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판자촌의 유령선장-64화 (65/128)

64화

희망봉의 유령선-1

푸른 하늘.

푸른 바다.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이 제일 많이 보는 광경이리라. 하도 많이 보는 광경이라 굳이 묘사하기도 뭣할 풍경이다.

다만 갈매기가 새까맣게 앉아 있는 가로돛대는 보기 흔치 않은 장면이었다. 어선에서도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 갈매기들은 모두 생기가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 멀리서 보면 무슨 말린 고기를 아무렇게나 돛대에 걸어놓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어으, 보기, 싫어어......”

“참아아아......”

그 아래, 갑판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선원들이 느릿하게 잡담을 나누었다. 비척거리며 움직이는 게 무슨 병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되는 몸놀림이었다. 피부 역시 창백하고 일부는 검게 썩어들어가는 것이 역병 방지를 위해 당장이라도 바다에 내버려질 꼴이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선박의 모든 선원들이 그렇게 비틀거리고 우어어거리면서도 자신의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멀쩡히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은 딱 두 명 뿐.

“입맛에 맞지 않으십니까?”

이 배의 선장이 허름한 배 밑창에서 누군가에게 굽신거리고 있었다. 생전에는 꽤나 사치를 누리고 살았는지 몸 곳곳에서 금빛 장신구가 번쩍였다.

“아니야. 이만 가봐.”

선원들과 마찬가지로 몸이 조금씩 썩어가고 있지만 아직 크게 티는 나지 않는 해적선장이 끽끽거리며 위로 향하는 계단을 밟았다.

“......”

소년은 멍하니 선장이 주고 간 그릇을 쳐다보았다.

선원들이 낚은 생선으로 만들어진 간촐한 스튜가 소년의 앞에서 연기를 모락모락 피워냈다. 손질이 제대로 되지 않아 비늘조각이 반짝이긴 했지만, 빈민가에서 이보다 못한 걸 먹고 살았던 소년에게 문제될 건 아니었다.

후룩

한참이나 가만히 있던 소년이 스튜를 한 숟갈 떠 먹었다.

제법 괜찮았다. 곱게 손질한 생선살의 맛이 따끈하게 끓인 소스와 만나 부드럽게 혀를 적시며 침을 고이게 만들고, 알싸한 후추의 향이 코끝을 간질이면서 동시의 달큼한 바질 향이 서로 어우러졌다.

‘맛은 있네.’

향신료를 듬뿍 뿌린 스튜라 맛이 없을 수가 없다. 혀에 걸리는 단단한 비늘조각만 아니라면 더 좋았겠지만.

‘보르도 음식 또 먹어보고 싶다.’

전문적인 요리사와는 다르게 재료 넣고 끓이고 향신료만 뿌리면 다 되는 줄 아는 해적들의 거친 솜씨가 불협화음을 자아내 소년은 해적들이 만든 걸 먹을 때마다 에크나르프의 고급 요리가 그리웠다. 하긴 이것도 해상에서는 사치다.

소년은 스튜를 떠먹으며 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은한 등불 불빛에 책들이 벽돌처럼 가득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소년은 니아트리브 해군과의 일전을 치르기 전, 배 하나를 따로 빼 놓았다. 바로 보르도에서 약탈한 책을 잔뜩 싣고 있던 바다의 진주 호였다.

대규모 해전이 벌어지기 전, 해적선단 하나가 물마법사에게 순식간에 갈려나가는 걸 본 소년은 곧바로 도주극을 계획했다.

그렇다면 도주 이후를 대비하여 역시 대차게 깨지고 난 뒤에도 재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아야 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바다의 진주 호.

바다 전체를 무기로 삼는 물마법사에게 멀쩡한 배가 남아날 리가 없으니 따로 한 척을 빼둔 것이다.

다만 선원들은 모두 바뀌어 있었다.

적들에게 최대한 타격을 주면서 물마법사를 죽일 확률을 높이려면 소년의 모든 것을 동원해야 했다. 그러려면 전투 중 상대편과 대등한 포격전을 벌이며 피해를 강요해야 했고 또 그러려면 숙련된 대포 사격 실력을 가진 선원들이 필요했다.

바다의 진주 호의 에크나르프 선원들은 니아트리브 인들과 같이 부대끼다 보니 어느새 그들의 노하우를 다 전수받았기에 전투에 참여해야 했다.

‘예상보다도 더 처참하게 깨지긴 했지.’

그리고 그중 멀쩡히 돌아온 이는 전무.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할 때 즈음, 이미 전의가 거의 꺾인 북쪽과 남쪽의 해적선들은 도주를 시작했다. 애초에 시체 선장의 말을 듣고 용감하게 돌진했던 해적단들 말고는 멀리서 깔짝대기만 하다가 전세가 기울자 바로 내뺐다.

