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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자촌의 유령선장-67화 (68/128)

67화

희망봉의 유령선-4

쾅!

불꽃을 머금은 소년의 왼 주먹이 악마의 방어막을 강타했다.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소년의 옷을 불태우는데도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재차 주먹을 내리쳤다. 만일 저 주먹에 칼이라도 들려 있었으면 칼을 역수로 잡고 마구 내리찍는 섬뜩한 광경이었을 것이다.

소년의 주먹에서부터 뿜어지는 염화는 더욱 크고 강해졌고, 소년의 힘이 사탄의 힘을 집어삼키며 불의 색깔은 어두워져 갔다. 그러다 보니 검푸른 불꽃과 새빨간 불꽃이 서로를 잠식하려 싸우는 형태처럼 보였다.

“사탄이 아니구나 네놈......!”

악마는 악마의 힘을 띤 것으로 보이는 불꽃 말고도 생소한 검은 불꽃을 보고는 이를 갈았다.

“이제 알았냐? 악마는 다 머리가 나쁜 모양이야.”

“한낱 별의 부스러기 따위가!”

악마는 막기만 하다가 소년이 방어막을 내리치곤 다시 때리기 위해 팔을 위로 드는 순간, 방어막을 방패처럼 이용해 날 부분으로 소년을 찔렀다. 형체가 없는 것을 물리적으로 휘두를 줄은 예상 못한 소년이 복부에 일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허공과 육신이 부딪히며 퍽하는 큰 소리가 들리고, 소년은 달리는 황소에 치인 것처럼 빠른 속도로 바닷속으로 풍덩 빠져버렸다.

‘무서운 놈이다.’

대체 이 몸을 떨리게 만드는 공포는 뭐란 말인가. 아아, 이 땅의 주인이시여. 대체 저놈은 뭐란 말입니까. 별의 피조물이 땅의 피조물을 몰아붙이다니, 대체 이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힘과 속도는 대등하지만 세세한 임기응변은 나보다 못하다. 내장이 모조리 박살났을 게 분명하니 당분간 못 올라올 거다.’

그렇게 한숨 돌리면서도 방어막과 소년의 맨몸이 부딪힐 때 가죽 때리는 소리가 난 게 신경 쓰였다. 안에 갑옷이라도 입었나?

그렇지만 악마가 숨을 돌릴 시간은 짧았다.

촤아아악!

바닷물이 소용돌이치나 싶더니 거대한 해골 형상으로 변모하며 쩍하고 그 아가리를 벌렸다. 그 검은 심연의 동공에서부터 온몸을 검은 불꽃으로 감싼 소년이 튕겨 나와 빠르게 악마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영혼을 내놔!!]

왼눈은 어둠 속에서 눈동자 좌우의 백색 파편만이 보이는 것처럼 더 까매졌고 고함을 내지르느라 쩍 벌린 입은 자신을 뱉어낸 아래의 소용돌이처럼 새카맸다.

검은 불꽃이 감싼 몸 주위로는 검은 연기가 휘감고 있는 것도 모자라 악마를 향해 그 끝자락이 휘어져 있어 연기로 이뤄진 수많은 뱀이 머리를 내민 것처럼 보였다.

소년이나 연기나 오로지 눈앞의 악마를 잡아먹겠다는 일념으로 입을 쩍 벌리고 있어 가히 섬뜩한 모습이었다.

“지독한 놈, 저리 꺼져라!”

악마는 또 눈을 마주치자, 지옥의 괴수들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기괴한 느낌이 온몸을 잠식하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내가 지상의 것을 두려워하다니 맙소사! 그 스스로도 놀라는 동시에 두려움을 잊으려 두 손을 모아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려 만든 붉은 빛의 기둥을 내뿜었다.

조그만 체구의 검은 불꽃 덩어리는 훨씬 굵은 붉은 기둥에 집어삼켜졌다. 악마가 온 힘을 다한 공격. 인간을 초월한 대마법사가 아닌 이상은 모두 저 악마의 파괴적인 힘이 담긴 광선에 잿가루로 휘날리리라.

악마의 힘이 끊기고, 빛기둥이 스르륵 흩어졌다.

“말도 안 돼.”

놀랍게도 소년은 그대로 공중에 떠 있었다.

“으흐흐흐......”

물론 몰골은 멀쩡하지 않았다.

소년의 옷가지는 모두 사라져 있었으며 피부는 완전히 타버려 까맣게 변해 엉겨 붙었고 그 사이사이로 누런 살과 붉은 살이 뒤섞인 것이 엿보였다. 코가 뭉개져 콧구멍을 틀어막았고, 뺨이 불타 사라져 그 안으로 그슬린 치아가 훤히 드러났다. 귀와 머리칼도 모두 눌어붙어 검은 진흙을 대신 붙인 것 같이 보였다.

그 만신창이가 된 몸 곳곳에서 검은 안개가 뭉클뭉클 새어나와 몸을 덮었다. 몸에 멀쩡한 구석이 없었으니 안개는 몸 전체를 모포처럼 휘감았다.

그러나 소년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기세는 그대로였다. 아니 더 강해졌다. 사탄을 잡아먹어 몸속에 갈무리한 악마의 힘이 같은 악마의 힘을 튕겨냄과 동시에 일부 흡수하여 소년을 보호한 것이다.

고통이 온몸을 휘감고 있지만 통증이란 감각은 사탄을 잡아먹고 성장한 소년의 뇌리를 더 이상 마비시킬 수 없었다.

‘고작 이 정도냐?’

이게 놈의 전부라면, 승산이 있다!

소년의 흑백이 대비된 왼눈은 검은 불꽃이 점령하고 있었으며, 안대가 타버려 드러난 오른눈에서는 악마의 붉은 광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죽어! 이 간악한 피조물아!”

