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물마법사와 사령술사-9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전설 속의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처럼, 어둠을 머금고 검어진 바닷물로 이뤄진 소용돌이가 모든 걸 빨아들이고 있었다.
배의 잔해들이 서로 부딪히며 와지끈 부러지고, 결국 중심부로 휩쓸려 들어가 깊은 심해저로 빨려 들어갔다.
브란트는 하체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을 참으며 갑판 조각이 소용돌이 안쪽으로 끌려 들어가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부지런히 다리를 움직였다.
‘버텨야 된다.’
소년의 팔다리가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먹어치운 사탄이 뭔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걸까. 영혼을 먹는 소년의 특성상, 강인한 악마를 집어삼켰으니 이는 거대한 영양분 덩어리를 몸에 우겨 넣은 셈이었다.
‘버텨야 한다. 좀만 더......’
하늘에서는 은은한 우렛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수면에서 튀어오르는 물방울조차 매서워져 상처를 낼 정도였다. 갑옷에 가려지지 않은 옷자락과 살점은 물론이고 갑옷마저 조금씩 물살에 깎여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칼로 저미는 물살이라니 마법은 정말 무섭군.
‘단단히 작정을 했다.’
저런 물마법사가 니아트리브에 있었다니. 마음만 먹으면 카스테냐의 해군력을 제칠 게 분명했다. 저 마법사가 있는 한 앞으로의 해양 패권은 니아트리브가 꽉 잡고 있겠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으음.”
거친 물살에 위아래로 흔들리는 갑판 조각 위에서 소년이 몽롱한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잠에서 막 깬 듯한 나른한 두 눈. 소년은 자신의 시야가 복원되었음을 깨달았다. 검은 천에 얼굴 절반이 가려진 듯한 시야는 이제 오른쪽도 환히 보였다.
사탄아 고맙다. 오래도록 기억하진 않겠어.
뭐가 이쁘다고.
소년의 복구된 오른쪽 눈동자는 악마의 영혼을 닮은 핏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거기에선 핏빛 광망이 피눈물처럼 얼굴을 타고 흘러 턱끝에서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그 바람에 오른쪽 시야가 꽤나 붉게 보였다. 과도한 힘을 얻어 그런지 아직 완전히 갈무리가 안 된 모양.
“일어나셨습니까 주군.”
마치 폭포처럼 콰르르 소리를 내는 물살 소리를 뚫고 안도한 브란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떨어졌을 때는 갑판이 뒤집어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브란트가 더 작아진 갑판 조각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었다.
그의 하반신은 온데간데없었다. 흉갑 밑부분이 상어가 씹은 것처럼 너덜거리고 있었다.
“최대한 버텨봤지만 한계는 있더군요. 지금 이곳은 더 이상 물이 아닙니다. 칼날 그 자체입니다.”
“수고했다. 일단은 버티고 있어.”
키가 커지고 팔다리도 길어져 비로소 꼬마아이 티를 벗고 소년이라 부를 수 있게 된 소년이 물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쓱 쓸고는 한쪽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니아트리브 1급 전열함 주변에서 마력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저주를 막는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소년이 악마를 집어삼키느라 저주가 끊겼기 때문이었다.
‘물마법 말고도 하나가 더 있다.’
마력을 요동치게 만드는 주체는 둘이었다. 하나는 소용돌이고. 또 하나는......
소년이 눈을 감고 죽은 갈매기의 시야를 공유하여 가장 큰 배의 갑판 위를 슥 쓸어보았다.
선수부에 흰 로브의 대장으로 보이는 마법사를 포함한 마법사 무리가 둥글게 모여 있었다. 그 중심에서 바닥에서 살짝 떠오른 복잡한 마법진의 모습이 엿보였다.
‘이 소용돌이 말고도 또 뭔가를 하려는 모양이야.’
쿠르릉......
은은한 천둥 소리에 소년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꾸물거리는 먹구름이 밑의 소용돌이처럼 나선형으로 꼬인 채 으르렁거렸다. 그 중심에서 고도로 집중되는 마력도 느껴졌다.
번개마법이구나.
‘죽이려고 작정을 했네. 하지만 순순히 끝날 순 없지.’
소년은 내면을 관조했다.
거대한 바위가 잠긴 강물은 은은한 핏빛으로 변해 있었다. 핏빛 강물이 살아있는 것처럼 마구 꿈틀거렸다. 더불어 바위 역시 그 물이 싫은 듯 조금씩 거체를 뒤틀며 물을 흙탕물로 만들고 있었다.