반면 서쪽의 해적선들은 누구도 살아나가지 못했다. 물마법사가 물을 모두 굳혀버려 해적선을 표적지로 만들어버린 것도 있고, 소년의 전술에 열이 한껏 받아서 직접 모든 배를 박살냈기 때문이었다.

‘잊자 잊어.’

소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소르스에서 물마법사와 싸운 목적은 도망치기 위해 죽은 척 하는, 도주극이었다. 자꾸 승패에 미련 갖지 말자.

더 싸워서 적에게 피해를 강요할 수도 있었지만, 말했듯이 싸움의 목적은 확실한 도주를 위한 것. 그래서 죽은 척 하기 위해 적당한 때에 시체를 일으키는 힘도 거두지 않았나.

그렇게 아소르스 제도에서의 큼직하면서 양측에게 끔찍했던 해전이 끝나고.

보르도에서 약탈한 책, 해적들이 해적질을 하면서 바친 후추 등의 말린 향신료, 소년의 시체 선원 이 셋을 가득 실은 바다의 진주 호는 현재 역방향으로 흐르는 해류를 타며 속이 터질 정도로 느리게 항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소르스 제도 근방의 남쪽으로 흐르는 해류와 소년의 마법으로 빠르게 내려왔지만, 에프레카 대륙 서쪽의 움푹 들어간 지점,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해류가 지나는 해역에 접어들자 돛이 부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거북이걸음이 되어버렸다.

뭐 어차피 속도도 거기서 거기겠다, 소년은 조바심을 버리고 유유자적하게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뒤에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낮에는 마법으로 돛을 부풀려 속력을 좀 내고 선원들이 비척거리면서 만든 조잡한 생선요리를 대접받으며, 밤에는 선창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반복된 일상이 벌써 한 달 째였다.

“크흥.”

장교의 취미 호처럼 꾸민 바다의 진주 호 맨 밑의 소년의 좁아터진 칸막이 방 밖에서 큼직한 콧소리가 들려왔다.

거친 무언가를 벅벅 긁는 소리와 함께 천장에 가까운 곳에서 번쩍하고 검푸른 안광이 생겨났다.

“으우?”

다소 멍청하게 생긴 기괴한 얼굴이 민대머리를 긁적이며 불빛에 얼굴을 디밀었다. 트롤 스프링밀이었다.

아소르스 제도에 오기 전까지 소년과 함께한 세 척의 배의 인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녀석이었다.

전투에 투입되지 않은 이유는 바로 ‘해전에서 별 쓸모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도 무거워서 선상 백병전에서 갑판이 꺼질 수도 있고, 시체를 손상시키거나 잡아먹는 편이라 시체를 되살리는 데도 문제가 생기며, 대포를 쏠 줄은 안다지만 명중률도 그닥 좋진 않았다.

무엇보다 수영을 할 줄 몰랐다. 물에 빠지기라도 하면 그대로 가라앉는 바위나 마찬가지라, 스프링밀은 바다의 진주 호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

얼굴을 불쑥 내민 트롤에게 소년은 관심도 주지 않고 책만 읽었다. 스프링밀도 딱히 관심을 달라는 목적은 아니었는지 소년의 행동을 확인만 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파묻혔다. 책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고, 이내 드르렁거리는 코골이 소리가 들려왔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시체가 되면 잠이 다 없어지던데 저 트롤만은 여전히 잠을 잤다. 정말로 졸린 건지, 아니면 생전의 생활특성을 따라하는 건지.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트롤에 대한 연구자료를 찾아 스프링밀의 수면이유나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소년은 마법으로 배를 미느라 왼쪽 눈 안에서 검푸른 기운을 움직이고 있었다. 반면 오른쪽 눈은 천을 뜯어 만든 조잡한 안대로 가리고 있었다. 계속 밖으로 새어나오는 붉은 기운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딱히 어디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지만 계속 흘러내리는 게 보기가 싫었다.

물처럼 뚝뚝 떨어지던 기운은 눈을 안대로 가리니, 원래부터 자신은 액체가 아니라는 걸 주장하듯 뚝 그쳐버렸다.

책 한 권을 다 읽은 소년이 손짓하자, 다 읽은 책이 휙 날아가더니 누군가 받은 것처럼 한쪽에 턱하고 가지런히 놓였다. 그곳엔 소년이 읽은 책들이 탑처럼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코골이가 들려오는 어두운 선창 안쪽으로 손을 뻗자 책 한 권이 바닥을 기어서 다가왔다.

찍찍

비루먹은 생쥐 몇 마리가 책을 지고 있었다. 원래는 포식자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늘 숨을 들썩이고 코를 씰룩이는 조그만 생물들이지만, 이들은 마치 박제처럼 생기 없이 가만히 있었다. 소년이 책을 받아들자 생쥐들은 다시금 어둠 속으로 들어가며 조그만 붉은 눈빛을 빛냈다.