악마가 비명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며 입과 손에서 기운을 뿜어냈다. 어지간한 고위 마법사도 막지 못할 파괴적인 힘의 덩어리들이 소년을 폭사시키기 위해 날아갔다.

[영혼! 영혼! 영혼!! 내놔아아아!]

소년은 화살보다도 빠른 악마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악마와의 거리를 착실히 좁혀왔다. 몇 개는 아예 팔로 튕겨내면서 몸을 사리지 않고 하나의 목표를 위해 허공을 상어처럼 빠르게 돌진해왔다. 악마의 힘을 받아낼 때마다 살이 푹하고 파여 나갔으나 검은 안개가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 모습은 마법사가 아니라 가히 광전사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오로지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괴수!

‘놈을 먹어야 한다!’

현재 소년의 머릿속은 그것으로만 꽉 차 있었다.

누군가 충동질한 것도 아니고 알 수 없는 마음의 충동에 몸을 맡긴 것도 아닌, 소년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마치 죽기 위해 달려드는 것 같은 행동이지만 이는 오히려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었다.

놈을 먹어야 한다. 그래야 더 강해질 수 있어! 막대한 악마의 힘을 내 것으로 만드는 거다!

그래야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크아압!”

하지만 악마는 악마. 아까의 공격으로 힘을 꽤 썼지만 붉은 덩어리 하나하나에 담긴 힘은 무시할 게 아니었다. 맞붙지 않고 거리를 벌리면서 계속 쏘아지는 광선의 탄막이 소년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에서 두 발광체가 직선과 곡선을 번갈아 그리며 빙글빙글 도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잠자리와 모기가 서로 꼬리를 물며 도망치는 모양새와도 같았다.

그 사이에서는 악마에게서 쏘아지는 붉은 힘의 응집체와 소년에게서 뿜어지는 붉은 번개줄기 및 검은 불덩어리가 서로 교차하며 허공에서 터져나갔다.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부스러기 주제에 땅의 피조물의 힘을 손에 넣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을 궁지로 몰다니! 이렇게 돌기만 하는 건 놈을 피해 도망가는 꼴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고 아예 도망갈 수도 없고......’

악마로서의 자존심은 도망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찌 땅의 피조물이, 한낱 별의 피조물 따위에게 꽁무니를 빼랴!

‘저놈은 지치지도 않나?’

비바람이 끊이지 않고 몰아치는 폭풍우 속을 몇 바퀴를 돌은 건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런데 저 기괴한 인간 꼬맹이는 오로지 자신을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쫓아왔다. 저게 인간 마법사가 낼 수 있는 힘이야? 아니, 사탄의 힘을 가지고 있단 것 자체만으로 평범한 놈은 일단 아니다.

[얌전히 잡히면 고통 없이 보내 주마!]

소년이 검은 안개와 검은 불꽃에 휘감겨 오른눈의 붉은 안광을 제외하면 어둠 그 자체처럼 보이게 된 몸뚱이로 일갈했다. 악마가 인간에게 해야 할 말을 인간이 악마에게 해대다니 이런 기가 찬 일이 있나!

‘어쩔 수 없지.’

악마는 이를 부득 갈면서 푹 젖은 외투를 벗어던졌다. 흰 셔츠 역시 단추를 뜯으며 거칠게 벗었다. 그리고 몸을 한껏 부풀리기 시작했다.

옷이 모조리 찢어져 나가면서 거대한 붉은 몸체가 허공을 메워 나갔다. 다리는 바다 밑바닥을 딛고, 머리는 하늘에 닿았다. 부푼 근육 하나하나가 동산만해지고 파충류처럼 날카롭고 검은 손톱이 자란 손에, 뿔은 더욱 커져 거대한 검은 첨탑 같이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거대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큼직한 갤리온이 손가락 크기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해진 악마가 외쳤다.

-죽어라!

천둥 치듯 우렁우렁 울리는 외침만으로 파도가 밀려나고 공기가 압축되었다.

유령선장 슈트라센이 자신의 배를 잡아챌 때보다도 훨씬 큰 거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럴 수가. 저게 악마의 본모습이란 말이냐?

도시 하나쯤은 단번에 박살낼 거대한 팔이 허공을 가르자 저편의 바다와 구름이 이불을 터는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 공기가 압축되며 빗방울이 모여 순간적으로 새하얀 장막을 형성할 정도였다.

소년은 그 광대한 공격을 수면 아래로 들어가 피하는 것으로 받아쳤다.

-걸렸구나!

악마가 씩 웃었다. 이 지역은 희망봉을 건너는 것을 막기 위해 해역 전체에 저주를 걸어 만든 일종의 결계 내부였다. 때문에 이 폭풍우 몰아치는 해역에는 악마 그 자신의 힘이 충만하게 깃들어 있었다.

악마는 자신의 힘이 충만한 바닷물을 단단한 바위처럼 굳혀버렸다. 소년이 떨어진 곳 일대의 바다가 멈추었다. 파도와 물방울 하나하나가 조각상이 된 것처럼 그대로 굳었다. 수면만 멈춘 게 아니라 저 깊은 물속까지, 정육면체의 형태로 그대로 바위가 되었다. 놈은 절대로 저 밖으로 나오지 못하리라.

그러나 악마는 아까 바닷속으로 떨어진 소년이 너무나도 쉽게 물을 헤치고 나온 걸 간과했다.

-참 애먹이는 놈이야. 본신을 드러내야 겨우 죽는구나.

그러나 승리의 기쁨도 잠시. 수면 아래에서 느껴지는 사나운 기운의 응집으로 인해 악마는 뒤로 물러서야 했다.

-아니, 이게?

악마는 바다의 변화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돌처럼 굳어버린 수면이 다시 부드러워지는 동시에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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