소년이 힘을 써 강물을 핏빛으로 물들이는 악마의 힘을 줄여 갈무리해야 저 두 원인이 진정되어 마침내 힘이 안정될 수 있을 것이리라.
‘결국 마법싸움인가.’
소년의 왼손에서 불길한 붉은빛의 번개가 타닥거리며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왕 몸이 멀쩡하게 되는 거 오른팔도 재생되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며 소년이 왼팔로 힘을 집중했다.
손 안에 머무르던 번개의 씨앗이 점점 확장되고 사방으로 불꽃을 튀기며 어느새 머리통만한 크기의 번개 구체가 되었다.
소년이 구체를 쥔 손을 앞으로 뻗자, 구체가 크게 확장되며 앞으로 좁은 기둥 형상의 번개 줄기로 변화해 날아갔다. 하도 곧고 굵은지라 얼핏 보면 빛기둥을 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밀도 높은 번개마법이었다.
콰쾅!
번쩍 날아간 붉은 번개줄기가 니아트리브 1급 전열함의 옆구리 중앙부에 직격했다. 두꺼운 나무 선체가 눈덩이가 부서지는 것처럼 산산이 터져나갔다. 붉은 번개불꽃이 사방으로 튀기며 선원들을 구워버리고 대포를 녹였다.
“칫.”
소년이 혀를 찼다. 노린 건 마법사들이 있는 선수부인데. 힘이 날뛰니 세밀한 조절이 힘들었다.
소년이 마법을 쓰기가 무섭게 물마법사 엘리자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노옴! 살아있었구나!”
어쩐지 저주가 끊기더라니. 죽은 게 아니라 힘을 모으고 있었구나!
“죽여버리겠다!”
안 그래도 바람에 휘날려 산발인 머리가 더욱 사방으로 뻗쳤다. 엘리자가 마법진에서 빠져 난간을 붙잡았다. 분쇄기처럼 물에 잠긴 모든 걸 갈아버리는 물살이 거세짐과 동시에 물기둥이 소년의 근처에서 솟아올랐다.
“거, 아줌마 취향 독특하시네.”
소년이 중얼거렸다. 물기둥 끝은 뱀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물의 뱀은 실제 뱀이 먹잇감을 공격하는 것처럼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소년의 주변으로 마구 머리를 내려찍었다.
대다수가 소년이 떠 있는 조그만 갑판 조각 주변의 수면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무래도 어두운 데다 소용돌이 때문에 소년의 위치가 계속 바뀌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하지만 뱀의 아가리가 떨어지며 사방으로 퍼지는 물의 파편은 무시할 것이 못 되었다.
소용돌이는 거대한 분쇄기나 다름없게 된 상태. 물의 뱀이 수면에 빠지면서 사방으로 퍼지는 물 역시 날카로운 금속 파편처럼 갑판을 쪼개며 상처를 남겼다. 이는 계속 밑바닥이 갉아먹히던 갑판의 수명을 더욱 짧게 만들었다.
소년은 공기 마법을 부려 물의 파편을 흘려내면서 갑판의 밑부분도 감쌌다. 칼날에게서 보호를 한다면 힘이 많이 든다. 그래서 그 위를 미끄러지며 타고 다닌다는 식으로 드는 힘을 절약했다.
“읏!”
운 없게 소년에게 직격하는 물뱀은 마법으로 머리를 터뜨려 파훼시켰다.
마법을 쓰며 발산되는 붉은 빛이 소년의 위치를 특정시키는 바람에 물뱀의 머리가 소년을 정확히 노려 떨어지는 빈도가 늘어났다. 하지만 물의 뱀만으로 소년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악마의 힘은 넘칠 정도로 많다. 혐오스런 붉은 빛의 번개가 방어막 대신 소년 주위를 둘러 뱀들을 쪼개고 터뜨렸다.
“한 번 더.”
소년은 번개를 다시 손에 모았다. 더해서 검은 안개 같은 조그만 파편도 살짝 심었다.
번개의 기둥이 다시 전열함으로 쏘아졌다. 마법사의 소행인지 엷은 방어막이 번개의 경로에 쳐졌으나 소년이 손가락을 까딱 움직이자 마치 용수철처럼 위쪽으로 휙 꺾였다가 독수리가 먹이를 향해 내리꽂히듯 배에 부딪혔다.
어지간한 마법사도 혀를 내두를 수준의 마법 조종실력이었다. 아까 구멍이 났던 곳 바로 옆이 터져나가 구멍이 더 커졌다. 갑판 위에서 뿜어지는 두려움의 냄새가 짙어졌다.