새 책을 받아든 소년은 잠시 눈을 감았다.

소년의 시야가 뒤바뀌고, 어둡고 칙칙한 선창이 아니라 드넓고 물로 꽉 찬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돛대 맨 위 전망대에 앉아 있던 갈매기 떼 중 하나가 축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 옆으로는 시체 선원이 마찬가지로 축 기대 앉아 느릿하게 망원경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저녁이네.’

해가 선수의 오른편의 저 먼 수평선으로 몸을 반쯤 숨기고 있었다. 뜨거운 해가 바닷물에 잠겨 수증기를 피워내기라도 하듯, 수평선 근방의 하늘에는 구름이 얼룩덜룩 매달려 있었다.

해가 지는 방향을 보니 남향으로 가고 있긴 한 모양이었다.

시계가 있긴 하지만 해적이 막 쓰던 것이라 그런지 이따금씩 제멋대로 멈추었다. 그리고 위도가 계속 바뀌면서 해가 떠 있는 시간도 달라져 시간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렇게 해가 절반 정도 수평선에 가려지는 시기를 기점으로, 소년은 돛을 부풀리던 마법을 끊었다. 부풀어 있던 돛이 축 늘어지자 시체처럼 아무데나 늘어져 있던 선원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오오옷! 당기어어어!”

“으이츠아아!”

뿌득거리며 밧줄을 조종하는 선원들의 늘어지는 외침과 함께.

“노! 젓는드아아!”

“카드으 내려놔아아!”

갑판 밑에서 터벅거리는 발걸음이 늘어났다.

바람이 없을 때를 상정하여 만들어진 간략한 노젓는 시설로 어기적거리며 다가가는 선원들. 니아트리브와는 달리 에크나르프의 배에는 간략하게나마 노젓는 시설이 비치되어 있었다. 일부는 구명정을 내려 밧줄로 배와 묶어 노를 저어 추진력을 만들기도 했다.

어으어어 거리며 힘들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시체들이 노를 힘껏 젓기 시작했다.

에프레카 대륙의 남쪽 끝, 희망봉을 향해서.

***

니아트리브로 돌아간 왕실마법사단장 1급 물마법사 엘리자는 제독 직위를 박탈당했다.

해전에서의 큰 피해, 그리고 기존 목표인 ‘아소르스 제도 점령’에도 실패했기에 결과적으로 목표 수행 실패로 귀결된 것.

입은 피해도 만만하지 않았다. 108척 중 1급 전열함을 포함한 25척 침몰, 43척 대파, 8천여 명 사상.

어지간한 국가 간 해전에서 입는 것의 몇 배나 되는 피해를 단 한 번의 해전에서 입었다.

소년의 자폭전술은 아소르스 제도를 점령하기 위해 병력을 꽉꽉 채우고 있던 니아트리브 함대에 치명적이었다. 사방에서 몰아닥치는 해적으로 인한 혼란 때문에 바다에서 건져올린 수병이 설마하니 적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더 취약했고, 병력이 많으니 되살아나는 시체도 많아 그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그에 반해 나포한 해적선의 수는 고작 15척에 불과했다. 엘리자가 배들을 모조리 부순 것도 있고, 살아있는 시체들로 꽉 차있던 배가 불길해 타고 싶지 않다며 수병들이 승선을 거부해 나포한 배 중 극히 일부만 끌고 올 수 있었다.

‘고작’ 해적 따위를 상대로 이러한 처참한 결과라니.

아무리 엘리자가 유명인이라 해도 책임을 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대거 물갈이를 당한 귀족 의회에서는 여왕의 눈치를 보면서도 엘리자의 제독 해임안을 내놓았고, 여왕도 이 전과는 옹호해줄 수 없어 엘리자는 결국 제독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수병들이 나서서 엘리자의 제독 해임은 부당하다고 너도나도 나섰다.

“대마법사님이 아니었으면 우린 모두 다 죽었을 겁니다!”

“반도 못 건졌을 겁니다!”

“대마법사님이 갔으니까 그 정도에서 끝난 거요!”

귀족 출신의 고위 장교들을 중심으로 수병들의 서명이 빼곡한 탄원서 무더기가 의회에 제출될 정도로 반향이 컸다. 탄원서에는 무시무시한 사령술사와 수백 척의 해적선을 상대로 그 정도 전과면 오히려 양호한 거라는 문장이 똑같이 들어가 있었다.

