 검지중지를 동시에 내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