***
두 번째 번개줄기에 직격한 전열함의 함내 포갑판.
수병들이 주변에 즐비한 시체와 대포 조각을 뒤로 하고 갑판 위로 올라가고 있는 가운데 한 수병이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번개 마법에 직격해 완전히 타버린 선임들의 시체가 주변에 즐비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참 수병은 난생 처음 겪은 이 처참한 해전의 모습에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
그런 수병에게 조그만 안개 덩어리가 꾸물거리며 기어왔다. 소년이 번개에 담아 날려 보냈던 조그만 저주의 파편이었다.
안개 덩어리가 멍하니 앉아 있는 수병의 손에 닿자마자 스르륵 피부 밑으로 스며들었다.
“어, 어, 어어......?”
어린 수병의 시야가 스르륵 변하기 시작했다.
새까만 그을음 투성이였던 함 내부가 온통 불이 붙은 것처럼 보였다. 당장 끄지 않는다면 배 전체를 휘감을 법한 진한 불꽃의 뱀이 쉬릭하고 혀를 낼름거렸다.
‘부, 불! 불을 꺼야, 불을 꺼야 돼!’
혼란에 빠진 수병은 급히 벽에 걸려 있는 물동이를 들고 배 밑으로 내려갔다. 물동이 중앙이 등불처럼 일렁였지만 그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온통 불이 가득한데도 연기 한 점 없는 아래층으로 들어간 수병은 물통을 찾았다. 아 저기!
검은 가루가 주변에 흩어져 있는 물통이 보였다. 수병은 한손에 잡은 물동이를 검은 가루처럼 보이는 물속에 푹 집어넣었다.
기름이 가득 든 유등이 흑색 화약과 만났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화약을 보관하는 1급 전열함의 중앙부에서 거대한 유폭이 일어났다. 90문이 넘는 대포에 필요한 막대한 화약이 모조리 점화되는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화약고 위쪽의 갑판이 저 멀리 날아가고 아까 번개 마법이 직격한 구멍에서 붉은 화염이 용이 불을 뿜듯 화악하고 튀어나왔다. 천 명이 넘게 탈 수 있는 거함이 순간적으로 붕 뜰 만큼 거대한 폭발이었다.
“유폭이다! 유폭이야!”
“제독님, 어서 이함하셔야 합니다!
“빌어먹을, 정말 뜻대로 되는 게 없어! 마법사들은 계속 마법진 가동해! 불은 내가 끈다!”
“불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까 마법이 부딪힌 곳의 구멍이 폭발 때문에 너무 커져서 이대로라면 물이 들어와 가라앉습니다! 빨리 이함하셔야 합니다!”
장교의 말에 엘리자의 표정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지?”
“대략, 10분, 아니 그보다 짧을지도 모릅니다.”
“수병들부터 대피시켜. 우린 알아서 빠져나갈 수 있......”
엘리자의 말이 끊겼다. 엘리자는 손을 들어 올려 공기 마법을 발현했다.
저편에서부터 수많은 불의 화살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
유폭이 일어났다.
잘 먹혔군. 최대한 검지중지를 먹여 주지.
의도대로 흘러가자 소년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재차 마법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불마법이다. 악마의 힘이 함유되어 더욱 붉게 타오르는 불덩이가 피어올랐다. 소년은 불덩이를 선박으로 바로 던지지 않고 공중으로 힘껏 던졌다.
수십 야드 위로 솟아오른 불덩이가 한 바퀴 회전하더니 대포에서 쏘아지는 산탄의 파편처럼 여러 조각으로 분열하며 선박들을 향해 쏟아졌다.
서로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선박 여러 척에 불비를 쏟아 붓는 마법실력에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저 숫자와 범위와 불의 진함으로 보건대, 만만치 않은 마법이리라.
엘리자가 급히 소용돌이로 향하는 마력을 빼내 방어막을 만들어 마법사들이 있는 선수부를 우선 보호했다. 그 바람에 물살이 담고 있는 절삭력이 사라졌다.
수백 명이 쏘아대는 불화살 세례 같은 불덩이가 기함을 비롯해 주변의 배들의 돛과 갑판에 부딪히며 펑펑 터져나갔다.
“으아아! 불이다! 불이야!”
“당장 이함하라!”
“이함! 이함!”
배 위는 순식간에 화염으로 뒤덮였다.
수병들이 허둥거리며 뱃전에서 안절부절 못했다.
수면에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안광이 번쩍였고 배 위에는 불길이 이글거렸다.