또한 전투의 경과를 기록한 서기들의 자료가 총정리되어 의회에 제출된 다음부터는 귀족들 사이에서도 ‘이 정도면 정말 선방한 것이다’라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동안 쉬쉬하던 ‘사령술사’에 대한 비밀엄수도 해제되었다. 그러기 무섭게 린던 빈민가의 대화재 역시 사령술사가 일으켰다가 엘리자 덕에 피해가 줄었다는 다소 왜곡된 소문도 같이 번졌다.

***

“내가 왜 불렀는지 아느냐?”

“대충 예상하곤 있습니다.”

여왕과 엘리자와의 독대 자리. 절대왕정 국가가 된 니아트리브의 절대권력자의 눈빛은 더 큰 것을 꿈꾸며 사납게 빛나고 있었다. 무기가 발하는 서늘한 광택과도 같은 눈빛에 엘리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뭘 원하는지 짐작했다.

“소문을 좀 비틀었다. 네 평가도 한층 더 올라가겠지.”

엘리자는 속으로 그럼 그렇지라고 중얼거렸다.

자신을 바다로 보낸 것부터가 이 나라를 절대왕정으로 만들기 위한 여왕의 계략인데, 한낱 소문 정도야.

“자네는 여기서 멈춰선 안 돼. 복수는 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지 않았나.”

“......해양 패권 말이군요.”

“맞다. 짐은 이 나라를 카스테냐 따위를 눌러버릴 강력한 국가로 만들 셈이다. 옛적부터 니아트리브는 해군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지금은 카스테냐에 뒤이은 두 번째야. 그 위명을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게 짐의 생각이다.”

“카스테냐와, 일전을 벌이실 생각이십니까.”

“곧 명분이 생길 거다. 뭐 명분이야 사실 늘 존재하지. 별거 아닌 걸로 유로파 나라들이 싸운 게 한두 번이더냐.”

엘리자는 몇 년 전부터 카스테냐에 후세 문제가 있다고 들은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현재 카스테냐 왕 자리가 문제라 들었습니다.”

“그래. 그리고 가장 가까운 혈통은 에크나르프다. 에크나르프가 카스테냐를 손에 넣는 걸 어떻게든 막아야한다. 강한 육군 에크나르프와 강한 해군 카스테냐. 그게 만나면 우리에겐 파국뿐이야.”

여왕이 자신이 끼고 있던 반지를 빼 내밀었다.

“왕실의 마법 무구다. 힌디의 차크라 에메랄드를 세공해 만든 거지. 무한에 가까운 마력을 지원한다고 들었다. 왕실에서 마법사가 나오지 않으니 그동안 쓸모가 없었는데, 이제 주인을 찾게 되는구나.”

“이건 왕실의 물건입니다. 제가 어찌......”

“왕실의 것은 국가의 것이며, 국가의 것은 왕실의 것이다. 그러니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왕실의 물건을 사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엘리자는 조심스럽게 마법 반지를 받아들었다. 새끼손톱만한 에메랄드가 마력을 품고 있음을 증명하듯 녹색 사이에 푸른빛이 끼어든 색이었다. 그 광채로 보건대, 무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마력을 착용자에게 지원해 줄 건 분명해 보였다.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할 것까지야. 카스테냐 쳐부수라고 주는 건데.”

“하지만 마법사 사회에서 반발이 있을 텐데요.”

대마법사는 함부로 전장에 나갈 수 없다.

“자네가 이 나라 최고의 마법사라는 것 때문인가? 따지고 보면 스코티시에 자네보다 더한 대마법사가 있지 않은가. 모습을 보이고 있진 않지만 말이야.”

“그 정도로는 변명이 되지 못합니다.”

“걱정 마라. 다 생각이 있으니. 그건 나중에 그때 가서 다시 얘기하고.”

여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를...... 제 1함대의 제독으로 임명하겠다.”

제독 자리에서 해임된 엘리자는 다시 제독이 되었다. 그것도 니아트리브 왕립 해군 제 1함대를 지휘하는 자리에.

첫 함대라는 이름값답게 돈이 들이부어지는 사격훈련을 주기적으로 실시해 매우 뛰어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는 1함대. 실전에 가까운 모의전을 벌일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하는 부대이기도 했다.

전열함급에 끼지 못하는 50문 미만의 배들도 섞인 4함대와는 달리 1함대는 전부가 3급 전열함 이상의 급수로만 이뤄진, 말 그대로 바다 위 전투만을 위한 80여 척의 대선단이었다.

“그리고 제 4함대의 규모가 줄었으니 1함대로 편입시키겠다.”

그냥 대놓고 엘리자를 밀어주겠단 얘기였다.

엘리자는 4함대 제독으로 취임하고 신임을 얻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이미 신임을 얻은 4 함대의 인원들을 1 함대에 끼워 넣으면 엘리자가 부대를 장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더 짧아질 것이다.

“조만간, 전쟁이 벌어질 거다. 그때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카스테냐의 해군을 재기불능 수준으로 짓밟아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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