“달려들어! 죽기 아니면 살기다!”
수병들이 구명정을 내리고 큼직한 나뭇조각을 수면으로 던지며 발악했다. 구명정이 뒤집어지고 칼을 뽑아든 채 수중전이 벌어졌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던 마법사들 몇이 마법진에서 빠져 물마법과 공기마법으로 바닷물을 끌어올려 급히 진화작업을 했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어디까지 할 수 있나 보자. 끈질긴 놈아아!”
불꽃 세례를 막고 눈의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 한 줄기를 흘린 엘리자가 이를 갈았다.
쨍!
엘리자의 팔찌가 또 하나 조각나 바닥에 떨어졌다. 팔찌에 있던 모든 마력이 엘리자에게로 빨려나가 팔찌의 색은 검게 죽었다. 반지의 보석들 역시 모두 검은 돌덩이가 된 지 오래였다.
그을린 흰 로브를 펄럭이며 그녀가 마력을 한껏 모아 아래에서 위로 손짓하자 수면이 얇은 송곳 형상으로 쑥 올라와 모든 걸 꿰뚫었다. 사령술사의 위치를 제대로 특정할 수 없어 그 일대 전체를 마법으로 뒤덮었다.
그 충격에 소년이 디디고 있던 갑판이 완전히 쪼개지며 일순간 소년이 허공을 날았다.
‘그럼 그렇지.’
소년은 이 또한 예상한 바였다. 솔직히 물 위인데 물마법을 어떻게 이겨.
‘아, 이렇게 되면 결국 죽은 척 해야 하나.’
그래도 조금은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은 원 목적대로 튀어야겠네.
소용돌이 한편에 생겨난 넓은 가시방석 위로 소년이 퍽하고 꽂혔다. 몸에 방어막을 둘렀지만 엘리자가 분노에 차 작정하고 만든 물의 송곳에 담긴 마력은 방어막보다 진했다. 방어막이 뚫리며 물의 송곳이 소년의 몸을 꿰뚫었다.
송곳의 간격이 촘촘하진 않아 몸이 구멍투성이가 되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왼쪽 어깨와 오른 옆구리, 왼쪽 허벅지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커윽!’
린던에서 마법사의 자폭을 맞았을 때처럼 극심한 통증이 몸 전체를 지배했다. 몇 초간 물의 송곳에 꿰여 허공에 떠 있던 소년은 물의 송곳이 힘을 잃고 무너지며 힘차게 흐르고 있는 소용돌이 내부로 그대로 빠졌다. 소년이 광범위 불마법을 사용한 덕에 엘리자의 힘이 소모되어 절삭력은 사라진 게 다행이었다.
출혈을 막고 있던 물이 사라지자마자 피가 왈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곧바로 몸을 치유하는 검은 안개가 실혈이 많아지기 전에 큼직한 구멍들을 틀어막아 큰 문제는 없었다.
‘신기하네.’
물에 빠졌음에도 숨이 막히지 않았다.
피부는 더 질기게, 근육은 더 강인하게, 뼈는 더 단단하게, 내장은 더 정적이게.
마법사의 영혼을 먹었을 때 소년의 육신이 그렇게 강화된 것처럼, 악마의 영혼 역시 소년의 힘을 키워 주며 소년의 육신을 같은 방식으로 더 강화시켰다.
소년의 맥박은 매우 느렸다. 죽은 건지 아닌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소년이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푸하 같은 소리는 내지 않았다. 숨이 막히지 않았으니까.
“주군!”
구멍투성이가 된 브란트가 상체만 남은 탓에 물살에 더 쉽게 휩쓸리면서도 두 팔로 가까스로 파도를 헤치며 소년에게 다가왔다.
“난 괜찮아. 이렇게 된 이상 슬슬 죽은 척을 해야 할 거 같은데.”
“역시, 이기는 건 요원한 겁니까.”
“못 이겨 못 이겨. 땅 위라면 모를까, 발밑이 온통 물마법사의 무기인 상황인데.”
소년이 물의 흐름에 실려 멀리 떨어진 것도 모른 채, 날카로운 물의 송곳들이 생겼다 사라졌다 하며 소년이 있던 자리를 마구 짓이기고 있었다. 소용돌이는 더 빨라져 둘은 점점 중심을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쿠르르릉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머리 위 먹구름에서 번쩍이는 방전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번개마법이 거의 다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마법진에 마법사 여러 명이 오랫동안 작업해 만든 번개마법이라. 어떨지 궁금했다. 그게 소년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일지라도.